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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리 걸쳤다고 너무 미워 마세요!"

[철학자의 서재] 윤인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장면1. 그는 소련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고려인인 그는 조금 다르다. 주변 친구들과 피부와 머리색이 달랐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극동 지방이 고향이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 그를 소련에서 출세시키기 위해 열심히 가르쳤다. 그는 대학도 나왔고 전문 기술도 갖추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농사짓던 끝없는 초원과 그곳의 풀냄새, 그곳은 누가 뭐라든 그의 고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련이 붕괴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러시아어밖에 할 줄 모르던 그는 우즈베키스탄 어만을 국어로 채택한 이 나라에서 한순간에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 고향 땅은 그대로인데 더 이상 이곳은 그의 고향이 아니란다.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외부인이 된 그는 고향 땅에서 질문을 받는다. "어디 출신이세요?"

장면2. 그의 이름은 김경득이다. 일본식 이름은 가나자와다. 그러나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바로 자이니치이다. 일본에서 재일 조선인을 일컫는 이 말은 그의 또 하나의 이름이자 그의 정체성이다. 조선인이라는 것을 지우려고, 또 숨겨보려 애써도 또 와세다 법대를 나왔어도, 누구보다 일본어가 유창해도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낙심한 그는 가난한 도금공 아버지께 돌아와 묻는다. "조선인은 도대체 누구죠?"

소크라테스를 흉내 내는 어설픈 철학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매일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부딪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불행히도 그들의 질문은 철학자의 것처럼 고상하지 못하다. 이들의 질문이 고상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질문 속의 '나'가 항상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타인은 그들을 개인으로 대우하지 않고 카레이스키, 자이니치와 같은 집단으로만 대우한다. 때문에 그들은 '나'라는 주체를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기억 저편에, 그리고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고향에 대해 막연한 그리움을 간직한다. 다름 속에서 살아가며 항상 자신의 정체성과 씨름하는 이들은 바로 적게는 500만, 많게는 7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다.

디아스포라, 떠나간 사람들과 그 기억에 대한 이름

디아스포라(diaspora)는 우리말로는 민족 분산 또는 민족 이산으로 번역되곤 하는데 단지 같은 민족 성원들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는 과정뿐만 아니라 분산한 동족들과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와 공동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어원적으로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 전치사 dia(영어로 'over', 우리말로 '~를 넘어')와 동사 spero(영어로 'to sow', 우리말로 '뿌리다')에서 유래되었다. 유대인들의 방랑에 대한 대명사가 되기도 한 이 단어는 근대 이후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과 집단의 이주에 대한 것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현재 재외 한인은 남북 전체 인구의 약 8%에 다다른다. 이는 인구 대비 재외 국민 비율이 세계 최고치인 것을 말한다.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은자의 나라'였던 코리아는 이제 세계에서 그 구성원에 비해 가장 많은 이가 타향살이를 하는 나라가 돼버렸다. 화교와 유대인보다 고향 땅을 떠나간 비율이 더 높은 사람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떠난 그들만큼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다.

▲ <코리안 디아스포라>(윤인진 지음, 고려대학교 출판부 펴냄). ⓒ고려대학교출판부

<코리안 디아스포라>(윤인진 지음, 고려대학교출판부 펴냄)는 중국, 독립국가연합, 일본, 미국, 캐나다의 이주 한인들의 역사와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와는 남이 되어버린, 우리를 닮았는데 말투는 이상한 그들은 우리가 어찌 여기든 여전히 이 땅과의 마음의 연을 잇고 살아가고 있다. 한인들의 이주의 역사는 1860년대에 시작된다. 당시 이북 지역에 발생한 대기근은 러시아 연해주로의 조선인 이주를 야기했고 이후 조선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라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이주 초기에는 중국, 러시아, 하와이 등으로 많이 이주했으나 일제 강점 이후에는 일본과 만주로 집중되었고 해방 후에는 유럽과 미주 지역으로 한인들의 이주가 많이 일어났다.

어느 누구는 쫓겨났고, 어느 누구는 강제로 끌려왔으며, 어느 누구는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망명했으며, 어느 누구는 잘 먹고살 수 있다는 말에 사기를 당해 이역만리에 팔려왔고, 어느 누구는 이 땅의 고단함을 못 이기고 떠났다. 제 발로 떠났든 쫓겨났든 조선 출신의 이주자들의 타향살이는 고달팠다.

경계인으로서 삶은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현지에서도 고국에서도 그들은 모두 '외부인'이다. 외부인의 삶이란 참 고약한 게, '내부인'들은 항상 자신과 다른 이들이 그들의 다름을 모두 던져버리길 강요하지만 막상 모든 걸 던져버린 이들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삶이 그랬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재일 조선인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 나라에서 모범 소수 민족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다수에 저항하지 않고 그 사회의 메이저리티에 순응하며 스스로 동화되기를 애쓴다. 그러한 노력은 남북한이라는 고국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그들의 생존 전략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화(同化)라는 탈 민족적 통합은 동화(童話)의 마지막 단골 멘트인 '누구와 누구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처럼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았다. 디아스포라에 대한 정치, 경제적 차별은 쉽게 극복되지 않고 있다. 이민 3, 4세의 고려인들의 경우 현지 정계 진출은 거의 전무하고, 중국의 조선족 역시 자치주의 당 서기와 같은 요직은 항상 한족이며, 재일 조선인의 경우에는 현지인과의 결혼이나 취업조차 쉽지 않다.

