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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맛있습니까? 술도 '독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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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술 맛있습니까? 술도 '독약'입니다!"

[안종주의 '위험사회'] 음주, 흡연 못지않게 위험하다

신문사에 있을 때 부장으로, 나중에는 사장으로 모셨던 분이 최근 일흔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그와는 술과 관련해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일이 많다.

그분은 거의 매일 술을 마셔댔다. 나도 일주일에 2~3번은 그와 대작(對酌)을 한 것 같다. 자정 무렵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는 그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만들었고 때론 집에까지 택시를 태워 직접 바래다주어야만 했다. 그는 다음날 그런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이른바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단기 기억 상실)을 시도 때도 없이 그는 겪고 있었다.

의학 담당 기자를 오래 지냈고 그분을 부장으로 모시고 있을 때에는 보건복지 담당 기자였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알코올 중독 단계로 보이므로 그와 술자리를 자주 하지 말 것과 1차만 할 것을 조언했다. 하지만 저녁만 되면 대작을 할 사람을 물색하는 등 그의 중독 행동을 당시 사회 분위기와 신문사 풍토에서는 막기 쉽지 않았다. 1980년대는 술을 권하지 않는 사람은 대화에 끼일 수도 없고 조직에서 욕먹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번역가로, 소설가로 대중의 사랑을 받던 이윤기 씨가 숨졌다. 언론은 그의 사인(死因)에 대해 특별히 말이 없었다. 보통 암이나 지병 또는 노환, 사고 등 사망 원인을 이야기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그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63살이니까 어찌 보면 한창 활동을 할 연배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오랜 알코올 중독 생활이 그의 몸 장기 곳곳을 망가뜨려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하게 만든 것이 아니냐고 여기고 있다.

그는 10대 때부터 술과 가까이 지냈으며 청년 시절에는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거의 매일 술을 마시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생활은 죽을 때까지 이어졌으며 알코올 중독 치료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에 가면 장기 입원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으라고 의사가 진단할까봐 병원 문턱 자체를 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 요즘 인기를 끄는 막걸리. 하지만 술은 역시 술이라 많이 마시면 해롭다. ⓒcafe.daum.net/chongsang

우리 주변에는 이들처럼 알게 모르게 술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 가운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겪고 그 가족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도 많다. 과거 이들은 애주가나 두주불사, 약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은 치료를 받아야 할 중증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이다.

앞서 이야기한 언론사 선배와 이윤기 씨와 같은 부류들이다. 이들이 일찍 숨진 것은 자신의 건강 관리를 하지 않은 그들 탓도 있지만 술에 관대하고 술을 권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토 때문도 있다. 술의 위험은 개인적인 위험인 동시에 사회적 위험이다.

대한민국은 알코올을 별로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는 '술 위험 불감증 사회'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술 권하는 사회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 등 때문에 예전보다는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술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형편이다. 과거보다 젊은이들이 술을 덜 마신다고는 하지만 여성 흡연 인구 증가와 더불어 여성 음주는 오히려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여성 음주는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위험으로 등장했다.

술의 역사는 담배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 인간과 그만큼 친숙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흡연의 위험에 대해서는 잘 알고 금연 운동에 별 거부감을 못 느낀다. 하지만 음주 폐해나 절주 운동 또는 건전 음주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신경이 무디다.

담배의 신은 없어도 주신(酒神)은 있다. 그리스·로마인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가 포도밭과 포도주를 관장하는 술의 신으로 등장한다. 로마 신화에서는 술의 신이 바쿠스(Bacchus)이다. 디오니소스는 한번 죽었다 다시 살아난 신으로 죽음에서 부활한 구원의 신, 생명력의 신, 잔인함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도취와 쾌락의 신이다. 그리스 디오니소스제전에서 인간들은 무절제하고 음란했다고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크게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흔히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지만 절제하지 못하면 독약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술은 절제하기가 쉽지 않은 중독성 물질이다. 절제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주량만큼 마시지만 술에 탐닉하는 사람, 즉 알코올 중독자(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주량만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술을 먹고 결국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 단계로까지 넘어간다.

