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청와대에 방사선 발생기 놓아 드려야겠네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청와대에 방사선 발생기 놓아 드려야겠네요!"

[안종주의 '위험사회'] 미량의 방사선은 과연 몸에 이로운가?

적당한 스트레스가 건강에 좋다는 말이 있다. 또 이와 유사한 것으로 미량의 독은 약이 될 수도 있다는 말도 있다. 최근 이를 연상케 하는 내용이 일부 원자력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미량의 방사성 물질 검출과 관련해 보도되고 있어 일반 시민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다름 아닌 미량의 방사선은 인체에 해롭기는커녕 오히려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미량의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는 방사능 비가 한반도 전역에 비가 올 때마다 계속 내리고 있다. 또 우리가 마시는 공기에도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 등이 계속 검출되는데다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재배되는 시금치 등 일부 채소에서 방사성 물질이 미량 검출되고 있어 시민들을 불안케 만들고 있다.

미량의 방사능 비나 눈을 맞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거나 방사성 물질이 미량 들어 있는 채소는 안전한 기준치 안에 들어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전문가와 정부 당국의 해명 차원이 아니라 미량의 방사선은 오히려 몸에 이롭다는 매우 공격적인 주장을 하는 원자력 전문가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들은 일반 시민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런 매우 민감한 주장을 이번 일본 원전 사고 이전에도 가끔 해왔다. 전문가들은 이를 '방사선 호메시스(Hormesis, 호르메시스)' 이론이라고 부른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호메시스는 '자극한다' '촉진한다' '흥분시킨다'는 뜻이다. 생물체가 외부로부터 미량의 독성 물질과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오히려 생체 기능에 유익한 효과를 가져 온다는 호메시스 이론을 방사성 물질에까지 적용한 것이 방사선 호메시스 이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가 많지는 않지만 드물게 발표돼 왔다. 또 언론에서도 가끔 호메시스 또는 방사선 호메시스 이론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특히 라돈 온천의 효능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말해왔다. 하지만 눈에 띄는 방식으로 크게 다루지는 않아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낯선 이론이다.

이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파장이 장기화하면서 한반도에도 방사성 물질이 미량이라고는 하지만 줄곧 영향을 주고 있고 이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전문가들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려고 미량의 방사선은 몸에 유익할 수 있다는 이 이론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이 가운데 일부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극미량의 방사선은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방사선 중에는 물질을 산화시키는 게 있다. 중성인 분자나 원자에서 전자를 빼앗는 것이다. 생체 물질이 산화하는 과정이 바로 스트레스인데 방사선이 체내에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그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체 면역 기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라돈 온천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주운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많은 양을 받으면 유전자 돌연변이나 암이 생기겠지만, 적은 양의 방사선이 들어오면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면역 기능을 높이게 된다"며 "이 같은 효과를 '호메시스 이론'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과거 브라질에서 우라늄 광산 주변에 있는 한 마을 주민들이 특히 오래 살아 그 이유를 분석해본 결과 이 같은 이론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한국일보> 2011년 4월 4일자)

2004년 2월 10일. 한국원자력연구소(소장 장인순)의 김재성 박사가 정부과천청사 2동 과학기술부 기자실에 등장했다. 김 박사 '팀'은 그날 3~4년 묵은 식물 씨앗(종자)에 방사선 0.5~16그레이(Gr) 정도를 쪼였더니 "매우 잘 자랐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식물에 '잠재한 활성 인자를 방사선으로 자극'해 생장을 촉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쓴 방사선 조사량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방사선량의 100배, 사람 몸에 해를 입힐 수 있는 양의 10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전자신문> 2011년 3월 23일자)

이런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호메시스 이론을 살펴보자. 1888년 독일의 약물학자인 휴고 슐츠는 미량의 독성 물질이 효모의 성장을 오히려 촉진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독일의 의사 루돌프 아른트도 이와 유사한 현상을 동물에게 약물을 투여하면서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를 아른트-슐츠 법칙이라고 불렀다. 사우스햄과 에를리히가 1943년 <식물병리학지>(Phytopathology Volume 33, pp. 517~541)에 과학 논문을 기고하면서 처음으로 'Hormesis'란 말을 사용했다.

▲ 호메시스 이론을 설명해주는 양-반응 곡선, 저농도에서 생체 자극이 이루어지고 고농도에서만 생체 억제가 이루어진다. ⓒwikipedia.org

호메시스 이론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례로는 운동을 꼽고 있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으면 각종 질병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지나친 운동 또한 해롭다. 하지만 적절한 강도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게 되면 심혈관 계통과 면역 시스템의 기능이 증진되는 등 많은 편익 효과가 있다. 운동은 호메시스 이론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적당히 마시는 술도 심장병과 뇌졸중의 위험을 낮춘다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적당히 마시기가 쉽지 않으며 술이 주는 긍정적 효과가 너무 과장돼 있다는 점이다. 술은 알코올이고 인간이 다루기 쉽지 않은, 즉 통제하기가 어려운 독성 물질이다.

