공개 편지라도 한 장 띄울까 생각하던 참에 배문정 교수 편지가 나왔데요. "유쾌한 사람 유시민"을 그리워하는 배 교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입니다. (☞관련 기사 : "유시민 형, 더 이상 '노무현의 빙의' 노릇은 안 됩니다")
노 대통령 세상 떠나신 날 쓴 글에서(☞관련 기사 : "노무현은 '자살'하지 않았다") 그분의 힘의 원천을 '유머 감각'에서 본다고 나는 말했습니다. 힘든 좌절을 거듭거듭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 그리고 승부의 고비에서 본질을 파고드는 담대함이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초연함에서 나오는 것으로 본다고.
유 선생도 그분 못지않은 유머리스트로 나는 봅니다. 내가 '유빠'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왜 좋아하냐고 묻곤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당신 같은 사람 좋아한다는 것이 좀 의외로 느껴지기도 하는가 봐요. "인간성이 좋아서", "마음이 따뜻해서" 하고 생각대로 대답하면 더더욱 놀라죠.
유 선생 이미지 홍보가 참 이상하게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능하고 명민하지만 성격은 모진 사람으로 상상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번 보궐 선거 과정을 보면 그런 이상한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계간 <광장> |
내가 말하는 '유머 감각'이 '웃기는 재주'라기보다 '웃는 재주'라는 거 잘 아시죠? 노 대통령도 유 선생도 정말 보기 좋은 웃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그런데 유 선생 웃음이 그대로 있는지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배 교수가 다 했으니 따로 편지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다가 유 선생의 "큰 죄"를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이 들어 자판을 당깁니다.
'범죄(crime)' 얘기일 리는 없고 '죄악(sin)'을 말한 거겠죠. 그중에서 경죄(venial sin) 아닌 중죄(mortal sin)를 말한 것 같습니다. 가치를 손상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가치를 파괴하는 죄, 실수로 저지른 죄가 아니라 잘못된 마음에서 나온 죄라고 유 선생이 생각했기에 "큰 죄"라고 했겠지요.
'죄'라는 말이 유머리스트의 사전에 없는 단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겁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할 때 "죄송하다"고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기도 싫어하고 듣기도 싫어합니다. 유머리스트는 세상의 잘못된 일을 '어리석음'으로 이해하지, '죄악'으로 보지 않습니다. 어리석음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곳에 이르면 '운명'을 이야기하죠.
용산 참사 며칠 후 유 선생 서재에 들렀을 때 표정과 기색에서 당신이 나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느낀 일이 생각납니다. 평소와 다른 어눌한 말투로 내게 물었죠. "선생님, 이 세상에 '악'이란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요?"
이 세상에 어리석음은 있을지언정 '악'이란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함께 가지고 살아온 생각이 흔들렸던 겁니다. 그 질문에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잊어버렸어요. 나도 악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맞장구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첫 질문이 내 마음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것은 얼마 후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개 펴냄)를 받아 봤을 때 그 질문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 책 원고를 막 출판사에 넘길 때 용산 참사가 일어났죠. 그 책의 에필로그 "선과 선의 연대를 위하여"는 참사 뒤에 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악'의 존재를 전제로 해서 쓴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 글에서 당신은 1984년의 서울대 사건(서울대학교 학생들이 타 대학 학생 등 4명을 정보기관의 정보원(이른바 '프락치')으로 단정하고 감금, 폭행한 사건)을 돌아보며 "최근에 와서야 나는 내가 악한 사람이든 아니든, 실제로 악한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반성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잘못된 반성이라고 봅니다.
그 사건에서 당신의 역할은 '어리석음으로 인한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나는 봅니다. 그리고 그 정도 어리석은 행동은 그밖에도 꽤 있었을 겁니다. 어느 일에나 잘된 면도 있었고 잘못된 면도 있었습니다. 딱 그 한 차례만이 유일하게 "악한 일"이었다고 당신이 살아온 50년 인생에서 격리시키는 것은 당신의 어리석음에 스스로 눈감고 더 이상의 지혜를 포기하는 짓입니다.
