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책은 정통 경제학(이른바 주류 경제학)이 우리의 현실을 호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을 무작정 옹호함으로써 우리 인류를 파멸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대량 생산과 소비의 증가로 인한 환경 악영향이 지구의 수용 능력(자연의 한계)을 크게 초과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경제학은 이를 너무 과소평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 <제3의 경제학>(줄리엣 쇼어 지음, 구계원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위즈덤하우스 |
상품 생산의 증가와 소비 증가가 자원 고갈과 생태계 파괴의 주된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가격에는 이것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따라서 생산자나 소비자는 자원 고갈 및 생태계 파괴를 무시한 활동을 영위하게 된다. 예를 들면, 햄버거와 삼겹살의 소비가 수질오염의 주된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햄버거와 삼겹살을 마구 소비한다.
물론 주류 경제학 학자들도 이런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이들은 자원 고갈과 생태계 파괴가 상품의 가격에 반영되도록 정부가 세금을 올린다든가 기타 적절한 경제적 인센티브방법을 이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경제학자들은 자원 고갈 문제가 상당한 정도로 시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서 석유가 점차 고갈되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석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사람들이 석유를 아껴 쓰게 될 뿐만 아니라 석유를 절약하는 기술과 석유를 대체하는 기술이 재빨리 개발된다. 따라서 시장에서 문제가 스스로 해결된다. 1970년대 초반 세계적 석유 파동 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는 방법들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본다. 환경오염과 환경 파괴의 정도를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주된 요인은 상품의 무게나 부피 등 물량이지, 그 가격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에는 상품의 물량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장치가 내재되어 있지 않다.
상품의 물량에 대한 통계 자료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가격의 저렴화로 의류의 소비는 크게 늘었지만,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팔린 그 많은 옷들 각각의 무게나 부피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알아내기도 매우 어렵다.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의류의 가격과 디자인에만 신경을 쓸 뿐 그것의 무게나 부피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 학자들은 앞으로 눈부신 과학의 발달과 기술 진보가 자원 고갈 문제와 생태계 파괴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이나 기술 진보 그 자체도 에너지를 소모하는 활동임을 간과하고 있다. 과거와 같이 에너지 가격이 저렴할 때는 기술 진보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앞으로 에너지 가격의 지속적 상승으로 에너지가 비싸지면 기술 진보 역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설령, 기술 진보가 잘 이루어진다고 해도 이것에 우리 인류의 미래를 걸 수는 없다. 기술 진보 덕분에 에너지 및 자연 자원 이용에 있어서 효율이 크게 높아졌으면 결과적으로 에너지 이용량이나 자연 자원 이용량도 감소해야 옳다. 허나, 지금까지의 추세에 비추어보면,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에너지 이용량 및 자연 자원 이용량은 계속 증가일로에 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의 연비가 크게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이 때문에 사람들이 자동차를 더 자주, 더 많이 운행하며 자동차를 더 많이 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에너지 이용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각종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력 사용량은 크게 늘었다. 즉, 기술 진보로 인한 에너지 효율의 상승효과가 에너지 소비의 증가로 압도되어 버렸다. 이것이 이 책이 강조하는 '반동 효과'인데, 요컨대 반동 효과 때문에 기술 진보의 위력은 그리 믿을 바가 못 된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의 가장 치명적 약점은 생태계를 경제 이론 내부로 끌어들이지 않고 마치 먼 산 바라보듯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1970년대 초반 <성장의 한계>라는 책이 나와서 인류의 위기를 역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하여 가장 격렬한 비판을 가한 학자들은 바로 주류 경제학 학자들이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 특히 자연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 문제를 걱정하고 있지만, 윌리엄 노드하우스와 같은 저명한 주류 경제학 학자는 지구 온난화가 인류에게 손실보다는 오히려 이익을 더 많이 가져올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전반적으로 기업의 수익률을 떨어뜨림으로써 앞으로 경제가 더욱 더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수요 증가 및 자원 고갈 탓으로 지난 수년 간 원자재 가격이 꾸준히 오르면서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더욱이 미래의 세계는 과거보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변덕이 더욱 더 심해질 것이다. 예를 들자면, 기후 변화가 어떤 불상사를 어느 정도 심하게 몰고 올지 아무로 점칠 수가 없다. 2008년 미국 발 금융 붕괴로 갑작스레 세계적 불황이 온 것처럼, 경제적으로 보면 미래의 전망은 매우 어둡다. 이제 흥청망청하는 시대는 지났을 뿐만 아니라 설령 세계 경제가 회복된다고 해도 앞으로 흥청망청하던 과거로 돌아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한다.
