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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시간은 한국과 미국 편이 아니다"

[한반도 브리핑] 한미정상회담, 성과 있었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여성 성추행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이 사건이 모든 언론을 장악해버리면서 이번 방미가 가져올 득실계산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정부여당은 성과만 가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가려지는 손실도 있다. 한 개인의 부적절한 행위가 나라의 위신에 먹칠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로 인해 국가의 중요한 외교행위에 대한 분석과 평가마저 방해받고 있는 셈이다. 정부여당은 윤창중 파문이 아니었다면 완벽했다는 식으로만 포장할 것이 아니라 보다 국익의 관점에서 철저하고 객관적인 평가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수개월간 이어진 한반도 위기의 와중에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방미 및 정상회담에 국내외 이목이 집중되었다. 다양한 의제들이 많았지만 회담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은 6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 강화와 북핵을 포함한 북한문제의 해법제시 여부였다. 결과적으로 전자인 동맹의 견고함을 과시하는데 큰 방점이 찍혔고, 후자에 대해서는 두 정상이 북한도발은 단호하게 대응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두기로 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자는 것에 방점이 찍혔더라면 국면전환의 분수령이 될 수 있었겠지만, 원칙적 입장만 재확인하는 것에 머물렀다. 대화도 북한의 선(先)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큰 유인이 될 수 없고, 경제적 유인책이나 평화체제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북한을 대화국면으로 끌어내기 위한 방안은 나오지 않고 조건을 달아서 공을 북한으로 넘긴 셈이 되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한반도 위기의 엄중한 시점이 아니었다면 이번 방문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첫 여성대통령과 미국의 첫 흑인대통령의 만남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크고, 앞으로 4년간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야 할 두 정상의 첫 상견례 또는 탐색전으로서는 좋은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년간 일관되게 친미·저자세 외교를 한 것에 비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미국의 지지를 획득하려했던 점은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의전상 몇 가지 작은 하자에도 불구하고 국빈방문이 아닌 실무방문임을 생각하면 상당한 환대였다. 그러나 화려한 문구나 덕담, 그리고 한미 양국의 굳건한 협력적 분위기 등에 비해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질적 성과에는 의문부호가 그려진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한반도 위기국면의 돌파할 계기가 역시나 없었다는 것 외에도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포함한 여러 합의 사항이 겉보기만큼 내실은 없었다. 더욱이 오바마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 제안을 거의 수용하고 지지했다지만 실제로는 상당부분 미국의 노선과 의도에 우리가 맞췄다는 대조적인 평가도 가능하다. 이 부분은 앞으로 지켜봐야하겠지만, 이를테면 이번 방미는 앞으로는 벌고 뒤로는 밑지는 있는 장사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먼저 이번 정상회담 최고의 성과라고 말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을 살펴보면 한미 양국이 정치 및 군사동맹과 FTA를 통한 경제협력을 넘어서 사회, 문화, 인적교류까지 관계를 심화시키겠다는 청사진은 나쁘지 않다. 그리고 동맹의 외연도 대북억지동맹에서 동북아는 물론이고 범세계적 파트너십까지 확장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도 일단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 기초가 되어야 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천적 대안이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내용도 찾기 어렵다. 게다가 한반도 문제 해결 없이 글로벌협력을 논의함으로써 오히려 한국이 미국의 군사전략적 필요에 따라 분쟁지역에 개입해야 하는 연루위험을 증가시키고, 또한 방위비분담 증가와 막대한 무기구매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아졌다. 특히 한미정상이 포괄적이고 상호 운용이 가능한 연합 방위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합의한 것은 미국의 MD 체제에 참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다. 오바마정부가 재정위기 속에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Pivot to Asia) 또는 '권력재균형(rebalancing)' 정책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의존하려는 상황과 맞물릴 경우 우리가 받을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여기에 미·중 갈등까지 불거질 경우 한국은 대중봉쇄의 첨병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한편 정부는 신뢰 프로세스와 서울 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끌어낸 부분을 특히 중요한 성과로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니셔티브를 미국이 적극 지지했다기보다는 한국이 논란이 되어온 부분을 사전에 자발적으로 타협하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의회연구소의 한미관계 보고서나 포린 폴리시 브리핑에서도 직접 거론하고 있듯이 정상회담 전부터 미국은 신뢰 프로세스가 표방하는 대북억지와 남북대화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일전에 신뢰 프로세스의 정신에는 공감하나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밝힌 것도 정부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자신들이 단호한 원칙론에 입각한 비핵화를 강조하는 반면, 한국이 대화를 통한 남북신뢰회복을 더 강조한다고 보았고, 이 때문에 자신들의 원칙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한국정부는 무조건적인 대북화해가 아니라, 미국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행동에는 보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의구심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정상회담에서도 대화보다는 북한에 대한 단호한 원칙론이 더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구체적인 내용 없이 대화와 억지 사이를 저울질하던 신뢰프로세스가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보다 강경한 입장으로 기울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동북아 다자협력구상인 서울프로세스 역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선언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앞으로 실행계획이 협의될 여지는 남아있지만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많다. 