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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제9구단은 과연 '가을 야구'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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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제9구단은 과연 '가을 야구' 할 수 있을까?

[예병일의 '스포츠 뒤집어보기'] 말로만 30주년 떠드는 한국프로야구위

지난 3월 29일에 개최된 프로야구 구단주 총회에서 제9구단 엔씨소프트의 창단이 승인되었습니다. 3월 11일에 올린 글에서 7구단 빙그레와 8구단 쌍방울이 우승에 이르기까지는 각각 14년과 17년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빙그레의 경우 비록 패하기는 했으나 3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4년째는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으니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안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구단의 별다른 지원도 없이 우승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프랜차이즈 지역에서 때를 맞추어 우수한 선수들이 쏟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빙그레보다 많은 지원을 받은 쌍방울의 경우 타구단의 지원과 함께 역시 조규제, 박성기, 김원형, 박경완 등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연고지 출신의 우수한 신인이 합류한 것이 리그참여 6년째에 3위에 오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미 엔씨소프트를 지원하기 위한 선수 수급 방안에 대하여 한국 프로야구위원회의 결정이 발표되었지만 쌍방울에 대한 지원책과 비교할 때 훨씬 미흡한 데다 연고지 출신의 우수선수 확보도 불가능한 상태이므로 꼴찌가 예상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역대 다섯 번째로 3할 미만 승률을 올리는 팀이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런데 엔씨소프트가 9구단으로 승인되기 하루 전날인 28일, 한국프로야구위원회는 30주년 기념행사에서 2020년도까지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확인조차 불가능한 상태에서 30주년을 기념한다고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20년에 12개팀으로 양대 리그를 운영하겠다는 건 훌륭한 계획이지만 지금과 같은 지원책으로 어떤 수준의 팀이 탄생되어 1년 내내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질 것인지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신생팀이 메이저리그에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을까요?

▲ 엔씨소프트가 창단한 프로야구 제9구단이 정상에 오르는 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엔씨소프트

반세기 전에 창단한 뉴욕 메츠의 예

현재 뉴욕을 연고지로 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은 양키스와 메츠, 두 구단입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팀을 꼽으라면 1위 자리는 양키스가 차지할 것이 당연하므로 2위가 누구인가를 놓고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양키스의 지난 과거는 월드시리즈 우승만 27회에 이를 정도로 화려합니다.

라이벌이라 하기에는 2%가 아니라 훨씬 더 큰 차이를 지닌 듯한 메츠는 1962년에 창단되었습니다. 국내에 널리 잘 알려져 있는 메이저리그의 라이벌이라면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만 이에 못지않은 라이벌로는 박찬호로 인해 우리와 친숙해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박찬호가 한창일 때 리그 선두를 다투느라 자주 매스컴에 등장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팀 모두 원래는 뉴욕을 연고지로 창단된 팀이었습니다.

다저스는 1890년에 브루클린 다저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1957년 시즌까지 뉴욕에 둥지를 틀었으나 1958년에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고, 자이언츠는 1883년에 뉴욕 자이언츠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역시 1957년 시즌까지를 뉴욕에서 보낸 후 서부의 끝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양키스가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항상 뉴욕의 2인자를 놓고 다투어야 했던 두 팀은 낡은 구장을 피하여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약 5000㎞에 가까운 먼 거리를 옮겨 갔으나 그 후에 이 두 팀이 얻은 성과를 보면 결과적으로 성공이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 최대 도시라 할 수 있는 뉴욕에 양키스 한 팀만 남아 있는 것은 다른 투자자의 구미를 당길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두 팀이 떠난 4년 후인 1962년, 자이언츠의 구장을 이어받은 메츠가 창단되었습니다. 이때까지 내셔널리그 팀은 8개뿐이었으나 (휴스턴) 콜츠와 함께 메츠가 창단되면서 모두 10개로 늘어났습니다. 콜츠는 1965년에 애스트로돔 구장이 완성되자 현재의 이름인 애스트로스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새로 뉴욕에 자리 잡은 메츠는 1949년부터 60년까지 12년간 양키스 감독으로 활약하면서 첫 5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 등 7회 월드시리즈 우승 기록을 남긴 케이시 스텐젤을 감독으로 모셔왔습니다. 이미 다저스(1934~1936년), 브레이브스(현재는 애틀랜타에 있지만 당시에는 보스턴에 있었음, 1938~1943년), 양키스(1949~1960년)의 감독을 역임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지도자로 명성을 올린 그였지만 메츠의 감독으로 4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승률은 약 3할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기사거리를 제공하는 재미있는 표현의 언변과 경기장 내에서 관중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그의 행동은 뉴욕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으므로 40승으로 약 2할 5푼의 승률밖에 올리지 못한 창단 첫 해에 90만 관중을 동원하면서 메이저리그 20팀 중 12위의 관중 수를 기록했습니다.

