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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으로 전락한 A씨, "그 치명적 유혹에 넘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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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숙인으로 전락한 A씨, "그 치명적 유혹에 넘어가서…"

[안종주의 '위험사회'] 알코올 중독은 또 다른 질병

인간에게는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골초, 술 중독자, 게임 중독자, 도박 중독자 등의 행태를 보면 틀린 말이다. 이들의 지독한 탐닉 행동을 보면 인간에게는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최근 전문가들과 세계보건기구는 이 표현보다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라는 말을 쓴다)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자세하게 들을 기회가 많았다. 알코올 중독의 위험이 어떤 것인지를 일반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글을 건전 음주 전문 잡지에 싣기 위해 몇 년 동안 그들을 인터뷰 해왔다. 이 인터뷰를 통해 상상하기도 어려운 알코올 중독의 실상을 알았다. 이 가운데 두 사례를 소개한다.

A씨는 50대 남성이다. 술을 잘 마시는 집안 내력을 지녔다. 그의 주량은 소주로 5병 정도. 친구들과의 모임에 참석할라치면 미리 술을 마시고 간다. 맨 정신에 가면 그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서였다. 소주 2병을 마시면 그는 멀뚱멀뚱했다. 친구들은 얼큰하게 취해버린다. 그래서 그는 모임 한두 시간 전에 슈퍼마켓에 가서 소주 2병을 사서 들이키고 난 뒤에야 모임에 간다. 모임에서 소주 3병 정도를 더 마시면 서로 분위기가 맞았다.

그는 1주일 내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주 네다섯 병을 마셨다.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나고 온전한 직장 생활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노숙자로 전락했다. 노숙자 쉼터에서 희망 없는 삶을 이어오다 어느 종교단체의 도움으로 마음을 다잡아 겨우 알코올 중독의 수렁에서 벗어나 지금은 사회적 기업을 꾸려가고 있다.


B씨는 60대 남성이다. 그는 집안의 장손이었다. 10대 때부터 술에 절었다.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던지 20대 젊은 나이에 이미 환각, 환청 등의 심각한 증상이 나타났다. 집안에서 그를 알코올 치료 병원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 병원을 나와서 다시 술에 탐닉했다. 집안 식구들은 그를 기도원에도 보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때 고기 집을 운영해 돈을 벌기도 했으나 이때에도 손님들과 늘 대작을 하며 술을 즐겼다. 50대가 되어서는 온 몸에 이상이 생겼다.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 의료진의 권유로 알코올 치료 병원에 입원해 오랜 기간 사회와 격리된 채 술과의 접촉 자체를 원천 차단해 금주에 성공했다. 지금은 자그마한 커피숍을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난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알코올 중독자들은 대개 10대 때부터 술과 빈번하게 접촉했다. 그리고 몇 잔에 얼굴이 붉어지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체질이 아니라 술이면 마다지 않는 두주불사형이 많았다. 대체로 술에 강한 집안 내력을 지녔다.

술이 센 것은 결코 자랑할 게 못 된다는 사실이 이들의 사례로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가정 생활을 정상적으로 꾸릴 수 없거나 꾸리더라도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에게 엄청 피해를 끼친다. 사회 생활도 정상적으로 하기 힘들다. 마침내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진다.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리는 정신질환으로까지 진전된다.

사람들은 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몸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고 여긴다. 술을 마실 수 있는 자체가 몸이 받쳐주기 때문이라고도 자위한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이 되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단계로까지 연결돼 있는 것이 알코올 중독의 세계이다.

알코올 중독은 우리 사회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개인적 위험인 동시에 사회적 위험이다. 알코올 중독은 중독자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 친구, 동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이들의 입원 치료와 조기 사망 등은 크나큰 사회적 손실이다. 자신이나 주위에 아는 사람 가운데 알코올 중독자가 설령 없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1910년 프랑스에서 알코올 중독을 경고하는 포스터. 술병에 해골이 그려진 모습이 눈길을 끈다. ⓒwikipedia.org
알코올 중독증(의존증)은 일반적으로 술에 의존증이 생겨 정상적인 사회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알코올 의존증은 의학적으로 매우 심각한 질병으로 취급된다.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사람이 술을 끊으면 오랜 흡연자가 금연할 때 불안, 초조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못 참는 것과 같은 극심한 금단 증상을 겪듯이 몹시 술을 마시고 싶어 하고 손이 떨리며 식은땀이 나기도 하고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며 신경이 예민해지는 금단 현상이 생긴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알코올 의존 전 단계에 해당하는 사람은 더욱 많다. 흔히들 알코올 남용이라고 부르는 알코올 의존 전 단계는 술 때문에 툭 하면 밤늦게 또는 새벽에 귀가하고 다음날 직장에 나가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거나 과음으로 몸이 못 견디는데도 그 다음 날 다시 술을 계속 마시는 경우이다. 일주일에 4~5일 이상 한두 잔이 아니라 그 이상을 마셔대는 사람은 알코올 남용일 가능성이 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거의 매일 지속적으로 마시는 형이다. 다른 하나는 한번 마셨다 하면 며칠씩 밤낮 가리지 않고 폭음하는 유형이다. 이 두 유형이 겹쳐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술자리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다닌다면 알코올 의존증 초기일 가능성이 있다. 혼자서 술을 즐겨 마시거나 주변 사람들한테서 주사가 있다고 지적을 받거나 한 번 마셨다 하면 만취할 때까지 마신다면 이 또한 알코올 의존증 초기를 의심해야 한다.

