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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큰' 거, 싼 거 좋아하시죠? 네~계속 드세요!"

[프레시안 books] 찰스 피시먼의 <월마트 이펙트>

부친은 에누리의 달인이다. 그에게 소비는 전투다. 상품에 붙어있는 가격은 장식이다. 탐색전은 짧다. 처음부터 숫자를 반 토막 낸다. 경우에 따라 고성이 오간다. 이것저것 안 해본 장사가 없었던 당신은 같은 상공인의 영업 메커니즘에 익숙하다. 절반 가까이 값을 깎고도 아쉬워하는 당신이나 그 가격에도 마진을 남기는 주인장. 모두 기자에겐 경외의 대상이다.

정반대로 주인이 달라는 대로 주는 기자의 소심함에 '전투'는 무리다. 고작해야 인터넷 최저가를 뒤적이는 게 전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에누리의 시대는 점점 사라져 간다. 전통 상가 한 편의 떠들썩함은 대형 할인점의 할인 경쟁으로 대체된다. 경쟁에 의한 최저가라니. 뭔가 합리적이고 믿음직하다. 시장 경제에 대한 순박한 믿음.

사실, 한국의 대형 할인점은 그리 싸지 않다. 명절이 다가오면 으레 나오는 전통 시장과 대형 할인점 물가 비교 기사를 떠올려 보라. 몇몇 기획 상품과 생필품 할인 행사를 보면 혹할 수도 있지만, 나머지 수만 가지 상품을 천천히 둘러보면 동네 구멍가게와 별반 차이가 없다. 한 번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편의성이 오히려 고객을 끄는 요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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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마트 이펙트>(찰스 피시먼 지음, 이미정 옮김, 이상 펴냄). ⓒ이상
아이러니컬하게도 '상시 최저가'를 표방하며 세계 유통업계를 장악한 미국의 월마트가 국내토종 할인점에 밀려 손을 털고 나간 게 지난 2006년이다. 이즈음 미국에서는 <워싱턴 포스트>를 거쳐 경제 전문 잡지 <패스트 컴퍼니>의 수석기자로 활동하는 찰스 피시먼의 <월마트 이펙트>(이미정 옮김, 이상 펴냄)가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뒤늦게 국내에 소개된 이 책의 부제 '시장 경제를 파괴하는 거대 자본의 습격'이란 말을 단순이 받아들이지 말자. 국내 대형 할인점이 '최저가'의 허상을 입고 유통 시장을 장악했다면, 월마트가 표방한 '상시 최저가'는 말 그대로 '리얼'이었다. 소비자가 갈구하는 최저가에 대한 욕망을 월마트는 실제로 구현해냈다.

하지만 이들이 '이상'에 도달했을 때 보았던 광경은 낙원이 아니었다. 줄어든 비용은 누군가에게 전가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게 꼭 '당신'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

모두에게 '독'이 된 월마트의 '최저가'

최근 '통큰 치킨' 파동 등을 겪으며 국내에서 유통업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하지만 비난만 들끓는 건 아니다. 구제역이 창궐한 와중에 미국산 LA갈비 할인 행사를 한 롯데마트를 꼬집는 기사를 쓰자 한 독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에 한우는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데, 쇠고기 싸게 판다는 게 뭐가 어때서요?"

이렇게 '저가'를 지지하는 소비자는 유통업체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다. 장기적으로 구멍가게와 같은 영세 자영업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유통 선진화 논리다.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 선진 유통 기법을 갖춘 업체들이 경쟁을 벌여 더욱 낮아질 '최저가'를 향유하는 세상은 행복한 곳이 될까? 알고 싶다면, 월마트를 보자.

월마트는 싸다. 소비자의 체감이 아니다. 월마트에 납품하는 기업의 공급가를 주무르고 미국 전체 물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싸다. 규모의 힘이다. '상시 최저가'의 기치를 내걸고 1962년 아칸소, 미주리 주에 들어선 월마트는 21세기에 세계 1위 소매점으로 성장했다. 2005년 한해 월마트를 이용한 이는 72억 명. 전 인구가 이용하고도 5억 명이 더 들렀다.

경제학 교과서는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요자는 소비자가 아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건 공급자와 유통업체다. 처음엔 동등한 관계일지 몰라도, 경쟁자가 하나 둘 사라지면서 거대해진 할인점은 스스로 가격을 결정한다. 균형 가격이 아니라 유통업체 제시 가격에 맞춰 공급업체가 생산을 관리한다.

