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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에 환장하는 저 '하찮은 인간'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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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에 환장하는 저 '하찮은 인간'을 어찌할꼬?

[2010 올해의 책] 존 그레이의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프레시안 books' 송년호(21호)는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 서평위원이 의견을 모아서 선정한 두 권의 '올해의 책'(<삼성을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외에도 8명의 서평위원이 나름대로 선정한 '나의 올해의 책'을 별도로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존 그레이의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 이 책의 원제는 <Straw Dogs>이고, 부제는 '인간과 다른 동물들에 대한 사유들'이다. 저자가 이 책에 원제로 삼은 "Straw Dogs"는 노자의 <도덕경> 제5장에 나오는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그저) 추구(芻狗)와 같이 여긴다"는 문장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Straw Dogs>가 원제인 작품은 이 책 말고도 샘 페킨파의 동명 영화도 있었다. 젊은 더스틴 호프만과 수전 조지가 나왔다. 고등학교 시절 이 영화를 본 인상이 하도 강렬해서 제목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속어로서 '겁쟁이들', '쪼다' 그런 뜻이 담겨 있었다. 쪼다는 주인공인 더스틴 호프만이 아니라 그의 아내를 능욕했던 시골 양아치들이었던 것으로 당시 나는 해석했다.

그러나 이 책이 취한 'Straw Dogs'는 노자의 <도덕경> 제5장을 직역한 '지푸라기 개(芻狗)'였다. 무심한 천지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돌멩이나 나뭇가지나 그저 '제사를 마치고 태워버리는 지푸라기 개' 정도로 여긴다는 노자의 생각을 저자가 전폭적으로 동감해 택한 것이다. 그런데 출판사가 대담하게도 '하찮은 인간'으로 개명했다. 책 내용이 하찮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인간들에게 던지는 불편하지만 매우 단호한 단정으로 점철되어 있기에 이 경우에는 성공적인 개명이라 봐줘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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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 ⓒ이후
책은 인간이 죽자 살자 내세우는 여러 테제들, 이를테면 진보니 자유 의지니, 도덕성이니 역사의 법칙이니, 자아 개념이니 이성이니 따위에 기대어 스스로 매우 특권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들이 기실은 매우 반생명적인 것들이라고 통렬하게 밟아버리는 것으로 전개된다. 그것들의 허무맹랑함과 득의에 차 뽐내고 있는 인간의 눈부신 성취들의 보잘것없음과 장차 실현시키려는 다양한 꿈들마저도 기실은 인간종 우월주의에 바탕하고 있는 어리석고 헛된 노력들이라는 것이 저자의 인간관이다. 서양의 경우이지만, 오랜 시간 죽어라 신에 매달렸다가, 본디 실체가 없었기에 따로 사망 선고까지 내릴 필요도 없었지만, 신의 사망선고를 거쳐 휴머니즘에 열광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가, 이제는 '과학 만능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는 인간종의 맹렬한 노력들이 인간 스스로에게나 이 행성의 다른 생명 공동체들에게 얼마나 심대한 해학을 끼쳤는가, 그 파멸적인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 인간은 도대체 한번이라도 제대로 생각해보거나 반성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바로 이 가벼운 책의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들이다.

이 도발적인 질문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양보할 수 없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게는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돼먹지 못한 주장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저자가 강조하는 사상은 '가이아 사상'이다. 그렇지만 가이아 사상을 들먹이며 "지구를 살리겠다"고 외쳐대는 패들에게도 저자는 가소롭다는 냉소를 표한다. 그 대의마저도 녹색으로 덧칠한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묻는다. 언제 세상이 인간더러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애걸한 적이 있었느냐고? 아니, 세상은 도대체 구원될 필요가 있을까? 그러니 어쩌자는 말이냐고?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그만 설쳐대고, 그저 다른 동물들처럼 필멸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비극적이지만 삶의 우연한 지속성에 감사하고, 잠시라 할지라도 겸손하게 삶을 누려라,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은 에밀 시오랑의 다소 자학적이고 귀족적인 허무주의와도 또 다르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노자를 제대로 이해한 서양인을 만나는 즐거움 같은 것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 독서 시장에서는 이 책이 하찮게 취급받은 것 같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비극은 우리 사회가 인간의 실상에 대한 무시할 수 없는 충언을 담고 있는 이 책의 주제를 이 세상의 어느 집단보다 더 난폭하게 묵살했다는 점이다. 전에 없던 끔찍한 자연 파괴가 그 어느 해보다 격렬하게 감행되던 해에 누구에게랄 것 없이 씨알이 안 '멕'히는 책이 조용히 출간되었으니,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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