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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여, '사탄의 시스템'을 두려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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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상 사람들이여, '사탄의 시스템'을 두려워하라!"

[인터뷰] <불편해도 괜찮아> 펴낸 김두식 교수

2004년 <헌법의 풍경>(교양인 펴냄), 2007년 <평화의 얼굴>(교양인 퍼냄), 2009년 <불멸의 신성가족>(창비 펴냄).

김두식 경북대학교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작년까지 펴낸 세 권의 책이다. 2~3년의 시간차를 두고 나온 이 책은 지식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검사 출신의 법학 교수가 법조계를 향해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것도 모자라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옹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법조계 출신 인사에 대한 편견을 깨는 유려한 글쓰기도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김두식 교수가 2010년 들어서 두 권의 책을 연달아 펴냈다. 지난 1월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홍성사 펴냄)를 낸데 이어서, 최근에는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불편해도 괜찮아>(창비 펴냄)를 내놨다. 법학 교수가 뜬금없이 '교회'와 '인권'을 얘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김두식 교수의 책을 눈여겨 본 독자라면 '교회'와 '인권'을 얘기하는 이 두 권의 책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그의 삶을 뒷받침해온 두 개의 축이 바로 '예수'와 '인권'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을 좇아서 끊임없이 '인권 감수성'을 벼려온 법학자. 쉽지 않은 이런 길을 가는 그의 속내는 어떨까?

<불편해도 괜찮아>의 출간을 핑계로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김두식 교수를 만났다.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된 약 한 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김 교수는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책을 소재로 시작한 대화는 자연스럽게 '예수'와 '인권' 얘기를 넘나들며 진행되었다.


▲ 김두식 경북대학교 교수(법학전문대학원). ⓒ프레시안(최형락)

법학 교수의 인권 이야기, 그 사연은…

프레시안 : 법학 교수가 인권을 말했다. 이 책을 쓴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김두식 : 책의 머리말에도 밝혔듯이 2008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남규선, 임경숙 선생님이 이 책의 집필을 요청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이전에도 영화를 통해서 인권을 얘기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왔고, 이미 영화를 통해서 인권을 얘기하는 강좌를 나를 포함한 여럿과 진행하기도 했었다. 나는 주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장애인 등의 꼭지를 맡았었고.

처음에는 이런 강의를 묶어서 책을 낼 생각도 했던 모양인데, 아무래도 한 저자가 한 호흡으로 쓴 책이 독자에게 더 호소력이 있으니까 결국 단독 집필로 가닥을 잡았고, 나한테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시간 부족을 이유로 거절했다. 실제로 정말로 바쁘기도 했었고, 내가 적임자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영화에 관한 글을 놓고 보면, '어떻게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글이 인터넷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영화에 문외한인 내가 괜히 시작했다가 망신이나 당할 것 같았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송환>에서 북으로 간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후일담을 취재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 창립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남규선 선생님의 설득이 집요했다.

나중에는 이 책을 쓰지 않으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나쁜 교수로 몰릴 판국이어서 결국 작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인권 영화, 책을 만들어온 남규선 선생님을 비롯한 국가인권위원회 사람들의 뚝심에도 감동했었던 터라 더 거부할 수도 없었다.

우리 모두 다 '괴물'이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불편해도 괜찮아>를 통해서 독자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나?

김두식 : 이 책에는 인권 중에서도 특히 '차별'을 화두로 놓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한국에서는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주력했다. 괴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이 책에서 얘기하는 '차별'은 방점이 다르다. 국가가 차별의 주체인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다 차별의 주체인 가해자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불편해도 괜찮아>는 차별 받는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려면 '우리 모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차별 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할 계기를 마련해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다. 그러나 사실 책을 내놓는 입장에서 요즘 한국의 현실을 보면 안타깝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제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차별을 화두로 얘기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권과 같은 복지국가 만들기에 주력할 때인데…. 미국에 1년 있다가 와보니 국가가 시민을 사찰하지 않나,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이런 현실에 자괴감이 든다.

