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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개돼지냐? 한국전력은 어미 할미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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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가 개돼지냐? 한국전력은 어미 할미도 없나?"

[밀양에서] 왜 밀양은 정부 보상을 거부하는가

"자기들은 어매 할매도 없데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후 미국의 통치를 받다가 1972년에 일본에 반환되었던 오키나와가 독립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예를 들면서,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 마을 아래쪽에 위치한 89번 송전탑 현장에 모인 주민들 중 한 분이 과잉된 심정을 자기도 모르게 연출하려는 듯이 말했다.

"우리도 정부가 이리 우리를 억압하고 몬살게 하면 경남이 독립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막말로!"

그는 정말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89번 자리를 지키는 동화전 마을 주민과 얘기를 나누다가 88번 자리로 올라가 주민들과 예상치 못한 식사를 하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내려오니 한국전력 직원들이 철수하고 있었다. 한국전력 직원들이 철수한 직후 찾아 온 휴식이라 그런지 올라가기 전보다는 주민들의 얼굴이 많이 평온해 보였다. 위와 같은 발언이 약간의 여유를 틈타 나온 것 같았다.

이계삼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가지고 올라 온 수박과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으면서, 주민들의 정제 안 된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이들의 싸움이 어떻게 8년 동안 이어져 왔는지 자못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이유에 어쩌면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어떤 비의가 숨어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러한 궁금증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고, 강정 마을에서 벌이고 있는 해군 기지 반대 투쟁을 보며 가졌던 것이기도 하다. 대략적으로 그것은, '아직 살아 있는 공동체에 대한 경험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정도의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성에 꽉 차지는 않았다.

26일 일요일 오전 89번 송전탑 자리에 도착했을 때, 동화전 마을 할매 한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안동에서 왔다는 젊은 여성 두 명과 함께 굴착기 아래에 앉아 있었다. 다른 주민들은 약간 떨어진 숲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위쪽에는 한국전력 직원들과 공사 업체 직원들 수십 명도 숲 속에 삼삼오오 모여 대치하고 있었다.

89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주민들의 표정은 전날 부북면 위양리 진싯골 마을과 평밭 마을 할매들이 지키고 있던 127번 자리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지쳐 보였다. 단순히 뙤약볕 탓이기만 했을까.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싸우시면서 뭐가 제일 속상하세요?"라고 물었더니, "이 사람들이 사람 취급을 안 해줘요. 그게 마 제일 속상합니더. 노인들을 질질 끌고 가질 않나, 자기들은 어매 할매도 없데요? 개돼지도 아니고…" 하며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눈물을 훔쳤다. 그녀가 든 피켓에는 '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겠노'라고 쓰여 있었다.

▲ 22일 오후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127번 송전탑 공사 예정지)에서 한 주민이 부축을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이날 한국전력 측은 굴착기를 둘러싼 채 시위를 하던 주민들을 강제로 철수시켰고 이 과정에서 주민 4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한전 직원과 핵 발전 토론해봤더니…

바드리 마을과 89번 자리가 가까운데 산 아래 동화전 마을 주민들이 올라와 싸움하는 이유는, 바드리 마을 주민들이 한국전력의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을 진입로를 확장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바드리 마을은 밀양에서 가장 고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가구 수는 많지 않지만 평지에서 한참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마을이다 보니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고립되기 일쑤인, 그것은 외지인인 내가 봐도 꼭 그러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마을 주민들의 애로 사항을 밀양시가 아니고 한국전력이 들어주는 것일까.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의 기초적인 생활 조건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결론밖에는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이것은 89번 보다 위쪽 산에 위치한 88번 자리에 있던 단장면 태룡리 용회동 주민의 지적과도 일치했다. 주민들은 자기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로부터도 그동안 소외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우리나라 지방 자치의 현실인 건가 싶어 마른 침을 애써 삼켜 보았다.

