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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공작의 꼬리 경쟁·7] 기업을 위한 자유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시장주의자들은 경제 주체들이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인 이윤이나 효용의 극대화를 자유롭게 추구하도록 놔두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조정되어 사회 전체의 효율을 최대로 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경제 주체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위하여 정부의 관여를 극소화하는 작은 정부가 이상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과연 이미 약화된 정부와 거대한 세력으로 커진 기업들로 대표되는 현실 경제에 적용될 수 있을까? 그리고 금융 투자의 규제와 감독 약화, 그리고 그에 따른 세계의 금융 위기 발생 그리고 세계 경기 침체의 경우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에 있기에 작동하지 않은 것일까?

기업이 주도 하는 사회

한 사회는 여러 다양한 집단으로 구분되고 그에 따른 이해 역시 다양하다. 시장 경제에서 기업은 생산자로서 소비자와 대비되고, 고용의 주체로 노동자와 대비된다. 기업은 생산자로서 소비자에게 필요하며, 또 일자리를 창출하는 고용주로서 노동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물론 기업 역시 소비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노동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소비자와 기업은 정부의 규제를 통하여 보호 받고 또 통제를 받는다. 기업은 물론 정부의 직접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기업이 속한 집단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받기도 하며, 반대로 기업 역시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나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가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기업의 이러한 상호 작용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기업의 이해가 그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한 사회의 여러 집단의 이해가 다양하게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지만, 어느 한 집단의 이해가 과도하게 대변되고, 그 이해를 대변하는 논리만 강조되는 사회는 균형을 잃은 사회다. 현재 한국은 기업의 이해와 직결되는 시장 논리, 경쟁 논리, 성장 논리가 팽배해 있으며, 그런 논리가 더욱 더 강화되고 있다. 기업의 논리는 결국 기업의 존재 이유인 이윤 증가로 귀결되기 때문에, 이윤 동기가 과도하게 강조될 것이며 사회의 다른 다양한 가치는 약화되는 불균형을 초래할 위험이 커진다.

이미 세계의 거대 기업들은 그 규모가 웬만한 국가의 한 해 총생산(GDP)보다 크다. 그리고 그들은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도 대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그 어떤 사회 집단보다 강력하며, 그들이 사회의 여론을 선도하며, 국가의 방향 설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 그들의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들의 이해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반영되고, 기업의 논리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한 나라의 의사 결정은 기업의 이해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을 위시한 여러 집단의 이해가 균형 있게 대변되어야 한다. 이미 한국은 대기업들의 영향력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장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그들의 이해에 따라 방향이 설정된다. 예를 들면 현재 팽배한 경쟁 논리, 성장 논리, 시장 논리는 기업의 논리이며, 이 논리는 한국 사회의 제일의 가치를 형성하고 다른 다양한 가치들은 쉽게 무시된다. 이러한 편향적 가치 체계 아래서 각 개인은 그 논리를 따르고, 내면화할 수밖에 없다.

작은 정부에 대하여

▲ 애덤 스미스가 말했던 경제학 교과서의 '보이지 않는 손'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프레시안
시장주의자들의 이상향인 정치적 불간섭은 가능한가? 시장이라는 제도 자체는 사회 전체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면 사유재산권이 법으로 보호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시장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그러한 시장이 존재하고 원활히 작동되기 위한 여러 가지 규제나 법은 그 사회의 정치적 합의 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시장주의자들의 이상향인 사회의 여러 의사 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분리된 완정 경쟁 시장은 불가능한 것이며, 그들 역시 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정부의 존재가 작을수록 좋다는 논리를 편다. 작은 정부의 논리는 법에 의한 시장과 사유재산권의 보호는 필요한 것이라 요구하지만, 그에 따른 제약이나 규제는 간섭으로 보고 거부한다.

작은 정부의 논리의 이론적 핵심은 정부의 관여에 의한 가격 왜곡이고 실질적인 이유로는 기업 이윤의 잠식이다. 정부가 규제를 엄격하게 할수록 기업은 그에 따라 비용이 증가한다. 예를 들면 공해나 환경 파괴에 관한 규제가 신설되면, 그에 맞춰서 공해를 줄이는 새로운 기술 도입에 투자를 해야 하며, 비용 증가는 필수적이다.