입증 부담을 회피하는 한국 사회

프레시안 : 차별에 대한 태도를 보면 크게 두 단계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차별인지 아닌지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 두 번째는 차별을 인식하면서도 침묵하는 단계. 한국 사회는 이 두 단계의 태도가 만연해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김두식 : <불편해도 괜찮아>의 우선적인 목적은 명백한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의 사람들을 일깨우는데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차별하는 이들이 입증 부담을 지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를 차별하려면, 자신이 그렇게 하는 데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청소년에게 머리 길이를 단속하고, 염색도 못하게 하고, 치마 길이도 규제하려면 그렇게 청소년을 성인과 다르게 대응하는 일이 왜 필요한지, 바로 차별하는 이들이 입증할 부담을 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차별하는 주체가 이런 입증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따지는 것도 국가가 입증 부담을 갖는 게 당연하다. 북한의 어뢰로 천안함이 침몰했다, 이렇게 원인을 밝혔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도록 입증해야 할 책임이 국가에게 있다. 못 믿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설득하는 게 국가의 역할인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북한이 왜 안 했는지 입증하라고 반문하다니….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입증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명백한 차별에도 많은 이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진보', '보수' 할 때의 그런 보수가 아니라, 쉽게 말하면 '강한 것은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정말로 강하다. 네가 약한 것은 네 책임이야, 이런 식으로. 예를 들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좋은 대학을 못 갔으니까, 그것에 따라 차별받는 부담도 네가 뒤집어써라. 몸이 불편하니까 거기에 따른 손해도 너희가 짊어져라. 네가 힘이 있으면 그것을 극복해서 살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 있지 않느냐. 이런 식의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약한 사람을 밟고자 하는 분위기가 있다.

따지고 보면, 자기도 학벌과 같은 문제로 차별을 받고 있을 텐데,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더 심하게 차별하는 이런 현상. 이게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차별이 만연한 중요한 이유이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이 사회에서는 앞으로도 불행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스탠리 코언의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조효제 옮김, 창비 펴냄)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세상이 불의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는데, 왜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시정하려는 것일까? 어떤 조건 때문에 한 나라에서는 타인을 적극적으로 돕는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불편해도 괜찮아>는 '현실에 눈을 감지 않기'를 촉구하는 책이다. 책이 세상에 나온 지금, 이 책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명을 불러일으키리라 생각하는가? 낙관하는가, 비관하는가?

김두식 : 사실 나는 기독교 기반의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간 내면에는 좋지 않은 본성이 있다고 여긴다. 나를 들여다봐도 그렇다. 나 역시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하고…. 새삼 나부터 그렇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절망하곤 한다.

다만, 조금 큰 그림을 보면 아까 말했듯이 누구나 이 세상에서 부당한 차별을 어디선가 받고 있다. 그 때 당한 느낌, 피해자로서의 느낌을 간직할 수 있다면, 자신이 가해자로서 다른 사람을 차별하게 되는 상황에서 용기 있게 코언이 얘기한 다른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길은 늘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피해자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각성하면, 그것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연결되리라는 기대인가?

김두식 : 그렇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 사회에서는 학벌에 대한 열등감, 혹은 그것으로 인해서 차별을 받았던 고통이 한 고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학벌 때문에 받았던 차별만 깊이 숙고해도, '내가 학벌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듯이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차별로 고통을 받고 있구나'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다시 강조하지만 누구나 남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 아픔이 있다. 단적으로, 어느 가족이나 남에게 말 못할 고통이 있지 않는가? 예를 들자면 어느 가족이나 말썽을 피워서 고통을 안기는 한 사람이 있다. 우리 가족 중에 왜 저런 사람이 있어서 불행할까,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이런 아픔을 깊이 묵상하면,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예수의 길'이야말로 '소수자의 길'

프레시안 :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읽는 많은 이들은 '김두식은 살면서 한 번도 차별에 따른 아픔을 겪은 적이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할 듯하다. 타인의 고통을 직시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김두식 :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돌이켜보면, 아주 보수적인 주류 교회를 다니던 중학교 때부터 '나는 보통 사람과 다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소수자로 자리매김했었다. 한국의 기독교인이 자신을 쉽게 주류 사회와 동일시해서 이런 문제를 못 느낄 뿐이지 사실 기독교인은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둥, 하느님이 나한테 말했다는 둥…. 이런 얘기들은 얼마나 비정상적인가. 시쳇말로 미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때부터 '미친 사람의 정체성이 나한테 있다', '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정상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성장했다.

