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외 탈세'란 조세 피난처에 유령회사를 만든 후 마치 그 유령회사가 돈을 번 것처럼 조작해 국내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 탈세 행태를 말합니다. 즉 국내에 거주하는 개인이나 기업이 국내외에서 돈을 벌어들였으면 국내에서 세금을 내는 것이 원칙인데, 탈세범들은 국내 세금을 피하려고 세금이 없거나 세금이 적은 조세 피난처에 유령회사를 만들고 그 유령회사가 돈을 번 것처럼 조작해 조세를 회피하는 겁니다. '조세 피난처'는 법인세나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아주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대신, 계좌 유지 수수료나 법인설립 수수료를 받는 국가나 지역을 말하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80곳 이상이 있고, 이곳에 있는 유령회사만 200만 개가 넘습니다.
2. 전 세계의 부자들이 조세 피난처에 숨겨둔 자산규모는 어느 정도 됩니까?
⇨ 지난해 영국의 조세 피난처 반대운동 단체인 '조세정의 네트워크(taxjustice.net)'는 보고서를 통해 1970년대부터 2010년 말까지 조세 피난처로 흘러들어 간 금융자산 누적액이 최소 21조 달러, 최대 32조 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했습니다. 21조 달러는 미국 GDP(14.5조 달러, 2010년 기준)의 1.4배에 달하고, 우리나라 GDP 1조 달러의 21배에 달합니다.
3. 지난해 조세정의 네트워크는 한국의 부자들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자산을 조세 피난처에 숨겨두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지요?
⇨ 지난해 이 단체는 한국의 부자들이 7790억 달러, 원화로 888조 원에 달하는 거액을 조세 피난처에 숨겨두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것은 중국(1조1890억 달러)과 러시아(7980억달러)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규모입니다.
4. 역외 탈세 수법 중에 가장 널리 활용되는 것이 '이전가격 조작'이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 '이전 가격(transfer price, 移轉價格)'은 다른 표현으로 '내부가격'이라고도 하는데요. 이것은 대기업 그룹 내의 기업 간에 재화와 용역을 거래할 때 적용되는 가격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전 가격 조작'이란 대기업 그룹이 여러 나라에 관련 회사를 설립하고, 이들 간의 내부 거래 가격을 조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국내 본사와 해외 자회사가 거래할 때 본사가 해외 자회사에 재화와 용역을 정상가보다 싸게 팔고 비싸게 사서 국내소득을 해외로 빼돌리는 것입니다. 이때 해외 자회사가 세율이 낮은 국가에 소재해 있다면 엄청나게 많은 세금을 포탈할 수 있습니다.
▲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세청 앞에서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와 민변 등 단체 회원들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기업인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강력히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5. 애플, 구글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역외탈세 의혹을 받고 있다고요?
⇨ <연합뉴스>가 지난 22일 CNN머니 등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칼 레빈(민주당)과 존 매케인(공화당) 등 일부 상원의원들은 21일(현지시각) 상원 국토안보·공공행정위원회 청문회에서 애플이 역외탈세 형식으로 지난해 90억 달러(10조 원 가량)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의원들은 애플이 해외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방식으로 미국에서 얻은 수익에 대한 세금납부를 회피했다고 지적했는데요. 특히 아일랜드에서는 애플이 2퍼센트 이하의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글도 영국에서 세금 회피 논란에 휩싸여 있는데요. 이 거대기업은 재작년 영국에서 32억 파운드(약 5조4000억 원)의 돈을 벌었으나 법인세로 600만 파운드(약 100억 원)만 냈습니다. 영국 정치권은 구글이 아일랜드에 있는 유럽 본부로 매출을 돌리는 방법을 이용해 세금을 회피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6. 아마존과 스타벅스도 역외탈세 의혹을 받고 있지요?
