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집 애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것은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 것처럼 당연한 진리로 인식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잘사는 집'은 곧 경제력이 좀 되는 집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사교육에 보다 많은 물량을 투입할 수 있고, 그래서 잘사는 집 애들이 공부를 잘하는 건 보편타당한 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자녀 교육에 투여하는가가 아니라 왜, 그리고 어떻게 투여 혹은 투여하지 않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저자는 중산층 이상의 환경에서 부모가 명문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자녀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원하는 대학에 진학시킨 경우, 그러나 아무리 잡도리를 해도 부모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소위 그저 그런 대학에 진학시킨 경우, 저학력 노동자층 부모의 자녀이고 부모 쪽에서 공부에 대한 잔소리나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공부에 대한 본인의 승부욕과 노력이 투철해 명문 대학에 진학한 경우, 역시 저학력층 노동자이며 자녀 쪽에서도 공부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별다른 잡음 없이 실업계나 전문대에 진학한 경우 등 다양한 경우를 인터뷰해 실었다. 그 중에서 소위 강남 엄마들의 사례는 자식을 '겉 낳지 속 낳냐'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아이가 공부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싶을 경우 즉시 철저한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 <왜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신명호 지음, 한울 펴냄). ⓒ한울 |
선수, 즉 자녀의 정확한 실력과 강점, 약점을 세밀히 파악해서 무슨 과목 어떤 단원이 약하니 그에 맞는 사교육 강사를 초빙하는 등 그때그때 적절한 학업 전술을 탄력적으로 구사하는 것은 물론, 인문계냐 특수 목적 고등학교냐부터 어떤 대학의 어떤 입시 전형에 응모할 것인가를 세밀히 연구한다. 실제로 이 엄마들 중에는 입시 학원의 상담실장으로 스카우트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육 열망'을 의식화시킨다.
바로 이것이 중산층과 저소득층 부모들의 차이다. 중산층 엄마들이 아이에게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동기를 심어주면서 계속 주입하는 것은 공포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부모 자신이 가진 계층 하강에 대한 공포심이기도 하다. '우리 집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될 만큼 받쳐줄 재벌 가문이 아니니 먹고 살려면 네가 벌어야 되고 그러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정도의 약한 수준으로 시작해서 '가수가 될 만큼 노래를 잘하지도 않고 선수가 될 만큼 운동을 잘하지도 않고 장사를 잘할 것 같지도 않고 공부 말고 네가 잘하는 게 뭐냐'라고 조목조목 짚어 주는 퇴로 끊기 작전, 텔레비전에서 노숙자나 어려운 사람이 나오면 일일이 불러다가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라는 본격적 협박까지 중산층 부모는 그들이 경험한 대로 예술 등 다른 진로보다 가장 안전성이 높은 '공부'만 바라보도록 자녀를 이끌어 나간다.
"네가 지금 10 중에서 한 5 정도의 수준에서 살고 있는데, 네가 4로 떨어져서 살 수 있겠니? 그건 못사는 거 아니냐? 사람이 레벨 업을 하려고 노력해야지, 그 밑으로 떨어지면 괴로워서 못산다"라고 늘 주입했다는 중산층 엄마와 비교해 볼 때 "자식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고 공부를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싫어하는 걸 부모가 억지로 시켜봐야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공부를 안 하더라도 아주 크게 잘못되지는 않는다. 못 배워도 어떻게든 살긴 산다"라는 저소득층 노동자의 아버지의 의견은 언뜻 고상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어떻게든 살긴 사는 것'이 아마 중산층 엄마의 눈으로 보기에는 '죽지 못해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저소득층 부모들은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닦달을 덜 하는 편인데, 부모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을 하느라 자녀 교육에 투자할 노동력이 남아나지 않을뿐더러 공부를 해서 상층 계급에 올라갔을 경우를 겪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녀를 솔깃하게 할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반면 중산층 부모들은 단물을 실컷 맛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하고 또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하다. '경기고-서울대 출신으로 중고등학교 다닐 때 별로 공부도 안 했지만 케이에스 마크 덕에 평생 벌어먹고 살았다'는 아버지의 증언처럼 생생한 모델이 바로 앞에 있으니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공부하라고 자녀를 모질게 닦달하지 않는 저소득층 부모들이 소박하거나 검소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 줄 능력도 없고, 명문 대학을 나왔을 때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이 책의 지적은 가슴이 아프다.
개천의 용은 멸종한 지 오래 되었고, 앞으로도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푸는 능력만을 일방적으로 검증하는 입시 제도도 쉽게 바뀔 성 싶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잘사는 집 애들이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다. 다 잘한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났고, 옷도 잘 입고, 교양 있고, 심지어 성격까지 좋다. 그런 요즘 애들의 연애에서 최근 많이 성행하는 찔러보기, 간 보기 등등은 어릴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생성된 습속일지도 모르겠다. 잘 사는 집 아이고 못 사는 집 아이고 할 것 없이 계층 상승에 대한 선망과 기대보다 몰락에 대한 공포를 동력으로 삼아왔는데, 어디 수준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함부로 연애하겠는가. 그리고 그런 애들을 까는 건 참 쉽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겁이 많나, 영악하게 따지느냐, 손해 안 보려고 하느냐…." 그러게 말이죠, 참 이상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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