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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형님!" 꼬리친 고종에게 美 대통령은…

[철학자의 서재] 제임스 브래들리의 <임페리얼 크루즈>

100년 전 역사를 재조명한다!

2010년은 한일강제병합 조약이 반포된 지 100년째 되는 해이다. 그 100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광복을 맞았고 또 다른 역사를 써가고 있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역사는 단순한 팩트(fact)의 나열이나 이어붙임(連接)이 아니다. 각 역사적 사건은 분절된 시대의 테두리 안에 박제된 채 관람객의 관람을 기다리는 전시물이 아니라, 재해석하고 함몰된 사실들을 발굴해야 하는 동적인 대상이다. 동적 대상은 인간의 능동적 사유와 해석을 기다린다.

역사가 동적인 대상이며 인간의 능동적 행위를 유발하는 의미에서 본다면 지난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작업은 문·사·철(文·史·哲)의 고유 영역을 뛰어넘어 우리 근·현대를 정확히 인식하는 데 필수적이다. 잘 몰랐던 사실,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조명하면 지난 과거는 선명해지고 현실은 탄탄해지며 미래의 길이 보인다.

<임페리얼 크루즈>(제임스 브래들리 지음, 송정애 옮김, 프리뷰 펴냄)는 한국어판 부제에서 명시하듯 대한제국 침탈에 관한 미국과 일본의 비밀 외교 기록을 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시간을 좀 더 이전으로 소급하여 서부 개척 시기의 미국 인디언 말살 정책부터 하와이, 필리핀 점령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까지 미국의 제국주의 세력 확장 루트를 다시금 조명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군으로 그 유명한 이오지마 전투에서 승리한 후 성조기를 꽂아 세운 6인의 해병대원 중 한 명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침공으로 시작된 끔찍한 태평양 전쟁에 왜 참가하게 됐는지 그 최초 도화선을 찾기 위해 글을 썼다고 밝힌다.

이 책은 미국인으로서 미국의 잘못된 헤게모니를 객관적이고 비판적 시각에서 견지하는 내적 통찰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통찰은 미국이 서부 개척 시대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아메리카 패권주의가 태평양 전쟁, 중국 공산 혁명, 한국전쟁까지 유발시켰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에 관계한 근대 조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

▲ <임페리얼 크루즈>(제임스 브래들리 지음, 송정애 옮김, 프리뷰 펴냄). ⓒ프리뷰
책을 읽는 내내 줄곧 한 가지 중심 되는 구도가 눈에 띄었는데 앞선 기술과 진보 정신으로 무장한 문명화한 서구 세계가 자신을 중심으로 비 문명화된 야만적 세계를 배타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 틀이다. 문명과 야만이라는 두 개념은 19~20세기 초, 미국을 비롯한 유럽이 제국주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식민지화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 키워드였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쓰이는 '문명(文明)'이라는 말은 원래 'civilization'을 근대 일본에서 번역한 것이고, 라틴어로 도시란 의미의 'civilitas'에서 유래한다. 즉 서구에서 문명의 의미는 인간의 인위적 행위를 통해 이룩한 물질 문명이며 자신들이 성취한 세계의 표현인 셈이다. '야만(barbarianism)'과 이분법적으로 정확히 구분하는 개념이다.

서양과 마찬가지로 동양에도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동양의 경우 유교적 통치 질서와 윤리 체계가 적용되는 구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을 나누어 문명과 야만의 선을 그었지만, 서양에서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문명이라는 개념을 투영하여 우월하면서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했다. 따라서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구별에는 우승(優勝)하고 열패(劣敗)하는 신화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 신화는 제국주의의 속성이 된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백인 우월 신화의 근거를 '아리아인(Aryan)' 전설에서 찾는다. 그들이 믿는 전설은 다음과 같다. 지금의 이란 북쪽인 흑해 연안 코카서스 산맥에서 생겨난 아리아인은 우량한 인종으로 문명의 전파자였다. 그러나 이종(異種) 간의 혼혈로 불결한 인종이 태어나게 되었고 잡종화한 문명으로 몰락해갈 즈음 소수의 순수 아리아인이 '태양의 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여 독일을 거쳐 더욱 뛰어나고 '민주적인' 튜턴 족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다시 서쪽과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현재 앵글로 색슨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뛰어난 아리아인의 순수성을 위해 야만적인 잡종인과 원주민들은 살육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막무가내 신화는 백인종은 모든 문명의 시원이며, 백인의 순수성을 지켜야만 문명도 지켜진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미국의 서부 개척사를 뒤집으면 미국 원주민 도륙사가 되는 근본 이유이다. 1890년 사우스다코타의 운디드니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을 마지막으로 25년에 걸친 미국 인디언 살육전은 대단원의 끝을 맺지만 미국은 개척의 대상이 사라지면서 닥친 1893년 경제 불황과 문명 과잉(overcivilization)에 대한 공포로 또 다른 개척 대상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해외를 향한 팽창이었다.

