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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은 돌이킬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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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은 돌이킬 수 없는가?

[해방일기] 1946년 2월 28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⑩

1946년 2월 28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⑩

김기협 : 1월 초 '반탁' 문제로 좌우 대립이 첨예화하더니 2월 들어서는 그 대립이 더욱 고착되는 감이 있습니다. 우익은 비상국민회의(국민회의)를 1일에 출범시키고 14일에 민주의원을 연 반면 좌익은 15일에 민전을 출범시켰습니다.

민주의원이 애초에 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회로 만들어졌다가 군정청 자문 기구로서 민주의원이라는 간판을 갑자기 거는 바람에 국민회의와의 연결이 흐릿해져 버렸습니다. 13일 최고정무위원이 발표된 후 국민회의가 한 일이라고는 15일에 그 선전부에서 민전 결성을 우려하는 성명서 한 장 발표한 것 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모체인 국민회의와의 연결이 약해지고 군정청과의 결속만 강해짐으로써 민주의원의 대표성이 약해지고 폐쇄적인 분위기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민전이 예상 외로 넓은 범위의 호응을 받는 것도 국민회의와 민주의원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드니까 통일 전선을 바라는 여망이 그쪽으로 쏠리는 결과 아니겠습니까? 통일 전선을 중시하는 국민당이 민주의원에 집착하는 것이 넓은 길을 버리고 좁은 길에 매달리는 것 같이 보입니다.

안재홍 : 최고정무위원회에 '민주의원' 간판 붙인 것은 졸렬한 일이라고 나도 생각합니다. 군정청과 의논을 하고 협상을 할 주체가 군정청의 부속 기구가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지요. 이승만 박사야 워낙 유연한 신념을 가진 분이니 그렇다 치고, 김구 선생이 이에 호응한 뜻이 어떤 것인지 나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김성수 씨가 100만 원, 경제보국회가 200만 원을 기부한 일도 달갑지 않습니다. 국민회의 출범 때가 아니라 민주의원 결성에 맞춰, 국민회의 의장 홍진 선생에게가 아니라 민주의원 의장 이 박사에게 가져오다니. 이 박사도 그 돈을 국민회의 집행부에 전달해 주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절차를 거쳐 받아쓰는 것이 경우에 맞는 일일 텐데.

금년 들어 통일의 기운이 흐려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반탁 운동의 폭풍이 통일의 희망을 씻어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국민당의 진로를 놓고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당장 성과를 바라볼 수 없는 형편이라면 더 좋은 기회가 올 때를 대비하며 차악의 길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김기협 : 차악의 길이라고요? 국민당이 1월 중순 이후 걸어온 길은 한국민주당(한민당)과 구별이 되지 않는데요? 1월 7일의 4당 코뮈니케가 좌우합작의 가장 뚜렷한 시도였으며 그 폐기가 좌우 합작 실패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두고두고 통탄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한민당의 약속 폐기는 이념 여부에 앞서 정치 도의를 어긴 일인데, 선생님이 이를 옹호하는 듯이 좌익의 고집을 비평하는 말씀을 하신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2월 12일 3·1절 합동 행사를 위한 7당 회의 때 독립동맹, 인민당, 공산당, 신한민족당, 조선민주당의 5당이 합의한 내용을 국민당은 한민당과 함께 거부했습니다. 3·1 측은 이 합의를 받아들여 기존 준비 조직을 해체하고 새 준비회에 들어온 반면 기미 측은 국민당, 한민당과 함께 단독 행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거족적 행사가 되어야 할 3·1절이 쪼개지는 책임이 기미 측에 있다는 사실은 언론사 연명의 중재까지 거부함으로써 분명해졌습니다. 국민당이 왜 그 대열에 함께 있습니까?

안재홍 : 오늘은 김 선생이 아주 거세게 몰아붙이는군요. 그럴 만한 일입니다. 요즈음의 일에 관해서는 나 자신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내게는 좌익에 대한 일종의 불신이 있습니다. 20년 전, 신간회 때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성실성의 출발점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좌익 분들은 관념에 집착하며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는 분들도 있고, 인식을 제대로 하고도 부정하려 드는 분들도 있지요.

신간회에서 저와 많은 동지들은 당시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좌익 인사들은 우리를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며 극단적인 노선을 고집했고, 결국 운동은 그로 인해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해방 이튿날인 8월 16일 밤에 나는 여운형 씨와 정백 씨(1899~1951년, 장안파 공산당의 일원. 당시 건준 기획국장) 등 좌익 인사들에게 따졌습니다. 건준에는 간판만 걸어놓고 좌익 조직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 온당한 일이냐고. 신간회에 간판만 걸어놓고 속으로 딴 짓 하던 행태를 되풀이할 거냐고.

