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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오세훈 정원인가요? 아니라면 지금 말해요!

[프레시안 books] 강현수의 <도시에 대한 권리>

김 씨는 새벽같이 일어나 뇌졸중으로 누워있는 남편이 먹을 밥을 차려놓고 집을 나선다. 인근 대학에서 청소 일을 하는 김 씨에게 새벽 시간은 1분1초가 아쉽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마을버스를 흔히 이용하지만 새벽 시간엔 기다리느니 빠른 걸음으로 내려간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을버스 없이 오르막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캠퍼스가 그리 넓지는 않지만 바닥을 꼼꼼히 쓸고 닦아야 하는 김 씨에게는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거대한 공간이다. 일을 마치고 시장을 들러 집으로 돌아오면 한 눈에 빤히 들여다보이는 작은 집에서 피곤한 몸으로 다시 '집안' 일을 시작한다.

한편, 같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이 씨는 아침에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휘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한다. 같은 가격이면 넓고 여유 있는 집이 좋아 몇 년 전 신도시의 아파트 분양을 받아 살고 있다. 아파트 단지 안은 각종 편의 시설에 숲까지 우거진 거대한 세상이다. 직장까지의 거리가 멀어지긴 했지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니 출퇴근길 운전이 그리 피곤하지는 않다.

이 씨는 강의 준비에 여유가 생기면 종종 시간을 내 미술관에도 들른다. 아무래도 괜찮은 전시들은 서울에서 많이 열리니, 도심의 교통 체증이나 주차 문제가 불편하기는 하지만 서울에 나왔을 때 시간을 내는 편이 낫다.

▲ <도시에 대한 권리>(강현수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이 두 사람에게 도시는 어떤 곳일까. 아니, 그보다 먼저, 당신에게 도시는 무엇인가. 도시를 보라, 권리로 말하라. 강현수의 <도시에 대한 권리 :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책세상 펴냄)의 내용은 이렇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펼치기 전에 각자에게 도시는 무엇인지 묻는 것이 좋다. 저자는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주장한 '도시에 대한 권리'를 소개하며 당신의 도시를 한 번 더 살펴볼 것을 요청한다. 이것은 사상이나 이론이기보다는 호소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상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편이 낫다.

김 씨에게 도시는 어떤 곳인가. 걸어 오르기 힘든 구불구불한 골목의 달동네고 거대한 캠퍼스, 다닥다닥 노점이 붙어 앉은 재래시장, 몸 한 번 돌려 누우면 벽에 손이 닿는 방이 도시다. 반듯하게 각이 선 신도시와 단지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주상복합아파트,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는 도로와 구두 굽 소리가 또각또각 울리는 미술관을 도시로 만나는 이 씨의 도시와 김 씨의 도시는 다르다.

당연히 각자가 말해야 할 권리도 다르다. 김 씨에게는 남편이 다시 갑자기 쓰러지면 집 앞까지 구급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골목이 필요하고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이 필요하다.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지 못하니 기분 좋게 숨이라도 쉬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필요하고 가끔 뉴스에 나오는 청소 노동자들의 얘기를 조금 더 자세히 찾아볼 수 있는 인터넷 접근이 필요하다. 집 가까운 곳에 문화센터라도 있다면 김 씨는 가끔 영화를 보거나 몇 가지 전시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씨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넓은, 더욱 직선으로 뚫린 자동차 도로와 더욱 넉넉한 도심 내 주차 공간이다. 어쩌면 이 씨에게는 굳이 '권리'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쭉 뻗은 도로, 충분한 주차 공간 등은 이미 도시가 변화하고 있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도시는 계속 변한다. 다만 사람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변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김 씨의 바람은 재개발에 대한 바람으로 읽힐 수도 있다. 도시 계획의 결정권자들은 장기 전세 주택을 짓는다며 김 씨의 동네에 개발 사업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재개발이 되면 도로는 반듯하고 넓어질 것이고 문화센터 하나쯤은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김 씨가 개발이 되고 난 후 그 동네에서 계속 살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개발이라면 말이다.

김 씨는 또다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올라야 하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거나 아예 도시를 떠나야 할 수도 있다. 도시는 김 씨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권리로 말하라는 것이다. 도시를 전유하고 도시 계획에 참여하며 도심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으면서도 차별화된 공간을 생산할 수 있는 권리의 언어가 김 씨에게 필요하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인권의 정치'와 '보편적 인권'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권리의 언어가 김 씨가 바라는 변화를 만들어낼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일상생활의 장소인 도시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면 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방정부가 지는 것 역시 당연하다. 저자는 브라질의 도시법 제정이나 2010년 세계도시포럼에서 소개된 콜롬비아 보고타의 사례 등을 통해, 가깝게는 국내의 철거민 운동이나 장애인 이동권 운동 등을 통해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 가능성을 우리 곁에 끌어다 놓는다.

물론 '도시에 대한 권리'가 '정답'인 것은 아니다. 도시를 두고 벌어지는 권력과 권리의 충돌, 인권의 침해를 살펴본 후에도 어떤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는 열려 있다.

하나의 공간에 만들어지는 수천, 수만 개의 장소가 보편적 인권의 가치에 기반을 두면서도 수많은 차이들을 살아있게 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 도시를 전유하고 창작하고 참여하는 것이 도시 계획의 문제로 쉽게 환원되어서도 안 된다. 김 씨가 도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부족한 임금과 소득, 가사 노동과 간병 노동의 부담 등 삶의 전 영역에 걸쳐져 있다.

'도시에 대한 권리'와 여러 권리들과의 연관성을 살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때 의무 주체를 지방정부로만 둘 필요는 없다. 국가를 통해 부여된 시민권에서 출발하는 근대 인권 담론의 한계는 단순히 의무 주체를 지방정부로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인권의 힘은 자격을 부여하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러나 구급차가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김 씨의 걱정과 구급차가 들어올 수 있는 도로에 대한 요구 사이의 간극은 크다. 즉, '도시에 대한 권리'는 정답이기보다 질문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한편으로는 절박하고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질문을 내려놓는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 스스로 그러한 질문을 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누구나에게 기꺼이 권할 만한 질문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도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인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권력이 어떻게 공간을 장악하고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는지, 또한 얼마나 다양한 실천들이 도시를 채우며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매일같이 오가던 길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르게 보인다면 그것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 다음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은 이 책이 선물하는 설렘이자 아쉬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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