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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어산지, '자유의 전사' 혹은 '괴팍한 강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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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어산지, '자유의 전사' 혹은 '괴팍한 강간범'?

[프레시안 books] 두 권의 <위키리크스>

천재적인 해커, 하이테크 테러리스트, 반미주의자, 약간의 과대망상증 환자, 사회성이 부족한 괴짜, 국가 미국의 적, 정보 공개 이념의 대변자, 인터넷 자유의 전사, 2010년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에서 최다 득표를 하고도 수상하지 못한 사람. 자칭 위키리크스의 '심장이자 영혼' 그리고 두 명의 스웨덴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 혐의자….

특별히 뉴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모순되는 평가들이 누구에 대한 것인지는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위키리크스와 그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스타가 되었다. 독일 잡지 <슈피겔>의 두 기자 마르셀 로젠바흐와 홀거 슈타르크는 <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21세기북스 펴냄)에서 어산지에 대한 이런 다양한 시각을 소개한다.

▲ <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마르셀 로젠바흐·홀거 슈타르크 지음, 박규호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전 미국 대통령 부시의 최측근 참모였던 칼 로브에게 어산지는 당장 체포해야 할 범죄자지만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그와의 연대를 촉구했다. 미국 극우파는 그를 악마로 묘사하면서 "왜 어산지는 아직 살아 있는가?"라는 매우 공손한 질문을 제기한 반면 인터넷 정보 자유를 신봉하는 이나 대부분의 반미주의자들에게 어산지는 자유의 전사이며 살아 있는 신이다.

로젠바흐와 슈타르크는 어산지 외에도 많은 위키리크스 활동가들을 만났는데,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어산지와의 의견 대립과 그보다 심각한 수준의 개인적인 불화로 인해 위키리크스에서 탈퇴했다. <슈피겔>의 두 기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위키리크스에) 돔샤이트-베르크의 부재는 큰 타격이었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많은 일들을 처리했을 뿐만 아니라 이성적이고 생각이 잘 정리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주 기이하고 변덕스럽게 행동하는 어산지의 중요한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그는 믿음직한 일처리 방식으로 위키리크스가 중요한 인물들과 관계를 쌓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런 평가를 받은 돔샤이트-베르크의 시각은 어산지에 대한 양 극단의 평가 사이에 있다.

물론 한가운데는 아니다. 위키리크스에서 활동할 때 '다니엘 슈미트'라는 가명을 사용했으며 그 가명만큼이나 귀여운 외모의 이 독일인은(슈미트라는 가명이 왜 '귀여운'지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의 정보 자유를 신봉하진 않아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특별히 미국에 반대하지는 않아도 모든 억압적 권력에 반대한다.

따라서 돔샤이트-베르크도 어산지를 '자유의 전사'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지금 어산지가 가장 미워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됐고, 이는 돔샤이트-베르크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어산지에게는 네오콘의 극우파보다 돔샤이트-베르크가 더 미울지도 모른다.

<슈피겔> 기자들의 책과 동시에 나온 돔샤이트-베르크의 <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지식갤러리 펴냄)을 읽으면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국가의 비밀 독점에 반대하고, 인터넷 검열에 반대하며, 핫팬츠에 롤러블레이드를 신은 한 헝가리 여성에게 동시에 이상형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던 두 젊은이의 활약을 그린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산지에 대한 두 개의 '일치된' 시각

▲ <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 지음, 배명자 옮김, 지식갤러리 펴냄). ⓒ지식갤러리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어산지와 돔샤이트-베르크의 불화는 조직 내의 권력 투쟁이나 암투와는 거리가 멀다. 규모가 작고 영향력도 미미했던 조직이 일순간에 세계 정치의 표면으로 떠올랐을 때 조직 내부에는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감정을 다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모든 조직이 이로 인해 (비록 '설립자'는 아닐지라도) 조직의 성장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인물을 내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짧은 시간에 '자유의 전사'로 떠오른 위키리크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위키리크스의 무엇이 문제였을까? <슈피겔> 기자들의 신랄한 설명을 들어보자.

위키리크스 조직은 엄청난 잠재력과 아울러 커다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 둘에는 똑같은 이름이 붙는다. 바로 줄리언 어산지다. 이 호주인의 마니아적 에너지와 지적 호기심이 없었다면, 공공의 피뢰침 역할을 하겠다는 그의 의지와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위키리크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산지는 위키리크스에 민주적 구조를 부여할 시기를 놓쳤다. 어쩌면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 어산지는 마치 창업자가 도무지 경영에서 손을 떼려 하지 않는 '중소기업'처럼 이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돔샤이트-베르크 역시 이와 비슷한 평가를 좀 더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내렸다.

나는 줄리언 어산지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는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극단적으로 천재적이다. 극단적으로 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 편집증이다. 극단적 과대망상이다.

비단 돔샤이트-베르크뿐 아니라 아이슬란드 의원 버기타 존스토디르 등 적잖은 이들이 어산지가 조직을 비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내부 비판에 동조해 위키리크스를 탈퇴했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오픈리크스'라는 새로운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쓴 책에서 "이 사이트가 현재보다 위키리크스의 초기 원칙에 더 충실하다"고 주장한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이런 평가를 뒷받침하고자 책의 여러 곳에서 어산지와 연관된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어산지를 묘사할 때, 그의 순수한 열정과 위키리크스의 이상 자체에 대한 찬사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이 독일인이 겪어야 했을 마음고생이 눈에 선하다. 일화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이는 2007년 독일 '카오스컴퓨터클럽'의 행사가 열린 베를린 콩그리스센터에서 일어난 일이다. 위키리크스는 이 행사에서 강연을 가졌다.

