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바티칸 교황청에서 외계 생명체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가 열렸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이다. 바티칸에서는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그들의 교리와 어긋나지 않는다고 논평했지만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크다. 빅뱅 우주론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것을 하나님의 창세기 말씀의 증거로 곡해시킨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는 영국왕립학회에서 외계 생명체 특히 외계 지적 생명체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가 두 차례나 열렸다. 이번 가을에 두 차례의 학회가 더 예정되어 있다. 영국왕립학회 350년 역사상 이 주제로 학회가 열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가장 보수적인 두 단체에서 외계 지적 생명체를 주제로 연이어서 학회를 열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조짐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통 세티 과학자들이야 그동안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낙관적 견해를 꾸준히 밝혀왔지만 다른 곳에서도 작지만 의미 있는 파동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조우를 피해야 한다는 스티븐 호킹의 다소 '과격한' 발언이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영국왕립학회장인 천체물리학자 마틴 리스는 우리들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형태로서의 외계 지적 생명체가 이미 우리 주위에 존재할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올해 들어서 폴 데이비스, 세스 쇼스탁, 덕 바코치, 폴 슈크를 비롯한 세티 과학자들도 앞다퉈 새로운 세티 관련 책을 내놓고 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최근의 외계 생명체 연구 결과 때문에 과학자도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합리적 개연성이 현실로 실현될 단계에서 생기는 이성적 떨림이라고나 할까. 과학자들은 2018년이면 화성 탐사선 엑소마스(ExoMars)가 화성의 땅을 파서 물에 젖은 흙 속에서 메탄을 뿜어내는 미생물을 발견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또 케플러 우주망원경의 첫 43일간의 관측 결과에 대한 비공식 발표를 통해서 이미 드러났듯이, 지구와 꼭 닮은 태양계 밖 행성의 존재도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태양계 밖에 그런 존재가 한두 개도 아니고 발견된 750여 개 외계 행성 후보 중 140여 개에 이르다니.
내년 2월 공식 발표에서 지구와 거의 똑같은 외계 행성의 존재가 기정사실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런 곳에서는 지구 생명체와 비슷한 생명체가 존재할 개연성이 높고, 더 나아가 지적인 능력이 있는 생명체도 기대할 수 있다. 외계 지적 생명체의 인공적인 전파 신호를 찾는 전용 망원경인 앨런 텔레스코프 어레이(Allen Telescope Array·ATA) 시스템을 100% 가용해서 이들 지구형 행성의 관측에 전념한다면 쇼스탁의 기대보다 더 빨리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콘택트>(전2권, 칼 세이건 지음, 이상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
"이 분야의 눈부신 발전으로 말미암아 이 책이 시대에 뒤떨어진 형편없는 것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 내 마음."
하지만 1980년대 그의 비전과 통찰은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이 책의 내용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만큼 그의 미래 예측이 정확하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의 상상력이 과학을 앞서 나갔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콘택트>의 예언이 실현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외계 지적 생명체 탐색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아르고스연구소는 현실 속에서 세티연구소로 실현되었다. 아르고스연구소 소장 엘리 애로웨이 박사는 현실 속 세티연구소 소장 질 타터 를 닮았다. 뉴멕시코 주의 사막에 설치된 131대의 전파망원경은 캘리포니아 주에 건설된 42대의 ATA로 구현되었다.
"저 외계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상상해 봐요. 그런데 지구에서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거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들을 능력이 있는데도 의지가 없어 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 문명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현실에서는 아직 외계 지적 생명체의 인공적인 전파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지만 21세기를 코앞에 둔 소설 속 시점에서는 엘리의 바람대로 직녀성 근처에서 날아온 외계 지적 생명체의 '기계 장치 설계도'를 발견하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우여곡절 끝에 기계 장치가 완성되고 엘리를 비롯한 다섯 명이 외계 지적 생명체를 만나는 탐험에 나선다.
외계 지적 생명체는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의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서서 그들이 알고 있는 제한된 지혜를 이야기한다. 현실에서는 지구와 닮은 외계 행성에서 날아오는 인공적인 전파 신호가 2035년 이전에 ATA에 의해서 포착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간단한 반복 신호일 것이다. 그래서 칼 세이건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들의 미래다.
"평생 우주를 연구했지만 그 안의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놓쳐버린 셈이었다. 우리와 같은 자그마한 생명체는 오로지 사랑을 통해서만 광대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랜 미지에의 꿈인 외계 생명체의 발견이 임박한 특별한 시점에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행운이다. 그런데 발견의 순간이 다가와 그 떨림이 더해갈수록 어쩐 일인지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 더해온다. 늘 먼 시차적 관점으로 우주를 바라보다가 정작 내게 정말 소중한 이들의 마음은 놓친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혹시 그들이야말로 내 주변의 외계 지적 생명체는 아닐까? 오랜만에 집어든 <콘택트>가 이번에는 새삼 이런 의문을 던져준다. 몇 년 전에 칼 세이건의 지적 동반자였던 앤 드루얀을 만난 적이 있었다. 우주여행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그 사람이라면 몰라도" 가지는 소중한 사람을 놓아둔 채 지구를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말했다.
"이 우주에 살아있는 한, 그리고 수학에 평균적인 재능만 가지고 있는 한 조만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외계 지적 생명체는 이미 여기 있었다. 모든 것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걸 발견하기 위해서 자기가 사는 행성을 떠날 필요는 없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래도 칼 세이건 '그 사람이라면' 지구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한여름 밤 직녀성은 변함없이 높이 떠 있고 문득 가까운 지인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당장 그들 안의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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