북한의 참여가 어렵고, 오히려 북한을 압박하는 기구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과 중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경우 기존의 다자협력기구들처럼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오히려 시리아와 아프간문제를 거론한 것이나, 미국의 아시아 정책과의 고리를 강조한 것 역시 한국의 이니셔티브에 미국이 지지한 것 보다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한국의 참여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경제 분야의 협력 및 투자유치라든가 전문가 비자쿼터와 대학생 연수프로그램 등 인적교류 등도 성과이지만 획기적인 수준은 아니고 구색을 맞춘 것에 가깝다. 오히려 FTA의 투자자국가제소제도(ISD)와 관련한 재협상 문제는 아예 꺼내지도 못했고, 원자력협정 개정문제 등 민감한 부분은 연기 또는 회피하면서 봉합했던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 또한 GM 회장이 투자를 빌미로 민감한 통상임금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 국내 노동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방미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한반도 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여론이 알카에다(Al-Qaeda)보다 부정적일 정도로 최악인 상황에서 오바마의 운신의 폭이 좁지만,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실패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다소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색깔론과 퍼주기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보수정권이라는 점에서 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역할론이 부각되었으나 결국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정책들이 동원되었지만 북핵 및 북한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관련국들 모두가 피로감과 함께 상대방에 불신감이 축적되었다. 이미 사실상 핵무장 국가인 북한의 핵무기를 강제로 포기시킬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강경책은 해결은커녕 상황만 더 악화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제재는 더 이상 수위를 끌어올릴 여지도 없는 한계치에 이르렀고, 효과도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결국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위협에 끌려다니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전략적 인내정책처럼 계속 무시전략을 유지한다 해도 북한에 핵기술을 더 발전시킬 시간을 주는 셈이 된다. 시간은 결코 한국이나 미국의 편이 아니다. 결국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협상도 만능이 아니고, 또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강경책이 초래하는 일촉즉발의 긴장구조보다는 낫다.

▲ 지난해 7월 26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평양의 봉화예술극장에서 '조국해방전쟁승리 59돌 경축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 공연'이 끝난 후 출연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당장에 군사적 도발이나 핵 또는 미사일카드를 뽑아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카드를 다시 꺼내 들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정전협정체결 60주년이 되는 7월 27일에 무게를 두고 그때까지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가용한 모든 카드를 동원해서 지난 2월에서 4월까지의 긴장조성을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 한미양국이 북한의 행동변화를 전제조건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 관건은 어디까지를 북한의 행동변화로 인정할 것인가에 놓여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선제조건으로 엄격하게 내세울 것인지, 아니면 북한이 추가도발을 하지 않고 대화의사를 표명하는 정도로 물꼬를 틀 것인가에 있다. 전자로는 대화의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일단 북한과의 회담에 가서 모든 의제를 다뤄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비핵화는 더욱 장기화의 길로 진입했기 때문에, 이제는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서가 아니라 과정과 결과로서 추구해야 할 시점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중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일 것이다. 중국의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는 했다. 그러나 중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것이기에 한계가 있다. 미국은 현재 중국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빠져있다. 현재 미국의 대북정책에 있어 중국 아웃소싱은 엉덩이가 뒤로 빠진 상태에서 타격을 하는 야구선수와도 갔다. 결승타는 어렵다. 올해는 한미동맹만 60주년이 아니라 정전협정체결도 60년이 된다. 지난 수 개월간의 위기는 우리에게 정전체제의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 없이는 북한 문제의 해법도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된 것이다. 평화체제 논의의 핵심은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의 재설정이므로 그 논의는 한국과 미국에서 나와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적어도 출발이라도 돼야 했었지만, 거기까진 이르지 못했다.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한미 간 후속조치는 물론이고, 예정된 한중정상회담과 미중간의 물밑접촉을 통해 돌파구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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