정부 규제와 함께 기업 이윤의 잠식의 중요 원인 중 하나는 세금이다. 기업이 내는 세금은 정부의 지출의 주요 부분을 담당하며, 기업 이윤의 상당 부분이 세금으로 빠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작은 정부는 규제를 줄이고, 세금 적게 걷어 기업의 이윤 잠식을 줄이자는 논리다.

미국에서 출발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정부의 통제 실패를 든다. 그동안 미국은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충실히 수행했다. 금융가의 요구에 따라 투자 은행의 규제를 대폭 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감독 역시 소홀했다. 결국 이런 규제 완화는 투자 은행들의 불법에 가까운 과도한 대출과 그에 기초한 자산을 거래 가능한 상품화 하는 등 단기 이윤을 추구하고 은행의 건전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미 세계의 대부분의 정부들은 작은 정부가 되었으며, 거대한 힘을 가진 대기업들의 권력은 더욱 더 커져서 기업들이 정부의 정책 설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강한 세력을 지니게 되었다. 기업의 통제가 점점 어려워지며, 기업이 사회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고, 그 사회가 기업들의 통제를 받게 되는 상황이다.

한국도 대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그 어느 사회 집단에 못지않으며, 그들은 사회의 여론을 선도하며, 국가의 방향 설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 이러한 불균형은 기업의 이해가 과도하게 대변되고 그 결과로 소외받는 계층을 증가시켜, 심하면 전체 사회의 안정을 위협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에

경제학에서는 경제 주체가 이기적(이성적) 존재라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이성적이라 함은 개개인은 자신의 행복 또는 만족을 극대화 하는 선택을 하는 이기적 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 행위는 정당할 뿐만 아니라,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기적 행위를 장려한다.

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전체 사회를 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행동하지만, 결국에는 그 행동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다른 사람을 돕게 되고, 전체 사회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부가 쌀을 생산하는 행위는 배고픈 사람들은 위한 자선의 동기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쌀을 팔아서 생기는 수익을 위한 순수한 이기적 동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의사가 의술을 제공하는 행위 역시 자신의 수익을 위한 이기적 동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을 통하여 농부가 다쳤을 경우 자신이 직접 치료하는 것보다는 의사의 치료를 받고, 의사는 쌀이 필요할 때 진료로 번 수익으로 농부가 생산한 쌀을 사서 먹으면 된다. 결과적으로 각자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런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점은 이기적 동기와 분업이다. 이기적 동기는 분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이기적 동기만이 분업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기적 동기와 상관없는 자선 단체의 사업을 보자. 그들 역시 맡은 일들이 세분화하고, 분업화하여 효율을 높인다. 다시 말해 분업으로 인한 효율 증가가 바로 이기적 동기의 정당화와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개인들은 이기적 동기에 의하여 움직이는 행위의 주체로 파악되고, 그러한 행위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논리가 시장 자유방임주의의 근거다. 개인이나 기업의 이기적 목적 추구를 자유롭게 하도록 방치하면 시장을 통해 사회의 선이 달성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현실을 무시한 단순한 이론 위주의 생각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자유방임이 사회에 어떠한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고 있다. 최근의 세계 금융 위기가 바로 그 시장주의와 자유방임의 결과이다. 이러한 대규모의 실패뿐만 아니라 자유방임이 가져오는 문제는 무수히 많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는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손이 없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자유 시장 경제, 누구의 자유?

