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하지 않고 그냥 혼자 살 수도 있겠다 싶어."
"나이에 쫓겨 결혼하긴 싫어, 결혼할 만큼 좋은 남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어."
"결혼은 하기 싫은데 아이는 있었으면 좋겠어."
예쁘고 똑똑하고, 유능하고 성격까지 좋은 여자 싱글들과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한 번쯤 듣는다. 그녀들의 나이는 대개 서른이 넘었고 가끔 남자친구가 있는 경우도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한다는 통념이 지배하던 때 20대를 보내고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과한 필자는, 그녀들에게 빨리 결혼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하지 못한다. 그러나 되도록 빨리 결혼해서 애도 빨리 낳는 게 남는 거라고, 싱글 남자들에게는 확신을 가지고 얘기한다.
결혼이란 아직도 여자에게 훨씬 더 불리한 제도이고, 독립적으로 자기 일을 잘하는 그녀들이 결혼과 그에 따른 잡다한 책임 속에서 얼마나 절망적인 순간을 겪어내야 할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변의 젊은 남자들은 점점 더 미숙해져 가는 것처럼 보여 (매사에 서툰 아들만 둔 엄마라는 필자의 입장이 작용했다는 점을 고백한다) 어서 결혼해서 좀 더 완전한 인간(?)에 가까워지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평생 같이 살고 싶었지만…
▲ <결혼해도 괜찮아>(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솟을북 펴냄). ⓒ솟을북 |
이 책은 최근에 개봉한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의 원작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두 번째 자전적 이야기다. 베스트셀러인 전작은 '불같이 사랑'한 남자와 20대에 결혼한 30대 여성이 '지독한 이혼'을 경험하고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용을 담았다.
전작을 읽은 이라면,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난 '완벽한 사랑' 펠리페를 기억할 것이다. 미국 여자 엘리자베스와 브라질 남자 펠리페는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영원한 정절도 맹세한다. 하지만 둘은 절대로 법적 결혼은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각각 힘든 이혼 과정을 겪으면서 사랑과 결혼이라는 달콤함 뒤에 숨은 대재앙을 경험한 탓이다.
수입을 철저히 분리 관리하는 등 결혼을 경계하며 2년간의 연애 관계를 지속하던 이들의 행복은 미국의 국토안보부가 개입하면서 풍비박산이 난다. 엘리자베스를 만나러 미국을 오가던 펠리페가 어느날 미국 입국을 거부당한 것이다. 결혼을 해서 합법적인 비자를 받지 않으면 미국에 영원히 입국할 수 없게 된 펠리페. 이 책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결혼'이라는 괴물에게 결론을 얻기까지…
<결혼해도 괜찮아>는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국토안보부로부터 남자친구가 결혼을 위한 이민 승인을 받기까지의 10개월 동안의 이야기다. 이 기간 동안 저자는 '결혼해도 괜찮아' 이렇게 자신을 설득하고 또 위로하는 긴 탐구에 들어간다.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펠리페와 같이 혹은 따로….
이런 식이다. 그는 베트남에 가서 몽 족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어떤 남편이었는지 묻는다. ("좋은 남편도 나쁜 남편도 아냐, 그냥 남편이야!") 결혼의 역사에 대한 책을 잔뜩 읽으면서 그간 몰랐던 사실도 안다. 예를 들자면, 결혼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는 어떻게 변해왔나? (초기 1000년 동안 기독교는 가능한 한 결혼을 자제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할 것을 권장했다!).
미국 결혼의 역사에서 황당한 사실도 발견한다. 남북전쟁 전에 남부의 노예들은 결혼 자체가 금지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58년, 개명천지 미국의 15개 주에서는 타 인종 간의 결혼이 불법이었다. 현대 미국에서도 기혼 여성은 미혼 여성보다 평균수명이 짧고 연봉도 7%나 줄어든다.
이미 결혼한 주변 사람도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다. 대공황 시대 농촌에서 7명의 자녀를 낳은 외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설마 좋은 남자를 만났다고 해서 바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글 쓰는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아니겠지?") 두 명의 아이를 위해 직업을 포기한 어머니도 인터뷰한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너희들이 다 자라 집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되었어!")
결혼한 혹은 미혼의 친구들에게 결혼하고 싶은 이유도 묻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지난 몇 세기 동안 서구의 결혼이 다행히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 사실을 확인한다. 결혼은 아주 느리지만 꾸준하게 좀 더 공정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결혼은 정부를 전복하는 행위?
그래도, 결혼해도 괜찮아, 이런 답을 얻기는 부족했는지 저자는 페르디난트 마운트의 <전복을 꾀하는 가족>의 주장을 되새긴다. 이 책은 "모든 결혼은 자동적으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행위"라고 말한다. 언뜻 황당하게 들리는 이런 주장을 자세하게 살펴보자. 엘리자베스의 해석이다.
"자유의사로 결혼한 연인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함께 살기를 결심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연인들은 둘만의 결합 안에서 아주 은밀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태생적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모든 권위주의적인 세력의 우선적인 목표는 강요, 교화, 위협, 혹은 선전을 통해 대중을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늘 함께 자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가장 은밀하고도 친밀한 행위는 결코 통제하거나 감시할 수 없다. (…) 어둠 속에 누워 있는 연인들 간의 대화야말로 '프라이버시'의 정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프라이버시는 섹스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전복적인 일면, 즉 '친밀함'을 뜻한다."
그는 이런 마운트의 관점을 접하고 나서부터, 결혼이 평온하게 느껴졌고 거대 권력에 대한 개인 혁명으로까지 여겨졌다. 이렇게 10개월에 걸쳐 자신을 설득한 그는 펠리페가 미국에 입국하고 닷새가 되기 전에 기르던 개를 포함해서 약 10명의 하객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아!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의 결혼을 놓고 온전히 10개월을 고민할 수 있을까? 10개월을 연구하고 고민한 이 결혼이 100일 만에 홀린 듯 해치운 결혼보다 훨씬 더 행복할까? 이 책을 읽고서, 다시 한 번 결혼해도 괜찮을까, 하는 선택의 순간을 맞을 수 있다면 어떤 결론을 내릴까, 자문했다.
지금이라면 결혼을 할까 말까, 아이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진지한 고민이 특별한 한 사람과 친밀감을 만들고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결혼은 마음의 자유를 대표한다"는 저자의 견해를 믿고 싶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 책은 결혼을 망설이는 싱글뿐 아니라 이혼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결혼 동화를 쓰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부드러운 가을 햇살 아래 <결혼해도 괜찮아>를 펴들고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진지하지만 달콤한 고민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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