생각난 김에 <후불제 민주주의> 에필로그를 펼쳐 보니 다시 쓴웃음이 떠오릅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 얘기를 했죠. 나는 그 말을 인용할 때 '악의 비속성'이라고 번역합니다. '악'의 존재를 굳이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경멸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때 유 선생이 선악과를 먹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선악의 기준으로 보고 자기 자신도 선악의 기준으로 보게 된 것. 그런 시각에서는 1984년의 한 차례 악한 일이 당신의 50년 인생에 끼어든 한 조각 이물질로 보입니다. 그런 악한 일을 다시 행하지 않으면 '성공'한 인생이 된다는 믿음. '구원'을 바라는 기독교인의 믿음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 28년 만에 두 번째 죄를 짓게 된 것처럼 당신은 말합니다. 그걸 '죄'라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아요. '멍청한 짓'으로 볼 수는 없는 겁니까? 당신이 멍청한 짓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인 줄은 알지만, 아주 안 하는 건 아니잖아요? 당신도 사람인데.
그 동안 뉴스도 잘 안 보고 지내서 당신 행동에 얼마나 큰 잘못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뭔가 잘못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어요. 그런데 잘못이 크건 작건 그것을 '어리석음'이 아니라 '죄'로 표현한다는 데는 그 행위 자체와 별개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해에서 국민참여당 후보가 이겼다면 당신 입에서 "큰 죄" 소리가 안 나왔겠죠? 승리하면 죄가 없고 패배하면 죄인이 되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게 된 것은 설마 아니겠죠?
유 선생이 죄를 지었다면 당신 자신에게 지은 겁니다. 선거에 져서 죄인이라면 이겼어도 죄인입니다. '죄악(sin)'이 뭡니까? "받아들여져 있는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표의 많고 적음은 도덕적 기준이 아니죠. 당신 마음속에 선과 악을 갈라놓고 그에 따른 도덕적 기준을 세워놓은 겁니다. 남들을 도덕적 기준으로 재단하니까 자기 자신도 그 기준으로 보게 된 겁니다.
잘못된 일이 있을 때 어리석음을 반성하는 사람이 있고 죄를 뉘우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리석음의 반성은 현명한 사람이 되는 데 목적이 있고 죄의 회개는 선량한 사람이 되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유시민은 자기 한 몸 깨끗이 하는 데 매달리기보다 이웃에 도움이 되기 위해 지혜를 키우는 사람입니다.
1985년의 항소이유서가 그런 자세로 쓴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억울함을 명료하게 밝혀내서 그런 억울함이 줄어들 길을 만들어준 당신의 지혜가 그 글을 빛나게 했습니다. 그 글을 쓸 때 당신은 행위의 선악에 대한 고민으로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작년 7월 만났을 때 <해방일기> 구상에 대한 유 선생 의견을 청했었죠. 그때 유 선생 의견을 고맙게 듣다가 내가 탄식하던 생각이 납니다. 너무 긴 세월 동안 딜레탕티즘에 빠져서 살아왔다고.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하는 일에 내가 너무 게을렀던 것이 부끄러웠어요. 내가 근년 들어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며 일을 꽤 열심히 하게 된 데는 당신에게 얻은 자극이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거리는 좁혀도 현실과의 거리는 지키려 애씁니다. 세상에 공헌하는 길을 현실의 뒤쪽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목전의 관심사를 넘어 더 기본적인 가치를 바라보는 것을 유머리스트의 할 일로 보는 것이죠. 배고픈 이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보다 허기를 채운 뒤의 허탈감을 막아주는 일입니다.
지금 이 사회는 '정의'에 정신이 쏠려 있습니다. 사흘 굶은 사람 눈에 먹을 것만 보이는 것처럼, 정의에 너무 굶주려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최소한의 정의가 이뤄졌을 때 사람들은 정의만으로 행복해 하지 않습니다. 더 기본적인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가는 극심한 허탈감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유 선생이 정치에 나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유 선생다운 정치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용기를 키우고 악을 억누르는 것보다 지혜를 늘려주는 것이 당신이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데, 사람들이 필요로 하면서도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필요를 깨우쳐주는 데 당신의 뛰어난 능력이 있습니다.
보내준 책 <국가란 무엇인가>(돌베개 펴냄) 잘 받았어요. 책 앞에 "시민은 자유롭게, 국가는 정의롭게"라고 써 줬군요. 새로 나온 내 책 보내드릴게요. 앞에다가 "국가는 적당하게, 유시민은 자유롭게"라고 쓸까? 유 선생이 "다시 삶의 환희를 기꺼이 마주하고, 원래 그랬듯이 세상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배문정 교수와 함께 바랍니다. 특히 당신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