이렇게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면서 좀 더 근원적인 의문도 들었다. 교회는 그 태동부터 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과 교회 사이에는 아무런 충돌이 없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제국이 좋아져서일까, 교회가 타락해서일까? 폭력으로 유지되는 제국의 속성이 바뀌었을 리는 없다. 교회가 타락한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초기 교회의 모습을 회복한다면, 기독교인이 그 때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면, 언제든지 기독교인은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지하로 쫓겨 박해를 받는 기독교인의 모습, 그것이야말로 나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당연히 이런 모습은 소수자일 수밖에 없고.

한편, 이런 생각을 얘기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짐작하다시피, 주류 교회 안에서 내 목소리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이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얘기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한 얘기도 내가 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불편해도 괜찮아>에 실린 동성애에 대한 얘기가 그렇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 얘기가 당연한 것이지만,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에서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얘기다. "김두식 저 사람, 이상한 얘기를 계속하더니, 결국에는 저렇게 (동성애를 놓고) 이상한 발언까지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이처럼 나에게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비주류,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같은 게 있었다.

프레시안 :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었나?

김두식 : 딱 집어서 말하진 못하겠고 성장할 때 많이 얻어맞고 자란 것? 이것이 소수자 경험의 출발점이 된 듯하다.

나는 좋은 부모, 좋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집안과 다른 폭력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가슴을 졸이면서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 목격한 폭력이 나한테는 큰 상처였다. 심지어 검사 재직 때도 종로 거리에서 전경이 시위 진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머니의 신분증을 만지작거리며 이렇게 되‡l다. '나는 검사지, 괜찮아, 괜찮아.'

다른 하나는 내 처를 통한 경험이다. 내 처는 특수 교육을 전공한 대학 교수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를 처음 만났을 때는 장애 아동을 가르치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이 사람과 만나서 살면서 차별의 아픔을 겪는 사람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늘 장애 아동과 함께 지내고, 장애 아동의 부모와 이야기하고,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고통이 전달되어서 몸이 아프고.

사실 이런 얘기를 아무리 해봐야 진짜 고통을 받는 사람의 그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뿐이지, 거기에 근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접 몸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또 그것에 싸우는 사람과 단지 간접적으로 그런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런 나의 한계는 분명하다.

프레시안 :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계속 강조했다.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를 갖는 것이 차별에 대한 예민한 인식과 같은 인권 감수성에 도움이 될까?

김두식 : 어려운 질문이다. 기독교만 놓고 말하면, 어떤 기독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자기를 주류와 동일시하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데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 기독교, 이런 기독교는 인권 감수성을 깨우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양심에 다른 병역 거부를 앞장서서 탄압하는 한국의 주류 교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대표적인 예다.

반대로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는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약자에 편에 섰다.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고자 계속해서 덫을 놓는 이들에게, 예수는 그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런 예수를 만나면 인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한국에서도 이런 기독교인이 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우리 곁의 '사탄의 시스템'을 직시하라!

프레시안 : 좀 구태의연한 문제제기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은 빈부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사실 가난은 차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차별을 받으니까 가난하고, 가난하니까 더 차별을 받고….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 많은 이들이 놓여 있다.

김두식 : 맞다. 아주 중요한 문제다. 여기서 다시 나의 한계를 언급해야겠다. 나는 아주 부자였던 적은 없지만, 단 한 번도 배고파 본 적이 없다. 선생 집에서 태어나서, 지금도 나는 물론이고 주변도 다 선생이다. 아내도 선생, 형도 선생, 누나도 선생, 자형도 선생…. 그런 면에서 가난의 문제는 중산층 지식인인 내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다.

내 책은 앞으로도 그런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계속 그런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다만 사소한 변명을 하자면, 이 책 자체가 애초 기획될 때부터 국가인권위원회 법이 규정하는 차별 금지 항목 중에서 주제를 정해야 했다. <빌리 엘리어트>(스티븐 달드리 감독, 2000년) 같은 영화를 통해서 노동 3권 정도를 언급한 정도가 내가 노력해본 부분이다.

프레시안 : 빈부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논쟁적인 언급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왜 철도 노동자가 교수보다 임금을 더 받는 게 문제인가', 이런 문제제기는 도발적이다.

