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돈 잘 버는 여자의 진실…집에서도 '생고생'!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돈 잘 버는 여자의 진실…집에서도 '생고생'!

[프레시안 books] 조지 애커로프·레이첼 크렌턴의 <아이덴티티 경제학>

조지 애커로프와 레이첼 크렌턴의 <아이덴티티 경제학>(안기순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은 '사람들의 정체성이 경제 행위를 좌우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사회학자나 문화이론을 접한 이들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깜짝 놀랄 일이 될 수도 있다. 주류 경제학의 기본적인 관점은 사람들의 경제 행위는 자신에게 돌아 올 이익 여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들 시각에서 어떻게 정체성이 경제적 행위를 일으키겠는가.

일단 이 책의 주장을 간단하게 담배 구매와 금연으로 풀이해보자. 사람들이 담배를 끊는 이유는 자신의 건강과 그리고 비용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상실시킨다. 담배 구매 지출만이 아니라 의학적 지출과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금연을 결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만으로 금연을 할까. 다른 이유는 없을까. 예전에는 대중문화 속 흡연은 남성다움의 상징이었다. 말보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카우보이 모델을 생각하면 영락없다. 담배를 태우는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는 진보된 존재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관점이 크게 줄었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은 타인의 건강을 해치며,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들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또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적어도 흡연자는 더 이상 우러러볼 멋진 사람은 아니며, 오히려 연민과 때로는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담배 소비 행위를 줄이게 만든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소비 행위엔 개인적인 선호만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작용한다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은 이익을 효용 함수(Utility Function)로 표기한다. 사람들은 투자를 하거나 소비를 할 때 이 효용 기능을 최대화하는 선에서 판단·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효용이 없으면 경제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효용은 순전히 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한정된다.

▲ <아이덴티티 경제학>(조지 애커로프·레이첼 크렌턴 지음, 안기순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랜덤하우스
최근에 주류 경제학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크게 주목을 받아온 행동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본능이나 감정, 무의식이 경제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덴티티 경제학>이 이런 개인 선호의 경제학과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정체성의 기본적인 성격에 있다.

흔히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표현을 생각하면 정체성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적인 차원의 개념은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에 한정하는 것이다.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이며 누구인가는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또한 정체성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확립된다.

라캉은 어린 아이가 거울 단계에 들어서면 자신이 상상하던 자신의 이미지와 거울을 통해본 자신의 이미지를 비교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현실에서 이 거울은 타인, 다른 구성원들이다. 다른 구성원들을 통해서 자신의 현실적 모습을 인식하고, 다른 존재들 사이에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혼자만의 세계, 상상의 세계인 나르시시즘의 나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결국 사회적 구성원으로 영위할 수 없다. 이는 경제 행위에서도 마찬가지며 사회적 행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 책이 사회학적 관점에서 정체성과 소비 현상을 분석하는 것과 다른 점은 좀 더 일목요연한 경제학적 분석틀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에서는 수요 공급을 분석할 때 개인을 구매자와 판매자로 구분한다. 이것이 범주화다. 두 번째는 사회적으로 보급되어 있거나 접근 가능한 기술과 시장구조를 규정한다. 이것을 규범이라고 칭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특정 행위에 따른 개인의 이익과 손실을 살핀다. 이를 효용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필자들은 정체성을 경제 행위와의 연관성에 적용시킬 때 마찬가지 맥락에서 세 가지를 적용한다. 즉, 정체성과 경제적 행위를 분석할 때도 사회적 범주, 규범, 정체성의 손실과 이익을 분석한다.

예컨대, 노동자를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로 범주화할 수 있다. 인사이더는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웃사이더는 회사에 대한 노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여긴다. 아웃사이더는 조직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생각한다. 반대로 인사이더는 때로 자신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더 일한다.

인사이더는 적은 노력을 들일 때 정체성 효용을 잃는다. 많은 노력을 들일수록 인사이더는 더 많은 정체성 효용을 얻게 된다. 아웃사이더는 자신이 완전히 속해 있다고 여기지 않는 조직에 많은 노력을 투입할수록 정체성 효용을 상실하게 된다. 덜 일할수록 정체성 효용은 아웃사이더에게 증가한다.

요컨대 인사이더라고 생각하거나 규정된 사람들은 많은 급여를 받지 않아도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적은 급여를 받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작업 집단 구성원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이상적 규범이며, 아웃사이더의 이상적 규범은 노력을 덜 기울이는 것이다.

정체성 효용 상실은 그러한 이상적인 규범에서 벗어날 때 발생한다. 군대의 경우, 나라를 사랑하여 당연히 군 복무를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는 이들은 급여에 관계없이 열심히 근무한다. 즉, 군인은 금전적 보상보다는 정체성에 의존한다. 물론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고 기업과 비교하면 월등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군인의 경우,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구분을 사회적 범주로 만드는 상징적 매개물은 군복이다. 이러한 상징적 매개물은 각 조직에 따라서 다양하게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CI(Corporate Identity·기업 이미지) 같은 것이다.

