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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의 '진짜' 원인은 '성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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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의 '진짜' 원인은 '성욕'이 아니다?

[철학자의 서재] 프란츠 부케티츠의 <왜 우리는 악에 끌리는가>

돈주앙과 카사노바 그리고 아쿠쿠 할아버지

"모든 남자는 숟가락만 들 힘이 있어도 그 짓을 좋아한다!"

내가 아는 한 선생님께서 술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 선생님의 성별은 여자고 나이도 제법 있으시다. 입담이 좋은 편인 이 선생님과의 대화는 즐겁다. 이 선생님께서 "케냐에 사는 아쿠쿠 할아버지는 400여 명의 직계 가족이 있는데 부인만 143명이고, 아들은 160명, 손자가 203명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때로는 난처할 때도 있다. 그날 나는 모든 남자들을 대표해 수컷 동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쿠쿠 할아버지의 얘기는 실로 경탄을 금할 수 없으며, 순간 동물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출산 비율로 따지면 아쿠쿠 할아버지는 가족 계획을 잘 세운 편이다. 자료에 나타난 수치만 따져 본다면, 부인 한 명당 1.12명의 출산율과 그 아들들은 1.27의 출산율을 보이니,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1.24명 인 것을 볼 때 차라리 출산율은 저조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쿠쿠 할아버지가 놀라운 것은 143명의 부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아저씨들의 로망이라고 해야 하나? 143명의 부인이 있는 아쿠쿠 할아버지는 실로 대단한 능력자임에는 틀림없다. '그 짓'뿐만 아니라 분명 엄청난 경제력을 소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살고 있는 땅 대한민국에서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당신에게 143명의 부인이 있다면 행복하시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소시민 아저씨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어떻게 먹여살리라구! 그래서 그런가? 부인보다는 그냥 연애만을 원하는 아저씨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외도 또는 불륜이라고 부른다.

조니 뎁이 주연한 <돈 주앙>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돈 조반니, 돈 후안, 돈 주앙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이 사람은 1000여 명의 여자와 사랑을 나눴다고 하나 영화에서는 1502명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전설이란다. 그런 면에서 카사노바는 단연 상징적인 인물이다. 약 1000여 명의 여자를 만났다고 하는데, 실존 인물에다가 구체적인 사료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우리에게도 이런 전설적인 인물은 있다. 변강쇠가 단연 최고의 자리에 있었으나, 영화 <방자전>을 통해 '장팔봉 선생'이 그 자리를 빼앗았다. 2만 명이란다.

자! 이쯤에서, 책 서평 쓰라고 시켰더니 추잡스러운 이야기들만 꺼내 놓는 저의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벌써 클릭 한방에 창을 닫아버렸을 수도 있다.

생물학적 환상과 문화적 환상

▲ <왜 우리는 악에 끌리는가>(프란츠 부케티츠 지음, 염정용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우리는 일부일처제를 사실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지구상에 일부일처제를 가진 문화권은 약 20% 정도다. 그럼 나머지 80%는? 나도 잘 모르지만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등, 지들 환경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일처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잘못된 결혼제도라고 치부해도 상관은 없다. 사실 일부일처제도 외도와 불륜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욕구를 해결해 나아가고 있으니까.

강력한 법규가 등장을 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도 해결 되지 않는 외도와 불륜은 혹시 우리가 잘못 규정한 인간 본성의 문제는 아닐까? 프란츠 부케티츠의 <왜 우리는 악에 끌리는가>(염정용 옮김, 21세기북스 펴냄)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화윤리학의 답변서다. 부케티츠는 말한다.

"경험적으로 보아 도덕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확히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인간의 행동 방식과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해 진다. 이 때문에 성윤리의 어려움도 생기는 것이다." (8쪽)

그러나 성윤리의 문제는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인간의 행동 방식이 반영되지 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각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 돈주앙, 카사노바, 변강쇠, 장팔봉 선생, 아쿠쿠 할아버지까지, 앞에서 언급한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인물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가상의 인물과 실존 인물이 그것이다. 물론 모두 남자라는 공통점은 있다. "남자는 원래 다 그런 동물이다"라는 속단은 버리자! 물론 "불쌍한 여자들이 사랑에 속고 돈에 울었다"는 신파극도 이제는 그만 했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가상과 실제를 넘나들며 하나가 되어버린 성윤리에 대한 환상이다. 대표적으로 성윤리의 환상은 순결을 지킬 것을 강요하는 생물학적 환상과 자유분방한 사랑이라는 문화적 환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104쪽). 인간의 맹장과 처녀막의 공통점은 생물학적으로 별 기능이 없다. 처녀막이 없다고 해서 돌에 맞아 죽을 필요도 없다. 또한 세상 모든 여자를 다 품어 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환상도 불가능하긴 마찬가지다. 생물학적 환상을 순결로 승화시키는 종교의 윤리들이나, 오입(誤入)을 오입(五入)이라는 문화적 환상 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성윤리가 아니다.

