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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대재앙…"대한민국 국민의 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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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대재앙…"대한민국 국민의 업보다!"

[안종주의 '위험사회'] 구제역, 막을 수 있었지만…

끝이 없는 구제역 확산을 보면서 어릴 적 일이 생각났다. 40여 년 전이다. 당시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옆집 형을 따라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 형은 어디서 구했는지 매 한 마리를 집에서 키웠다. 매에게 줄 먹이가 필요해 개구리 잡이를 나선 것이다.

이리저리 뛰는 개구리를 잡기가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몇 번 실패를 하고 난 뒤 요령을 터득했다. 개구리는 앞으로 뛰었다. 옆으로나 45도 앞으로는 뛰지 못했다. 방향을 틀어보아야 고작 정면에서 15도 정도였다. 개구리가 뛰는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뒤에는 짧은 시간에 비교적 많은 개구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 형은 살아 있는 개구리를 가두어 두었다가 하루에 한두 차례씩 새장 안에 한 마리씩 넣어주었다. 새장 안에 들어간 개구리는 공포에 질려서인지 꼼짝을 하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매는 매서운 눈알을 굴리며 개구리와 허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개구리가 갑자기 펄쩍 뛰었다. 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매는 이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뛰어오르는 놈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챘다. 그리고 눈부터 공격했다. 산 개구리를 줄 때면 이 같은 상황이 똑같이 벌어졌다. 비록 어렸지만 이 때 깨달은 것은 개구리가 어디로 뛸지를 매는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소·돼지가 200만 마리를 넘기면서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이처럼 대재앙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인가' 하고 정부 당국을 질타한다.

구제역이 국가 재앙 수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은 타이완이나 영국 사례에서 이미 교훈을 얻은 바 있다. 이들 나라의 구제역 대재앙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구제역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구제역이 어떻게 확산되는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구제역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때 써 먹으라고 나온 것 같다.

이 때문에 미국 소와 쇠고기를 나중에 많이 들여오려고 일부러 확산을 막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음모론은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제약 업체들이 에이즈 약을 팔아먹기 위해 에이즈의 원인이 바이러스가 아닌데도 HIV(에이즈 바이러스)를 원인으로 지목했다는 음모론을 펼친 사례와 충치 예방을 위한 수돗물 불소 농도 조절 사업(수돗물 불소화 사업)도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재활용하려는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일부 근본생태주의자들의 주장이 있었다. 황당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이런 내용들을 담은 책까지 나와 공공연히 팔렸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우리는 구제역 확산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구제역 확산을 막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막지 못했다. 그래서 구제역 확산을 막았던 김대중 대통령 시절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실이 좋지 않으면 과거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과 함께.

ⓒ한국동물보호연합

가축 전염병이든, 사람 전염병이든, 인수 공통 전염병이든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세균 등 병원체는 잘 퍼지는 확산 경로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이 경로를 차단한다. 일정 기간 이동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전염병에 걸린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축에게만 발생하는 전염병이라고 해서 가축의 이동만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차량 등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죄다 통행을 차단하거나 완전 소독한 뒤 이동을 허용해야 한다.

살처분과 이동 통제는 전염병의 초기에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전국에 퍼지거나 손을 쓰기 어려울 만큼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다면 살처분과 이동 통제를 효과적으로 하기 어렵다. 온힘을 다 쏟는다 해도 효과는 반감한다. 따라서 초기에 전염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 이들 요소에 대해 가혹할 만큼 엄격한 통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라바시는 그의 책 <링크>(동아시아 펴냄)에서 전염병의 확산에 허브 구실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매우 잘 생기고 건장한 게이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고 인기가 좋아 하루에도 여러 명의 게이와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콘돔 따위를 사용하지 않고 하는 성행위)를 맺는다면 그는 많은 사람에게 에이즈를 퍼뜨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실례로 매력적인 한 항공기 게이 승무원을 들면서 수백 명의 다른 게이와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를 맺은 그를 에이즈 전파의 허브로 규정했다.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란 새로운 전염병이 크게 유행해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그 당시 사스 전염병 확산에 허브 구실을 하는 사람을 슈퍼 스프레더(super spreader, 특급 전파자)라고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마당발이거나 하루에도 수백 명씩 환자를 상대하는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의료인이 사스 바이러스에 감염됐거나 사스 환자라면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다.