호메시스 이론 또는 개념은 노화와 관련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어떤 생물체든 기초적인 생존 능력은 항상성 유지 능력에 달려있다. 생물 노화 학자들은 세포와 생물체를 약한 스트레스에 노출시키면 적응 반응 또는 항상성 유지 반응을 유도해 결과적으로 생물체에 이득을 준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노화와 관련해 가장 많이 이용된 호메시스 응용은 열 쇼크, 방사선 조사, 과산화제, 고중력, 식이 제한 등이었다.

노화나 운동이 아닌 방사선과 호메시스가 결합되면 논란이 커진다. 저선량의 전리 방사선이 생물에 유익하며 생체 방어력을 증가시킨다는 주장, 즉 방사선 호메시스 효과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뢴트겐선이 발견된 직후 아트킨슨은 해초에서 그러한 효과를 발견했다. 그는 X선에 노출된 후 청록색 해초의 성장률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방사선 호메시스 이론을 가장 적극 옹호하고 있는 집단은 프랑스 과학자들이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원자력 에너지에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는 국가이다. 2005년 프랑스 과학한림원과 의학한림원의 합동 보고서는 기존 학계의 정설인 발암물질의 '선형 무역치(LNT, Linear No Threshold)' 모델에 반기를 들었다. LNT 모델은 발암물질의 경우 다른 독성 물질과 달리 안전한 양(역치)이 없다는 것이다.

▲ B가 선형무역치(LNT)모델이고 D가 호메시스 모델이다. 가로축은 방사성 물질의 양이며 세로축은 증가하는 암 위험 정도이다. ⓒwikipedia.org

프랑스 과학자들은 100밀리시버트(mSv)의 저농도 방사선과 관련한 과학적 발암 모델로서 무역치 모델을 거부했다. 그들은 방사성 물질의 양-반응 관계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표적 조직, 방사선 양, 개인 민감 요인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조직의 형태나 나이의 영향뿐만 아니라 100밀리시버트 이하 또는 10밀리시버트 이하 등 저선량과 초저선량 등에 따라 면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다른 국가의 과학자들은 프랑스 과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국립학술원 산하의 국가연구평의회(NRC)와 미국 의회가 만든 조직인 국가방사선방호및측정위원회, 그리고 유엔 전리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UNSCEAR)는 모두 방사선 호메시스는 확실하게 입증된 것이 아니라며 기존의 무역치 모델을 지지하고 있다. 저선량 효과는 고선량과 다르며 때론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저선량 영향이 인체에 유익하다는 것은 매우 의문이라는 것이다.

현대 과학은 생체 메커니즘에 대해, 유전자와 환경 요인(빛, 방사선, 각종 독성 물질, 발암물질 등)의 상호관계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예를 들자면, 미국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원의 리타 뉴홀드란 과학자는 태아 발달기에 외래 에스트로겐인 디에틸스틸베스티롤이라는 환경호르몬에 비교적 고농도로 노출되면 어른이 되어서 체중 감소가 일어나고 아주 적은 양에 노출되면 엄청나게 뚱뚱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또 다른 환경호르몬인 DEHP(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 플라스틱을 말랑하게 만드는 가소제의 일종)란 프탈레이트에 저용량으로 노출되면 알레르겐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증가하지만 고용량에서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연구도 있다. 이 연구가 완벽하게 입증된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호메시스 이론과는 달리 저용량이 생체를 자극해 긍정적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심각한 악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하겠는가? 당신이 정부의 책임자라면 어떤 정책을 펴겠는가? 저선량 방사선이 몸에 좋다는, 이른바 방사선 호메시스 이론이 타당성이 있다고 하자. 물론 현재까지는 아직 타당성을 확실하게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 이론에서 말하는 미량 또는 적절한 양이란 어디까지를 말하는가? 동물에서는 어느 정도 그 양이 드러났다고 하자. 물론 이도 현재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동물과 사람은 다르다. 동물의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또 위험하기도 하다.

우리는 일부 과학자, 특히 일부 국가의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방사선 호메시스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까? 그래서 집집마다 미량의 방사선 물질이 나오는 특수 기기 장치를 두고 이를 건강 증진의 한 도구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성이 있는 부분이므로 일단 방사선은 미량이라도 회피하는 행동이 올바른 것인가?

이런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집에 이런 기기를 두지 않겠다. 운동과 적절한 식이 등 건강을 충분히 증진시킬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상생활에서 미량의 방사선에 노출되고 있다. 우주에서 오는 방사선, 태양에서 오는 방사선, 지구 토양에서 오는 방사선(방사선 라돈 등) 등은 우리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방사선들이다. 방사선 호메시스 이론이 진리든 아니든 이미 우리는 미량의 방사선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추가로 원전 사고로 나온 방사선을 방사능 비, 방사능 오염 식품의 형태로 맞고, 먹어야 하는가?

위험사회에서 살아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잘 모르고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전 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따라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가는' 지혜와 '뛰기 전에 앞을 먼저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 새로운 방사능 위험 경고표지. 과거와 달리 방사능 물질 노출을 피해 달아나라는 뜻이 담겨 있다. ⓒwikipedia.org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