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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에 쓸 만한 야구장은 단 2개뿐?

[예병일의 '스포츠 뒤집어보기'] 꿈의 구장의 탄생을 기다리며

최근에 자연재해가 잦다 보니 왠지 세상이 뒤숭숭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 16일에는 대구에서 야구 경기 중에 불이 꺼져 경기를 중단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특별한 사정이야 있겠지만 즐거운 기분으로 구경하던 경기의 끝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야구팬들의 기분은 꽤나 심난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기 중단 사고 후에 매스컴은 "일제 시대에 지어진 대구야구장이 낡았고, 최근에 삼성과 대구시가 새 구장을 짓기로 했지만 빨라도 2014년이 되어야 새 야구장에서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올해 프로 야구 관객 동원 목표는 구단별 목표를 합산하면 663만 명이라는데 계속해서 관객 수가 늘기 위해서는 구장이 커져야 하므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더 큰 야구장이 생겨야만 합니다.

프로 야구가 30년의 역사를 맞이했지만 지난 30년간 새로 문을 연 야구장이라곤 잠실야구장, 사직야구장, 문학야구장 등 세 개밖에 없으니 구장의 측면에서 보면 30년간 별 발전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개장 30년이 지난 잠실야구장을 신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니 전국에 쓸 만한 야구장은 두 개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야구장의 추억

30년 전, 프로 야구가 창단 작업에 들어갈 당시 우리나라에 야간 조명 시설이 있는 야구장은 모두 몇 개가 있었을까요?

정답은 한 개입니다. 지금은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1982년에 프로야구 첫 경기가 열린 동대문야구장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야간 경기를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금융단과 실업단의 올스타경기나 1975년도의 아시아 야구 대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결승전이 야간 경기로 벌어져 공중파를 타고 전국에 중계되는 모습은 어린 나이의 야구팬인 내게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전국 규모 고등학교 야구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는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기 외에 부산에서 개최되는 화랑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대구의 대붕기와 광주의 무등기 대회는 1980년대 이후 신설되었어요.) 여름방학 때 우연히 찾은 부산의 친척집에서 고향인 대구에서는 볼 수 없는 화랑기 고교 야구 중계방송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잡았는데 마지막 경기가 다른 고등학교 야구 대회와는 다르게 오후 5시에 시작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필자가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중계방송 해설자의 설명을 들은 후였습니다.

"화랑기 고교 야구 대회가 개최되는 부산의 구덕야구장에는 야간 경기를 할 수 있는 조명시설이 없으므로 오후 5시에는 경기를 시작해야 해 지기 전에 경기를 마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여름해가 길다 해도 경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으므로 그 날 경기를 다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해가 지면 다음 날 경기를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일몰 서스펜디드 경기라 합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지난 16일에 대구야구장에서 서스펜디드 경기가 선언되는 순간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의 야구장이 그 정도였으니 대구야구장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프로 야구가 생기기 전까지 대구야구장에는 조명탑이 없었음은 물론 외야 관중석이 언덕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시대의 노천극장처럼 잘 지어진 것이 아니라 대학교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여러 군데서 볼 수 있는 노천극장보다도 못한 수준이었습니다.

개인별 자리가 없는 것은 물론 계단식 좌석 모양이 완전하지 못해서 홈런이 났다 하면 공을 따라 아주 쉽게 뛰어다닐 수 있다는 점이 장점 아닌 장점이었습니다. 1979년 실업 야구 봄철 리그가 대구야구장에서 개최된 어느 일요일 마지막 경기는 우승 후보 성무(공군 야구팀의 별칭)와 노장들이 주축이 된 제일은행이었습니다.

현 국가 대표 선수를 여러 명 보유한 성무의 우세가 예상되었으나 난타전 끝에 전 국가 대표 출신의 노장들이 분전한 제일은행이 10대 9로 승리를 거둔 이 경기에서 다섯 개의 홈런이 터졌고, 그 때마다 외야 관중석에서는 홈런 공을 잡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언덕형 관중석을 마구 뛰어다녔으니 지금의 야구장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장면입니다.