⇨ 아마존도 지난해 영국에서 43억 파운드(약 7조2400억 원) 매출을 올리고도 법인세는 매출의 0.1퍼센트만 낸 사실이 드러나 국민들의 원성을 샀는데요. 특히 이 기업은 같은 해 영국에서 법인세로 240만 파운드(약 40억 원)를 내고 일자리 창출 명목으로 이보다 많은 250만 파운드의 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도덕성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가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으로 홍역을 치렀는데요. 이 거대기업이 영국에 진출한 1998년부터 총 30억 파운드(약 5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법인세는 860만 파운드(145억 원)만 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결국, 스타벅스는 2013∼2014년 1000만 파운드의 세금을 더 내기로 했습니다.
7. 미국의 일부 상원의원들은 아일랜드를 조세 피난처로 지목하기도 했는데요. 학계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과거에 37개국 정도를 조세 피난처로 지정한 바 있는데요. OECD 기준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조세 피난처와는 무관합니다. 그러나 상당수 학자는 아일랜드를 조세 피난처 중 하나로 보고 있는데요. 그것은 이 나라가 학자들이 분류한 조세 피난처 네 가지 유형 중 하나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조세 피난처 네 가지 유형을 소개하자면 첫 번째 유형은 소득세, 법인세 등 직접세가 전혀 없는 지역이고, 두 번째 유형은 소득과 자본에 대해 저세율로 과세하는 지역이며, 세 번째 유형은 해외에서 번 소득에 세금이 없는 지역이고, 네 번째 유형은 특정사업활동에 대해 조세혜택을 주는 지역입니다. 학자들은 아일랜드를 이 네 가지 유형 중에서 네 번째 유형, 즉 특정사업활동에 대해 조세혜택을 주는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아일랜드의 일반법인에 대한 법인세율은 12.5퍼센트이지만, 대형 기업에는 세율을 6퍼센트만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애플의 경우 미국 상원의원들은 적용 세율이 2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8.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애플이 법인 소득의 2퍼센트만 세금으로 냈다? 상당히 충격적인 일인데요. 애플이 어떤 방식으로 세금을 피해 갔기에 이렇게 적은 세금을 내게 됐나요?
⇨ 애플이 사용한 탈세 수법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일단 먼저 미국에 본사를 둔 거대기업이 아일랜드에 두 개의 자회사를 만들고 또 조세 피난처에 유령회사를 만듭니다. 그러고 나서 전 세계의 고객이 이 거대기업의 상품을 사면 판매대금을 일단 아일랜드 자회사로 보냅니다. 그리고 판매대금의 90퍼센트 이상을 조세 피난처의 유령 회사에 로열티로 지급해 버립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판매대금의 10퍼센트 이하에 대해서만 아일랜드에 소액의 법인세를 내고 90퍼센트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에서도 법인세를 안 내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거대기업인 애플이 법인 소득의 2퍼센트만 법인세를 내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9. 아일랜드가 미국 거대기업들의 탈세를 도와주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이런 비판은 근거가 있는 것인가요?
⇨ 아일랜드는 2010년 세법을 고쳐 일부 법인들에 한해 아일랜드 법인으로부터 조세 피난처에 있는 자회사로 직접 로열티 착수금(royalty payment)을 보낼 때 20퍼센트의 원천 징수세를 물리지 않기로 해준 바 있습니다. 명분은 미국의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의 자본을 유치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영국의 유력지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일랜드가 이렇게 세법을 개정한 것은 미국 거대 기업들의 로비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일랜드 정부는 파이낸셜타임스의 이런 주장에 대해 부인했지만 전 세계인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아일랜드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10. 미국이 역외탈세를 줄이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고 하는데요. 미국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 미국의 역외탈세 방지 정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해외금융기관 계좌신고제도(FATCA)인데요. 이 제도는 지난 2010년 미국 정부가 역외 탈세를 방지하고 해외 금융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해외금융기관 계좌신고법을 제정하며 도입한 제도로, 시행 시기는 내년 1월 1일부터입니다. 이 법에 따르면 모든 미국인은 해외 금융계좌를 미국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고, 외국 금융기관들은 미국인과 미국 기업의 금융계좌에 대한 정보를 미국 국세청에 보고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외국 금융기관들은 미국에서 올린 금융 수익의 30%를 벌과금으로 내야 합니다.
이 제도는 상당히 강한 벌칙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역외탈세 감소에 상당 부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11. 유럽 국가들도 역외탈세를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지요?
