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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손실 이미 17조", 그래도 가스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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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영화 손실 이미 17조", 그래도 가스 민영화?

[가스 민영화 완성 목전·②] "막무가내식 공기업 공격, 무지의 소산"

지난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가스·전기·수도·의료·공항 등 공공 부문이 민영화될 것"이란 우려 섞인 소문이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이에 새누리당은 즉각 공식 입장을 내고 "명백한 허위 사실이자 흑색 비방"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국민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는다"라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공공 부문 민영화에 대한 정부·여당의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가랑비에 옷 젖듯 이미 상당 부분 각 공공 부문에서 민영화가 진행됐다고 지적한다. 특히 지난 4월 9일 김한표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 11명이 발의한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가스 민영화가 사실상 '완성' 단계에 다다를 것이라는 지적도 최근 제기되고 있다.

가스 민영화. 이는 곧 △도시가스 요금 인상과 △안전한 수급 관리 정책 무력화란 서민 경제 문제로 직결된다는 지적이 많다. 가스 민영화 논란을 쉽사리 '흑색 비방'이라고 낙인찍으며 때마다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프레시안>은 두 회에 걸쳐서 '가스 민영화' 논란을 다룬다. 논란 한가운데에 선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 내용을 뜯어보고, 이 법안이 서민 가계부와 공공 정책에 끼칠 영향을 따져 봤다. <편집자>

가스 민영화 완성 목전·
① 도시가스 소매 공급비 4배 인상 '폭탄' 코앞?

17조6000억 원. 지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정부가 가스 민영화를 추진함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국부 손실 규모다. 2006년 당시 열린우리당 김형주·조정식 의원과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그해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시장 논리에 따른 가스 정책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자 파문이 일었다.

당시 김형주 의원 등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17조6000억 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장기 도입 계약 미추진(8조2000억)과 △민간 기업에 직도입 허용(6조)이었다.

손실 발생 과정은 이렇다. 2000년대 초반 약 5년 동안 국제 가스 가격은 이례적으로 낮았다. 천연가스를 100퍼센트 수입하는 한국으로선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구매 '황금 시기'였다. 그런데 이 시기, 정부는 국내 물량의 95퍼센트가량을 책임지는 가스공사엔 장기 도입 계약(보통 20년)을 연속해서 불허했다. 반면 SK(당시 K-POWER)와 포스코 등 민간 기업에는 장기 직도입을 허용해 특혜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다름 아닌 '민영화'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가스공사 분할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사가 장기 계약을 체결하면 걸림돌이 된다는 방침에 따라, 수차례에 걸쳐 공사가 제기한 신규 장기 계약 체결 필요성을 무시하고, 비교적 도입가가 비싼 중·단기 계약을 연장하는 방식만 허용했다.

그러던 사이 황금 시기는 막을 내렸다. 2006년, 국제 가스 가격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이와 동시에 국내 소비량도 증가해 물량이 부족해졌다. 가스 직도입을 하겠다며 공사를 외면하던 GS 등 민간 기업은 2006년 말 직도입을 포기하고 공사에 물량 공급을 요청했다. 안정적인 수급을 책임져야 하는 공사는 중기 계약보다 mmbtu(25만kcal의 열량을 내는 가스 양)당 크게는 7달러가 비싼 스팟(현물 거래) 시장에서라도 부족 물량을 조달해야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때문에 2003년 이후 발생한 추가 도입 비용만 약 1조 원이다.

한편, 황금 시기에 도입 허가를 받은 SK는 2004년 연간 60만 톤의 가스를 mmbtu당 4달러에 싸게 들여올 수 있었다. 가스공사의 평균 도입 가격인 11~12달러보다 한참 낮은 가격이다.

▲2006년 당시 열린우리당 김형주 의원, 조정식 의원,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정부가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와 이용후생 증진'을 목적으로 추진해 온 가스 산업 구조 개편, 경쟁 도입, 사유화 정책이 17조6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혈세를 낭비한 실패한 정책이었으며, 그 파장으로 인해 도시가스 요금 인상과 수급 불안 사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자료 : '정부의 가스 산업 정책 파행과 그 영향'<2006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민영화 정책 실패 사례가 민영화 추진 근거로 둔갑"

이처럼 가스공사와 민간 기업의 천연가스 도입 비용에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정부의 민영화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논란이 되고 7년 후인 지금, 관련 내용이 재가공돼 역으로 민영화 추진 논리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어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21일 <중앙일보>는 산업통상자원부의 '도시가스 직수입 수입 확대에 따른 영향 분석'이란 자료를 바탕으로 "똑같은 가스 1t 수입하는 데 민간은 39만 원, 정부는 92만 원"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가스공사와 달리 SK E&S는 2004년 직수입을 통해 mmbtu당 4달러의 낮은 가격으로 가스를 들여와 전력 생산 발전기를 돌렸고, 덕택에 한국전력(이하 한전)은 전기 구입 비용을 지난해에만 1230억 원 아낄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2004년은 가스 공사의 장기 계약은 불허되고, 민간 기업의 직도입은 허가된 가스 시장 황금기였다.

<서울신문>은 일본과 비교했다. 지난달 23일 발행된 "가스公, LNG값 10조 바가지 썼다" 기사에서 신문은 2006~2009년 사이 가스공사가 1억390만 톤의 LNG를 수입하면서 일본보다 9조3000여억 원 비싸게 수입했으며, 이는 국내에 도입 경쟁사가 없기 때문이라는 업계 시각을 전했다.

공공운수노조 가스공사지부 이종훈 지부장은 "황당하다. 2006년 국정감사에서 민영화 정책 실패로 지적된 사안이 어느 날 갑자기 가스공사 해체 근거로 둔갑했다"며 일본과 도입 가격 차이가 발생한 배경을 재차 설명했다.

