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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에서 우리의 욕망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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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에서 우리의 욕망을 엿보다!

[프레시안 books] 이나미의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

프로이트가 100여 년 전 시작한 정신분석학은 그가 살아있을 때부터 가지를 치기 시작해서 많은 분파가 만들어졌다. 모두 인간 무의식을 탐구하여 치유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한때 프로이트의 가장 가까운 제자였던 융이 그와 결별하고 발전시킨 분석 심리학(analytic psychology)은 몇 부분에서 프로이트의 고전적 정신 분석과 차이가 있다. 그 하나가 집단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것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의 본태적 심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점이다.

그래서 정신 분석을 할 때,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이 분석을 받는 사람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최대한 의존하여 그 사람에게 갖는 개인적 의미를 중요시 여기는 데에 비해, 분석 심리학적 정신 분석에서는 그가 속한 사회·문화적 상징과 사회와 개인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개인이 속한 사회의 역사적 맥락과 문화에 대한 연구, 그와 관련한 상징의 개별적 의미에 대해서도 분석 심리학은 상당히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치료에 적용한다.

분석 심리학에서는 설화나 민담을 집단 무의식의 특성과 원형이 반영된 상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텍스트로 간주한다. 설화나 민담과 같은 옛이야기는 개인의 창작이 아닌,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걸러진, '어떤 의미심장한 울림을 주는 내용만 끝까지 살아남은' 공동체가 모두 공감하는 엑기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전래 동화는 민담 중에서 특히 아이들의 심리 발달에 필요한 내용만 골라서 정제된 것이라 하겠다.

▲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이나미 지음, 민음인 펴냄). ⓒ민음인
이와 같은 배경을 이해하고 이나미의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민음인 펴냄)를 살펴보자. 이나미는 베스트셀러를 여러 편 낸 정신과 전문의다. 그는 뉴욕 융 연구원에서 분석 심리학 수련을 받고 돌아왔다. 그가 책에서 밝혔듯이 다른 정신 분석 연구소와 달리 융 연구원은 민담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저자에게 우리 민담을 분석 심리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그런 점이 이 책의 장점이며 동시에 단점이 되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우리 민담을 텍스트로 한 분석 심리학 이론의 초심자용 개론서이자, 현대 한국 사회 비평이다. 책은 7장으로 구성돼 있다. 구성은 분석 심리학의 중요한 이론적 테마들을 얼개로 하고 있다.

첫 장 '남성 속의 여성, 여성 속의 남성'은 남성 속의 여성성 '아니마', 여성 속의 남성성 '아니무스'를 가지고 '여우누이', '우렁각시', '접동새누이', '가시내'를 풀어냈다. 두 번째 장은 '선녀와 나무꾼', '베 잘 짜는 처녀', '소박맞은 세 자매', '구렁덩덩 새 선비'를 소재로 했는데 인간관계의 주요한 한 축인 남녀 관계와 결혼이라는 발달 과정을 통해 성숙을 이야기한다.

'베 잘 짜는 처녀'에서 주인공 처녀는 자기보다 나은 신랑감을 원한다. 매번 처녀는 한 가지씩 신기한 재주가 있는 신랑감의 흠집을 발견해서 퇴짜를 놓는다. 결국 누구와도 결혼하기 어려워진 처녀는 실망하여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지나가던 총각이 소쿠리를 짜서 구하는데 처녀는 '사람 살리는 것이 가장 큰 재주'라면서 그와 결혼하여 살게 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결혼을 망설이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유용한 이야기로 본다. 재주는 있지만 까다로운 처녀를 찾아오는 구애의 대상을 여성 안의 아니무스로 해석한다. 처녀에게 처음 나타난 힘센 남성은 일종의 원초적 아니무스인 것이다. 이런 분석을 하며 이를 현대 사회에서 쓸쓸하게 나이를 먹으면서 불안을 느끼는 여성들의 심리 상태로 이어나간다.

