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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7500만 명 뿔났다…"'정의로운 전환'을 왜 가로막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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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7500만 명 뿔났다…"'정의로운 전환'을 왜 가로막는가?"

[STOP! CO₂⑥] 후진하는 기후 변화 협상

애틀랜타 공항에서 9시간 기다린 것을 포함해 총 25시간 만에 12월 2일 밤 멕시코 칸쿤에 도착했다. 영국 노총(TUC : Trades Union Congress), 노르웨이 노총(LO Norway : The Norwegian Trade Union Confederation), 그리고 영국의 UNISON(공공 부문 노조)이 공동 후원하는 '국제 기후 변화 프로젝트'(ICCP : The International Climate Change Partnership)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프로젝트는 '노동조합과 기후 변화'를 주제로 8개국(방글라데시, 시에라리온, 가나,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노르웨이, 영국)이 참여하는 국제 프로젝트로 올해 처음 시작되었는데, 제16차 유엔(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16)를 염두에 두고 칸쿤에서 첫 회의를 잡았다. 필자는 한국 사례 조사와 발표를 맡았다.

숙소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 COP16 진행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칸쿤 메세(Cancun messe)로 향했다. 기후 변화 협상과 관련한 각종 정보들이 오가는 이곳의 한 회의실에서 매일 아침마다 국제노총의 정기 점검 회의가 열리고 있다. 12월 3일 아침 9시 처음 참석한 이 회의에는 비장함과 분노가 지배하고 있었다.

기후변화협약 핵심 협상 문안("Shared Vision")에서 국제노총의 핵심 요구 사항인 '정의로운 전환' 문구가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전환' 문구는 작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COP15에서 모든 나라들이 동의하여 협상문안에 삽입되었었다(그러나 COP15 참가국들이 전체 협상문안에 합의하지 못함으로써 최종 채택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COP16의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정의로운 전환' 문구가 협상문안에서 사라진 것이다.

사회 정의의 측면에서 후진하는 기후 변화 협상

'정의로운 전환'은 저탄소 녹색 경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보거나 존재를 위협받는 사람들이나 사회 집단들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충분한 보상이나 보호를 제공하여 전환 과정의 사회적 정당성과 수용성을 높이고 사회적 갈등이나 마찰을 줄여 전환 과정을 원활하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과의 충분한 사회적 대화와 협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이해관계를 주장할 수 있도록 인권과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녹색 경제 사회로 이행하는데 필요한 녹색 일자리와 숙련이 '괜찮은' 것이어야 한다. 새로 창출되는 녹색 일자리에는 저임금이나 빈곤 임금, 고용 불안정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 경제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고용과 숙련의 변화, 최악의 경우에는 일자리 상실의 위협에 내몰릴 수도 있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정의로운 전환'은 필수불가결하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국제노총의 핵심 주장이자 요구 사항으로 등장하고 있다.

협상 진행 과정을 모니터링 하고 있는 덴마크 노동조합의 여성 간부는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국제노총의 조합원 수가 1억7500만인데, 이렇게 능멸당해도 되는가? 어느 국가의 인구가 이 정도 되면 결코 함부로 무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 영국 노총 간부는 "노사 간 힘들여 합의한 사항을 정부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위반하는 것(코펜하겐에서 이미 협상문안에 넣기로 합의한 사항을 왜 칸쿤에서 뒤엎는가?)과 다를 바 없다"고 분노했다.

이 날 저녁 영국 BBC는 칸쿤 회의의 분위기를 이렇게 요약했다.

