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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났다, 강정 마을에 해군기지를 짓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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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났다, 강정 마을에 해군기지를 짓는대"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36> 강정 맹꽁이 평화엽서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 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 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

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필자 주

강정 맹꽁이 평화엽서

안녕, 얘들아. 나는 우툴두툴 오동통한 맹꽁이 꽁이야. 맹꽁!

맹꽁이들이 오글오글 모인 제주 강정 마을에 살고 있지. 강정이 어딘지 아니?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시끄러운지 아니? 안다면 꽁이가 보내는 평화엽서는 안 읽어도 돼.

혹시 강정에서 왜 평화를 지켜야만 하는지 모른다면, 그렇다면 꼭 읽어 줘. 답장도 필요 없어. 그저 읽고 가슴에 새기기만 해 줘. 엽서에 착한 맹꽁이표 우표를 찰싹 붙여줄게.

알고 있니?

강정은 '제주 일강정'이라 불릴 만큼 더없이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을 지닌 곳이야. 환경보호종인 귀한 우리 맹꽁이들이 잔뜩 모여 살 수밖에 없지. 이건 내 생각이지만 이름만 멋지지 맹꽁이보단 조금 덜 귀하신, 붉은발말똥게도 강정 구럼비 바위에 아주 많이 모여 살아. 바닷속엔 연산호도 무리지어 일렁이고, 바위틈 층층고랭이도 눈비아기풀도 하르비고장도 쑥쑥 자라지.

강정에서는 하루하루가 참 평화로웠단다. 나는 잠투정도 안 하고 땅속 방에서 쿨쿨 잘 잤어. 착한 맹꽁이답게 밤이 되면 발딱 일어나곤 했지. 바위 틈틈이 오르락내리락 기어 다니다가 심심하면 철썩철썩 파도랑 맞붙어 맹꽁맹꽁 노래자랑도 했어. 달 안 뜨는 밤에는 구럼비 바위 위에서 달님 나오시라고 씰룩쌜룩 맹꽁이 춤도 췄어.

환한 달밤에는 마을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둘러앉아 노래하고 이야기했어. 구럼비 너럭바위는 마치 잔칫집 마당 같았지.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뛰어놀면 내 마음도 들떠서 들썩들썩 같이 놀고 싶지 뭐야. '같이 놀자 맹꽁맹꽁' 소리도 쳤어. 그래도 놀아주지 않으면 바위 귀퉁이에 몰래 뽀직뽀직 똥도 쌌어. 그렇게 아주 느긋하고 기분 좋게 살고 있었지. 그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야.

ⓒ노순택

어느 이른 봄날, 태어나 처음으로 낮에 눈을 뜨고 말았어.

쾅쾅!

세상을 뒤집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가 땅을 뒤흔드는 거야. 부들부들 떨면서 엉금엉금 땅 위로 기어 나왔지.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들리는 구럼비 쪽을 바라봤어. 앗! 사람들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괴물이 구럼비를 깨고 있는 거야.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 으으으, 저게 뭐야. 맹꽁맹꽁.

놀란 갈매기들이 떼 지어 펄럭펄럭 날아가며 소리쳤어.

"큰일 났다, 해군기지를 짓는대. 강정 마을에."

"굴착기에 정을 꽂아서는 사정없이 구럼비를 깨부수고 있어."

"저러다 구럼비가 죽을지도 몰라. 끼룩끼룩."

뭐, 구럼비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힘이 쭉 빠진 채 구럼비를 향해 정신없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어. 그러다 하마터면 사람들 틈에 밟혀 죽을 뻔했지.

"아니, 세상이 뒤집어지려니까 대낮에 맹꽁이가 다 나왔네."

그때 누군가의 발에 채여서 그만 기절하고 말았지. 눈을 떴을 때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어. 구럼비 바위가 끙끙 앓고 있었어. 그 소리가 파도도 바람도 뒤덮어 버렸어. 너무 가슴 아팠어. 그대로 털썩 엎드려서는 엉엉엉 울고 말았어.

그 뒤로는 날이 갈수록 구럼비 바위로 가는 일이 줄었어. 아픈 구럼비 바위에 올라가 봐야 즐겁지가 않잖아. 게다가 바위 앞은 사람들이 다가가지 못하게 막아 버렸고……. 아이들 웃음소리도 마을사람들 발길도 사라진 바위는 정말 죽은 것처럼 싸늘하게 입을 꾹 다물고 있어. 나도 입 꾹 다문 채 뚱하니 웅크려 있게 되었지.

생각해 봐. 미 해군 기지가 들어서면 주변 나라에서는 제주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바짝 긴장하니까 늘 전쟁 위험이 도사릴 게 뻔하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은 사라질 게 뻔하고, 타고난 아름다운 환경은 점점 더 망가질 게 뻔하고, 무엇보다 긴긴 세월 이어온 평화가 사라질 게 뻔하지. 바로 그 때문에 저 많은 사람들이 쇠사슬을 몸에 칭칭 감고, 망루에 오르고, 피켓을 들고, 미사를 드리고, 먼 데로부터 강정에 내려와 소리 높여 외치고 있잖아. 강정을, 평화를 지키려고. 그런데도 거대한 권력은 강정 마을사람들과, 함께하러 전국 곳곳에서 달려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아예 듣지도 않고 있어.

내 딱 한 가지 소원은 구럼비 바위에 올라가 맹꽁이 춤을 추며 '야호 살았다! 강정에 해군기지가 안 들어선다!' 하고 꽥꽥 소리치는 거야. 맹꽁이 꽁이는 강정에서 앞으로 쭉 행복하게 살고 싶어.

얘들아, 죽어가는 요정을 믿어주고 이름을 불러주면 요정이 살아난다는 동화 알고 있지? 강정 마을은 동화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정말 소중한 현실이야.

"구럼비야, 강정아."

이름을 백번은 더 불러주고 평화가 지켜질 거라고 백번은 더 말해줘. 부디 강정에서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눈 또랑또랑 뜨고서 계속 지켜봐 줘. 엄마아빠와 함께 강정을 이야기해 줘. 응?

마음을 나누고 보태며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길 바랄게. 활활 불타는 숲에서 동물들이 달아날 때에, 조그마한 벌새가 불을 끄려고 부리에 물 한 방울씩 담아 나르는 것처럼 말이야. 전해질지도 모를 평화엽서를 내가 온 마음으로 맹꽁맹꽁 보내는 것처럼. 너희도 앞에 옆에 뒤에 친구에게 들려주고 알려주고 함께 소리쳐 줘. 제발.

강정을, 구럼비를, 평화를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말이야!

이미애

동화작가. 1987년 <조선일보>와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눈높이문학상, 새벗문학상, 삼성문학상 수상.
동화 <할머니의 레시피>(문구선 그림, 아이세움 펴냄), <나꼽살과 순악질 마녀의 착한 경제 팍팍>(유남영 그림, 레디앙 펴냄), <부엉이 곳간에 우리말 잔치 열렸네>(김고은 그림, 손세모돌 감수, 웅진주니어 펴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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