구제역의 경우 바이러스가 공기(바람)를 통해 멀리 이동해 전파될 수 있지만 공기 자체를 차단할 수는 없으므로 초기 확산에 허브 구실을 할 수 있는 매개체를 찾아내 철저하게 통제해야 한다. 구제역의 경우 구제역 의심 신고를 받고 현장을 간 수의사나 공무원, 살처분에 참여한 작업자, 감염에서 발병까지의 기간 동안 드나들었던 가축 중개 상인이나 사료 판매 업자, 분뇨 처리 업자 등과 이들이 타고 다니는 차량이 구제역 확산에 한 몫을 할 수 있는 슈퍼 전파자 노릇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200만 마리 가축의 살처분으로 이어질 정도의 대재앙 수준으로 구제역이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된 것은 이러한 슈퍼 전파자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사람이나 차량에 구제역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 경우 이를 알아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들은 자신이 전파시키는 줄도 모른 채 죽음의 바이러스를 퍼트릴 수 있다.

가축은 아니지만 소나무에서도 우리는 이미 대재앙을 겪은 바 있다. 이 재앙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흰솔수염하늘소란 곤충이 병원체를 옮기는 소나무 재선충은 1988년 부산에서 처음 발생해 전국으로 퍼져나가 산림 당국을 곤혹케 했다. 전국 곳곳의 임야와 산에 소나무 무덤이 뭉텅이로 생겼다. 애국가의 가사에도 등장할 정도로 한국인이 아끼는 소나무에 엄청난 피해를 준 이 치명적인 질환은 전국을 휩쓸고 이제는 제주도에서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도 소나무 재선충에 시달렸다. 세계자연유산인 황산 인근 70㎞까지 소나무 재선충이 번지자 중국은 극약 처방으로 황산 반경 4㎞ 안의 모든 소나무를 없앤 바 있다. 고육지책이요 초토화 작전이었다. 그리고 황산을 잘 지켜냈다. 아무리 막아내기 힘든 전염병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것이 통하지 않았다. 대구·경북 지역 일간지인 <매일신문>을 비롯한 여러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정부 당국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 대재앙의 진원지로 알려진 경상북도 안동에서는 공식 발생일보다 1주일 앞선 지난해 11월 23일 축산 농가에서 돼지가 구제역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신고를 4차례나 했으나 경북 가축위생연구소는 죄다 음성으로 판정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신고 건은 모두 양성으로 확진 판정됐다.

그 사이 구제역 바이러스로 오염된 이곳을 거쳐 간 분뇨 처리 업자와 도축 차량은 경북의 다른 지역은 물론이고 경기도, 강원도 등 전국 곳곳을 활개치고 다니면서 죽음의 씨앗을 퍼뜨린 것으로 보인다. 첫 의심 신고 때 그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고 곧바로 중국의 황산 소나무 구출 작전처럼 했더라면 적어도 대재앙은 면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을 보노라면 이번 재앙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업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 곳곳에서 가축들이 비명과 함께 피를 흘리며 생매장을 당하고 이를 지켜보는 축산 농민의 가슴에 피멍이 시퍼렇게 들 때 대통령은 한가로이 측근들과 뮤지컬을 감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그랬다.

구제역과 같은 가축 전염병과 맞닥뜨렸을 때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방역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영국과 타이완의 경험에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과 함께 고통을 느끼고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의 심혈을 기울여야 할 구제역 전쟁의 와중에 대통령이 한가롭게 뮤지컬 감상이라니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소와 돼지가 고통스런 세상에서는 사람도 고통스럽다. 위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픈 것은 비단 사람에 국한한 소망이 아닐 것이다. 이번 구제역 대재앙은 국민은 모름지기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소·돼지도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사실과 함께. 지도자는 국민이 선택한다. 가축 구제역 대재앙이 대한민국 국민의 업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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