모두들 이번에는 각오가 다르다고 다짐하더군요. 신간회 당시에는 현실이 너무 암울해서 극단으로 끌렸지만, 해방을 맞은 이제 이념보다 현실을 앞세우겠다는 각오를 피력했습니다.

그런데 20년 전에는 현실을 너무 비관해서 현실을 무시하더니, 이제는 너무 낙관해서 현실을 벗어나는 모양입니다. 4당 코뮈니케 작성 때도 통일 전선을 원한다면 무조건 자기네를 따라오라는 배짱이었어요. 어떻게든 합작을 이루려고 국민당은 그 요구에 응했지만, 한민당이 수용하지 못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한민당 대표로 나온 가인(김병로)과 춘곡(원세훈)이 참 애꿎은 고생을 했지요.

김기협 : 좌익에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 선생님 생각은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극단적 대립을 가급적 피하고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까? 4당 코뮈니케 폐기 이후 국민회의와 민주의원 결성 과정에서 임정-국민당-한민당은 좌익을 무시하는 방식을 취했는데요, 임정과 한민당은 차치하고, 좌우 대립을 고착시키는 노선에 국민당이 따라갈 필요가 있었습니까?

안재홍 : 국민당은 '세력'이랄 것이 없는 정당입니다. 돈도 없고 행동대도 없어요. '명분'을 지킴으로써 민족을 아끼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뿐입니다. 국민당의 염원이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길을 나는 임정에서 찾아 왔습니다. 임정이 제 역할을 잘하도록 돕는 것을 힘없는 우리들이 뜻을 조금이라도 이루는 길로 봅니다.

그래서 국민당의 진퇴는 임정의 행로에 맞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정 좌파의 국민회의 이탈은 통탄할 일입니다. 나보다도 더 굳게 임정을 지켜주어야 할 분들인데….

한민당은 '세력'을 가진 정당입니다. 통일 전선이건 독립 건국이건 국민당보다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이 한민당입니다. 한민당의 반동적 행태가 세간의 비평을 받고 있지만, 그것은 한민당의 한 측면일 뿐입니다. 반동적 인물보다 가인과 춘곡 같은 양심적인 애국자들이 한민당에 더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뜻을 펴도록 우당(友黨)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좌익에도 한민당에도 강경파가 있고 온건파가 있습니다. 국민당이 좌익을 따라가면 좌익 내의 강경파가 힘을 얻습니다. 반면 한민당의 우당 자리를 지키면 한민당 내의 온건파에게 도움이 됩니다. 국민당이 가급적 한민당과 보조를 맞추려 애쓰는 까닭입니다.

김기협 : 이북에는 임시인민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토지 개혁 등 국민당도 지지할 만한 여러 정책의 실시 준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민의가 썩 잘 수렴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같습니다. 이에 반해 이남에서는 양심적 정치 세력이 모두 합의하는 일도 한 가지 제대로 실현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 차이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해방 당시 이북과 이남 사정은 서로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련군과 미군의 차이에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안재홍 : 이북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사실 부러운 것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바람직한 변화라 하더라도 민족 전체가 함께 나아가지 못하고 한쪽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에 오히려 민족 전체에게는 손해가 되는 면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친일파 처단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북쪽에서만 처단이 되니까 모두 남쪽으로 도망 와서 남쪽 사정을 더 나쁘게 만들었죠. 곧 토지 개혁이 실시되면 지주 집단이 대거 몰려 내려오겠죠. 이남 상황이 또 어떻게 더 나빠질지 걱정됩니다.

소련군과 미군, 어느 쪽이 잘하고 어느 쪽이 못하고에 앞서서 하나의 민족이 두 나라에게 나눠 점령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문제입니다. 식민지 시대에 민족 아끼는 마음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상대를 놓고도 온건 노선과 강경 노선 사이의 혼란이 있었는데, 상대가 둘이니 문제는 더 복잡할 수밖에요. 더구나 미-소 두 나라 사이가 갈수록 껄끄러워지는 것 같은데, 조선 사람들이 그 사이에 이런 식, 저런 식으로 휘말려들 것이 걱정됩니다.

미군이 소련군보다 점령군 역할을 잘 못하고 있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보일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의 악의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현실과 체제가 이곳 사정과 워낙 동떨어진 것이라서 그들이 이곳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적응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먼 나라 군대가 들어오게 된 것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조건 위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일본과 달리 조선의 독립을 원하는 나라라고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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