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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편서풍에 정권의 운명을 걸었다!"

[안종주의 '위험사회'] '절대 안전'은 없다

1800년 전 유비와 손권, 그리고 제갈공명이 동남풍에 사활을 걸었다면 2011년 이명박 정부와 기상청, 그리고 원자력족(원자력 에너지에 적극 찬성하는 집단)은 편서풍에 정권의 운명을 걸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대재앙에 대한민국 국민이 핵 재앙을 피할 뾰족한 대책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일본에서 한국 쪽으로 바람만 불어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제갈공명이 위나라 조조군대와 적벽대전을 앞두고 동남풍이 불기를 염원한 것처럼.

적벽대전 때 동남풍은 '절대로' 불 수 없는 바람(風)이었다. 동남풍은 그저 제갈공명과 손권·유비 연합군의 바람(염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동남풍이 불었다. 그리고 조조군은 순식간에 주유의 화공에 무너졌다(정사를 기록한 <삼국지>에 따르면 조조군은 역병, 즉 전염병 창궐 때문에 많은 군사를 잃고 퇴각했다고 한다). 기상은 변화무쌍하며 바람은 그런 기상의 한 요소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적벽대전 편을 통해 바람이라는 것이 언제든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프랑스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이 다량 방출되자 이것이 북쪽으로 올라 간 뒤 다시 한반도 쪽을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고 일찌감치 예견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기상청은 줄곧 "방사성 물질이 한국에 올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밝혔다. 이를 받아 MBC, KBS, SBS 등 방송 3사의 예쁜 기상 캐스터는 "한국에는 방사성 물질이 바람을 타고 일본에서 오지 않는다"고 매일 앵무새처럼 일기예보를 했다.

일본과 바로 이웃하고 있음에도 한국인들은 안도했다. 지진과 지진 해일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 데 이어 바람마저 도와준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였다. 그리고 일본 돕기 성금 모금에 적극 참여했다. 이렇게 정부와 기상·원자력 전문가들을 철썩 같이 믿고 평온하게 지내던 한국인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뉴스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강원도에서 일본 원전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방사성 물질 제논이 검출됐다. 서울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방사성 요오드 131이 검출됐다. 강원도 춘천에서 방사성 세슘도 검출됐다. 기상청이나 원자력 전문가들이 틈만 나면 말했던 '한국은 안전하다. 한국에 일본 원전 방사성 물질이 도달할 가능성은 없다'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동남풍'에 운명을 맡겼다면, 이명박 정부와 원자력족은 '편서풍'에 정권의 운명을 걸고 있다. ⓒ프레시안

사람들은 분노했다. 전문가라면, 정부라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음에도 그 가능성을 깡그리 무시한 것에 분노했다. 방사성 물질을 검출하고도 나흘씩, 이틀씩 늑장 발표한 것에 대해 또 한 번 분노했다. 정말 정부가 예측하지 못했다면 저 멀리 떨어진 프랑스도 예측하는 것을 우리는 예측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무능이 문제가 된다. 만약 알고도 발표하지 않았다면 국민을 속인 행위이므로 더욱 문제가 된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다.

이 과정에서 원자력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장이 언론에 대고 이야기 한 내용은 더욱 대한민국을 한심한 국가로 만들고 있다. "검출된 방사성 물질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왔는지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려 발표가 늦어졌다"는 그의 말은 위기 상황 또는 비상한 상황에서 위험 소통(risk communication)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기본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정부나 정부기관에 위험 소통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평소에는 검출되지 않는 방사성 물질이 심각한 양이 아니라 미량 검출됐다고 한다면 핵무기 실험이나 원전 사고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은 평소에는 그 물질이 어디서 유래됐는지 묻고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웃 일본에서 엄청난 재앙이 벌어지고 있고 전 세계가 그 추이와 방사성 물질 확산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일본에서 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검출된 직후 뜸들이지 말고 즉각 이렇게 발표했어야 한다.