이 지부장 설명에 따르면, 물량은 통상 계약 연도로부터 5~6년 뒤에 들어온다. 일본이 2006~2009년 mmbtu당 평균 3.8달러에 싸게 들여온 물량은, 황금 시기였던 2000년대 초반 체결한 계약에 따른 것이다. 이 지부장은 "반면 한국은 정부의 불승인으로 장기 계약을 제때 체결하지 못했으니 도입 가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도입 경쟁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민영화 정책 추진으로 좋은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생긴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가스 시장이 다시 판매자 우위로 돌아선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일본과 한국의 도입 단가를 비교하면, 가스공사의 가격 경쟁력이 일본보다 높다는 설명도 있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은 1톤당 평균 529달러, 일본은 564달러로 가스를 도입했고, 2011년에는 한국 670달러, 일본 766달러, 2012년에는 한국 765달러, 일본 864달러로 도입했다.

또 SK가 mmbtu당 4달러의 계약을 체결한 2004년, 가스공사는 SK보다 낮은 3.9달러로 연간 550만 톤의 부족 물량을 조달해 가격 경쟁력 면에서 대기업에 뒤처지지 않았다.

대구대학교 안현효 교수는 "가격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던 맥락(민영화 정책과 국제 가격 변동)은 설명하지 않고, 가격표만 딱 놓고 비교해선 안 된다"며 "혹여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런 비교는 민영화 정책 실패를 피해 주체인 공기업에 전가해 민영화 추진 논리의 근거로 사용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가스 산업 특성 무시한 막무가내식 국제 비교

운영 원리가 애초에 다른 민간 기업과 가스공사를 비교하는 것도 모자라, 지하자원 조건과 환경 자체가 상이한 외국과 한국을 1대1로 단순 비교하는 무리수도 보인다.

<중앙일보>는 같은 기사에서, 가스 공사 독점 체제와 불리한 유가 연동 계약 방식 때문에 외국과 달리 국내 LNG 수입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교 상대로는 미국에서 거래되는 천연가스 가격을 들었다. 미국에선 현재 가스 가격이 고점(2008년) 대비 3분의 1토막(4.05달러)이 났는데, 국내 LNG 도입 단가는 같은 기간 25퍼센트 올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가스 대량 생산지인 미국과 100퍼센트 수입국인 한국을 이렇게 비교해도 되는 걸까. 전문가들은 북미와 유럽, 아시아는 가스 생산량, 수송 방식과 거리, 대체재의 존재 여부 등에 따라 시장 구조가 상이하기 때문에 도입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안 교수와 가스공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미국은 자국 소비량의 90퍼센트가량을 자가 생산분에서 충당한다. 나머지 10퍼센트 중 상당 부분은 우리가 들여오는 LNG가 아닌 PNG(파이프를 통해 들여오는 기체 형태의 천연가스) 형태의 수입 물량이다. 유럽은 PNG 수입 물량이 전체 소비량의 50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석유가 나지 않으며 파이프를 땅 밑에 묻을 수도 없는 아시아 국가들은 액화 공정을 거친 가스(LNG)를 수송선으로 실어 나른다. 2011년 기준 세계 LNG 거래량의 63퍼센트를 아시아가 수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가스공사가 미국 시장의 가격대로 LNG를 도입하지 않았다고 '비싸게 샀다'는 비판을 하는 것은, 가스 산업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무지한 얘기"라며 "아시아 지역 LNG 수입 계약 대부분은 유가 연동 장기 계약이며, 수급 안정성을 위해 독점적 계약 방식을 대체로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대만은 국영 기업인 CPC가 LNG를 독점 수입하고 있다. 중국은 3대 국영 석유·가스 기업인 CNPC와 씨노펙(Sinopec·중국석화), CNOOC가 도입을 주도한다. 일본은 민간 기업이 주도해 가스를 도입하고 있으나, 형태로 보면 동경가스, 동경전력, 오사카가스와 같이 지역적 독점 구조다.

▲ 현대중공업 LNG 수송선 ⓒ연합뉴스

박근혜의 공공 정책, 이명박과 다를까?


지난달 9일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은 민간 기업에 가스 직도입을 더욱 폭넓게 허용하는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오는 6월 상임위(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 1편 기사 참조)

이에 따라 한동안 공기업 독점의 폐해와 경쟁 체제의 효율성을 역설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가스업계 관계자들은 해당 법안 통과를 위한 로비가 시작된 지 이미 오래됐다고 전한다. <중앙일보>가 인용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료 역시 "국회의원을 상대로 상황 설명을 하기 위해 만든 비공개용 자료"라고 산자부 관계자는 조심스레 전했다.

안현효 교수는 "공공 정책을 실행하는 공기업과,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기업은 작동 원리가 다르다"며 "방만한 공기업 문제는 조직 개편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무작정 시장화를 한다고 소비자들에게 좋은 여건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감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는 이명박식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철도 상하 분리, 가스 직도입 확대 등 현재 상황을 보면 이전보다 진화한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이종훈 가스노조 지부장 역시 걱정이 많다. 그는 "민간 기업을 키워서 그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산업을 키운다는 낙수 효과가 항상 민영화 추진 논리로 등장하지만, 이명박 정권 5년에 걸쳐 이런 낙수 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증명됐다"며 "박근혜 정부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가스는 공공재이자 필수재"라며 "가스는 공급 안정, 에너지 기본권, 에너지 안보를 우선으로 한 공공적 소유·운영·공급 원칙에 따라 공급돼야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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