그 어떤 술도 약이 되는 약주(藥酒)는 없다. 약주는 술꾼들과 술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황된 말일 뿐이다. 그 어떤 약초를 넣어도 술은 술일뿐이다. 다시 말해 많이 마시면 무조건 해롭다. 어떤 술에는 어떤 효능을 지닌 물질이 많아 몸에 이롭다고들 한다. 인삼주, 들쭉술, 복분자술, 머루주, 포도주 등 몸에 좋은 성분을 지닌 열매 등을 넣어 만든 술이 요즘 참살이(웰빙)주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많이 팔린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 성분을 몸에 좋을 정도로 섭취하려면 그 전에 술병(酒病)에 걸리거나 술로 죽고 말 것이다. 그 성분을 원한다면 그냥 먹거나 갈아 마시는 등 다른 방법으로 섭취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술은 담배에 견줘 분명 좋은 점이 있긴 하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면 술은 '백해십익'쯤 되지 않을까. 식욕을 돋우고, 기분을 들뜨게 해 서로 잘 모르는 사람끼리도 말문을 트이게 하는 따위의 장점이 확실히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금연(禁煙) 운동은 있어도 절연(節煙) 운동은 없고 절주(節酒) 운동 또는 건전 음주 운동은 있어도 금주(禁酒) 운동은 없다.

술은 알코올(더 정확하게 말하면 에틸알코올) 성분과 물이 섞인 것이다. 알코올이 섞인 정도에 따라 도수가 낮은 술(맥주, 막걸리, 청주, 포도주 등)과 높은 술(소주, 위스키, 브랜디, 보드카, 고량주, 백주, 데킬라 등)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도수가 낮은 술은 대개 발효주이고 높은 술은 이를 증류하여 만든 증류주이다. 주량이 약한 사람은 도수가 낮은 술을 주로 마실 것이고 주량이 세거나 알코올 중독인 사람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인체에 끼치는 영향은 술의 도수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들어가는 알코올의 총량과 관련이 깊다. 알코올 도수 4%짜리 맥주 1000㎖나 40%짜리 양주 100㎖에는 같은 함량의 알코올이 들어 있다. 따라서 이들은 인체에 서로 엇비슷한 영향을 끼친다. 물론 이들을 짧은 시간에 마시느냐와 긴 호흡을 두고 마시느냐에 따라, 즉 인체가 알코올을 충분히 분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 영향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 각종 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 으레 등장하는 술. 대한민국은 여전히 '술 권하는 사회'이며 '술 위험 사회'이다. ⓒcafe.daum.net/chongsang

알코올은 핏속에 녹아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인체 장기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알코올을 분해하는 간과 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해 담배 못지않게 위험한 유해 물질이자, 중독 물질이 알코올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번 글에서 자세하게 다루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술은 음주 운전을 통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다. 얼마 전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있었던 농림수산식품부 공무원의 떼죽음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술을 마시고 난 뒤 자신을 자제할 수 없어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폭력 또는 성추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술김에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못하고 마구 떠들었다가 공중에게 알려져 쌓아놓았던 탑을 하루 만에 무너트리기도 한다.

술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길에서 넘어지거나 계단 같은 곳에서 떨어져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과음으로 직장에 늦거나 툭 하면 결근을 해 직장에서 눈 밖에 나 승진도 못하는 사람도 꽤 있다. 술로 인한 건강 위험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험도 매우 크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런 것을 애써 모른 척 할 뿐이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은 성적 때문에, 청년층은 취업 때문에, 결혼 적령기의 남녀는 애인이 없어, 병자는 질병의 고통과 치료비 걱정으로, 직장인들은 승진 문제로, 40~50대 중장년층은 실업의 공포로, 노인들은 경제력 상실과 소외감으로 힘든 삶을 이어간다. 이 때 순간을 잊기 위해 술에 탐닉하다면 술의 노예가 되기 쉽다. 술은 재충전과 생활의 활력소가 될 정도의 사회적 음주로 충분하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위의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하루빨리 치료를 받도록 하고 술도 담배 못지않게 해악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코미디언 이주일은 흡연으로 인한 폐암으로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하지만 아직 술로 인한 간질환이나 알코올 중독으로 죽어가면서 이런 의미 있는 말을 남긴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술 맛있습니까. 술도 독약입니다."

자신이나 주변에 술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알코올 전문 병원 또는 의원을 찾거나 대한보건협회 홈페이지에서 알코올 의존증 진단을 한번 받으시길 바랍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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