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과 물고기에 관심이 많은 유치원, 온갖 지식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을 키워가는 초등학교 그리고 사춘기를 도서관에서 보낸다. 여름 독서 교실과 청소년 독서 모임, 도서관에서 밤 새워 책 읽는 프로그램에 멜빈은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야구를 좋아한 3학년 때는 야구팀과 야구카드를 도서관 탁자에 놓고 분류하고, 4학년 때는 철자 알아맞히기 대회를 준비하고, 5학년 때는 '태양계에 있는 모든 마을, 도시, 나라 이름 맞히기 지리 대회'를 도서관에서 준비해 금상을 받는다. 6학년 때는 괴상하고 특별한 과학경진대회에 나가 상을 받는다.
▲ <도서관이 키운 아이>(칼라 모리스 지음, 브래드 스니드 그림, 이상희 옮김, 그린북 펴냄). ⓒ그린북 |
"우린 이 곤충들이 뭔지 금세 알아내고 분류해서 목록도 만들 수 있단다. 우린 그러지 않고는 못 배겨."
도서관에서 필요한 자료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도와주던 이분들의 이 말에는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서로서의 사명과 자부심이 그대로 묻어 있다.
지난 1월에 미국의 학교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을 견학하고 돌아왔다. 우리가 탐방한 공공 도서관은 미국 의회 도서관, 뉴욕 공공 도서관, 보스턴 공공 도서관처럼 아주 규모가 크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도서관도 있었지만, 미국의 포트리 도서관, 잉글우드 도서관, 챈틀리 도서관, 요크빌 도서관, 토론토 공공 도서관 등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도서관도 여러 곳이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공공 도서관은 우리와는 확실하게 공간 배치부터 달랐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린이 전용 도서실만 따로 분리되어 있고 서가와 컴퓨터 검색대 및 열람석 등은 우리나라처럼 분리되지 않고 한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었다.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나 잡지도 지역 주민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그 성향을 고려한 듯 보였다. 이민자가 많은 지역은 그 나라의 잡지를 직접 구해 배치해 놓았고, 노인들의 이용이 많은 도서관에서는 '빅 프린트(big print)' 코너를 따로 마련하여 시력이 안 좋은 노인들을 배려하기 위해 글씨의 크기를 최대한 키워놓은 책을 비치했다. 단지 전시용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한 서가를 빽빽이 채울 만큼 많은 책이 구비되어 있었다.
도서관 한쪽에는 예술 갤러리를 만들어서 지역의 예술가들이 직접 참여하여 다달이 좋은 작품을 전시하여 지역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모여 회의를 하고 토론하는 공간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이 먼저 갔던 것은 책을 보는 사람의 편안함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구비된 각종 조명 시설과 다양한 안락 의자였다. 이렇듯 도서관은 쉼터이면서 문화 공간이면서 자신의 일을 준비하고 공부하는 공간으로 복합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서가의 배치는 소설류, 비소설류, 전기류와 공부를 도와주는 참고 문헌 등이 비슷한 수량으로 배치되어 있고, 영상자료인 DVD와 음악 CD 자료도 방대한 분량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참고 문헌 코너에는 <뉴욕타임스>와 지역 신문 등을 연도별로 정리해서 학생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어린이 도서관이었다. 어떤 도서관을 막론하고 어린이 도서관은 매우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공간 한 면에는 공룡, 토끼, 곰 같은 큼지막한 인형들이 뒹굴고 있었는데, 그것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주 어린 아이들이 책을 읽다가 잠들 때 껴안거나 베개의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잉글우드 도서관의 입구에 그려진 환상적인 벽화, 동화책 앞에 놓인 예쁜 욕조 침대, 테이블에 놓여있던 색색의 크레파스, 예쁜 창틀에 전시된 각종 트리와 눈사람 인형들은 도서관이 공부하는 따분한 공간이 아니라 놀러가는 즐거운 도서관이 만들어 놓고 있었다.
챈틀리 공공 도서관에서는 어린이들이 15분씩 훈련된 개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특이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아이들이 털이 많은 개를 껴안고 이야기를 나누듯이 동화를 읽어주는 장면은 그 자체로 동화적이었다.
▲ <도서관 고양이 듀이>(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스티브 제임스 그림, 장미란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
도서관 사서였던 비키는 고양이에게 '듀이 리드모어 북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듀이는 19년을 도서관에 살면서 경제적 위기로 희망이 사라져 가던 스펜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온 마을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그 열풍으로 스펜서 도서관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책이 <도서관 고양이 듀이>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듀이는 자신이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도서관 고양이라는 것을 깨닫고 도서관 고양이답게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듀이가 찾아낸 해답은 '도서관 고양이는 사람들을 도와줘야 해. 도서관 고양이가 하는 일은 바로 그거야!'라는 것이다. 그날부터 듀이는 사람들의 책 찾기와 책 반납을 도와준다. 듀이가 도서관에 온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바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서들의 모습이다.
난 도서관 애용자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참 오랫동안 도서관을 드나들었고 책보는 것을 즐기다보니 이사를 할 때면 시장보다도 도서관의 위치를 먼저 고려할 정도다.
우리의 도서관도 참 많이 변했다. 도서관의 숫자도 많아졌고 규모나 운영 면에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공간과 서가의 배치만으로 도서관은 훌륭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시설도 중요하지만 그 시설을 운용하는 사람의 힘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 <도서관에 간 박쥐>(브라이언 라이스 지음, 이상희 옮김, 주니어랜덤 펴냄). ⓒ주니어랜덤 |
도서관이 나날이 심해가는 사회적 빈부 격차를 상쇄시킬 만한 공공성이 있는 장소로 더욱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 우리가 아는 어떤 건물보다 가장 밝고, 크고, 편한 분위기를 갖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였으면 좋겠다. 자율 학습하는 공간, 책 읽기를 강요하는 권위적인 공간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꿈을 키우고 즐겁게 놀았던 경험을 가지고 어린아이들이 자라났으면 좋겠다.
세 편의 동화는 그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도서관 내용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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