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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건강 염려증'? "이봐요, 모두가 사는 길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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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건강 염려증'? "이봐요, 모두가 사는 길이라니까!"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신동화의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

음식에 관한 특별한 다큐멘터리를 만나다

'워킹 푸어'를 자처하는 내가 아낌없이 '지를' 때가 있는데 바로 먹을거리를 살 때다. 채소나 과일은 물론 가공식품을 살 때도 언제나 유기농이나 친환경 인증 마크를 달고 있는 쪽으로 손이 간다. 물론 비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싶다. 몸에 좋을 거란 믿음 때문이다.

이렇게 몸에 좋다는 걸 찾아서 먹게 된 것은 건강에 집착하는 친구의 영향 때문이다. "이건 몸에 좋으니까" 혹은 "그건 몸에 나쁘니까"를 입에 달고 사는 이 친구와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나도 물이 들었고 우리는 사이좋게 '건강 염려증 환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고 해도 누구나 먹을거리에 관련한 문제에는 예민할 수밖에 없다.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음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언론에서 다루어졌고, 언론에 소개된 특별한 식사법이 일시적으로 유행하거나 건강에 좋다고 직접 언급된 식품은 한동안 동이 나거나 한다.

그런 면에서 SBS의 다큐멘터리 <생명의 선택>도 음식에 관한 여느 다큐멘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프로그램 가운데 1편의 제목은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 '먹는 게 삼대를 간다'니 과장이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채소가 부족한 중국 산시 성 마을에서 대대로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기들이 태어나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대기근을 겪었던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던 세대와 그 후손들까지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방송에서는 부모의 영양 섭취가 삼대에 걸쳐 영향을 미친 사례가 잇달아 소개되었다.

한편으로는 굳이 역사적 선례나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례가 아니더라도 '잘 먹어야 건강한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래저래 '잘 먹는 것'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관심이 증폭되던 터, 좋은 먹을거리의 중요성에 대해 환기시키면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책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느릿느릿' 신 PD

프로그램을 제작한 신동화 PD와 연락이 닿았는데 다행히도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내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만남이 특별했던 건 그의 첫 인상 때문이었다. 아, 정말이지 말씀이 너무도 느린 것이었다. 방송에 이은 두 번째 충격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답변을 천천히 한다는 게 옳을 것이다. 무슨 질문을 드려도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 답변을 하는데 정작 말을 하는 시간보다 그 사이 휴지 기간이 더 긴 느낌이었다. 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흡이 짧을 수밖에 없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은 책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그때는 정말 답변을 기다리기가 너무 답답해 주먹으로 내 가슴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방송은 시청률을 의식해 시속으로 달리는 느낌으로 만든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방송인들의 성향 또한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 선입견을 신 PD가 깨 주었다. <생명의 선택>이란 프로그램도 저런 진중한 자세로 만들었을 테니 내용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작업을 하는 중에는 다른 일정을 병행하면서도 원고 마감이 상당히 빨랐고, 편집 이후 확인 과정에서는 매우 꼼꼼하게 봐 주어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음식으로 유전자를 바꾼다니 정말일까

▲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신동화 지음, 민음인 펴냄). ⓒ민음인
이 책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민음인 펴냄)는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 '다음 천 년을 위한 약속', '페어푸드, 도시에 실현되다' 등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방송의 흐름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각 부는 하나로 독립해 개별적인 책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전부 그 꼼꼼한 신동화 PD가 1년에 걸쳐 20여 개 나라 100여 명의 과학자와 전문가들을 만나 직접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몸속 유전자를 바꿀 수 있으며 이러한 상태가 자녀에게 대물림될 수 있다는 주장을 '후성 유전학'이라는 최첨단 과학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신기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 현상은 여러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이 이미 정해진 채로 태어난다. 외모나 선천적인 재능과 자질 등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들이 많은 까닭이다. 그래서 외모가 출중하거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다느니 '이기적인 유전자'의 소유자라며 부러워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가진 많은 특성이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단지 그뿐이라면 얼마나 인생이 단조로울까.

인간이 타고난 유전자에 따라 정해진 운명대로만 살아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것은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후성 유전학이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환경에 따라 유전자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음식 섭취라는 영양적 환경이 유전자를 조절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많은 책 가운데에서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좋은 음식이 왜 중요한지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할까? 음식이 나의 유전자를 바꾸고 나의 건강을 바꾸고 후손들의 운명까지 바꿔 놓기 때문이다.

먹는 걸 바꾸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책에서는 가족력을 가진 미국의 암 환자가 수술 없이 채식 위주의 식단과 운동을 병행해 암 유전자를 바꾼 사례와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체중을 감량하고 비만 유전자를 바꾼 사람이 소개된다. 타고난 유전자를 바꿔, 유전자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 것이다.

그냥 먹지 말고 후손과 지구 환경에 양보하세요!

좋은 음식은 내 몸에만 좋은 게 아니라 삼대를 간단다. 그래서 좋은 것 좀 챙겨 먹겠다는데 꼭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양 성분표를 살피며 식품첨가물을 확인하면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그렇게 따지고 들면 먹을 게 없다는 핀잔도 들어야 한다. 유기농 식품을 고르면 비싼 것만 찾는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면 빨리 고르라고 옆에서 재촉하고, 아예 내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게 한 가지로 통일하라고 종용하는 사람도 있다.

이쯤 되면 "나 돈도 없으면서 비싼 것만 찾는 고급스런 입맛 가진 거 맞고, 그래서 가계부에서 식료품비 지출이 제일 높은 저소득층이고, 나는 다른 사람이 시킨 메뉴 빨리 나오든지 말든지 내가 먹고 싶은 음식 천천히 골라야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야!"이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는 구원의 손길을 뻗친다. 책에서는 미국의 시인이자 전통 농법을 고수하는 농부인 웬델 베리의 "식사는 농업 행위(Eating is an agricultural act.)"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좋은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행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음식의 소비자로서 내리는 선택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과정과 방식, 농촌의 미래와 지구 전체의 환경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을 먹더라도 원재료를 확인하고, 음식의 원산지와 출처를 확인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어떤 농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육된 가축에게서 나온 우유와 달걀인지 따져 보는 습관이 식품 산업 전체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먹을거리를 까다롭게 고르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진정 후손의 미래는 물론 식품 산업의 미래와 지구 환경까지 고려하는 이타적인 사람인 셈이다. 이제 먹을거리에서 만큼은 진정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자.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느냐고,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누가 물으면 저자는 이렇게 답하라고 한다.

"내가 먹는 게 삼대를 간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이렇게 대답하자. 그래 바로 이거야! '이기적인 건강 염려증 환자'로서, 속이 다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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