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당시의 수습을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는 비난 속에 물려났던 당시 총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네트워크' 자체가 또다시 '책임 회피'를 위한 가공의 산물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후쿠시마 사태 두 달 뒤에 '원전 증설 백지화'를 선언하는 등 '탈원전 전도사'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막대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원전 산업계의 '공적 1호'가 된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관련 기사: 日총리 "원전 증설 백지화" 선언…세계 원전산업 '발칵' )
"총리도 보고 라인에서 배제돼"
따라서 '탈원전'을 주장하는 진영에서 나오토 전 총리의 증언을 이른바 '핵마피아'의 실체를 드러낸 일본 최고위급 정치인의 육성 고백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대지진이 일어난 3월11일 밤에 벌써 후쿠시마 원자로 3개에 멜트다운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도쿄전력으로부터 어떠한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도쿄전력은 처음부터 나에겐 비밀로 하고 직원들을 후쿠시마에서 철수할 것을 비밀리에 타진하고 있었다"는 그의 증언은 믿기 힘들 정도다.
그는 "도쿄전력의 보고서나 도쿄전력을 감사했던 보고서 어디에도 3월11일 당시 연료봉이 손상되거나 멜트다운에 이른 사실은 한마디도 쓰여 있지 않다"고 말했다.
▲ 후쿠시마 원전 관리업체 도쿄전력 임원진들이 지난 8월26일 방사능 오염수 유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전력 배후에 더 큰 '핵마피아' 세력이 있는 한 방사능 오염수 유출 실태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AP=연합 |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원자력환경공단 '개명의 마술'
'탈원전 진영'에서는 원자력발전소 등 용어 자체가 '핵마피아'의 입김이 서려있다고 보고 있다. 위험한 핵반응으로부터 얻어지는 전기라는 것을 감추는 교묘한 '위장 용어'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원전을 핵전(核電), 원자력을 핵력(核力), 원자력발전소를 핵발전소, 원자로를 (핵)반응로 등 '핵'을 앞세운 용어를 쓴다. 작명의 세계에서 실체가 어떤지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용어가 '순수한' 것이다. '핵마피아'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는 "전문용어의 개념을 필요없이 복잡하게 하거나 미화하는 행위가 유달리 많은 데가 원자력 분야"라고 지적한다.
'탈원전' 진영에서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으로 개명하는 법안을 주도한 정수성 새누리당 의원들을 '핵마피아의 일원'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방사성', '폐기물' 등의 부정적 단어가 포함된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은 지난 6월25일 개명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실체가 가려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라는 '사명 세탁'에 성공했다.
당시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반대토론에서 "공단 사명을 변경하려는 것은 원자력의 위험성을 호도하고 감춰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원전마피아'의 대표적 논리"라면서 기존 사명 유지를 주장했다.
후쿠시마 사태 당시 총리 "핵마피아는 국가 전체에 만연"
<후쿠시마의 거짓말>도 '핵마피아'에 대한 증언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오토 전 총리는 "가장 큰 문제는 3.11 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해둬야할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서 후쿠시마 사태는 지진이나 쓰나미에 의한 천재지변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원전 사고를 일으킨 방아쇠는 쓰나미였을지 모르지만 당연히 해뒀어야 할 대책을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후쿠시마 사태, '쓰나미 보고서' 무시한 인재")
왜 필요한 대책을 시행하지 않았을까?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최근 10~20년 사이에 원자력의 위협을 알리는 사람들에 대해 온갖 형태의 압력이 굉장히 늘었다"면서 "대학의 연구자가 원전에 위험이 따른다고 말하려면 출세의 기회는 절대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가는 온갖 원조를 전력회사 등으로부터 받고 있다"면서 "그들이 원전의 위험성 따위를 문제 삼는다면 곧바로 원조가 끊긴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대로, 원전을 추진한다면 많은 종류의 금품이 들어온다"면서 "이런 식으로 원전에 대한 비판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져 버린 것"이라고 증언했다. 특히 그는 "핵마피아는 절대로 작은 영역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 만연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후쿠시마 현의 지사였던 사토 에이사쿠는 '핵마피아'가 엄연한 실체라는 것을 보여준 산증인이다.
자민당 집권 시절 '원전 찬성파'였던 사토 에이사쿠는 2002년부터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된 충격적인 비리와 위험성을 알리는 내부고발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이를 파헤쳤다. 당시 도쿄전력이 무려 16년 동안 안전점검 기록을 조작하고 결함들을 은폐해 온 것으로 드러났으며, 심지어 격납용기에 커다란 균열이 생긴 것도 감춘 사실이 폭로됐다.
하지만 이후 도쿄전력 등의 책임자 등만 교체됐을 뿐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토 에이사쿠는 2006년 '핵마피아'의 보복으로 여겨지는 각종 스캔들 혐의로 고발까지 당했다. 모두 무혐의로 밝혀졌지만 그 와중에 지사직을 잃었다. 몇 년 뒤 후쿠시마 사태는 에이사쿠 전 지사의 경고가 맞았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이다.
핵마피아는 핵발전소 사고로 방사성 물질이 퍼져나가고 있어도 사실 자체를 은폐하거나 축소한다. 2020년 올림픽 유치에 혈안이 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심지어 국제무대에서 사실 부정까지 했다.
지난 7일 아베 총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유출된 방사능 오염수가 원전 주변 항만 안에서 '완전 차단'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일본의 '핵마피아'
일각에서는 올림픽 유치로 인해 일본의 방사능 문제가 대한 국제사회의 감시가 강화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거론되고 있다. 10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본 방사능 오염수 문제를 시급한 과제로 규정하고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IAEA의 사무총장 아마노 유키야가 일본의 핵에너지 정책을 담당했던 고위 관료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IAEA는 '핵발전 산업의 치어리더"라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핵발전산업이 핵마피아 세력에 의해 허위와 은폐, 비밀과 재원 낭비로 점철된 산업"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일본 '핵마피아'의 핵심 인물로 꼽히던 아마노 사무총장은 지난 2009년 12월 IAEA 사무총장에 취임한 이후 지난 7월 4년 임기의 재선이 결정됐다. 따라서 IAEA가 얼마나 일본의 방사능 유출 문제에 철저한 조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핵마피아'에 장악된 일본 언론의 차분한 보도와 논조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도 이제는 방사능 오염수 유출에 대해 심각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7~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방사능 오염수 문제에 대해 일본 국민의 95%가 "심각하다"고 답변했다. "방사능 오염수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72%가 "매우 심각하다", 23%가 "어느 정도 심각하다""고 답했다.
방사능 오염수 문제에 대해 "국가가 전면에 더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답변이 89%에 달했다.
아베 총리가 "방사능 오염수가 원전 항만 내에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고 장담하는 동안, 정작 도쿄전력에서는 오염수 저장 탱크에서 오염수가 누수되면서 지하수까지 오염됐다는 조사 결과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지하수가 오염됐다는 것은 토양 오염과 바다로의 오염수 유출이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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