이제는 우리 인류 모두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이 책은 부르짖고 있다. 이 책의 원제목은 "풍요(Plenitude)"이다. 우리는 앞으로 풍요로운 삶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말하는 풍요로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 이 책은 풍요로운 삶을 위한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 모두가 귀담아들을 만한 것들이다.
그 첫째는 앞으로는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지양하고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과거의 삶이 물자는 풍부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삶이었다면 미래의 삶은 시간이 풍부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많이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 근로 시간을 줄임으로써 여가를 더 많이 확보하여야 한다. 물론 근로 시간을 줄이면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 하지만, 늘어난 여가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잘 활용한다면 소득 감소의 손실을 얼마든지 상쇄하고 남는다.
우선, 여기에서 강조해둘 것은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예컨대 1인당 소득 수준이 대략 2만 달러가 넘으면) 소득 증가의 행복 창출 효과가 크게 감소한다는 점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이 크게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행복지수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소득의 증가가 행복에 기여하지 못하는 현상을 "행복의 역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근로 시간의 감축으로 소득이 다소 줄더라도 여유 시간을 보람 있게 사용한다면 얼마든지 전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의 경우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근로 시간은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주당 50시간을 일하는 전문가도 많다.
근로 시간이 늘어남으로써 소득은 늘었지만, 결과적으로 더 행복해지지 못하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왜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에 대하여 잘 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고정관념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풍요의 두 번째 원칙은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 조달'하거나 만들거나 키우거나 직접 처리하라는 것이다. 지난 수년 간 미국에서는 가구나 가정용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이른바 '자체 제작(DIY : Do It Yourself)'이 크게 증가하였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는 채소도 직접 길러 먹고, 마을 단위로 공동 농사를 지으며, 물물 교환을 많이 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각자 더 큰 행복을 위해서 여가를 사용하게 되며 동시에 자원 고갈이나 생태계 파괴를 줄일 수 있다.
풍요의 세 번째 원칙은 '진정한 물질주의'다. 이 책이 말하는 '진정한 물질주의'란 쉽게 말해서 허영심이나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상품의 소비가 아니라 오직 상품의 참된 기능만을 생각하는 소비를 말한다. 멀게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거나 가깝게는 과거 반세기 선진국을 돌아보면서 얻는 한 가지 교훈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큼 소득 수준이 높아진 다음부터는 사치품의 생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사치품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도로 높아진다는 것이다.
선진국, 특히 미국의 경우 부자들의 허영심과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 상품의 소비는 결코 지구를 존중하는 소비가 아니다. 앞으로 선진국부터 지구를 소중히 여기는 소비방식을 추구해야 함을 이 책이 강조하고 있다.
풍요의 마지막 원칙은 사람과 지역 사회에 대한 투자를 앞으로 대폭 활성화하는 것이다. 시장 중심 경제가 몰고 온 폐해 중의 하나는 지역 사회가 유명무실해지고 사람들 사이의 유대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칼 마르크스가 100여 년 전에 이미 예상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돈 벌기에 급급하고 노동자는 먹고살기에 급급하다보니 직계 가족 이외의 사회적 교류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하다. 이제 지역 사회와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해서 인간관계를 복원하며 사회적 자본의 형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오늘날 가정에서 취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은 시장이라고 불리는 조직 및 제도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여가를 더 많이 가지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투자할 시간도 늘어나고 사회적 교류를 활발히 하며 생태계 복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력도 가질 수 있다. 이 결과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지며 지속가능한 발전도 가능해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한 가지 아쉬움은, 소비의 문제를 깊이 다루면서 인간의 탐욕의 문제를 깊이 파고 들이 않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장은 우리 인간을 끊임없이 이기적으로 만들고 탐욕스럽게 만든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도 결국 미국인의 탐욕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인간의 탐욕이 경제 위기를 초래하고 있고 환경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인간의 욕망을 절대시하고 신성시한다. 제3의 경제학은 필히 인간의 탐욕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경제학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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