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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통하지 않은 임시정부의 잔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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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통하지 않은 임시정부의 잔꾀

[해방일기] 1945년 9월 3일

1945년 9월 3일

3천만 동포에게 고함

친애하는 국내외 동포자매형제여 파시스트강도의 최후의 疊壁을 고수하던 일본제국주의는 9月 2日에 降書에 서명을 하였다.

일본제국주의자의 패망으로 인하여 擧世가 기뻐 뛰는 중에 있어서 조국의 해방을 안전에 목도하면서 3천만 한국민족이 欣喜 雀躍하는 중에 있어서 본정부가 근 30년간에 주야로 그리던 조국을 향하여 전진하려는 前夕에 있어서 일찍이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기 위하여 본 정부를 애호하고 독려하던 절대다수의 동포와 또 이것을 위하여 본정부와 流離轉輾하면서 공동분투하던 동포의 앞에 본정부의 포부를 고하려 할 때에 본주석은 비상한 감분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일국의 흥망과 일민족의 성쇠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운이 단절되는 데 있어 수치심 因素가 허다하였다. 하면 금일의 조국이 해방되는데 있어 刻苦하고 壯絶한 노력이 있었을 것은 3척의 동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허다한 우리 선열의 고귀한 열혈의 대가와 中·美·蘇·英 등 동맹군의 英勇한 戰功이 없었으면 어찌 조국의 해방이 있을 수 있었으랴. 그러므로 우리가 조국의 독립을 眼前에 전망하고 있는 이때에 있어서는 마땅히 먼저 선열의 업적을 추상하여 滿腔의 경의를 올릴 것이며 盟軍의 위업을 선양하여 열열한 사의를 표할 것이다.

우리가 처한 현 계단은 건국강령에 명시한 바와 같이 건국의 시기로 들어가려는 과도적 계단이다. 다시 말하면 復國 任務를 아직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건국의 초기가 개시되려는 계단이다. 그러므로 현하 우리의 임무는 번다하고도 복잡하며 우리 책임은 중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조국의 독립을 완성함에는 우리의 一言 一句와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다 영향을 주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매사를 임할 때에 먼저 치밀하게 분석하여 명확한 판단을 내리고 명확한 판단 위에서 용기 있게 처리하여야 한다.

본 정부는 이때에 당면정책을 如左히 제정 반포하였다. 이것으로써 현 계단에 처한 본 정부의 포부를 中外에 천명하고자 함이며 이것으로써 前進路線의 지침을 삼고자 함이다. 또한 이것으로써 동포제위의 당면노선의 지침까지 삼으려하는 것이다. 친애하는 우리 동포자매형제여 우리 조국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민주단결을 완성하며 국제간의 안전과 인류의 평화를 증진하기 위하여 본정부의 당면정책을 실행하기에 공동노력하자.

臨時政府 當面政策

1) 본 임시정부는 最速期間內에 곧 입국할 것.
2) 우리 민족의 해방 及 독립을 위하여 혈전한 中·美·蘇·英 등 우방민족으로 더불어 절실히 제휴하고 연합국헌장에 의하여 世界一家의 안전 及 평화를 실현함에 협조할 것.
3) 연합국 中에 주요한 국가인 中·美·蘇·英·佛 5强에 向하여 먼저 우호협정을 체결하고 外交途經을 別附할 것.
4) 盟軍駐在期內에 일체 필요한 事宜를 적극 협조할 것.
5) 평화회의 及 각종 국제집회에 참가하여 한국의 應有한 발언권을 행사할 것.
6) 국외임무의 결속과 국내임무의 전개가 서로 접속되매 필수한 과도 조치를 집행하되 전국적 普選에 의한 정식정권이 수립되기까지의 국내과도정권을 수립하기 위하여 국내외 각층 각 혁명당파, 각 종교집단, 각 지방대표와 저명한 각 민주영수회의를 소집하도록 적극 노력할 것.
7) 국내 과도정권이 수립된 즉시에 본정부의 임무는 완료된 것으로 認하고 본 정부의 일체 직능 及 소유물건은 과도정권에게 교환할 것.
8) 국내에서 건립된 정식정권은 반드시 독립국가, 민주정부, 균등사회를 원칙으로 한 신 헌장에 依하여 조직할 것.
9) 국내의 과도정권이 성립되기 전에는 국내 一切 질서와 대외 一切 관계를 본 정부가 負責 유지할 것.
10) 교포의 안전 及 귀국과 국내외에 거주하는 동포의 구제를 신속 처리할 것.
11) 敵의 일체 법령의 무효와 신 법령의 유효를 선포하는 동시에 적의 통치하에 발생된 一切罰犯을 사면할 것.
12) 敵産을 몰수하고 敵僑를 처리하되 盟軍과 협상을 진행할 것.
13) 敵軍에게 被迫 出戰한 韓籍軍人을 국군으로 편입하되 盟軍과 협상 진행할 것.
14)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와 賣國賊에 대하여는 공개적으로 엄중히 처분할 것.