김두식 : 나는 국립대학교 교수를 하면서 월급을 받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보다 50배, 100배나 많은 월급을 받는다. 내 능력이 아무리 부족한다 한들 그 사람보다 50분의 1, 100분의 1도 안 될까. 이렇게 아래가 아니라 위를 바라보면 불평등한 구조의 문제가 훨씬 더 눈에 들어온다.

같은 맥락에서 육체로 일하는 사람보다 정신노동자가 돈을 더 받아야 하는 사회통념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철도공사 직원이 자신보다 몇 천만 원을 더 받는 데 분노하는 교수들이 왜 자신보다 100배의 연봉을 더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가? 진짜 분노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불평등한 구조 아닌가?

우리 딸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데, 가끔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귀신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다보면 누구나 그런 두려움이 생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네가 기도하는데 귀신이 갑자기 들어올 일은 없다. 지금 귀신, 사탄이 주로 하는 역할이 있다면, 특정한 개인의 마음속에 들어가고 말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은 계속 고통을 받으며 죽어나가는데 누구도 그것을 멈출 수 없는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만드는 게 바로 사탄이 하는 일이다.

우리가 정작 무서워해야 할 것은 공포영화 속의 괴물이나 귀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학살의 손발로 만드는 진짜 괴물 바로 '사탄의 시스템'이다."


신학자 월터 윙크가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한성수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펴냄)에서 한 말을 내가 딸에게 풀어서 해준 말이다. 사탄의 시스템? 한국의 교육 체제가 사탄의 시스템의 대표적인 예다. 그것이 가동되는 중에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나가는데 아무도 그것을 멈출 수 없으니까.

또 다른 예는 비정규직 시스템이다. 1998년 노동법 개정으로 이상한 미국식 시스템이 들어왔는데,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바꾸려고 엄두도 내지 못하지 않나. 바로 그런 것이 윙크가 얘기한 '사탄의 시스템'이고, 지금 우리가 가장 무서워해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 사탄의 시스템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김두식 :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것은 내 능력 밖이다. 윙크는 이런 사탄의 시스템과 싸우는 첫 번째 단계를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시스템이야!" 이렇게 명명하는 것.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고, 또 그게 내 역할이다.

공동체의 자정 능력을 무시하는 사전 검열

프레시안 : 얘기를 좀 바꿔보자. <불편해도 괜찮아>의 7장(영화 화면을 자르는 사람들)은 검열, 특히 사전 검열에 반대하며 표현의 자유를 얘기한다. 그런데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이런 반론을 펴는 이들도 있을 듯하다.

'그런 표현의 자유로 만들어진 드라마, 영화의 실상이 어떤가? 오히려 할리우드 영화 <300>처럼 차별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하지 않나?'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은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에 불편해할 수도 있는데….

김두식 : 다른 얘기부터 해보자. 요즘 국가나 언론이 명예 훼손으로 개인을 고소, 고발하는 일이 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스피커를 가진 곳이 어딘가? 바로 국가나 언론이다. 그렇게 거대한 스피커를 가진 기관이 억울하면 말로 풀지 법의 힘을 빌리면 이상하지 않나? 말로 생긴 문제는 말로 풀자, 이런 원칙이 필요하다.

비슷한 관점에서 드라마, 영화의 문제 역시 말로 극복해야 한다. <300>처럼 잘못된 영화가 나오면 비판하고…. 다른 예를 들자면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예전에는 벗는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흥행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무작정 벗겨서는 흥행이 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대중의 안목이 높아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식의 드라마, 영화의 문제도 검열과 같은 제재가 아니라 공동체의 역량이 강화되는 것을 통해서 충분히 자정될 수 있다. 설사 정말로 어떤 드라마, 영화가 문제가 된다면 나중에 법으로 제재를 가해서, 법정에서 싸움을 하게 하더라도 사전 검열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인권의 보편성' vs '문화의 특수성'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인권을 화두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큰 골칫거리는 '인권의 보편성'과 '문화의 특수성' 간의 갈등이다. 강대국이 인권의 보편성을 내세우면서 약소국에 개입하는 게 옳은가, 근대 이후에 서양에서 태동한 인권을 문화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요하는 게 옳은가 등등…. 이 책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침묵하고 있다.