"칸쿤 기후 변화 회의에 거는 기대는 낮은 반면, 기후 변화를 가져오는 온실 기체 배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기후 변화 대응 필요성에 대한 규범적 동의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국내적 실제적 활동과 실천은 너무 지지부진하다. 기후 변화나 기후 변화 대응의 대가와 이득, 손해를 누가 보는가를 둘러싼 국제적·국내적 분열과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노동조합과 기후 정의 운동의 전 지구적 동맹을 위한 만남. 미국 코넬 대학교의 '지구노동연구소'와 환경단체가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프레시안

국제노총의 집요한 노력, 그러나…

국제노총은 COP16이 열리는 동안 매일 아침 그 전날 이루어진 기후 변화 협상 과정과 내용 등을 점검하고 노동조합의 시급한 대응이나 협력, 조율이 필요한 상황에 대하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제노총이 각국 정부에 직접 압력을 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칸쿤 현지에서는 각국 노동조합이 정부를 만나 국제노총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정부가 국제노총의 입장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노총 대표단이 각국 정부 면담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줄기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정의로운 전환' 문구는 아직 협상문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각국 정부가 자신이 국내에서 약속한 것 이상을 이번 총회에서 내놓거나 주장할 수 없다는 근원적 정치적 제약이 작용하고 있다. 즉 칸쿤에서 노조가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각국 정부가 국내에서 승인되거나 결정된 수준 이상으로 제안하거나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협상의 교착상태가 계속되기 마련이며 '정의로운 전환' 개념도 여기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반영하듯, 12월 8일 오후 국제노총은 각국 정부가 남아있는 3일 동안 기대 수준을 높여 결과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였다. 국제노총 사무총장 섀넌 버로우(Shanan Burrow)는 칸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을 위한 기후 자금 조달(climate financing)에 각국 정부가 구체적 약속을 해야 하며, 2011년 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COP17을 위한 국제적 리더십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구체적 성과의 전망이 밝지 않은 COP16은 COP17을 위한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후 변화 협상에의 개입과 아울러 국제노총은 작년 코펜하겐에 이어 칸쿤에서도 '노동조합 기후 변화 포럼'(WoW: World of Work)을 조직하여, 기후 변화를 노동조합의 의제로 삼으려는 여러 나라의 노동조합,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학계 전문가 등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공동의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작년보다 규모가 많이 축소되고 기간도 이틀(12월 2일과 7일)로 줄었지만, 많은 노동조합들의 열기와 문제의식은 식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도 '국제 기후 변화 프로젝트'(ICCP)의 일환으로 준비한 한국 사례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발표할 세션이 제일 마지막 일정으로 배치되면서 ICCP 참가국가들 사이의 내부 평가와 2011년 프로계획 논의로 대체되었다.

국제노총 대표단이 한국 정부 대표단을 만났으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11월 23일 COP16에 대한 한국 노동조합의 입장을 밝히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COP16이 열리기 직전인 11월 말에 정부 관련 부처를 만나 한국 정부가 국제노총이 주장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COP16에서 지지해 줄 것, 그리고 기후 변화와 관련하여 노동조합을 포함한 이해당사자들과 협의하고 대화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리고 칸쿤 현지에서는 국제노총과 민주노총의 공동 요구로 12월 6일 오후 국제노총 대표단과 한국 정부 대표단의 면담이 있었다. 국제노총 대표단으로는 섀넌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미국 노총과 영국 노총의 주요 간부들이 참석하였고 필자가 배석하였다.

이 날 면담에서 국제노총은 '정의로운 전환', '괜찮은 녹색 일자리' 등이 협상문안에 포함되도록 한국 정부의 지지와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확답을 듣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국제노총의 이러한 핵심 요구들을 지지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2012년 COP18을 유치할 자격이 있는가?

지난 11월 23일 공동 성명서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한국 정부가 2012년 COP18을 국제사회의 훌륭한 성원으로서 유치하려면, 엄청난 사회적 저항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환경 파괴적 '4대강 살리기 사업'부터 우선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더구나 2012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한 편으로 녹색 성장 전략으로서의 타당성이 전면적으로 의심받고 있는 사업을 계속 그대로 수행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지구적 기후변화에 대한 진정한 녹색 대응 전략과 정책을 모색하고 공정하고 구속력 있는 협약을 도출해야 하는 COP18을 유치하려는 것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조, 시민사회와 야당에게 국제회의 유치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적 국제회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 요소의 하나인 이해관계자들과의 사회적 대화와 협의를 통하여 4대강 사업 등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주요 사회·정치적 현안 과제들을 풀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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