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칠순 잔치 때 밴드 공연이 있었다. 하필이면 바로 옆자리의 할아버지 귀에 강렬한 밴드 음악이 작렬한 것이 문제였다. 그때부터 할아버지의 삶이 달라졌다.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자는 것은 물론이고 속이 더부룩하거나 어지러운 증상도 생겼다. 얼굴은 붉어지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난청도 같이 왔다. 칠순 잔치가 지옥 잔치로 변한 것이다.
귀를 강하게 맞거나 귀 가까운 곳에서 폭발음이 있거나 해서 내이의 신경이 장해를 받아 생기는 것이 '음향 외상'으로 이른바 '급성 감음 난청'이다. 헤드폰을 끼고 크게 음악을 듣거나 나이트클럽 등에서 큰소리에 귀가 손상을 입게 되면, 그 직후 강한 이명이 생기면서 감음 난청이 생기는 것이다. 때로는 귀에 통증이 있기도 한다.
이런 감음 난청의 가장 많은 원인은 역시 총소리다. 소리이비인후과 팀이 지난해 병원을 찾은 20~30대 남성 가운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성 난청 환자 165명의 발병 원인을 조사한 결과 41% 가 소음으로 인한 난청이었고, 이 중 70%인 47명은 군에서 총성에 의한 음향 외상 난청을 얻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리는 사실 마음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공포 영화에서 소리를 빼면 '팥소 없는 찐빵'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명·현기증은 초조, 불안, 공포 등의 정신 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내원했던 남해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도 이런 괴로움 탓에 음독을 해 필자의 마음을 섬뜩하게 했다. (다행히 치료를 하고 나서 많이 호전되어 안심했다.)
이런 이명 등이 야기하는 정신 불안은 여러 가지 심각한 증상을 낳는다. 예를 들자면, 한 번 심한 이명과 현기증을 경험하면 '또 그런 이명(현기증)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불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할 경우에는 이명이 오지 않을 때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거나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몰려버리는 환자도 있다.
'이대로 미쳐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의 심한 이명·현기증을 겪고 나면, 가벼운 이명과 현기증만으로도 패닉 상태에 빠져 구급차를 타는 경우도 있다. 또 검사를 받아도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 '병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안심하면 괜찮지만 '중대한 질환인데도 의사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며 의료 쇼핑을 반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이렇게 이명과 현기증이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 민감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에게 많다. 이런 사람은 이명과 현기증에 대한 강한 집착이 새로운 스트레스가 되어 거듭 이명과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음향 외상 이명은 다른 이명의 치료보다 훨씬 어려워, 이런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음향 외상 이명은 소리를 감지하는 가느다란 신경세포인 유모세포가 직접 손상을 입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이명의 치료보다 훨씬 부담이 크다.
▲ 경찰은 최근 '음향 대포(지향성 음향 장비)'를 도입하기로 했다가 여론의 반발로 이를 철회했다. ⓒAP |
최근에 경찰이 시위 진압을 위해서 '음향 대포(지향성 음향 장비)'를 도입한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
다행히 경찰이 도입을 유보하기로 했지만, 앞에서 언급한 이명, 현기증 때문에 고통받는 환자를 생각하면 그것이 도입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지가 예상돼 지금도 아찔하다. 질서 유지의 궁극적인 목적도 국민의 행복이라고 경찰이 생각한다면 음향 대포 도입은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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