밀양에 내려갔을 때 송전탑 싸움 현장보다 먼저 내게 아는 체를 한 것은 도처에 핀 빨간 넝쿨장미와 하얀 찔레꽃, 그리고 모내기를 한 논 사이로 가끔 보이는 누런 보리밭이었다. 송전탑이 지나가지 않는 마을의 경우는 대체로 평화로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5월 하순은 모내기가 절정인 시간이 아니던가. 농촌 마을에서 모를 내는 철과 거둬들이는 철만큼 역동적인 평화기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한국전력이 지난 5월 20일 송전탑 공사를 대대적으로 재개하기 전에는 그래도 교대로라도 농사일을 보았단다. 그러나 지난주 내내 한국전력의 공사 강행에 이마저도 힘들어졌고 도리어 충돌의 충격과 탈진으로 줄줄이 할매들이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뉴스를 서울에서 내 들었다. 25일 토요일 오후 127번 자리에서 상동면 여수마을로 이동하려고 화악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마을 진입로를 지키던 노인 중 몇은 거의 탈진한 것처럼 그늘에 누워 있었다.

한국전력 직원들은 대체적으로 밀양 주민들이 불필요한 저항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말을 건네 본 사람 중 100퍼센트가 "우리나라에 핵 발전소는 불가피하고 우리는 전력이 부족한 나라이며, 이 사업은 그래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노인들이 다치고 하는 문제에는 인간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핵 발전소가 많이 모인 동해안이 한반도의 활성 단층인 것은 아느냐고 물었을 때, 서해안이 아니고요? 하고 되물었다. 만나 본 사람 중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그럼 1달러의 가치를 생산하는 데 다른 나라보다 2배 이상 많은 전기를 쓰며 심지어 영국보다는 3배의 전기를 쓴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금세 얼굴이 붉어지더니 데이터를 가져오란다. 그리고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나를 압박했다.

"대체, 선생님은 누구세요?" 어쭙잖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 소개했더니 명함을 보자 했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왜 전력 부족 국가인지에 대한 자료를 보내주겠다며 말이다. 그런 거 없다 했더니, 명함도 없는 사람하고 무슨 대화를 하느냐며 나를 쫓아낼 기세였다. 도리어 우리나라가 왜 전력 부족 국가가 아니냐고 그 이야기 좀 들어보잔다.

나는 그 상황에서 기억나는 수치도 논리도 마땅찮아, 아니 말하기도 성가셔서, "이봐요, 내가 가고 안 가고는 그쪽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거든요" 하고 쏘아주고 발길을 돌렸다. 앵무새 같은 이야기만 되뇌는 한국전력 노동자들에게 나도 발끈하고 만 것이다. 25일 토요일 오후 127번 자리에서 잠깐 빠져나와 맞은편 능선에 있는 한국전력 노동자들과 있었던 일이다. '저들 책임은 아니잖은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시 127번 자리 텐트 농성장으로 건너왔다.

▲ 한국전력이 경남 밀양 지역 765킬로볼트 송전탑 공사를 사흘째 재개한 22일 오전, 주민들의 반발이 매우 거센 부북면에서 한 주민(오른쪽)이 팔에 깁스를 한 채 공사재개를 저지하고 있다. ⓒ뉴시스

주민들의 눈에 한국전력과 경찰은 한통속

돌아오니 텐트 안쪽에 있던 할매 한 분이 떡을 내주셨다. 맛은 있었지만 날이 더워서 그런지 그것도 그리 잘 먹히지는 않았다. 첫 방문지라 그런지 나도 할매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기가 낯설었다. 다만 바리케이드가 쳐진 입구서부터 129번 자리를 거쳐 127번 자리까지 차를 태워다 준 평밭 마을 노인 회장님의 말씀이 귓가에 오래 머물렀다. 평밭 마을은 129번 송전탑 자리를 입구로 가진 마을이다. 작년 녹색당에서 1차 탈핵희망버스가 왔을 때, 한국전력이 나무를 벤 자리에다 철쭉을 심어 놓았다. 키 작은 철쭉꽃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냥 왜소했기 때문이었을까? 노인회장님 말씀은 이렇다. "한국전력 사람들은 저 나이 먹은 할매들의 모성을 절대 모릅니더. 고향을 지켜서 자식들에게라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을요."

