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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자치'에 칼을 꽂은 박헌영과 좌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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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자치'에 칼을 꽂은 박헌영과 좌익들

[해방일기] 1945년 9월 14일

1945년 9월 14일

建國準備委員會에서는 다음과 같이 朝鮮人民共和國 中央人民委員會에서 결정한 宣言, 政綱, 施政方針을 발표했다.

宣言

1945年 9月 6日은 8月 15日과 함께 우리 조선 민족 해방 사상에 있어서 획기적인 날이다.

이 날 조선 민족 해방을 위하여 일본 제국주의와 투쟁을 계속하여 온 海內 海外의 각계각층을 망라한 혁명적 투사 천여 명의 회합 하에 全國人民代表會議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朝鮮人民共和國은 비로소 발생하였으며 정부를 조직하고 이를 운영할 인민위원은 선출되었다. 이리하여 조선 민족은 그 독립의 거대한 제일보를 내어 딛게 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로서 제국주의적 봉건적 탈취와 압박 하에 모든 방면에 있어서 자유 발전의 길이 막히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의 해방을 위하여 혁명적 투쟁을 계속하여 왔다. 이 끊임없는 혁명적 투쟁과 전후 문제의 민주주의적 국제 해결에 따라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羈絆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 민족의 다난한 해방 운동 사상에 있어서 새로운 제일보를 내어 디디었음에 불과하다.

완전한 독립을 위한 허다한 투쟁은 아직 남아 있다. 우리는 우리 앞에 가로 놓여 있는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우리들이 선출한 혁명 동지와 인민 대중의 기본적 요구에 응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잔존 세력을 완전히 구축하는 동시에 우리의 자주 독립을 방해하는 외래 세력과 반민주주의적 반동적 모든 세력에 대한 철저한 투쟁을 통하여 완전한 독립 국가를 건설하여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실현을 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는 조선 인민 대중 생활의 급진적 향상과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고 밖으로는 蘇聯, 美國, 中國, 英國을 비롯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민주주의적 제 국가와 제휴하여 세계 평화의 확보에 노력하려 한다. 우리는 右와 같은 의도 하에서 아래와 같은 정강과 시정 방침을 발표한다. (시정방침 27개조 생략함.)

政綱

1.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의 건설을 기함.
1.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와 봉건적 잔재 세력을 일소하고 전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충실하기를 기함.
1. 우리는 노동자 농민 기타 일절 대중 생활의 급진적 향상을 기함.
1. 우리는 세계 민주주의 제국의 일원으로서 상호 제휴하여 세계 평화의 확보를 기함.

1945年 9月 14日

朝鮮人民共和國中央人民委員會

(<매일신보>, 1945년 09월 19일)


(☞바로 보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의 선언문을 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발표하는 어정쩡한 모습이다. 건준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은 미군 진주를 앞두고 인공 수립을 서둘러 건준을 형해화해 놓았는데, 막상 이 시점에서는 대중이 그래도 실체를 알고 있는 건준을 앞세운 것이다.

선언문 첫 줄에서 9월 6일 인공 수립의 날을 8·15와 나란히 "해방 사상의 획기적인 날"로 내세운 데서 근년 우리 사회 일각의 '건국절' 주장을 떠올린다. 당시 건준이 민의를 수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성실한 노력을 쌓아나가는 것이 진정한 '건국 준비'의 길이었다. 그런데 건준은 서둘러 인공을 만들어냄으로써 성실한 노력을 쌓아나갈 근거를 스스로 포기해버렸고, 인공은 정부로서의 정통성을 무리하게 주장함으로써 분열과 대립의 길을 열었다.

'모험주의'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승산 없는 도발을 일삼는 모험주의의 진정한 목적은 눈앞에 보이는 승부에 이기는 것보다 대립의 격화 자체에 있다. 타협의 길을 막아 중도파의 입지를 없애는 것이고, 극단주의에 유리한 '선명성 경쟁'의 국면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극좌'나 '극우'의 이름이 실제 이념과는 관계없는 파시스트 성향의 집단에게 이용당하는 일이 많다. 근래에도 일부 정치인들의 극단적 변신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념보다 '모험주의'라는 전술 차원에서 바라보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해방 시점에서 중경 임시정부(임정)가 민족의 자산으로 가치는 가졌으되 완성품이 아니라 재료 상태라는 내 관점을 말한 바 있다. 건준도 마찬가지로 잘 활용될 경우 가치를 크게 키울 수 있는 재료였다. 그 재료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망가져버린 것은 여러 측의 책임이 어울린 결과였다.