1981년 말, 프로 야구 탄생이 발표된 직후 대구의 명물(?)인 언덕 관중석은 의자로 교체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대구야구장 외야 관중석에서 언덕을 뛰어다니며 홈런 공을 쫓아다니는 모습은 프로 야구 탄생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잠실야구장의 충격

1982년에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잠실야구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잠실야구장 개장 기념 경기를 중계하던 하일성 해설위원이 아주 즐거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건축된 지 30년이나 지나서 보수할 곳이 많이 생긴 잠실야구장 신축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30년의 세월이 참으로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1983년에 잠실야구장을 처음 찾은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잠실야구장의 규모가 대구, 부산(구덕), 동대문야구장보다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장 모습이 한 눈에 쉽게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내야에 앉으면 외야로 친 공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외야에 앉으면 포수미트로 들어가거나 타자가 공을 맞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야구장에 갔다가도 텔레비전 중계방송을 보는 것보다 더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 실망을 하곤 했는데 잠실야구장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야구장도 잘 지으면 한 눈에 경기장 전체가 들어온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고, 후에 메이저리그 경기장을 둘러본 후에는 이를 더욱 실감하고 있습니다.

각종 야구 규정 등을 장충동리틀야구장을 통해 중계되는 방송을 보며 배운 필자에게 장충동리틀야구장 철거 소식은 아쉬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장충동리틀야구장이나 야구 초짜 시절 야간 경기를 유일하게 볼 수 있던 동대문야구장이 사라진 지금 잠실야구장도 신축을 고민할 때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충동야구장이나 동대문야구장을 없애는 것에 대한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아마도 사라지는 역사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후에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찾았을 때 그 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지난날의 추억에 젖으며 자신의 역사를 더듬을 수 있겠지만 집이 있던 자리가 길로 바뀌어 있거나 빌딩으로 바뀌어 있다면 소중한 과거가 날아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셈이니 허전함을 달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목동야구장이 세워지고, 고척동에 새 야구장을 짓는다 해도 과거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감추기가 어렵습니다.

▲ 지난 2008년 3월 14일 철거된 동대문야구장. ⓒ뉴시스

애틀랜타 올림픽 주경기장은 어디에 있을까?

1976년 올림픽을 개최한 몬트리올은 20년이 지나도록 빚을 갚기 위해 엄청난 고역을 치러야 했습니다. 올림픽을 유치하면 겉으로는 멋을 낼 수 있지만 엄청난 비용 부담에 의해 도시는 파산 지경에 이른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을 때 미국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흑자를 기록한 것입니다. 장사 수완이 다분했던 피터 위베로스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그 이전의 올림픽에서 참가자들에게 당연히 공짜로 지급되던 것까지 비싼 금액을 부과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경제적으로 흑자를 이루는데 성공했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후 피터 위베로스는 4년 반 동안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를 맡아서 메이저리그의 순익 증가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올림픽도 흑자를 낼 수 있다는 자신을 얻은 미국은 12년 만인 1996년에 애틀랜타에서 또 올림픽을 개최하였습니다. 서울 올림픽에서 성화 최종 주자와 점화자를 별도로 배정한 방법은 바르셀로나에 이어 애틀랜타에서도 채택되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성화대에 불을 붙일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을 때 애틀랜타 올림픽 성화 점화자로 등장한 이는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였습니다. 생중계 화면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파킨슨씨병의 특징인 굳은 얼굴과 느린 행동을 확실히 보여 주었기에 보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알리가 성화대에 불을 붙인 아틀랜타 올림픽 주경기장은 어디에 있을까요?