결국 결혼을 해서 배우자에게 끊임없이 불만을 갖건, 결혼을 하지 않고 있건 간에 결국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고 한다. 이나미는 자기도 잘 난 사람이나 더 괜찮은 사람을 원하는 자아의 팽창(ego-inflation) 상태를 벗어나는 길은 처녀가 그랬듯이 어린애와 같은 '나'를 과감히 버리고 죽을 각오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인생의 역설이 숨겨진 이야기로 보는 셈이다.

지은이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총 26편의 우리 민담을 분석하였다. 본문 중에 상자를 넣어서 아니마, 개성화, 집단 원형, 철학자의 돌, 걸인 원형, 대상 관계 이론과 같은 용어를 설명해 이해를 돕는다. 위에 소개한 한 편의 예에서 봤듯이 이 책은 풍부한 담론을 담고 있다. 민담 자체도 흔히 보던 것이 아닌 것이 반 정도 되어 읽고 이해하는 데 노력이 필요하다.

민담의 줄거리, 등장인물, 주요한 소품을 갖고 저자는 인간의 기본적 심리와 무의식, 성숙을 위한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현대인의 심리 특징이나 사회 병리적인 측면으로 넘어가 분석을 한다. 그 과정의 자유도가 높아서 마치 정신분석 과정의 자유 연상을 하는 것과 같이 느껴질 정도다.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선녀와 나무꾼'을 분석하면서 사랑에 빠진 연인의 심리로 시작해서, 소멸과 재탄생을 설명하고, 나무꾼과 사냥꾼의 상징적 의미로 넘어간다. 그러더니 선녀를 훔쳐보는 나무꾼의 관음증을 '훔쳐보는 톰'의 유래로 설명하더니, 성경 이야기에서 요즘 어린이들의 음란 사이트 접속과 청소년의 성에 대한 호기심까지 발전해 나간다.

급기야 동물원과 원시 부족의 성교육으로 넘어가 결국 미혼모와 10대 임신에 관대해지는 것은 종족 보존 본능의 거대한 집단 무의식이라는 결론까지 간다. 그 후에야 다시 이야기의 본류로 돌아와 선녀와 나무꾼의 성적 교합과 옷을 빼앗긴 선녀의 심정으로 돌아가 귀한 딸에서 졸지에 무보수 도우미가 된 고학력 현대 여성의 결혼의 불합리성으로 넘어간다. 그러고는 저자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까지 나온다.

여기까지가 그 장의 절반 정도에 이르는 주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현기증이 느껴진다. 저자의 현란하고 방대한 지식과 오랜 분석 경험과 실제 치료 경험을 통해 얻은 깊은 성찰의 결과물에 독자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꽤 오랜만에 책을 펴낸 저자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던 것인지, 편집자의 욕심이 과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평자와 같이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이 읽을 때에도 뻑뻑하다고 느껴지는 면이 있는데,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게 될지 사뭇 염려가 되었다. 또 타깃이 명확하지 않다. 물론 좋은 책은 모든 층의 관심을 가진 독자가 시대를 초월해 사랑하는 책이다. 최근의 트렌드는 그보다는 다소 집중된 포커스를 독자와 시장이 요구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민담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학술서적 측면이 약하다. 또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민담을 통한 자기 치유서라는 측면에서는 대중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만일 필자가 이 책을 권한다면 처음 분석 심리학이나 정신 분석에 대해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우리 옛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서 응용이 금방 되고, 이론 설명도 친절하고, 무엇보다 국내 저자이면서 필력은 공인된 이가 써서 읽혀지는 책이니 한 번 읽어봐"라고 권할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나서 이나미의 국내 출판계 복귀가 반가웠고, 동시에 앞으로 새로 낼 책이 기대가 되었다. 지금 이 책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느라 애를 쓰며 수위와 속도 조절을 하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 책에서 풀어낼 이야기보따리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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