미국 해군은 1893년 아시아 교역의 연결 고리인 하와이를 필두로 1898년 스페인을 몰아내고 쿠바를 점령하고 나서, 같은 해 8월 13일 역시 스페인 아래에 있던 필리핀을 정식으로 점령한다. 그런데 미국은 필리핀의 지도자 아기날도를 비롯한 필리핀인 전부를 '야만인'으로 규정하였고 '태평양의 흑인들'에게 새로운 정부의 구성을 맡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미국 군정은 필리핀의 저항을 진압하면서 1899년 2월 4일 하루에만 3000명 이상의 필리핀 자유 투사를 사살했고 1년 넘게 100~200만 명의 원주민을 살해하였다. 이 시기 제3대 필리핀 군정 총독인 아서 맥아더는 백인 아리아인 신화와 문명국으로서 그 위대함을 전파하는 과정으로 미국의 야만스러운 군사 행동을 정당화한다. 아서 맥아더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여 일각에서 존경해마지않는(?) 더글러스 맥아더의 부친이다.

문명론과 인종주의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에서는 필리핀인을 유인원과 인류의 중간 단계로, 미국이 자비심을 가지고 돌봐주어야 하는 '원숭이 인간'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문명과 비 문명에 대한 차별 의식은 종 차별주의를 형성했고 종교적 가치와 결합하여 일종의 신념으로 발전한다.

"미국의 25대 대통령 매킨리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는 감리교 선교사 대표단의 방문을 받고 무릎을 꿇어 문명화를 위해 기도를 드렸는데 하느님이 필리핀 사람들을 향상시키고, 문명화하고, 기독교화 하는 것이 그의 의무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 미국인들이 하는 과감한 제국주의적 행동을 제국주의가 아니라, 다른 인종에 대한 깊은 동정심과 헌신의 발로라고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경우 기독교인이라면 그 사람을 도와줄 의무가 있다는 논리였다." (108쪽)

'눈먼 최선은 최악'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인 매킨리의 행동은 전략적 속내가 숨어있는 것이었지만 이로 인해 대다수의 미국인들과 아리안 신화 추종자들에게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은 신의 숭고함을 등에 업은 '최선'이었고 최악의 결과는 열등한 인종의 몫이 되었다.

미국은 서쪽으로 진출한 아리아인의 최종 후계자라고 자처하는 미국 26대(1901~1909년)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년)는 유럽의 대서양보다 중국에 면한 태평양에서의 입지가 미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 선언했고 1905년 여름 '제국주의 순방(imperial cruise)'을 시작한다. 제국주의 순방단에는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가 타고 있었다.

한편, 1904년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맺은 이후 미국에 접근했다. 일찌감치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바 있는 일본은 후쿠자와의 문명론에 경도되어 탈아입구(脫亞入歐)의 문명화 수순을 밟는 단계였다. 일본은 미국에게 더 이상 미개인종이 아니었고 앵글로 색슨의 이상을 아시아에서 충실히 대행하는 '명예 아리아인'이었다.

마침내 순방단의 태프트는 1905년 7월 27일 가쓰라 총리와 미일 비밀 협약을 맺는다. 우리에게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알려진 이 협약은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인정하고, 일본은 미국이 지배하는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미국과 일본은 사회진화론을 수용한 관점이 달랐고 그 양상을 미국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스펜서가 주장한 사회생물학적 사회진화론의 적자생존설과 약육강식의 논리는 인종주의와 결합했고, 사회진화론적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불평등 도그마를 제시한다.