CCN과 코카콜라의 본사가 위치해 있고, 스톤 마운틴 파크(Stone Mountain Park)라는 유명 관광지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있는 곳이며, 한국 교민들도 많이 살고 있는 남부의 대도시 애틀랜타의 관광 안내서를 아무리 뒤져 봐도 올림픽 주경기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유는 이미 사라지고 없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이 개최된 도시마다 대회가 끝나면 경기장 관리에 큰 어려움이 있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애틀랜타 올림픽이 끝난 후 주경기장을 야구장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올림픽 주경기장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야구장 바로 옆에 지었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714개의 홈런을 기록한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깬 행크 아론(통산 755호 홈런을 기록했으며, 현재의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기록은 배리 본즈의 762개임)이 선수 생활 전성기를 보낸 곳이며, LG의 봉중근이 속해 있던 팀이기도 합니다.

1996년 7월 19일에 시작되어 8월 4일에 애틀랜타 올림픽이 끝나자 주경기장은 곧 야구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리노베이션에 들어가 1997년 시즌부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야구장은 모두 해체하여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행크 아론이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깬 715호 홈런이 떨어진 자리에 715라는 표시가 붙은 안내판이 과거에 그 장소가 야구장 자리였음을 보여 주고 있을 뿐입니다.

올림픽이라는 대행사를 치른 후 금방 경기장을 없애 버린 처사가 역사를 무시하는 일이라고 해야 할지, 경제성에 바탕을 둔 실리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한국에도 꿈의 구장이 생겨났으면

캐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은 영화 <꿈의 구장>이 개봉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누구나 꿈이 다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누군가가 꿈으로 간직할 수 있는 야구장이 조만간 생겨나기를 기대해 보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프로 야구 시작 때부터 새로운 야구장에 대한 기대와 필요가 있었지만 아직도 대구나 광주 구장은 미국의 대학 야구장 수준이 될까 말까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미국의 프로 야구장 네 군데를 둘러 본 경험을 한 나는 보통 한 시간 정도의 투어를 통해 5~10달러 정도 지불하는 액수가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룸을 비롯하여 외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모습들을 둘러보고, 또 경기장이나 팀에 얽힌 과거의 여러 모습들을 대하고 나니 사용한 비용 이상의 뭔가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선수를 위해서나 팬을 위해서는 구장 시설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얼마를 들여서 어떻게 효과를 거둘 것인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므로 투자자가 나서지 않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팬이랍시고 경기만 즐기고 그냥 돌아가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영구 결번으로 남은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가 사용한 캐비닛을 보고 싶기도 하고, 라커룸에 어떤 사진이 붙어 있는지도 궁금하며, 야구장이 긴 세월에 걸쳐 어떻게 리노베이션되어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은 팬들에게 그 과정을 설명해 줄 공간도 필요합니다.

지난 화요일(19일)의 야구 중계방송에서 이순철 해설위원이 20여 년 전 한국 시리즈에서 홈런을 치는 장면이 나온 걸 봤습니다. 프로 야구에서는 외야수로 유명하지만 아마추어 시절에 최고의 유격수였던 이순철 해설위원의 유격수 수비하는 모습, 이미 야구팬들에게 익숙한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김재박이 개구리 점프하는 모습으로 스퀴즈번트를 성공시키던 모습, 잠실야구장 개장 경기에서 1호 홈런을 친 류중일의 모습은 물론 유격수로 알려져 있는 류중일이 잠실야구장 개장 경기에서 직접 마운드에 올라 공을 뿌린 모습을 전시장에서 다시 본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전념하기 위해, 팬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간식거리를 위생적으로 즐기기 위해, 과거에 야구장을 찾으시던 분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과거의 추억에 젖으며 아들과 손자에게 야구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 꿈같은 경기장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프로 야구의 인기가 상승세를 타고 있으니 열악한 환경의 야구장을 프랜차이즈 구장으로 사용하는 팀들은 물론 세상의 모든 스포츠 경기장이 꿈을 간직하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경기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올림픽이 열린 잠실 주경기장이 지금은 세금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되었다는데 혹시 그 자리에 새로운 경기장을 짓는다면 어떨까요? 서울 올림픽의 역사를 없애는 것이어서 그 역시 문제가 있는 결정일까요?

과거의 역사를 더듬을 수 있으면서도 새 경기장에 대한 만족도가 대단한 꿈의 구장이 탄생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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