내가 더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은 생물학적이든 문화적이든 잘못된 성 관념이 진화론에도 투영된다는 사실이다. '철학자의 서재'에도 소개된 <털 없는 원숭이>에는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털 없는 피부가 암컷의 젖가슴을 더욱 돋보이도록 촉진했을 것인데, 이 젖가슴은 암컷의 반구형 엉덩이를 모방하는 형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젖가슴은 수유기관이라기 보다는 성적 장치의 기능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 젖가슴과 마찬가지로 입술도 암컷의 신체가 자기모방의 방식으로 생식기를 흉내 낸 것이다." "영장류의 암컷 가운데 오직 여자만이 오르가슴을 느낀다." "암컷이 처녀막을 갖는 것은 인간에게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누구에게 미안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내용이 자신 있게 틀렸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는 여성분들이 있다면, 특히 진화나 생물학을 전공하는 여성분들이 있다면 <털 없는 원숭이>를 잘 읽어봐 주시길 바란다. 내가 아는 선상에서 대부분의 포유류들은 찌찌 주변에 털이 없다. 물론 인간보다는 약간 더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혹시 집에 모유 수유 중인 암컷 강아지가 있다면 배 까뒤집고 살펴봐라! 다른 부분과 비교하면 별로 털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여성의 입술은 더 재미있다. 여성만 특별히 진화한 것이 아니라면 여성의 입술이 생식기의 자기 모방이라는 진술은 어처구니가 없다. 입술이 생식기의 자기 모방이라면 남성의 입술은 정말 가관이지 않겠는가! 처녀막은 두더지도 있다. 오르가슴 얘기도 별반 차이는 없다.

도덕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장

이쯤 되면 정의를 사랑하고 지키고자 노력하는 분들께서 도덕을 운운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부케티츠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도덕지상주의자'(161쪽)라고 부른다. 도덕주의자들은 항상 옳은 편에 서 있다. 그들은 항상 스스로를 선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려고 한다. 특히나 '거룩한 말씀'을 운운 하며 누군가에게 도덕적 행위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위선자일 확률이 높다. 월리엄 브레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선하기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신이 아니면 위선자다."

이런 측면에서 부케티츠의 <왜 우리는 악에 끌리는가>는 도덕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진화윤리학의 입장에서 부케티츠는 추상적 개념의 윤리학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상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도덕주의는 더더욱 반대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기초가 반영되지 못한 윤리학은 윤리학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이에 부케티츠는 윤리학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윤리학자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 관찰하는 것에서, 비로소 실제로 어떤 도덕적 원칙들이 성공을 거두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는지 깨달을 수 있다. 추상적(이상주의적) 인간상에 매달리지 않고 인간과 인간의 본성, 발전 과정, 특정 사회적 상황에서의 행동에 관한 인식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윤리학은 응용과학으로 다루어 질수 있다." (9쪽)

이 이야기는 아마 윤리학자들에게는 상당히 기분 나쁜 소리임에 틀림없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끌어안고 통곡하며, 공자는 또 다시 방황하며, 예수는 광야로 돌아가고, 부처는 화병으로 자리보존을 할지도 모른다. 그 동안 이상주의적 인간형 개발에 몰두해온 온갓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윤리학의 거대한 야망이 응용과학 따위로 전락할 줄이야.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존의 성윤리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성 관련 범죄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과연 성범죄를 얼마나 감소시켰는가? 생물학적 본능에 가까운 성(性)이라는 것이 처벌 수위만을 높인다고 해서 사라질까? 또는 무작정 "착하게 살자!"라는 구호만으로 또는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굶어죽으나 맞아죽으나 같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게 되어 있다. 굶지 않으려는, 그래서 생명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이미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굶어 죽어도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숭고한 가르침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좋은 덕담에 불과하다.

왜 우리는 악에 끌리는가?

기존의 윤리 기준에서 우리가 악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사실 우리의 생물학적 본성과 관련이 되어 있다. 특히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말할 때, '생물학적 특성'과 '사회적 특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존의 윤리학은 '사회적 특성'을 인간의 본성에서 우위에 두길 원하며 '사회적 특성'을 우위에 두는 전략은 인간이 동물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인간은 동물이다. 선천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일 뿐이다. 그러나 동물적 욕구가 사회적 욕구보다 진화론적으로 오래되었다. 다시 말해 생물체의 생존이라는 욕구가 사회적인 욕구에 선행한다. 이런 측면에서 식욕과 성욕은 생존의 욕구에 해당한다. 생물학적 특성인 성욕은 사회적 특성인 성윤리의 생물학적 근간이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아쿠쿠 할아버지가 살아가는 사회는 일부다처제의 사회다. 아쿠쿠 할아버지의 성욕은 대단히 왕성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 속에서 143명이라는 부인을 두었다. 카사노바라는 별명이 있긴 하지만 아쿠쿠 할아버지가 사는 사회에서 부인이 많은 것이 그다지 비도덕적인 행위는 아니다. 그러므로 아쿠쿠 할아버지는 당신이 속한 사회에서의 성윤리에도 충실한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외도와 불륜을 통해 카사노바를 꿈꾸는 우리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이야기다. 당연히 아저씨도 생물이다. 성욕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시민적 아저씨들은 외도와 불륜을 포기한다. 추리닝만 입고 개밥을 줘도 멋있는 원빈 아저씨만도 못하고, 살짝 벗겨진 머리와 B인지 D인지 구별이 안가는 몸매로는 착하게 사는 것만이 그래도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고 씁쓸하지만 믿고 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성욕마저 없어지길 바라지 않는다면 아저씨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기를 바란다. 아! 사라져버린 카사노바의 슬픈 로망이여!

마지막으로 말하지 못한 부류가 있다. 불굴의 성욕으로 온갖 성범죄를 일삼는 부류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성범죄에 있어 생물학적 성욕이 근본 문제는 아니다. 성욕은 누구에게나 있다. 진짜 문제는 성(性)에 대한 문화적 환상이 심어준 성욕이다. 문화적 환상과 자극이야 말로 생물학적 성욕에 더해져 성범죄의 근간이다. 성범죄의 온갖 변태적 양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진정한 성윤리는 이러한 것들을 정확하게 분석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성욕 자체가 악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에 끌리는 이유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악이라고 규정한 것들 중에는 우리의 생물학적 본능이 자리하고 있는 거야. 인간도 생물인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 뿐이야. 아마도 이것이 부케티츠가 진화윤리학을 정초하고 싶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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