따라서 미국은 처음부터 강자의 입장에 있었지만 일본은 서양이라는 대상에 자극받아 부국강병과 군국주의를 이끌어냈다. 미국과 일본은 사회진화론적 입장과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공통점이 있었지만 일본이 경험한 약육강식의 논리는 자신들이 동양의 맹주가 된다는 동양주의로 나타났고 미국은 일본식 먼로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를 허용했다.

저자는 미국의 이런 행보가 일본의 팽창 야욕을 불러일으켰고 태평양 전쟁을 발생시킨 과오였다고 판단한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태양의 길'이라는 잘못된 미국의 정책이 결국 한반도의 100년을 끔찍한 고통으로 물들게 했고 아시아와 세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도화선이 된 것이다.

미국은 영원한 큰형님의 나라인가?

1882년 고종은 청나라의 주선에 따라 문호를 개방하고 미국을 첫 수교국으로 삼는다. 고종은 미국 국무부에 "우리는 미국을 형님과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만 정작 루스벨트는 "나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자주 했다(16쪽).

미국과 일본의 밀약이 성사되고 나서 이런 사정을 모르는 이승만과 윤병구는 1905년 8월 4일 루스벨트의 사가모어힐 별장을 찾아가 일본의 침략에서 한국을 구원해 달라고 청원했다(344~345쪽). 그러나 이 믿음은 잘못짚은 것이었고 결과는 을사늑약으로 나타났다. 필리핀의 아기날도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고종은 미국을 자신들의 독립을 지원해줄 구세주로 착각하고 있었지만 미국은 필리핀인과 마찬가지로 조선인을 '퇴화한 인종'으로 묘사했다. 제국주의 순방단의 앨리스 루스벨트는 고종에게 극진한 영접을 받았지만 훗날 고종을 "황제다운 존재감이 없는 애처롭고 둔감한 모습"이라고 회고했다(314쪽).

고종이 미국을 맹목적으로 확신하는 모습은 과거 조선이 망해가던 명나라를 두고 재조지은(再造之恩) 운운하던 모습과 오버랩된다. 당시 동아시아 정세의 실상은 중국이 몰락하고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재탄생하던 변화의 시기였다. 국가 간 외교에 '영원한 적국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명제는 기본이다.

조선의 사대(事大)는 외세에 의존함으로써 위기를 맞은 국제 정세에 아무런 대비를 할 수 없게 만들었고 내부적으로 세도 정치의 전근대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다. 민 씨 척족 세력의 부패로 민심은 황폐해지고 조선 후기의 가혹한 수취 제도로 수탈한 세금은 근대화에 투자하지 않고 각처에서 일어나는 민란을 막는 데 쓰기에 급급했다. 결국 고종은 갈길 잃은 짝사랑 외교를 하고 있던 셈이었다.

지금 대한민국도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관계는 중시하지만 대다수 민중의 삶을 도외시하고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미국에 대한 짝사랑 외교를 그대로 보여줬고 같은 해 광복절 즈음에는 '건국절'이라는 해괴망측한 발상으로 아직 정리하지 못한 역사관을 한 번 더 꼬아버렸다. 특히 건국의 아버지라며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안긴 친미 인사 이승만은 단재 신채호가 "이완용 등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라고 평가한 인물 아니던가.

굳이 신자유주의와 숭미세계화주의를 입에 올리지 않더라도 아시아에서 가장 미국화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근래의 지적이 맞는다면 이런 현상은 구한말 스펜서식 사회진화론의 세례를 받은 개화 사상가들과 이승만의 영향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현재까지 왜곡되고 타자화된 근대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화상일 것이다. 틀어진 역사관은 현실도 틀어지게 만든다.

언제까지 미국을 형님으로 모실 것인가! 인종주의 콤플렉스에 찌들어 세상을 동물의 왕국 같은 전쟁 통에 밀어 넣는 시어도어 루스벨트(미국)의 짓거리를 다시 재생산할 수 없고, 이 땅에서 고종과 같은 실수를 다시는 저지를 수 없다.

미국이 역사상 일으킨 전쟁과 침탈로 인해 학살당한 수천만의 목숨과 살아남은 자들의 피눈물의 대가로 미국이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절실한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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