건준의 목을 조른 것은 총독부였다. 조선 인민의 열망과 의지를 건준으로 모으게 해놓고는 그 활동 근거를 옥죄어 버렸다. 동아일보계로 대표되는 엘리트 집단은 건준의 곤경을 외면하거나 부추겼다. 그리고 박헌영이 이끄는 공산주의자들은 건준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

인공은 집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립 격화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다. 결국 인민이 바라던 성실한 '건국 준비' 대신 분란의 소지로서밖에 의미가 없는 이름만의 '공화국'이 남았다. 정부의 부서를 정했다고 하는데, 아직 귀국도 못한, 그리고 귀국하더라도 참여할 리가 없는 인물들의 이름을 올려 균형을 맞추는 시늉을 한 것을 보면, 그 저열한 의도에 앞서 치졸한 수법에 탄식을 금할 수 없다.

朝鮮人民共和國에서는 지난 6日 全國人民代表會議에서 선출된 인민 대표들이 그동안 연일 정부 조각에 주력한 결과 다음과 같은 부서를 결정 14日 政府로부터 발표하다.

朝鮮人民共和國政府 部署

主席 李承晩
副主席 呂運亨
國務總理 許憲
內部部長 金九 (臨時代理 許憲)
外交部長 金奎植 (臨時代理 呂運亨)
軍事部長 金元鳳 (臨時代理 金世鎔)
財政部長 曹晩植
保安部長 崔容達
司法部長 金炳魯 (臨時代理 許憲)
文敎部長 金性洙 (臨時代理 李萬珪)
宣傳部長 李觀述
經濟部長 河弼源
農林部長 康基德
保健部長 李萬珪
遞信部長 申翼熙 (臨時代理 李康國)
交通部長 洪南杓
勞動部長 李胃相
書記長 申康玉
法制局長 崔益翰
企劃局長 鄭栢

(<매일신보>, 1945년 09월 15일)


(☞바로 보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미국 점령군 사령부의 정보부장이며 공보관 격인 헤이워드 중령은 총독부의 경찰 조직과 인력을 그대로 활용할 것이며 민간의 자발적 치안 활동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일본인들과 한민당 측의 건준·인공 폄훼도 작용했겠지만, 결정적인 빌미는 인공 자신이 제공한 것이다.

선언문의 "우리의 자주 독립을 방해하는 외래 세력"이 누구를 가리킨 말인가? 미군정을 좀 겪어본 뒤라면 몰라도 막 시작되는 시점에서 할 말이 아니었다.

헤이워드 중령의 회견 기사를 붙인다.

14일 오전 10시부터 전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미국 주둔군 측과 신문 기자단과의 정례 회견 석상에서 헤이워드 중좌는 기자단의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미국 조선 주둔군 측의 소식을 말하였다.

(問) 아놀드 군정장관에게 조선인 정치고문을 둔다는 말이 있는데.
(答) 이에 대하여서는 아직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았다. 금후의 모든 문제도 하지 중장 자신이 또는 부하를 통하여 또는 조선의 정당 관계자와 실업가 기타 각계 유지들과 만나보고 그 의견을 들어서 시책에 참고로 하겠다.

(問) 경찰 조직에 대하여서는 개혁할 생각은 없는가?
(答) 당분간은 현존해 있는 경찰 조직을 그대로 이용하겠다. 현재 귀향 군인 또는 귀환 학도들이 치안대라 하여 경찰의 임무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러한 일은 금지할 방침이다.

(問) 그러면 현존해 있는 일본 경관도 그대로 용인한단 말인가?
(答) 당분간은 그대로 두겠다. 미국군으로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조선인을 경찰관으로 양성하여 전부 조선인으로 재편성하겠다. 하지 중장은 현존 경찰관에게 제일로 무기를 가질 권리를 주었다. 그리고 검거할 권리와 폭동이 일어나면 진압 할 수도 있으며 또는 치안 유지에 대하여서도 권리를 주었다.

(問) 미국군에서 京電을 접수하였다는 말이 있는데.
(答) 지난 목요일에 정식으로 접수하였다. 종업원 가운데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하루라도 빨리 돌아와서 취업하기를 바란다. 임금은 당분간 현재 지급하는 액을 급여하겠다. 그리고 경전에 소속되어 있는 조선인 기술자의 일부는 현재 일본 군대에서 접수한 화물 자동차를 수리하고 있다. 이것은 금후 조선 사람이 먹을 식량을 운반하기 위하기 때문이다. 거듭 부탁하거니와 하지 중장은 모든 직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각자의 직장으로 돌아와서 성실히 일하기를 바라고 있다. 또 일부 출판 관계 인쇄 공장의 직공들이 직장을 옮기는 등 동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방면에도 여러분이 신문을 통하여 빨리 직장으로 돌아가도록 널리 알려주기 바란다.

(<매일신보>, 1945년 09월 14일)

(☞바로 보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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