이 비슷한 이야기를 26일 오후에 올라간 88번 자리의 용회동 주민에게서도 들었다. "새누리당에서 보상법을 손대가 6월 초에 뭐 어찌한다고 하더만요, 보상받을라꼬 우리가 8년을 싸운지 아십니꺼? 보상 많이 받을라캤으면 진즉 치아삤지요." 등을 내 쪽으로 돌리고 앉은 몸이 조부장한 할매가 입은 조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이겨서 생명과 마을이 살아있는 고향을 물려줄 것이다.' "이 자리서 지난 번에 할매들이 실려 갔지 않았능교." 하면서 그 당시를 상세히 술회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와 이리 말이 많노' 하는 추임새는 빼먹지 않았다. 경찰이 굴착기를 빙 둘러쌌는데 상대도 할매들이고 전경들도 어리고 해서 뭔가 대열이 어슬프더란다. 그 틈을 비집고 할매 세 분이 작은 굴착기 아래도 들어가 밧줄로 몸을 함께 묶고 그 몸'들'을 굴착기와 다시 쇠줄로 다시 연결했다.

"경찰은 뭐 하러 왔다던가요?" "주민의 안전을 보호할라꼬 왔다카대요." 할매 한 분이 대답하자 다른 할매가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어 붙였다. "보호는 무슨? 그 다음 날은 뭐라 캤는지 아요? 업무방해죄로 체포하겠다고 하데요. 그래서 '왜 말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노?' 하고 따졌더니 고개를 푹 숙이삡디다." 그 중 가장 논리적이고 상황에 대해서도 식견이 있어 보이는 어르신이 말을 받았다. "특이한 것은, 다친 사람들은 다 공권력하고 충돌해 벌어진 겁니더."

주민들은 한국전력과 공권력을 한통속으로 봤다. "쩌 아래 동화전 마을은요, 머리 위로 송전선이 지나가는데 그것 발표되고 나서 땅값이 마 팍 떨어졌습니더. 어떤 할매는 4억인가 5억인가 하는 땅 팔고 부산의 자식한테 갈랐캤다가 동네 할매들이 '자식들 돈 주고 나면 다 필요없어진데이. 가지 마라' 해서 안 갔는데 지금은 땅값이 1억 정도밖에 안 된다 카데요." 주민들은 자신들이 받는 피해가 금전적인 것에서부터, 인간적인 존엄성의 훼손, 공동체의 파괴, 전자파로 인한 건강 문제까지 아주 깊고 넓게 퍼져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인체에 아무 영향이 없으면 뭐할라꼬 산으로 갑니까? 그냥 아무 데나 쭉 지나가면 되지."

평밭 마을에서 트럭으로 우리를 태워다 준 주민 한 분은 핵 발전에 대해서 적지 않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127번 자리에 함께하러 온 초록농활대 학생들에게 핵 발전의 맹점과 허구를 상당히 호소력 있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학생들은 연방 '아!'하면서 그 주민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내가 127번 농성장 맞은편에서 한국전력 직원들과 언쟁을 한 직후 이번 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원투펀치로 소문난 두 할매와 같이 올라왔는데, 두 할매의 등장은 그 서막에서부터 워낙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머하고 자빠졌노? 개새끼야! 저리 안 가나? 지금 <뉴시스>에서 주말에는 공사를 잠정 중단한다고 보도됐는데 여서 왜 숨어 있노? 또 공사할라카나? 앞에서 말한 것 뒤에서 또 뒤집을라카나? 똥물 한 번 무볼래? 엉? 확 뿌리삐까?" 

