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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역사>의 변주곡…"신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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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역사>의 변주곡…"신은 필요 없다"

[프레시안 books]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이 돌아왔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고 외치며 그가 돌아왔다고 여기저기서 호들갑이다.

호킹의 내공이 세긴 센 모양이다. <위대한 설계>(전대호 옮김, 까치 펴냄)가 만만하게 읽히는 책이 아님에도 나오자마자 '아마존(amazon.com)'에서는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고 국내에서도 출간되자마자 화제를 몰고 왔다. 이 책을 통해서 호킹이 '가장 많이 팔렸으면서도 가장 읽히지 않는 책'의 저자라는 오명까지 떨쳐버릴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신의 존재'를 결정적인 한방으로 날려버린 든든한 무신론자 동지를 얻었다고 의기양양한 것 같다. 한편, 또 다른 사람은 신에 대한 호킹의 경박하고 불경한 태도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투다. 혹자는 호킹이 우주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위대한 설계>는 그 많은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간의 역사>의 변주곡이고 후일담인 것 같다. 사실 그는 늘 그곳에 그렇게 있었다.

▲<위대한 설계>(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까치 펴냄). ⓒ까치
호킹은 <시간의 역사>에서 이미 "우주는 어디서 왔을까? 우주는 어떻게, 어떤 원인으로 시작되었을까?" 같은 근원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오늘날까지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우주가 '무엇'인가를 기술하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는 데 너무 골몰해서 '왜' 우주가 존재하는가를 물을 틈이 없었다"는 점을 고백했었다. 또 "한편, '왜(이유)'를 묻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철학자들)은 과학적 이론의 발전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따라오지를 못했다"고 부연하면서 우주의 기원에 대한 규명 작업은 이미 철학자의 손을 떠났고 과학자의 몫이 되었음을 분명히 했었다.

호킹은 이런 맥락에서 우주의 기원과 진화와 미래가 '어떻게' 또 '왜' 그러한지에 대한 현대 과학적 해답을 제시하는 작업을 <시간의 역사>를 통해서 시도했다. 칼 세이건은 이 책의 서문에서 그를 대신해서 "그것은 공간적으로도 끝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시작과 종말이 없는 우주, 그래서 조물주가 할 일이 없는 우주라는 결론이다"라고 적고 있다. 신의 존재에 대한 단호한 태도는 이때 이미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교황과 호킹 사이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81년 바티칸에서 현대 우주론에 관한 학회가 열렸는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과학자들 앞에서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항상 자연과학자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우주의 근원에 관한 궁극적 미해결점을 안고 있다. 우리 종교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질문이 요구하는 것은 물리학이나 천문학적 지식이 아니라 이를 초월한 어떠한 형이상학적인 진리라 믿는다."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히는 것은 과학자들의 몫으로 내어 주겠지만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종교가들이 알아서 고민할 터이니 (아니면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 입을 다물라는 주문이었다. 호킹도 이 학회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교황을 알현하고 나오면서 이렇게 받아쳤다.

"나는 내가 방금 학회에서 했던 강연의 제목이 우주에는 시초나 창조의 시기가 없었을 가능성에 관한 것이었음을 교황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고 기뻐했습니다."

이런 호킹이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와 함께 <위대한 설계>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더 정교하고 더 적극적이고 더 구체적이다. <시간의 역사>의 위대한 변주가 시작된 것이다.

"왜 무(無)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 왜 우리가 존재할까? 왜 다른 법칙들이 아니라 이 특정한 법칙들이 있을까?"

오래된 같은 질문이 시작된다. 호킹은 '철학자는 죽었다'면서 우주의 양자역학적 본성을 바탕으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연주를 시작한다.

양자역학적 본성은 필연적으로 불확정성 원리를 수반한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하나가 정확하게 결정되면 다른 하나는 필연적으로 덜 정확하게 결정될 수밖에 없다. 공간이 비어 있다는 것은 장의 값과 그 변화율이 둘 다 정확히 0이 된다는 뜻인데,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빈 공간은 없다. 다만 양자역학적인 무(無)는 가상의 입자 쌍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양자요동을 치는 진공이라는 최소에너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양자요동에 의해서 양자역학적인 무(無)의 상태로부터 무수히 많은 미세한 우주들이 창조되고 소멸될 것이다. 이들 미세 우주들 중 일부는 임계점을 넘어서 각자 다른 자연 법칙을 갖는 어느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 발생적으로 탄생한 수많은 '어느' 우주들 중 하나는 급팽창을 겪고 별과 은하를 만들어 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양자요동의 자식인 것이다.

파인만의 대안 역사 개념을 도입하면 우주는 하나의 역사만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역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호킹은 이로부터 이렇게 일갈한다.

"파인만 합에 기여하는 역사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무엇이 측정되느냐에 의해서 존재한다. 역사가 우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을 통해서 역사를 창조한다."

호킹은 변주의 완성을 위해서 '끈 이론'에 바탕을 둔 일종의 네트워크 이론인 'M 이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시간의 역사>의 변주의 결론을 내린다.

"자발적 창조야말로 무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는 이유,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자발적 창조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우주의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신에 호소할 필요는 없다."

결국 호킹의 견해를 따르자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는 우주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된다. 마치 에셔의 '그림을 그리는 손'에서 서로를 그리는 두 손처럼.

<위대한 설계>를 통해서 호킹의 명확하고 개연성 있는 논리 전개 솜씨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그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왜'라는 논의를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오는데 거의 성공한 것 같다. 이 책은 과학이 현재 알려져 있는 과학적 인식 체계를 통해서 '왜'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는지를 우아하고 명쾌하게 보여주는 책이었고, 이것은 전적으로 그의 미덕에 기인한다.

또 <위대한 설계>는 왜 이런 종류의 책을 여러 이론을 조망하듯이 아우를 수 있는 호킹이 써야만 하는가를 보여준 책이기도 하다. 그의 우아한 형식미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철학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호킹의 이런 시도가 얼마나 설득력 있고 공유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의 명쾌한 논리 전개에도 불구하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관건은 결국 그의 제안이 관측적으로 얼마나 증명 가능하냐 하는 것이다. 특히 그가 일종의 '통일 이론'의 강력한 후보로 내세운 M 이론에 대한 좀 더 명쾌한 관측적 결론이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위대한 설계>는 호킹의 멋진 시도에도 불구하고 주제 면에서나 내용 전개 면에서나 여전히 전작인 <시간의 역사>의 담론을 답습하고 있고 좀 까칠하게 보면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아직은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좀 더 세밀하고 친절한 후일담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만큼 호킹이 집요하게 이 문제에 매달린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쉽지만 그의 전혀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쁨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설계>는 현재 시점에서 여전히 호킹의 청사진이고 <시간의 역사>의 변주곡이며 후일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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