월마트의 방식이 그런 식이었다. 공급업체로서는 최대 고객인 월마트의 가격 정책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베이컨 접시를 만드는 1인 기업이 월마트 덕에 성공했다는 미담도 있지만 무리한 가격에 맞추려다 기업 가치를 상실한 곳이 더 '훨씬' 더 많다. 이 책에는 그런 예가 수두룩하다.

자전거 생산업체 '허피'는 월마트에 공급하는 저가 자전거 물량을 맞추기 위해 경쟁사에 사업을 넘겨야 했다. 청바지로 유명한 '리바이스'는 월마트에 저가 청바지를 공급하고자 독창성을 버렸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가격을 낮춰 많이 팔고도 수익이 나지 않아 사업을 접은 업체도 부지기수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월마트와의 거래량이 10%를 넘지 않는 기업의 이윤율은 평균 12.7%였고, 25%가 넘는 기업의 이윤율은 7.3%였다.

경쟁사보다 1센트라도 더 저렴하게 파는 월마트의 정책은 정작 자기 자신에게도 부작용을 낳았다. 저가를 추구할수록 이윤율은 떨어진다. 이 기업은 비용을 맞추고자 철저하게 조직을 쥐어짰다. 당연히 수많은 부작용이 생겼다. 2000년 수당도 없이 시간외 근무를 하던 직원 6만9000명이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2003년에는 연방정부가 월마트에서 야간 청소를 하던 불법 체류자 245명을 적발했다. 이 기업은 2004년 캐다나 퀘벡 점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자 비용 상승을 우려해 매장을 폐쇄했다.

'월마트 이펙트', 세상을 후려치다

이랜드 비정규직 파업, 해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는 유통업체의 납품업체 쥐어짜기 실상을 겪어온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가 크게 흥미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수의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월마트의 최저가를 향한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월마트의 행보는 소비자, 더 나아가 지역 경제에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책에서 인용한 복수의 보고서를 보면, 월마트와 경쟁한 슈퍼마켓은 매출이 약 17% 감소했다. 식료품점, 의류점 등의 타격은 더욱 심하다. 경쟁사와 공급업체의 파산은 실직으로 이어졌다. 1997년에서 2004년 사이 소매업 일자리는 67만 개가 늘었고 이 중 월마트에서만 48만 개가 생겨났다. 같은 기간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310만 개 줄었다. 값싼 상품을 만들기 위해 미국 내 노동자를 해고하고 중국 등 노임이 싼 지역으로 공장을 옮겼기 때문이다. 1989년부터 1999년 사이 월마트 매장이 들어선 카운티의 빈곤율이 더 높았다. 다른 변수를 제외한 계산이다.

'월마트 효과'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도 폐해를 낳았다. 2000년 들어 미국의 연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월마트는 연어 소비를 이끌며 연어 1파운드를 4달러 84센트에 팔았다. 월마트 연어 전량을 납품하는 칠레는 십 수 년 전까지 연어 서식지가 아니었다. 지금은 양식 사업이 칠레 남부 경제를 장악했다. 양식장에서 배출되는 연어 먹이와 배설물, 가공 과정에서 버려지는 내장이 칠레 인근 해저에 쏟아지고 있다. 이 오염을 관리하는 몫은 칠레 정부와 국민이 부담한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월마트에서 파는 5달러74센트짜리 티셔츠는 방글라데시에서 시급 13센트를 받고 일하는 미성년자 소녀가 만든다. 작업량을 못 채우면 감독관이 소녀가 만들던 바지로 얼굴을 후려친다.

이외에도 책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사례들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더 싼 가격'의 맹목적인 추종은 결국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월마트를 만든 이들은 사무실 의자마저 납품업체 샘플로 대신할 정도로 엄격한 관리를 통해 '최저가'에 대한 진정성을 보인다. 하지만 '최저가'가 왜 옳은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아울러 최저가에 열광하는 소비자 역시 자신이 집어든 물건의 이력을 추적하면 그 안에는 시장 경제의 황폐함이 자리 잡고 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입고 있는, 인근 대형 할인점에서 산 1만9800원짜리 트레이닝 바지의 내력이 궁금해진다. 어디선가 '루시드 폴'의 노랫말이 들려오는 것 같다.

"난 사람이었네 공장 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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