프레스룸(기자실)은 일반적으로 기자들이 노트북을 들고 와 조용히 기사를 작성하는 곳이었다. 줄리언은 이 방을 자기 방으로 공표한 후 바로 낮 작업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 몇 시간을 꼼짝 않고 컴퓨터 앞에 몸을 바짝 웅크리고 아주 큰 소리로 자판을 두드렸다. 다른 사람들이 15분 정도 조용히 라디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 방에 왔을 때도 줄리언은 방에서 나가주기는커녕 여전히 큰소리로 자판을 두드렸다.

그러나 돔샤이트-베르크와 <슈피겔> 기자는 그의 괴팍함과 사회성 부족, 위생 관념의 결여, 형편없는 식사 매너와 아마도 그가 '테러리스트'라면 적어도 패션에 있어서는 실제로 그럴 것이라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어산지의 특징이야말로 위키리크스를 존재하게 하고 지금과 같은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조직으로 키워낸 특성이라고 수긍한다.

사실 어산지가 그렇게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 아니었다면 미국과 같은 거대 제국과 맞붙을 생각이나 했겠나? <슈피겔> 기자와 돔샤이트-베르크 모두 어산지가 단지 유명해지고 싶어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위키리크스 활동을 하고 있다는 모함에 고개를 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나온 두 책에 대한 언론 기사와 달리 이 책들은 이렇게 공명한다.

어산지보다 위키리크스가 더 중요해!

이 두 책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사실 어산지를 비롯한 위키리크스의 주요 인물의 활약상이나 뒷담화가 아니다. 이 두 책은 바로 위키리크스 자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위키리크스는 왜 자료를 폭로하는가? 그 폭로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조직 구성원의 개인적인 범죄가 조직 전체의 활동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는가?

특히 한때 조직에 몸담았던 돔샤이트-베르크의 증언은 귀 기울일 만하다. 그는 5만 유로(약 7700만 원) 정도 되는 '많지 않은'(자신의 표현이다!) 연봉을 챙겨 주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업 위키리크스 활동가의 길을 택했다. 이는 단지 어산지의 카리스마와 매력에 끌린 선택이 아니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위키리크스에서 보았다.

돔샤이트-베르크가 현재의 위키리크스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초기의 원칙은 두 가지였다. 첫째, 폭로의 투명성이다. 고발 자료에 대해 위키리크스의 판단에 따라 폭로 여부를 결정하거나 그 자료를 편집·가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자료를 받은 시간 순으로 모두 공개한다는 것이다.

돔샤이트-베르크의 주장에 따르면, 정보 공개를 결정하는 권한은 국가에 의해 독점돼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위키리크스 자신에 의해서도 독점돼서는 안 된다. 위키리크스는 자료를 제공하려는 사람에게 '왜 이 자료를 공개하기 원하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고발자의 판단이 무엇보다 존중되어야 하며, 위키리크스는 플랫폼 역할만 한다는 것이다.

위키리크스의 폭로 활동이 기성 언론과 다른 점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어산지는 기존의 언론이 진실을 알리는 것 자체보다 그것을 가공해서 팔아먹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난하며, 기사와 자료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을 주장했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이 구상에 어산지 자신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이런 시각 때문에 위키리크스 설립 이래 최대의 히트작이었던 '부수적 살인' 비디오 영상을 비판한다. 미군 헬기가 두 명의 로이터 기자를 포함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장면을 담은 이 영상은 고발자가 제공한 26분 길이의 영상을 10분 정도로 편집했고, 중간에 자막이나 해설을 곁들였다. '편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나 '기성 언론' <슈피겔> 기자들은 반대로 이 '두 가지 원칙'에 좀 더 회의적이다. 그들은 어산지에게 위키리크스의 폭로 활동이 개인의 사생활 영역을 함부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위키리크스도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 정보를 공개하는 주체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묻는다.

어산지는 강간범인가?

<슈피겔> 기자들의 시선을 염두에 두면,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둘러싼 또 다른 아이러니가 부각된다. 어산지 자신의 성폭력 혐의가 언론에 공개되자, 그는 매우 화를 냈다. <슈피겔> 기자들은 이런 그의 태도는 정보 공개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위험이 "과장되었다"고 답하는 사람의 대응으로는 부적절하다고 꼬집는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이 사건을 놓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어산지와 여자들만 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미국 정부의 개입 등 일각의 음모론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는 "아마도 그의 남성우월주의가 지금의 불행을 초래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이 문제를 논의한 위키리크스 핵심 관계자 4명이 "'어산지가 하루빨리 여자들에 대한 이런 태도를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고백했다.

돔샤이트-베르크가 '어산지를 사형시켜야 한다', '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는 둥의 주장을 난센스로 취급하면서도, "이 소송은 위키리크스와 전혀 상관이 없는 어산지와 두 여자 사이에 생긴 사적인 소송"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어산지는 이 소송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서도 안 된다. 만약 어산지가 위키리크스의 권력을 방패삼아 소송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권력 남용이다."

돔샤이트-베르크의 이런 주장에는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설사 어산지가 파렴치한이라고 하더라도, 위키리크스의 활동은 그것과 전혀 무관하다는 데 있다. 조직의 '설립자'이자 '심장이자 영혼'인 사람이 강간범으로 밝혀졌다고 해서 위키리크스의 폭로 활동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야 할까?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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