1967년에 입단한 투수 톰 시버는 첫 해에 16승 13패, 방어율 2.76을 기록하며 대투수의 탄생을 예고하더니 이듬해에도 16승에 20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한 시즌 200탈삼진 기록은 이때부터 9년간 계속되었습니다. 1969년에는 5회의 완봉, 18회의 완투를 하면서 25승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메츠에서 거둔 198승을 포함하여 통산 311승 205패를 기록한 톰 시버는 투수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이라 할 수 있는 사이영상을 세 번 차지하는 등 메츠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남아 있습니다. 1968년에 부임한 길 호지스 감독은 7시즌 만에 최고의 성적인 73승 89패를 기록한 후 2년 만인 1969년에 팀을 메이저리그 정상에 올려놓음으로써 현재까지 스텐젤 감독(37번), 톰 시버(41번)와 함께 세 명의 결번 소유자 중 한 명(14번)으로 남아 있습니다.

창단 후 4년간 최고의 감독을 모셔오고도 바닥을 헤매야 했던 메츠로서는 8년 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으니 비교적 쉽게(?) 메이저리그에 정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년 만에 정상에 오른 말린스

한국인으로서 메이저리그에 첫 깃발을 꽂은 박찬호가 은퇴를 하게 되면 축구 선수로 유럽에 처음 진출한 전 국가대표 감독 차범근처럼 전설로 남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떤 식으로든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성적에 접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5년간 평균 15승을 올린 박찬호가 만약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또 (텍사스) 레인저스로 옮겨 가지 않았다면, 어떤 성적을 거두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박찬호는 전설이 되어도 충분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비싼 몸값에도 불구하고 큰 활약을 하지 못한 레인저스 시절의 5년을 생각해 보면 아쉬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찬호가 레인저스로 팀을 옮길 때 미국 신문에서 "레인저스의 존 하트 단장이 여러 강타자를 영입한 후 박찬호까지 에이스로 영입했지만 레인저스의 박찬호와 케니 로저스 외에 뚜렷한 선발 투수가 없는 투수진을 생각하면 5년 내에 우승하기는 힘들다"라는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필자는 미국 기자의 수준이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플로리다) 말린스는 1993년에 리그에 합류하여 1997년에 우승을 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5년 만에 정상에 오를 수도 있는데 "현재의 구성원으로는 5년 내에 우승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1993년 시즌에는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두 팀이 참여했으니 (플로리다) 말린스와 (콜로라도) 로키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로키스가 위치한 덴버는 1마일 도시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발 1.6㎞의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여서 장타가 많이 나는 까닭에 투수들의 무덤이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로키스가 맥주 회사인 쿠어스의 후원으로 지어진 쿠어스필드가 문을 열기 전에 미식축구 구장을 이용할 당시 경기당 5만 명이 넘는 관중을 불러 모을 동안 말린스는 마이애미에서 관중도 없고(?), 성적도 내세울 것 없이 첫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자 메이저리그에는 인터리그라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말린스의 구단주 웨인 후이징가는 1997년 시즌을 앞두고 8900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하여 팀을 재편했습니다. 그 결과 말린스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우승을 거두었는데 당시 멤버 중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케빈 브라운, 리반 에르난데스, 롭 넨 등의 투수와 게리 셰필드, 드본 화이트, 찰스 존슨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월드시리즈 상대는 추신수가 뛰고 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으며, 비인기팀들의 대결이어서 월드시리즈 인기가 떨어지는 바람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골치를 앓았습니다. 1년 전에 물량 공세를 퍼부었던 구단주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전년보다 30%이상 관중이 증가하기는 했으나 기대만큼 수입을 올리지 못하자 1년 만에 선수를 대거 팔아 치웠습니다. 결국 다음 시즌에 100패 이상을 기록했지만 창단 5년 만의 우승은 메이저리그는 물론,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 미국 4대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최단 기간의 우승 기록이기도 합니다.

말린스의 기록을 깬 다이아몬드백스

박찬호가 레인저스에 스카우트된 것은 2001년 시즌이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이미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라파엘 팔메이로라는 강타자를 보유한 팀이었지만 약한 투수진을 보완하기 위해 박찬호를 스카우트하자 그래도 5년 만에 우승하기는 힘들다는 기사가 나온 것은 참으로 황당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그 해의 월드시리즈 우승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바로 1998년에 리그에 참여한 팀이었기 때문입니다.