조직 운영자 입장에서는 인사이더가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작업 집단과 동일시하여 인사이더가 되는 정도는 기업의 경영 정책에 달려있다. 예컨대, 엄격한 감독을 실시하면 누가 열심히 일했는지 알 수 있으므로 인센티브를 적용하는데 유리하다. 하지만 엄격해지면 엄격해질수록, 적은 노력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는 아웃사이더들이 양산된다. 반면 느슨한 감독을 실시하면 인센티브 적용은 세밀하지 못하지만,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는 노동자를 양산한다. 따라서 느슨한 감독이 최고의 경영 전략일 때가 많다.

노동 시장에서 여성과 남성이라는 범주도 독특하게 분석될 수 있다. 사회적 범주인 남성과 여성에 따라 특정 임무에 남성이나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규범적) 꼬리표가 붙는다. 남성의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이나, 여성의 직업에 종사하는 남성은 정체성 효용을 잃는다. 여성이 남성의 직업에 있으면 남성은 정체성 효용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체성 모델에 따르면 여성들은 기술을 더 적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 기술을 습득한다. 예컨대 경영대학원보다는 교육대학원에 진학한다. 남녀의 개인적 취향과 능력에 관계없이 특정 직업에 종사해야 이상적이라는 규범이 문제인 것이다.

또 정체성 모델에 따르면 남녀가 자신의 성에 적절하지 않은 일을 수행할 때 정체성 효용을 잃게 되므로 여성은 가정의 수입을 대부분 벌어 와도 남성보다 여전히 많은 가사 일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성 규범을 바꾸려면 사회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경쟁적 시장이 아니라 사회운동과 정부의 개입이 이 영역에 필요한 이유가 경제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셈이다.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를 정체성 모델로 분석하면 기존의 주류 경제학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해소된다. 사회적 범주 차원에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를 각각 백인과 흑인 노동자로 구분할 수 있다. 아직도 백인들은 흑인들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흑인 노동자에게는 인사이더가 되거나 일하는 아웃사이더, 일하지 않는 아웃사이더가 되는 규범이 있다. 인사이더가 되려고 애쓰는 흑인은 백인의 인정을 받지 못해 괴로움을 겪고, 자존심을 상실한다. 일하지 않는 아웃사이더 흑인 노동자는 자존심은 지킨다. 일하는 아웃사이더는 정체성 효용을 잃는다. 이유는 아웃사이더의 이상적 규범은 백인을 위하거나 협력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동료들의 승인 여부가 중요하다. 정체성 모델로 볼 때 주류 경제학에서 머뭇거리는 흑인의 중도 학업 포기가 잘 설명 된다. 정체성 모델에 따르면 학업 중단 이유는 성공하지 못한 채 백인의 세계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것은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즉 아웃사이더가 될 바에야 차라리 학업을 통해 성공하는 일보다 다른 일을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소수 인종 우대 프로그램들이 소수 인종에 해당하는 이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아웃사이더의 정체성을 부추겨 도중 이탈하도록 만든다. 효과 있는 시행안도 있었다. 정체성 모델에 따르면 기숙 프로그램은 아웃사이더를 인사이더로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조지 애커로프와 레이첼 크렌턴이 이 책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은 경제적 행위에 관련된 정체성의 중요성만이 아니다. 그들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백인과 흑인 학생의 학습 효과 차이도 이 정체성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흑인에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주지시켜도 백인과 흑인으로 사회 범주화하고 그에 따른 규범이 정해지면 그들 각자의 효용은 달라진다. 따라서 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범주화를 '쇼핑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특정한 범주를 정하지 말고 그에 따른 규범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화해서 쇼핑몰처럼 스스로 고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학교와 학교 조직을 자신과 동일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체성과 그에 따른 사명감이 높은 학교에서 학생들은 인사이더가 되고 높은 성취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 모델의 적용은 기업의 인사, 조직 운영, 노동 시장과 남녀 성별 분업 등에서 설득력 있는 분석을 가능하게 하고 대안을 합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분석은 사회 정책적으로도 여러 가지 면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경제학적인 분석이지만 정체성 모델의 적용이 주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거나 놓치고 있는 공공 정책에도 여러 가지 함의를 주므로 주목해야할 이유가 되겠다.

저자들은 이를 위해서 필요한 작업들, 예컨대 규범과 정체성의 원천에 대한 탐구, 규범과 정체성의 변화 양상, 정체성과 경제 정책 사이의 피드백, 국가별 정체성과 규범의 차이 등에 대해서는 후속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