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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밀었던 'MB 네오콘', 말 갈아탈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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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밀었던 'MB 네오콘', 말 갈아탈 준비 끝?

[프레시안 books] 이승철의 <한국 외교 24시>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로 이름을 걸어 놓은 지 5년 반이 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3년 2개월이 넘었으니, '출입' 기간의 반 이상을 이 정부에서 보낸 셈이다.

굳이 '이름을 걸어 놓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우선 현실적인 제약 때문이다. 대형 언론사의 기자들처럼 한 부처를 전담해 속속들이 파고드는 '부처 밀착형' 취재가 불가능하다. 일본 지진, 원자력 발전소 사고처럼 초대형 국제 뉴스가 터지면 짐을 싸서 회사로 들어와 일하는 게 편하다. '상주 출입기자 자격을 유지하려면 최소 며칠은 나와야 한다'는 조건만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런 현실적인 이유 말고 이름을 걸어만 놓는 이유, 정확히 말해 걸어만 놓아도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외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교라는 건 결국 북한과 관련된 대외 활동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6자 회담은 2008년 12월인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6자 수석대표 회담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된 외교 활동이 없지는 않지만 한국 정부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진전이 없다. 그러다 보니 굳이 거기 가서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부랴부랴 달려가야 했던 일을 꼽자면 최근 일어난 상하이 총영사관 스캔들, 유명환 장관 딸 특채 파동, 크고 작은 영사 사건 같은 것들이다. 물론 매우 중요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캐야 할 사안이긴 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한다면 비용 대비 효과의 측면에서 볼 때 일이 터지면 달려가는 게 낫다는 걸 5년 반 동안 '요령'으로 익혔다. 외교부 출입기자들은 정치부 소속인데 이 정부 들어서는 사회부 기자가 된 것 같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도 드디어 외교를 하게 됐다'는 말이 나왔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의 외교는 왜 다시 이렇게 쪼그라들었을까. 한 마디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외교의 비전이나 철학이 이명박 정부에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기다리기' 전략, 일방적인 대미 추종이 이 정부 '외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 24시>(이승철 지음, 부키 펴냄). ⓒ부키
<한국 외교 24시>(이승철 지음, 부키 펴냄)를 보면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주무르기에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상우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대부'이자 막후 실세이고, 그의 애제자인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은 드러난 실세다. 그 주위에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남주홍 국제안보대사,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등이 포진하고 있다.

"전쟁과 무력 사용만은 안 된다는 생각은 신화고 강박 관념이다. 그것이 오히려 북핵 문제를 흐리게 하고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막을 수 있다. 정밀 폭격에 따른 주가 하락이 위험한지, 북한의 핵 보유로 한국 경제의 도산이 더 위험한지 생각해야 한다."

"북한을 결코 핵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달리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정상 회담이 유용한 수단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생존 위협을 느낄 만큼 국제 사회가 전방위 압박을 가하든지…."

<한국 외교 24시>에 소개된 2005년 5월 김태효 비서관(당시 성균관대학교 교수)의 말은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 정책이 견지하는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저자는 이들을 'MB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라고 부르는데, 대미 추종적 외교관을 기본으로 깔고 있으면서 대화보다는 힘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을 주름잡았던 네오콘 그룹과 닮아 있다고 분석했다.

MB 네오콘과 부시 네오콘이 이념적 성향은 물론이고 등장 과정마저 닮았다는 분석은 흥미롭다. 미국의 네오콘들은 2000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지지했다. 그러나 부시가 대통령이 되자 네오콘들은 어느새 백악관과 국무부에 있는 외교·안보 주요 포스트를 장악해 이라크 침공과 같은 일방주의 외교를 밀어붙였다. 그 과정은 MB 네오콘의 대부인 이상우 위원장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밀었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명박 후보가 됐고, 그들은 시나브로 이명박 정부의 핵심 요직을 꿰찼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이 유출 가능하다. 차기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상우 그룹은 원래부터 가까운 관계라는 것. 그렇다면 만약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외교·안보·대북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임이 자명하다. 박 전 후보 캠프에 있는 외교·안보 브레인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의 네오콘들은 이미 말을 바꿔 탈 준비를 끝낸 셈이다.

저자 이승철은 현재 <경향신문> 논설위원으로, 1991년 외무부 출입 기자를 시작으로 20년 동안 줄곧 외교 현장을 누비면서 한국 외교의 '빛과 그늘'을 지켜봤다. 그 사이 워싱턴 특파원과 국제부장을 지냈다. MB 네오콘과 부시 네오콘의 성향과 등장 과정이 닮았다는 재미있는 사실은 그와 같은 이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짚어 내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외교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이 책의 일부에 불과하다. 저자는 김영삼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한국 외교의 구조적 문제점과 고질병을 정리했다. 구호만 요란할 뿐 자주와 실리 어느 한쪽도 챙기지 몫하고 때로는 대통령을 위한 용비어천가용으로, 때로는 여론 달래기용으로 성과를 포장해 온 것은 비단 이명박 정부뿐만이 아니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국내 정치만 바라보는 '국내용 외교', 국제 행사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벤트 외교', 실리보다 의전이나 겉치레를 중시하는 '형식 외교' 등의 행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정부에나 다 있었다. MB 네오콘 같은 실세 그룹 역시 어느 대통령 때에나 다 있었다. <한국 외교 24시>는 그처럼 비교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한국 외교의 현주소를 그야 말로 '구석구석' 알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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