김두식 : 최근에 화제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법과대학을 나와서 사법 시험을 합격하고 법과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한 번도 체계적으로 그 책에서 얘기하는 수준의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 책에 나오는 수많은 사례를 내가 수업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그러니까 나도 나름대로 고생해서 길을 찾아오긴 했지만, 한국에서 1980년대에 진행된 법학 교육이 학생에게 법철학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고 또 나름의 입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거기다 나는 기독교까지 섞여서 더욱더 모호한 철학 없는 법학자가 되었다.

인권의 보편성과 문화의 특수성을 둘러싼 갈등을 놓고 이것이 답이다, 이렇게 얘기할 만큼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어떻든 '인권의 보편성'을 옹호하는 쪽으로 많이 기운 사람이다. 고통은 보편적인 것이고, 그것이 어떤 맥락이든 간에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옳지 않으니까.

프레시안 : 이 책의 10장(그냥 다 죽이면 간단하지 않나요?)에는 그런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사실 제노사이드 얘기를 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의 독일 드레스덴 폭격부터 거론해서 깜짝 놀랐다. 보통 제노사이드를 얘기하면 그 반대 즉, 나치의 유태인 학살부터 얘기를 시작하는데….

김두식 : 북한 인권 문제를 놓고 얘기를 해보자. 대개 진보적이라는 학자들은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데 아주 조심스럽다. 물론 북한 인권 문제를 놓고 확인이 안 된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홀로코스트 때 수용소의 포로들이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어서 나왔어도 1943~44년까지 미국 정부는 그걸 믿지 않았다.

그런 경험을 간직한 인류로서는 북한에서 나오는 인권 탄압과 관련한 얘기들에 상당한 신뢰를 두고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공개 총살을 하고 기아에 허덕이게 하는 일이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고통의 경험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인권의 보편성을 지지하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폭력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프레시안 : 요즘 인권과 관련해서 또 다른 중요한 화두는 가해자의 인권이다. 책에서도 흉악범 처벌을 잠깐 언급하고 있는데….

김두식 : 책에서는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나로서는 아주 중요한 얘기를 살짝 끼워 넣은 것이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에는 유독 폭력에 의한 구원 신화가 많다. 악이 있을 때, 악을 응징하는 것은 항상 폭력이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도 이런 생각의 지배를 받는 것 같고.

드라마, 영화에 초점을 맞춰 보면 형사, 검사 관점의 드라마가 많으냐 피해자 관점의 드라마가 많으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유럽과 비교했을 때 형사, 검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영화가 유독 많다. 더구나 그 주인공은 항상 폭력으로 응징을 한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현실을 모르는 이로 그려지고, 악을 응징하는 주인공은 늘 어두운 골목에서 피의자를 벽에 몰아붙이고 권총을 입에 넣는 것 같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할리우드 영화 <더티 해리> 이후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캐릭터가 한국의 드라마, 영화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드라마, 영화는 피의자의 입장을 간과한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을 가능성을 살필 여지를 두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시민은 경찰, 검사가 아니라 억울한 피의자가 될 가능성이 큰데도 이런 드라마, 영화 때문에 늘 경찰, 검사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흉악범 처벌을 놓고 가중 처벌에 여론이 쏠리는 것도 이런 모습의 연장선상이다.

다른 하나는 합리적인 토론을 가로막는 늘 나오는 반응이다. "네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소리를 하겠느냐?", "네 여자 친구가 강간을 당해도 비폭력을 주장하겠느냐" 등등. 물론 내 딸이 유괴되어 살해당한다면 당연히 범인을 찢어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보복 감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시민은 형벌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집행하라고 국가에 역할을 위임했다.

그렇다면, 이제 국가가 가장 합리적인 형벌을 찾아내 집행할 책임이 있다. 이렇게 합리적인 형벌을 찾아보자는 논의 중에 "네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따위의 질문으로 논점을 흐리는 것은 좋은 토론 자세가 아닐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형벌을 찾아나가는데도 방해가 될 뿐이다.

김두식에 관해 궁금한 것들…

프레시안 :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1년 새 세 권의 책을 썼다. 다음 집필 계획은 있는가?