"방사성 물질 제논·요오드가 검출됐습니다. 인체에 해를 끼칠 정도의 양은 아니고 미량입니다. 우리는 이 물질이 사고가 난 일본 원전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과거 중국 내륙에서 벌인 핵무기실험 때 나온 것일 수도 있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면밀히 검토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본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이라면 어떤 경로로 한반도에 유입됐는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이 분석해 이른 시일 안에 최종 결론 공식 발표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랬다면 국민은 불안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정부에 신뢰의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한반도에 방사성 물질이 유입된 경로도 마찬가지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후쿠시마에서 북쪽의 캄차카반도 방향으로 바람을 타고 갔다고 다시 한반도 쪽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다시 실려 온 것으로 판단된다면 다음과 같이 발표했어야 한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까지 기상청 등이 계절적으로 편서풍이 불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바람에 실려 일본에서 한반도 쪽으로 올 가능성은 없으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해왔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일시적으로 후쿠시마에서 북쪽으로 부는 바람에 방사성 물질이 실려 이동한 뒤 다시 한반도 쪽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실려 내려올 가능성에 대해 예측하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약간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모두 국민들에게 제때, 확실히 말씀드림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나 불신, 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이를 계기로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100% 안전"이나 "절대 안전"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런데도 "100% 안전" 또는 "절대 안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약간의 빌미나 틈만 이야기해도 이를 비집고 들어와 불안을 조장하고 그 위험을 과장하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아예 '위험'의 '위'자고 꺼내지 않으려 한다. 이는 잘못된 사고다.

만약 정부나 전문가들이 매우 안전하다고 했는데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공중은 정부와 전문가에 대해 분노하고 이들을 불신한다. 불신과 분노가 공중을 덮치면 위험은 증폭된다. 사소한 위험도 매우 큰 위험으로 느끼게 된다. 미량의 방사성 물질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진짜 '괴담'이나 '유언비어'가 떠돌 수 있다. 아무리 과학적인 정보라도 공중이 신뢰하지 않으면 정보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는 이미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촛불 집회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겪은 적이 있다. 불신과 분노가 촛불을 켜도록 만들었다.

공중이 느끼는 위험 인식과 전문가들이 느끼는 위험 인식과는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이미 잘 드러났다.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해 미국의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슬로빅은 원전과 자동차, 권총, 오토바이, 흡연, 술, 수술, 자전거, 예방접종, 수영, 스키, 엑스선촬영, 색소 등 모두 30가지 위험에 대해 위험 인식 정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위해성 평가를 하는 전문가들은 원전을 20위(19위는 기차 사고, 21위는 식품 색소)로 꼽은 반면 공중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유권자연맹과 대학생은 모두 원전을 가장 위험한 것으로, 기업인들은 8위로 각각 꼽았다. 전문가 집단은 자동차 사고를 가장 위험한 것으로 이어 흡연, 술, 권총, 수술, 오토바이 순으로 꼽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영애 등이 전문가(자연과학·공학 전공 교수와 연구원)자와 일반인(대학생)을 대상으로 원자력 발전소와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원자력, 핵폐기물 등의 원자력 관련 위험과 자전거, 흡연, 에이즈, 유전자변형식품, 외과수술, 백신, 테러 등의 위험 등 모두 30가지 위험에 대해 인식 정도의 차이를 조사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문가와 일반인 집단의 위험 인식(risk perception) 정도 차이가 유독 원자력 관련 위험에 대해서만 큰 차이를 보인 점이다. 에이즈, 흡연, 범죄, 수입 식품 따위에 대한 위험 인식은 전문가와 일반인 간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엑스선, 식품첨가물,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해서는 위험 인식이 엇비슷했다.

반면 원전은 3.4(일반인) 대 2.5(전문가)(5는 매우 위험하다, 4는 위험하다, 3은 그저 그렇다, 2는 별로 위험하지 않다, 1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4.0 대 2.3, 핵폐기물은 4.4 대 3.2, 원자력은 3.7 대 2.6으로 한결같이 전문가들은 일반인에 견주어 위험 인식 정도가 매우 낮았다. 슬로빅의 연구 결과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위험 인식은 누가 맞고 틀리고를 따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효과적인 위험 소통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위험 인식이다. 따라서 이런 위험 인식의 특성을 바탕으로 위험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위험 소통은 위험 관리(risk management)의 전부나 다름없다. 위험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다. 신뢰받는 집단이나 정부가 공중과 효과적으로 위험 소통을 한다면 전문가와 공중 간의 위험 인식 격차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위험 소통을 하지 못한다면 전문가, 그리고 전문가와 2인3각을 한 정부와 공중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위험 소통 능력은 빵점이다. 지난 2008년 촛불 집회에 이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재앙 사태를 맞아서도 여전하다. 지난 번 문제를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면 열심히 갈고닦아, 즉 약점을 보강해 시험에 대비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시험은 계속된다. 루만의 말처럼 현대 사회에서 위험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올바른 자세는 위험을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곧 위험소통을 효과적으로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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