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이 공세적으로 제기한 무상 급식은 시혜적 차원에서만 이해되던 복지 논쟁을 언론도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를 논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대중이 무상 급식으로 대변되는 복지를 '권리'로 이해하고 환영하면서 진보 진영 내에 복지 담론이 끓기 시작했다. 결국 무상 급식은 '미래의 한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논할 화두가 됐다.
사실 이런 '무상 급식'이라는 구호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시민사회가 꾸준히 무상 급식 운동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상 급식이 지금과 같은 힘을 갖게 된 데는 그런 무상 급식 운동의 성과를 갈무리한 김상곤의 역할이 있었다. 지금 '김상곤 리더십'이 주목받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 <김상곤, 행복한 학교 유쾌한 교육 혁신을 말하다>(김상곤·지승호 지음, 시대의 창 펴냄). ⓒ시대의 창 |
김상곤 리더십이 가장 큰 효과를 낸 것은 교육청 조직과의 융화였다. "교육 혁신"을 표방하고 교육청에 입성한 그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고루하고 폐쇄적인 집단으로 꼽히는 교육 관료를 어떻게 통제할지는 처음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런 어려움을 모를 리 없었던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처음 들어왔을 때 제일 고민되는 지점이 이 조직과 내가 얼마나 빨리 녹아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우선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나를 지지하고 뽑아준 유권자들이 바라는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문제는 보궐 선거를 통해 당선됐기 때문에 제 임기가 1년 2개월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였는데요. (…) 참 다행스럽게도 취임 후 100일 이내에 그 과제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평가합니다." (65쪽)
"제가 들어와서 특별히 무슨 당근을 제시하거나 채찍을 가하는 권한을 행사하지도 않았어요. 또 그런 것들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다만 권위주의에서 탈피한, 즉 민주적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교육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죠. 그것이 제 원래의 모습이므로 있는 그대로 접근하자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충분히 듣자,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듣도록 노력하자 하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탈권위주의적이고 개방적인 리더십 즉 수평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66쪽)
지승호가 인터뷰 내내 거듭 물은 것처럼 수평적 리더십이 어려운 까닭은 리더의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이뤄야 할 과제는 많은 상황에서 구성원의 동의를 얻는 것은 어렵고 지루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상곤의 경험은 수평적 리더십이 '혁신'을 이뤄내는 유일한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육 관료 등 관계자 모두가 바뀌어야만 변화가 가능한 교육 분야에서는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변화의 열쇠다. 김상곤은 '학자로서 이론적으로 생각했던 교육 현장과 직접 들여다본 교육 현장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깊어진 생각을 말한다.
"교육에 관한 큰 틀에서의 문제는 밖에서 볼 때나 안에서 들어와서 볼 때나 거의 같은데요. 다만, 그 문제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을 푸는 데는 훨씬 더 면밀한 검토와 치밀한 계획, 그리고 지속적인 노력이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죠.
그래서 그런 면에서 보면 밖에서 거리를 두고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제대로 좀 하자'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될 것 같은 생각을 하기 십상인데요. 그러나 교육이 지닌 메커니즘의 복잡성과 그 구성원들 각자의 차이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가면서 변화시키려면 엄청난 에너지 집중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97~98쪽)
일부 보수 언론에서 '포퓰리즘'이라고 날을 세워 비난하는 김상곤의 교육 개혁이 현장에서 별다른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러한 신중함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무상 급식. 체벌 금지, 두발 자유화 등 학생 인권, 학교 혁신 정책이 아무리 옳더라도 선언적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상곤이 마냥 신중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시국 선언 교사를 징계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교육과학기술부, 보수 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하고, 검찰의 기소를 거쳐서, 재판까지 받았다. 비록 법원은 1심에서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그의 손을 들어줬으나, 교육과학기술부와의 갈등은 진행 중이다. 혹시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낮은 수준의 징계라도 한다면 전체적으로 중징계를 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중앙 정부와 세게 부딪힐 필요도 없고) 지지자들이나 시민사회에도 면이 설 수 있지 않느냐는 취지에서 어떤 식으로든 징계를 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들이 많았습니다. 같이 활동했던 분들까지도 그런 조언을 많이 했죠. 하지만 제가 볼 때 (…)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는 것 자체는 합리적이지도 못하고, 인사권을 가진 교육감으로서의 재량을 포기하는 것이라 본 겁니다. (…) (재판 결과에 따라 교육감 직 수행이 어려워 질 수도 있었는데) 내가 볼 때 이 사안은 그런 위험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던 거죠." (151쪽)
김상곤의 교육 개혁의 동반자로 일순위로 꼽는 이들은 다름 아닌 교사다. 사실 그를 비롯한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추진하는 '체벌 금지' 등과 같은 학생 인권 정책을 놓고서 (부추기는 보수 언론에 반응해서)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이들이 교사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그가 할 말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교사들이 스스로 교권을 생각한다면 학생들의 인권도 존중해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요. 실은 아이들에 대해 교육자라는 입장, 그것도 때로 전근대적인 교육자상을 자임하는 흐름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게 교사들의 집단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별 교사들은 대개 다른 교사의 체벌이라든가 학생 인권 침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죠. 그럼에도 학교라는 조직 단위에서 집단적인 사고를 하다보면 개인의 사고에 기반을 둔 언행이 나오지 못하고 전체적인 분위기에 매몰되어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181쪽)
"교육을 위해서 일정 부분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침해할 정도의 강압적인 통제라면 부당하다는 취지에서 학생 인권의 내용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물론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권리를 1대1로 대립해서 보기 시작하면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보는데요. 실은 이해관계가 합치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 그러한 관계를 대립각으로 상정해놓고 보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교사와 학생이 상호 존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고, 실제 선진국의 선진이라는 의미에는 그 점이 들어있습니다." (336쪽)
결국 김상곤 리더십을 꿰뚫는 열쇳말은 '역지사지'인 셈이다. 상호 이해와 대화를 전제로 한 리더십이야말로 그가 조직과 관료의 지지를 이끌어낸 힘이자 무상 급식, 학생 인권 정책을 뚝심 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가 던진 무상 급식 화두가 한국 사회에 복지 바람을 불러일으켰듯이, 김상곤 리더십이 경기도를 넘어 한국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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