이미 고국에서는 외국인이 되어버린 그들은 지워지지 않는 출신과 현지에 적응하기 위해 지워버린 기억, 즉 부모의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오늘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민족이라는 단어가 점점 촌스러워지고 있는 요즘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에게는 그 단어가 여전히 일상이자 멍에이다.

탈 민족 담론이 가져오는 민족주의

현대를 탈 민족의 시대라고들 한다. 혹자는 민족은 근대적으로 조작된 이미지일 뿐 실체는 없다 한다. 물론 이 말은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탈 민족 담론이 마이너리티를 부정하는 다수의 폭력적 동화론을 가져오기도 한다.

근래, 특히 미국에서는 인종 동화론을 내세우며 더 이상 배제되는 소수 민족은 없다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미국의 인종 동화론은 샐러드 볼이나 멜팅팟으로 자주 설명된다. 이는 여러 인종이 다양하게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미국이라는 새로운 하나의 사회로 각자가 동화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인종과 민족의 개념은 무의미하고 현대 자유 국가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인 위주의 사회에서 한 번도 외부인은 '동화'된 적이 없다. 특히 유색 인종에게는 더욱 잔혹하여 백인의 맛만 강한 샐러드에서 소수는 저 밑에 침전되어 보이지 않는다. 소수는 그들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버리고 현지화를 꾀하지만 항상 주위를 맴돌 뿐 언제나 외부인 취급을 받아왔다.

이것은 소수민족으로서 미국의 한인들이 겪는 문제인데, 이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재일 조선인, 고려인, 조선족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현지의 문화와 생활이 온몸에 배었지만 완전한 현지인이 될 수는 없었다. 소수 민족 자치를 보장한 중국도 문화혁명 이후 소수 민족의 한족화를 서서히 유도하며 중화 민족화를 꾀하고 있다.

자신이 공동체 안에서 다수에 속해 소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민족을 근대 때 반짝 나타난 환상으로 치부하지만 이 시간에도 전 세계에서 그 환상을 어깨에 메고 살아가는 소수가 있다.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집단적 다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더 주목할 점은 디아스포라의 경우 그들의 정체성이 한국이나 북한에 있는 이들과도 같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완전히 현지화되지도 않았고, 한국적 전통을 완전히 유지하고 있지도 않다.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나온 통계들에 의하면 고려인, 조선족, 재일 조선인, 재미 한인 등 모두가 대부분 자신의 정체성을 현지나 모국이 아닌 자기 자신의 위치 즉 고려인이면 고려인 자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재일 조선인 학자 서경식은 소수 민족의 문제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 거주국과 모국의 양자택일론이라고 한다.

애인을 구하는 것도 아닌데 거주국에서는 거주국만을, 모국에서는 모국만을 선택하게 한다. 디아스포라들에게는 어느 선택도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선택이 편하지도 않다.

경계 속에서의 삶, 디아스포라

단순하게 거주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디아스포라들이 그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디아스포라 중에서 현지에서 상당한 경제적, 정치적 성공을 거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완전히 그 사회에 적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역시 여전히 모국과의 끈을 잇고 살아가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주국에서 경험되는 이질성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저자의 관점대로 이주의 배경과 모국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거주국과 모국 간의 관계는 디아스포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박정희 정권 당시 한일 협정은 재일 조선인에 대한 보상 문제를 모호하게 해 그들의 생활과 사회적 지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한중 수교는 조선족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주국으로의 일방적 동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디아스포라가 가지는 국제적 관계를 간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도 성립하는데 디아스포라와 그 자손이 모국 출신이고 현재 모국의 상황이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해서 그들에게 다시 완전한 한국인이 되길 바라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일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수십 년을 살아도 사투리 하나 고치기 힘든 것이 인간인데 하물며 살아온 문화 자체를 바꾸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변한 만큼 우리도 우리네 고향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고 변해왔는가. 모국과 거주국 사이의 경계의 삶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삶이기에, 그 경계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모국과 거주국 모두에게 필요하다.

디아스포라들이 현지에서 겪는 어려움 중 상당수는 한국 근대사의 상처들과 연관되어 있다.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튕겨져 나가버린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에게 일방적 아량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한반도에 여전히 존재하는 일제 식민지, 분단, 무한 경쟁 자본주의의 살아있는 상처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져버려 내성이 생긴 분단과 일제 식민지의 짐을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은 일상 속에서 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이어보는 것은 그들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이미 불치병으로 치부해버려 포기하다시피한 우리의 사회의 병들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 삶의 연속들이 그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우리의 지나간 상처들을 보듬는 것이라면 이 관계를 지칭하는 표현이 가족과 친척 말고 무엇이 더 있을까?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우리는 수백만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의 친정이자 고향이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그들의 삶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들을 간략하면서도 심도 있게 다룬 책이다. 오래된 친정을 방문하는 기분으로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한 번 들춰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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