나에게 떡을 주던 할매까지 가세해 세 분이 번갈아 외치는 고함에 한국전력 직원들과 공사 업체 직원들은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다. 참, 배운 지식은 통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삶에서 체득한 지혜나 대처법이 그래도 매섭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핵 발전만이 답인가

127번 자리를 지키는 평밭 마을과 위양리 내 특히 진싯골 마을 주민들은 한국전력 직원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도 강성으로 소문나 있었다. 할매들은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주민들 중 가장 얼굴이 밝기도 했다. 그게 나로서는 신기하기도 했다. 알아본 바로는 위양리 주민들이 한국전력으로부터 받은 수모가 상대적으로 컸던 데다가 진싯골은 진 씨들의 집성촌일 때부터 누대로 이어져 온 공동체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도 쉽게 말하곤 하는 보수적인 마을 문화가 어떻게 다른 면을 품고 있는지 숙고해야 할 문제라는 개인적인 판단이 들었다.

한국전력 직원들이 멀리 쫓겨난 후 천안에서 왔다는 젊은 여성 셋, 그리고 울산에서 왔다는 여성 학습지 노동자 넷이랑 함께 트럭 짐칸에 타고 평밭 마을 아래로 내려왔다. 127번 자리는 우리 대신 초록농활대 이십 명 가까이가 할매들과 함께 밤을 날 것 같다고 하며 찾아왔다. 88번과 89번 자리가 있는 바드리 마을은 다음날 가기로 하고 상동면 여수 마을로 출발했다. 청도 쪽에서 오는 밀양강 지류를 타고 가다 골짝 쪽으로 길을 꺾었다.

127번 자리가 있던 평밭 마을과 그 아래의 위양리를 기준으로 하면 화악산 너머에 있는 마을이다. 희망버스의 힘으로 공사가 주말에는 중단되어 농성은 잠시 접었다고 해서 여수 마을을 지나 화악산 높은 곳까지 올라가 보았다. 지나면서도 느꼈지만 산에 올라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참으로 아름답고 평온한 마을이었다. 그런데 여수 마을도 송전탑과 송전탑 사이에 끼어 76만5000 볼트가 지나가는 송전선을 머리에 이고 살 위험에 처해 있는 곳이었다.

산에는 찔레꽃이 한창이었다. 어느 생명체가 내는지 처음 듣는 소리가 수풀 속에서 두런거렸고, 맵시가 뛰어난 장끼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밀양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그런 삶 터를 그만 좀 괴롭히라는 단말마를 여기저기서 외치고 있었다. 주민들은 나 같은 외지인이 생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말은 주민들이 많이 배운 식자층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누구보다도 이번 송전탑 건설이 얼마나 관료적이고 어이없는 공사인지 상당히 논리적으로 지적했고, 신고리 핵 발전소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도 설득력 있게 내게 설명해 주었다. 주민들의 지적 수준이 높다는 것은 이처럼 삶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충분히 체득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그렇다. 도리어 한국전력 직원들의 논리는 앞뒤가 그럴듯해 보이나 기계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는 착한(?) 직원도 물론 있긴 했지만 대체로 그들은 무기력해 보였다. 한다는 말들이 정해진 문법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생동감 있는 쪽은 오히려 피해자인 주민들이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왜 한국전력은 보다 나은 대안에 대해서 아무 고민을 하지 않는가?' 88번 자리서 만난 한국전력 직원에게 나도 이렇게 말했다. "왜 핵 발전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것은 상상해 보셨습니까?" 자신들 같은 기술자들의 한계를 그는 솔직히 인정했다.

밀양 주민들은 어쩌면 그것을 한국전력과 국가 권력에 요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의 현실적 외형으로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해 거기서 도출된 권고안을 서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한국전력도 그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만큼은 공사를 멈춰달라는 것이다.

"우리 공부 마이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주민들의 눈빛은 단단했다. 공사를 하면 싸움이 벌어질 텐데 싸우면서 대화하자는 게 말이 되는 것이냐는 물음 앞에, 한국전력은 공사는 공사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것 같다. 오는 29일에 주민과 한국전력 측이 이 문제를 갖고 만나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밀양은 한국전력의 공사 강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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