大韓民國 27年 9月 3日
大韓民國臨時政府
國務委員會 主席 金九

(☞바로 보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본인 통치의 종식이 목전에 다가온 상황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를 대표한 김구의 성명은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백성으로 교육받고 살아온 우리 눈에는 이 성명의 내용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당시에 칼자루를 쥐고 있던 미군 측에서는 군정의 통치권을 침해하는 월권으로 보일 내용도 있고, 당시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주어진 상황을 순조롭게 풀어가는 길이 될지 의아하게 생각될 만한 내용이 있었다.

먼저 호소문 속에 밑줄 그은 부분을 (필자가 그은 밑줄임) 보면 해방의 공로가 선열과 연합군의 양쪽에 있다. 임정의 공로라고 하기가 겸연쩍어서 "허다한 우리 선열"을 내세웠겠지만, 그 선열의 자격을 임정이 대표한다는 뜻은 드러내 표현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그래서 임정이 해방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것이니까. 선열의 뜻을 이어받은 임정이 대한민국의 주인 입장에서 도와준 연합군에게 감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에 있어서 선열이나 임정이 일본을 격파한 공로가 그리 크지 않았다. 연합군 입장에서는 아무 공로도 없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임정이 이렇게 주인 행세 하고 나서는 것을 연합군 측, 특히 군정 관계자들이 본다면 재외 한국인의 집단 하나가 종전에 편승해서 한국을 집어먹으러 달려드는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은 파렴치한 획책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연합군은 힘들여 전쟁을 끝내놓고, 일본의 통치 지역에 대한 점령 방침까지 발표해놓았다. 한국은 미국과 소련이 분할해서 관리하기로 해놓았다. 그런데 임정이 "아, 그 동안 수고 많았어요. 이제 도움이 더 필요 없으니까 잘 가세요. 고맙습니다." 하는 것 아닌가. "당면 정책" 중 3조, 5조, 9조, 11조 등을 보라. 완벽한 주권국가 노릇을 즉각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정말 임정에게 그런 자격과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연합국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런 과정 없이 불쑥 나서서 주인 행세를 하니 "최소한의 예의"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임정 사정을 알 만큼 아는 사람이 보더라도 임정에게 큰 기대를 걸 모퉁이가 무엇이 있었겠는가. 자기 앞가림이나 제대로 할지 의심스러운 장개석 밑에서 놀던 조무래기들 아닌가.

물론 우리는 안다. 장개석 밑에 매여 있던 것이 어떤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는지. 겉으로 드러난 창대한 업적은 없더라도 어려운 세월 동안 그 깃발 하나 지켜온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그리고 민족의 앞날을 위한 어떤 훌륭한 생각들이 임정을 중심으로 어떻게 펼쳐져 왔는지.

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 한국인끼리나 알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폴란드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망명 정부를 지키고 연합군에 100만 명에 가까운 병력을 제공하고 국내의 독립운동도 치열했던 폴란드를. 그 폴란드가 패전국 일본보다 더 참혹한 대접을 받지 않았던가. 연합군은 힘이 뛰어난 존재였지, 덕이 뛰어난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 임정이 그들에게 폴란드보다 좋은 대접을 받을 밑천이 무엇이 있었는가?

이 성명서를 본 미국 관계자들 중에는 며칠 전 임정 요인들이 중경의 대사관을 찾아와 귀국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얘기가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빨리 돌려보내주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할 수 있으니 빨리 귀국시켜달라고 한 얘기. 미국의 도움으로 귀국한다면 미국 점령군이나 혹은 국무성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망록을 남겼다는 얘기. 그러던 임정이 해방된 나라의 주인 입장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나선 것은 미국인들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없는 행위였다.

임정은 당시 한국 민족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구체적 형태를 가진 조직으로서 물질적 자산이라기보다 힘겹게 지켜온 민족의 깃발로서 상징적 자산이고 정신적 자산이었다. 그 가치를 잘 살려내는 길은 조직의 힘을 키우는 데보다 민족의 뜻을 잘 대변하는 데 있었다. 대다수 민족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연합군 측에서도 받아들일 만한 입장과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참으로 임정이 민족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임정이 참으로 '임시정부' 역할을 해내는 길이었다.

8월 30일 임정 요인들의 미국 대사관 방문과 오늘의 성명서를 보면 임정의 자세가 걱정스럽다.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자기네를 빨리 돌려보내줘야 한다는 것은 너무 현실주의적으로 보이고, 선열의 공로를 내세워 주인 행세를 하려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별로 해놓은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큰 신뢰와 기대를 걸고 있으며, 우리가 그 기대에 전력으로 부응한다면 한국의 새 질서를 원만하게 형성하는 데 큰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일의 성공 여부는 점령군의 노력에도 크게 달려 있는 것이니, 우리는 점령군의 입장도 가능한 한 존중하겠다. 한국인과 점령군의 협력 관계를 원활히 하는 것을 우리의 사명으로 삼겠다."

이런 겸손하고 솔직한 태도가 임정의 성공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산주의자들을 들먹이는 것도, 선열의 공로를 과장하는 것도, 큰 변화를 겪고 있던 당시 상황에 맞지 않는 잔꾀였다고 생각한다. 연합군은 덕이 없고 힘만 있는 존재였는데, 힘은 없어도 덕이 있는 존재로서 임정이 가치를 세워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힘이 있는 척 잔꾀를 부리는 것은 덕도 없고 힘도 없는 존재가 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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