1998년에 (탬파베이) 더블레이스와 함께 창단된 다이아몬드백스는 예상대로 창단 첫 해에 65승 97패를 기록하면서 지구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그러자 1999년 시즌을 앞두고 랜디 존슨과 토드 스토틀마이어를 스카우트하여 원투 펀치로는 어느 팀에도 손색이 없을 만한 투수진을 구축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시즌 만에 100승 이상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 메츠에게 우승을 내주어야했습니다.

랜디 존슨은 2000년 시즌에 19승 7패, 평균자책 2.64, 삼진 347개를 기록하면서 사이영상을 수상했지만 팀을 지구 정상에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시즌 중에 네 명의 선수를 내주는 대신 커트 실링이 트레이드되어 오면서 토드 스토틀마이어가 떠난 마운드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워줌으로써 메이저리그 최고의 원투펀치를 구성했습니다.

이 둘은 2001년 시즌에 커트 실링이 22승 6패, 랜디 존슨이 21승 6패, 평균자책 2.49, 삼진 372개를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이들이 맹활약하는 동안 새로운 마무리로 등장한 김병현은 5승 6패, 23세이브, 평균자책 2.94를 기록하면서 뒷문을 굳건히 지켜주었고, 그 결과 11승을 올린 미겔 바티스타까지 투수같은 투수라고는 단 네 명밖에 없는 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월드시리즈 상대는 1998년부터 3년 연속 메이저리그를 평정한 양키스였습니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팀이자 선수 구성면에서는 항상 최고의 위치를 누리고 있는 양키스지만 2당 100으로 덤벼드는 다이아몬드백스를 당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커트 실링이 1, 4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를 보여주는 동안(4차전에서는 김병현의 블론세이브로 역전패함) 디비전 시리즈 마지막 경기의 승리 투수가 된 랜디 존슨은 2, 6차전을 완벽히 막아 주며 3승 3패 동률을 이뤘습니다. 7차전에서는 당대를 대표하는 두 투수 커트 실링과 로저 클레멘스가 팽팽한 투수전을 벌였습니다. 다이아몬드백스는 6회말에 먼저 한 점을 뽑았으나 양키스는 7회와 8회에 연속해서 1점을 획득하며 경기를 역전시켰습니다. 이 때 구원 투수로 등장한 선수는 전날 7회까지 던진 랜디 존슨이었으며, 존슨은 기대대로 9회까지 추가 점수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9회말, 한 점을 뒤진 다이아몬드백스의 마지막 공격에서 양키스의 마무리를 책임진 선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였습니다. 우승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던 다이아몬드백스는 그 해 50세이브를 돌파한 투수이자 훗날 마무리 투수로는 최초로 10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게 되는 리베라로부터 9회말에 두 점을 뽑아내면서 양키스의 4연패를 저지하고, 창단 4년만의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로써 창단 5년 만에 우승한 플로리다 말린스의 기록을 깨 버렸으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오는 글

9·11 테러 직후에 시작된 2001년 월드시리즈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기록을 남겼습니다(기회가 되면 2001년 월드시리즈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월드시리즈에서는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지만 다이아몬드백스에는 원투펀치에 이어 세 번째로 좋은 성적을 남김과 동시에 내셔널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공을 던진 김병현이 뛰고 있었기에 박찬호가 뛴 다저스에 이어 한국 팬들에게는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팀이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박찬호와 김병현의 이름이 나왔는데 올해 일본에서 새로 시작하는 이 두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쳐 주기를 기대합니다.

메츠, 말린스, 다이아몬드백스의 월드시리즈 정상 쟁취에는 구단주들의 투자가 한몫을 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선수들로 넘쳐나는 미국의 선수 수급 상황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제9구단 엔씨소프트에 대한 지원책을 보며 쌍방울에 대한 지원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열악하고, 빙그레 수준의 지원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빙그레는 이미 지역 연고에 의해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상태였으므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물론 열심히 땀을 흘린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노고도 빠뜨릴 수 없지만 말입니다.

미국에서는 신생팀 창단시 말린스의 5년 만의 우승, 다이아몬드백스의 4년 만의 우승 등 새 기록이 생겨났는데 우리나라의 제9구단은 몇 년 만에 가을에도 야구를 하게 될 것인지, 14년 만에 우승한 빙그레의 기록을 깰 수는 있을 것인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지원책을 보면 최하위를 면하는데 몇 년이 걸릴 것인지에 더 관심이 가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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