김두식 : 사실 미친 짓 아닌가? (웃음) 1년에 세 권이라니. 호흡이 좀 긴 글을 써서 책을 통해서 사람과 대화하자, 이렇게 마음먹고 2005년 말부터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살았다. 그 게 몇 년 쌓여서, 또 작년 한 해 책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벌면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당장은 책 쓸 일은 없다.

프레시안 : 혹시 책으로 집필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가?

김두식 : 친한 선배 교수가 이렇게 놀리곤 한다. "김 교수, 당신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게 법조계, 교회인데 그것을 비판하는 걸 끝냈으니 이제 남은 건 대학밖에 없네. 앞으로 말조심해야겠어!" 대학을 놓고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속한 집단을 비판하는 사람도 아니고…. (웃음) 현재로서는 아무런 집필 계획이 없다.

프레시안 :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묻는다. 김두식의 특별한 글쓰기 노하우가 있는가?

김두식 : 노하우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다만 대학 때 본격적으로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서 매일 일기를 썼다. 여자 친구 만난 얘기, 영화 본 얘기, 책 읽은 얘기 등. 그냥 짤막한 일기가 아니라 매일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썼다. 일기의 유일한 독자는 아내였는데, 어떤 때는 한 달에 원고지 600매 분량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일기는 계속 쓰고 있다.

또 집에서 어린 딸이랑 늘 대화를 나눈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책을 많이 읽으려고 했는데, 읽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책이 있었다. 그런 책은 요새 봐도 이해가 안 된다. 나는 그런 책은 쓴 사람도 모르고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자기가 제대로 아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이 되게 호기심이 많은데, 아빠가 얘기하는 것과 교회에서 얘기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놓고 질문을 많이 한다. 내 나름대로 딸을 설득하고. 그런 게 책을 쓸 때 쉽게 쓰는 바탕이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자꾸 글을 고치는 것. 내가 쓴 글을 여러 번 읽고 고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프레시안 :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영화와 책 얘기를 많이 했다. 혹시 '내 인생의 책', '내 인생의 영화'를 꼽는다면?

김두식 : 그런 질문을 가끔 받는데 나는 만날 바뀐다. (웃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강한 영향을 줬던 책은, 좀 고루하지만,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잃지 않되 개방적인 삶의 자세를 갖도록 나를 이끈 책이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 회지에 독후감을 썼었는데, 그 책이 내 삶의 길을 많이 결정했다.

영화는 여러 편이 있는데, 최근에는 책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한 <가족의 탄생>(김태용 감독, 2006년)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나 역시 남성 중심적인 데다, 가부장제의 이익을 많이 본 사람인데 <가족의 탄생>, <안토니아스 라인>(마를린 호리스 감독, 1995년)과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구나', 하면서 놀랐다.

며칠 전에는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년)을 봤다. 그 영화는 오래 전부터 알았는데 보고 나면 피곤할 것 같아서 계속 안 보고 뒀었다. 며칠 전에는 큰 마음 먹고 봤는데, 역시 피곤하더라. 하지만 요새 <전우>니 <로드넘버원>이나 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우파적 시각 때문이 아니라 미학적 완성도가 떨어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전쟁을 다루는 영화라면 스케일이 아니라 저 정도의 깊이를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불편해도 괜찮아>를 비롯한 김두식 교수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김두식 : 사람들은 책에 그려진 내가 진짜 나인 것처럼 착각한다. 며칠 전에 집에서 웃통을 벗고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데. 딸이 소파에 누워서 나를 보다가 이런 말을 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아빠 모습과 진짜 아빠와는 참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얘기인데…. 진짜 나는 한계가 많은 부족한 사람이다.

책만 읽고서, 교수님 존경해요,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게 난감하다. 인터뷰를 안 하는 것도 그런 게 걱정되기 때문이다. 진짜 김두식은 소심하고 비겁한, 책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다. 맞벌이 부부인 집에서 밥하기 싫고 집안일 하기 싫어서 어떻게든 그걸 빠져나가려는 인간, 그것이 딱 지금의 내 정체성이다.

진짜 김두식의 실체가 좀 잘 알려졌으면 좋겠다.

김두식 교수는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얘기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속물'이라는 것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속물들의 사회에서 자신의 한계를 아는 속물 지식인 김두식. 그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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