초기에서 중기에 접어드는 순간에는 알코올성 단기기억상실(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 현상)이 나타난다. 일시적 건망증이 6개월에 2회 이상 나타난다면 이미 알코올 의존증이다. 필름이 끊기는 현상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필름이 끊기는 '베르니케 증후군'에 걸릴 수도 있다. 술을 한 번 마시면 연속 며칠을 마시고, 술이 없으면 불안하거나 잠이 오지 않으며, 금주를 결심했다가도 번번이 실패하는가 하면 직장과 가정에서 술 문제로 퇴직과 이혼 압력을 받는다면 알코올 의존증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술 마신 다음 날 해장술을 찾는 사람이 종종 있다. 음주 조절 능력을 상실한 이런 사람 역시 알코올 의존증이 상당히 진전된 상태에 있다. 실제로 많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술을 마신 뒤 잠이 들고, 잠이 깨자마자 술을 찾는 경향이 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입원 치료 후에 신체적 기능 회복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다시 음주를 하면 안 된다. 스스로 술을 조절할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절대로 술을 입에 대서는 안 된다. 술을 절제해 마실 수 있는 능력을 조절하는 뇌의 조절판은 한 번 손상이 되면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알코올 의존에서 겨우 벗어난 사람에게 술을 권하거나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자신은 아무런 술 문제가 없다고 현실을 부정한다. 자신은 언제든지 술을 끊을 수 있으며 단지 끊을 필요성을 못 느낄 뿐이라고 말한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자기중심적이고 자신감이 없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도 작다. 이들은 술 마실 구실을 찾기 위해 거짓말을 자꾸 한다. 나중에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성격이 변하기도 한다. 성격 문제가 더욱 심해지고 열등감이 많아지며 의심이 많아지거나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

알코올 의존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지만 앞서 살펴본 사례처럼 잘 걸리는 부류가 있다. 부모나 가까운 친척 가운데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있다면 일단 조심하는 게 좋다. 수동적이고 내성적이며 화가 나도 겉으로 표현을 잘 안하는, 열등감이 많은 성격에 흔히 나타난다.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과 같은 신경성 장애가 있을 때 잘 발생한다. 어려서부터 술에 대해 관대하거나 잘못한 일을 야단치지 않는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났을 경우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나타나기 쉽다.

▲ 한때 알코올 중독자였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캐롤라인 냅이 자신의 알코올 중독 이력과 그 극복기를 잘 묘사한 책 <드링킹-알코올, 그 치명적인 유혹>(고정아 옮김, 나무처럼 펴냄). ⓒ나무처럼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사망률이 3배나 높다. 특히 자살률이 매우 높다. 알코올 의존증을 치료하려면 금주해야 한다. 금주 후 약 1주일간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3~4일간 손과 발이 떨리고 깊은 잠에 빠지기도 한다. 금주는 가장 간단한 치료법이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아 본인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고 주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술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여전히 술에 관대한 문화에 젖어 있어 알코올 의존증 환자에 대해서도 그냥 술 좋아하는 사람, 애주가 정도로 치부하며 너그럽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단주하기가 쉽지 않는 또 다른 이유이다.

미국은 알코올 중독 때문에 연간 1167억 달러의 손실을 입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알코올 중독 환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따라서 알코올 중독증으로 인한 손실은 우리나라가 훨씬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알코올 의존증은 주로 남성에게서 나타난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를 남편으로 둔 아내는 절망감과 자신이 살피지 못한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심지어는 시댁에서 아들이 술 먹는 이유가 여자 때문이라고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 자녀들의 정서에도 악영향을 끼쳐 평소에 공포감, 증오심, 죄책감, 외로움이 가득 차있고 성격이 삐뚤어지는 경우가 많다. 술 취한 상태에서 부인이나 자녀들을 폭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가족들의 심신 건강은 최악의 상태가 된다. 이를 견디다 못해 아내와 자녀들은 가출하거나 이혼을 하게 된다.

알코올 중독은 배우자나 자녀들의 잘못으로 생기는 병이 결코 아니다. 이는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다. 가족이 치료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술이 깨고 난 뒤 후회하는 알코올 중독자의 행동에 자신의 감정이 흔들린다면,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서 친지나 이웃들에게 이를 숨기려 들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된다. 자녀들에게도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술에 중독된 환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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