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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현실, 한국 문학은 '어떤' 미래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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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현실, 한국 문학은 '어떤' 미래를 말하는가?

[프레시안 books] 염무웅의 <문학과 시대 현실>

염무웅의 평론집인 <문학과 시대 현실>(창비 펴냄)은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1995년)와 <모래 위의 시간>(2002년)에 이어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섬세하고 예리하게 성찰하고 있는 비평서이다.

근대 문학의 출발점에서 최근의 문학 현장까지 폭넓은 작품들을 아우르며 민족 문학과 리얼리즘, 민중성의 문제를 다각도로 논해왔던 저자는 이번 비평집에서도 날카롭고 예민한 현재적 문제의식을 통해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성찰하고 있다. 특히 문학사 연구와 문학 현장 비평의 영역이 별개의 것인 양 진행되는 최근 문학 연구의 흐름을 상기할 때 이 책이 갖는 입체적인 의미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염무웅의 비평이 보여준 리얼리즘적인 비평 시각과 민족 문학, 민중의 개념에 대한 섬세한 탐사는 이번 비평집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저자는 20세기의 역사에 국한해서 살펴볼 때 '민족 문학'이 갖는 개념적 유효력을 환기하면서도, 현재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 과정을 주시할 것을 강조한다.

▲ <문학과 시대 현실>(염무웅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저자는 현재의 관점에서 "적어도 해방적 삶을 지향하는 운동의 가장 적절한 이념적 지표를 민족 개념 안에서 구하기는 어려워졌"음을 토로한다. 저자가 시도하는 것은 근대 문학사의 창조적 해석을 통하여 민족 문학론이 예시했던 가능성과 한계를 점검하는 동시에, 국가적, 민족적 귀속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가능성으로서의 민중 개념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경계를 넘는 연대와 보편주의의 문제가 활발하게 토론되는 최근의 비평적 주제들과 창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 및 해방기의 문인들의 작업을 통하여 민족 문학론의 전사를 조명하고 성찰하는 의식적인 시도들은 저서의 곳곳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임화와 김광섭, 정지용 등의 작품과 비평을 통해 저자가 끊임없이 되살리는 것은 현재 우리 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여기에는 서구 문학 이식의 망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근대 문학의 탄생 과정을 입체적으로 독해함으로써 현재의 문학을 역동적으로 사유하려는 비평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임화 비평에서 "외국 문학과 자기 문화 간의 상호관계를 입체적으로 파악한 변증법적 사고"를 강조하면서 그가 지적한 "축적된 자기 문화의 유산"의 실질적 내용을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독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부분은 거듭 주목할 지점이다.

"문화 이식의 과정 자체 안에 이미 이식 문화를 해체하려는" 주체적 움직임이 내재해 있다는 맥락에서, 저자는 외국 문학과 고유 문화 간의 치열한 상호작용을 민족 문학의 역사적 전유(專有, appropriation)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문학사를 바라보는 이러한 창조적 시각의 강조는, 작품의 역동적 움직임을 배제한 자료사 수집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학계의 트렌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결국 비평의 정점은 작품과 대결하여 작품에 새겨진 현실의 복합성을 추출하는 동시에 그것으로 귀환하지 않는 균열들을 발견하는 지점에서 출현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을 읽는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들은 작가의 전기적 자료와 개인사, 그리고 시대 현실을 통과하여 남는 작품의 균열들, 모호하고 복합적인 잉여의 지점들을 추출해나가는 지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김기진이 꿈꾸었던 예술성과 운동성의 결합이 친일의 행로 속에서 유실되는 지점, 해방 후 임화가 제출했던 민주주의 민족문학론의 테제, 김광섭이 꿈꾸었던 협소하고 불안정한 민족주의의 길, 정지용의 시에서 부정할 수 없는 서구 문학의 침투 관계를 복합적인 서사의 문맥에서 엮어내는 생생한 서술 과정은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이 과정은 실증과 해석이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있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문학 비평의 뛰어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를 넘어 당대의 문학으로 돌아올 때, 염무웅의 비평에서 여전한 애정과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동시대를 살면서 현실에 대응해온 동료와 선후배 작가들이다. 고은, 신경림, 조태일 등 서정시의 현실적 응전력을 살리는 리얼리즘 시인들에 대한 비평가의 오랜 애정은 이번 비평집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1970~80년대 사회 현실과의 혹독한 싸움을 통해 단련된 이들이 이후 심오한 정신성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섬세하고 따뜻한 시의 독법은 시를 살아있는 대상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상대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현실과 길항하는 서정적인 민중시 계보에 대한 애정적인 독법에 비교해서, 언어의 실험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시들에 대한 조명은 잘 보이지 않는 아쉬움도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시인에게 있어 진정한 자아의 인식은 그의 현실 인식의 철저성을 통해 드러난다"라는 믿음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영역이기도 하다. 저자 자신은 짤막하게나마 언어유희로 과대 포장된 일부 난해시에 대한 불만과 비판도 피력하였지만, 모더니즘 계보에 속하는 시인들의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유보되어 있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유사한 맥락에서 2000년대 들어 쓰인 대부분의 평문이 문학사 해석과 시 비평에 기울어져 있는 것도 아쉽다. 이 책에서는 4부에 수록되어 있는 1990년대 중반 소설 문학의 동향에 대한 비평문들이 현장 비평으로서는 가장 생생한 육성을 드러내고 있는 셈인데 신경숙, 윤대녕, 김소진, 성석제, 최인석 등의 작가들과 호흡하며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낸 부분들이 이 시기에 국한되어 있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이 현장 비평문들에서 새삼 확인되는 염무웅 비평의 매력은 현실지향적인 문학관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에 수렴되지 않는 낯설고 매혹적인 텍스트들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해석의 욕구를 드러내는데 있을 것이다. 근대 문학사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비평들이 고답적인 해석에 갇히지 않고 생동성을 드러내는 것도 이러한 비평적 호기심과 해석 욕망에서 기인한다.

밀도 높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새삼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오늘의 문학'을 어떻게 읽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치열하고 예민한 자의식이다. "민족 담론의 퇴조와 신자유주의의 진군"과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글로벌 현실의 속에서도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문학 작품을 그것이 태어난 시대적 현실의 직접적인 소산으로 읽는 일"이 갖고 있는 중요한 비평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미래에 대한 회의와 비관이 비평적 전제처럼 깔려 있는 요즘의 비평 담론들을 상기할 때 염무웅의 비평이 보여주는 문제의식은 근원적인 지점에서 문학 비평의 존재 의미를 사유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염무웅의 비평이 호소하는 문학의 공공성과 공동체 정신은 오늘의 우리 문학을 성찰할 때 도식적인 전망이 아니라 잠재성을 지닌 하나의 비전과 구상으로서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고은의 시를 거론하면서 소박한 공동체 정신이 갖고 있는 문학적 비유의 의미를 진솔하게 해석한 한 대목이 의미심장하게 와닿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물론 이 두 시의 바탕에 있는 것이 소박한 공동체주의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런 수준의 공동체 정신은 현실을 끌고 나가는 힘으로 실재한다기보다 망가진 현재를 위한 '오래된 미래'의 비전으로서만 우리에게 빛을 발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폐기의 대상이 아니라 대안의 구상을 위한 불가결의 초석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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