⇨ 유럽 각국도 은행의 비밀주의를 제거해 탈세와 조세회피를 봉쇄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 5개국은 지난달 탈세 방지를 위해 은행계좌 정보를 상호 교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주요 5개국은 각국 은행 간 예금정보 등을 자동으로 교환해 은행 영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비밀계좌를 이용한 탈세를 원천 봉쇄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시행할 예정인데요. 이들 국가는 미국의 해외금융기관 계좌신고법(FATCA)과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은행정보 교환을 위한 다국적 기관을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 중입니다.
12. 우리나라에도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와 어떻게 다릅니까?
⇨ 미국의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에 거주하는 자가 자신의 해외금융계좌에 관한 정보를 신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해외금융기관이 미국인의 해외금융계좌에 관한 정보를 신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칭으로 구분하자면 전자는 '자국 거주자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이고, 후자는 '해외금융기관 계좌 신고제도'인데요. 우리나라에도 전자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효성은 미국과 비교하면 매우 낮습니다.
13. 한국의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가 미국에 비해 실효성이 낮은 원인은 어디에 있나요?
⇨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양국은 신고대상 금액이 다릅니다. 미국에서는 자국 거주자의 해외금융계좌 잔고가 1년 중 어느 하루라도 1만 달러를 초과할 경우, 즉 우리 돈으로 1100만 원을 초과할 경우, 다 신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0억 원을 초과할 경우에만 신고하면 됩니다. 신고기준 금액이 미국의 100분의 1 수준입니다. 실효성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양국은 고의로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처벌 수위가 다릅니다. 미국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5만 달러 이하, 우리 돈으로 2억8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4~10퍼센트의 과태료만 부과합니다. 셋째, 미국에서는 해외금융기관 계좌 신고제가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에는 이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습니다.
14. 우리나라 국세청의 역외탈세 추적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왜 이런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 겁니까?
⇨ 최근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쿡아일랜드 등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이 모두 245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국회에 제출한 조세 피난처에 설립된 현지법인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6월 현재 한국인이 쿡아일랜드에 설립한 기업은 한 곳도 없고, 버진아일랜드에만 82개가 있었습니다. 뉴스타파가 밝힌 수치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기업 82개도 기업들이 해외법인 설립 시 은행들에 신고한 것을 취합한 수출입은행 자료였습니다. 이것은 국세청이 자체의 노력으로 자료를 확보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상당히 충격적인 것입니다. 역외 탈세 방지 대책을 세우는 기획재정부와 실제로 역외 탈세범 추적을 하는 국세청, 그리고 역외 탈세 관련 입법 활동을 하는 국회가 크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15. 조세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와 지역들은 인류에게 커다란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들 나라가 개발도상국 독재자들의 재산 은닉처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은 굶어 죽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세계은행이 정한 절대 빈곤층 기준은 '1일 생계비 1달러(One dollar, a day)'입니다. 그런데 지구 상에는 이 소득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10억 명에 달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이 소득 수준에 미치지 못해서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조세 피난처 역할을 하는 국가와 지역들은 이런 인류의 대재앙을 초래하게 하는 범죄자들의 조력자들입니다.
16. 조세정의 네트워크는 1970년대부터 2010년 말까지 조세 피난처로 흘러들어 간 금융자산 누적액이 21~32조 달러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돈이 탈세의 수단이 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세금이 매겨져 과세액 전부가 개발도상국 빈곤 퇴치운동의 재원이 되었다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을까요?
⇨ 만약 지난 30~40년간 조세 피난처로 흘러들어 간 금융자산 누적액 21~32조 달러가 탈세의 수단이 되지 않았다면, 이 금융자산이 창출하는 금융 소득은 1~1.5조 원(연간 수익률 5퍼센트 가정)이 되었을 것이고, 이 소득에 평균적으로 20퍼센트의 세율을 부과했다고 가정하면 세수는 2000~3000억 달러에 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1일 생계비 1달러 이하의 절대빈곤선 아래 있는 사람들 각각에 200~300달러씩 지원되었다면 30~40년간 10억 명을 절대 빈곤에서 탈출시킬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이런 추정에는 많은 가정이 전제되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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