시장 경제 또는 자유 시장 경제라는 말에는 정부의 관여 배제라는 의미를 함축하여 사용한다. 갤브레이스는 "자유 시장 경제라는 말은 자본주의의 미화된 언어에 다름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자본주의라는 말이 너무 좋지 않은 의미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거부감 없는 좋은 말 '자유 시장 경제'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 '자유'는 기업이나 개인, 생산자나 소비자들이 어떤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자유 의사에 의하여 시장을 통한 경제 활동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정부나 어떤 다른 권력의 간섭을 배제하는 의미에서의 자유일 수도 있다. 정부가 경제에 전권을 행사하는 것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를 들 수 있겠지만 공산주의에서도 시장은 존재했다. 그러고 계획 경제 역시 자본주의 국가들 또한 하고 있다. 과거 한국의 경제 개발 계획도 일종의 계획 경제이다.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자유 시장 경제에서 '자유'라는 말은 18세기 자유주의자들의 사상과 활동을 연관된 것이다. 그 당시 개인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 자유를 존중하는 사상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혁을 가져오며, 경제 역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시장을 통한 자유로운 거래의 보장과 정부 권력의 배제가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그 당시 유럽은 신흥 상공인들이 경제의 주요 역할을 담당하며 성장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힘이 미약했고, 기득권인 왕권과 귀족 세력, 교회인 신권 세력의 횡포를 감수해야만 했다. 개인의 자유, 분업, 경쟁, 효율을 통한 부의 창출과 이에 따른 만인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일과 같은 가치는 이제 막 퍼지기 시작한 단계였다. 당시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인 왕권에 대한 충성, 봉건영주에 대한 복종과 같은 가치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이러한 보수적 가치에 반하여, 자유주의자들은 이성과 과학에 기초하여 각 개개인을 독립된 개체로서 존중하며, 경제적으로는 노동자의 자유,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 자유로운 경쟁, 특히 정부 간섭으로부터 자유를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경제적으로는 신흥 상공업자들의 이해와 부합하고, 더 크게는 오랜 역사를 가진 봉건사회의 가치를 부정하고 당시의 기득권을 허무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현대 자유 시장 경제를 주장하는 대표적 그룹으로는 시카고 학파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자로 불리며, 18세기 자유주의자를 그들의 철학적 지주로 받들며 정부의 간섭 배제와 같은 그들의 주장을 반복한다. 20세기의 경제 사회 상황은 18세기와 반대이다. 18세기 유럽의 신흥 상공업자들과는 달리, 20세기의 경제 주체인 기업들은 한 국가에서 가장 큰 세력 집단을 형성한다.

과거 18세기 상공업자들이 그 당시 기득 세력의 통제를 받는 약자라면, 현대의 기업은 그 자체가 기득권 세력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강자이다. 현재 많은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과거 18세기 자유주의자들이 하던 대부분의 주장들을 그대로 답습한다. 정부의 관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18세기 유럽의 옛 귀족 세력의 약화와 함께 신흥 상공업자들의 권익 신장을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시카고 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미 비대한 기업 세력의 영향력을 더욱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사회 전반의 불균형을 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 그리고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들에게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21세기의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논의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자유 시장 경제라는 말에서의 '자유'는 18세기에 사용된 '자유'라는 말과 이제 자유는 과거 18세기에 사용된 만인의 자유가 아니다. 과연 과거 18세기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인간의 존엄, 자유, 그리고 만인의 평등과 같은 가치가 현재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부합되는 것인가?

같은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시기와 상황이 현저히 다른 것을 무시하고 같은 결과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현재의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시장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은 만인의 자유와 평등이란 가치와는 상관없다. 그 반대로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저해하는 '자본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1997년 이후의 한국 상황이 잘 보여준다. 그들의 주장대로 기업의 자유, 시장의 자유는 확대되었다. 하지만 만인의 자유가 신장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되었다. 기업들의 일하는 사람들을 쉽게 내보낼 수 있는 자본의 자유는 신장되었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일자리를 잃는, 또는 비정규직으로 밀려나는 불안감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회사의 과도한 근무 시간, 부당한 대우를 참아야 한다. 해고의 두려움은 말단 사원으로부터 대기업의 사장까지도 누구나 갖는 만연된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의 증가와 함께 덩달아 우울증이 만연하고, 자살이 증가한다. 10여 년 만에 한국의 자살률이 250% 증가하는 경이적 기록 역시 1997년 이후 발생한 것이다. 이런 세계 역사에 유래 없을 증가율에 힘입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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