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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약속한 핵발전소 안전 점검, 알고 보니 '헛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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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통령 약속한 핵발전소 안전 점검, 알고 보니 '헛방'

"스트레스 테스트가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의 면죄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4월 30일 고리 핵발전소 1호기와 월성 핵발전소 1호기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서 환경 단체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핵발전소가 극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지 살펴보는 총체적 내구성 검사를 뜻한다.

언뜻 보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핵발전소를 안전 점검하겠다는데 환경 단체가 이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환경 단체들은 "스트레스 테스트가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면죄부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후 핵발전소는 폐쇄 대상"

환경운동연합 등 70여 개 단체로 이뤄진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 행동'은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기자 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는 이미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로 스트레스 테스트 대상이 아니라 폐쇄 대상"이라고 밝혔다. 기자 회견에 참가한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은 "반드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야 한다면 핵발전소 폐쇄의 한 과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리 1호기는 30년 설계 수명이 끝난 후 지난 2008년 10년간의 계속 운영 허가를 받았다. 오는 2017년이면 다시 수명이 종료된다. 월성 1호기 역시 1982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뒤 설계 수명 종료를 맞아 지난해 11월 가동을 중단했다. 현재 계속 운전 여부 심사가 진행 중이다.

설계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의 안전에 대해 논란이 일면서 노후 핵발전소의 대표격인 고리·월성 1호기를 폐쇄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핵발전소 폐쇄 대신 기존의 핵발전소 정책을 유지하면서 안전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입장에 섰다. 또 핵발전소 안정성을 높이는 계획의 일환으로 노후 핵발전소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박 대통령의 공약에 맞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노후핵발전소 스트레스 테스트 추진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 스트레스 테스트 규탄 기자 회견'을 개최했다.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왼쪽)과 김혜정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 행동' 집행위원장(오른쪽). ⓒ프레시안(남빛나라)

평가 항목에 노화 현상 평가 항목 없어

그러나 기자 회견 주최 측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노후 핵발전소 스트레스 테스트'는 노후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채택한 유럽연합(EU)의 스트레스 테스트 방식은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전반적인 안전 점검이라기보다 후쿠시마 사태와 같은 사고에 대비한 지진·해일 대책 점검일 뿐"이라며 "노후 핵발전소 용 점검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5개 분야 21개 점검 항목 어디에도 핵발전소의 노화 현상에 대한 평가 항목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기준에 따른 스트레스 테스트로는 정상적으로 가동 중인 핵발전소가 자연재해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있을 뿐, 노후한 핵발전소를 전반적으로 안전 점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로만 '테스트'…사실은 서류상의 평가

이들은 "스트레스 테스트는 사업자 자체 평가가 아니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평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스트레스 테스트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평가 항목에 따라 각 사업자(한국수력원자력 산하 고리·월성 원자력 본부)가 평가 결과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해 전문 검증단이 적절성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들은 유럽의 스트레스 테스트 역시 사업자 자체 평가로 이뤄져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같은 문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스 테스트가 실제 안전 점검이라기보다는 서류 검토에 불과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들은 "'테스트'라는 용어 때문에 일반인들은 가혹한 환경 속에서 핵발전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실제 평가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며 "사실은 서류상의 평가"라고 밝혔다.

그나마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신 기준도 따르지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사업자 수행 계획안을 보면 '발전소 계속 운전 주기적 안정성 평가(PSR) 보고서'를 참고하겠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이 참고하겠다는 PSR에 대해서는 이미 IAEA가 한 차례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IAEA가 작성한 '월성 1호기 장기 운전 안전 점검 보고서'를 보면, PSR이 20년 전 기준인 1994년 평가 항목에 따라 이뤄졌다고 지적한다. 2003년에 새로 개정된 기준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최신 기준을 따르면 평가 항목이 11개에서 14개로 늘어나고 특히 안전성 분석은 3단계로 확대·심화된다. 이에 IAEA는 이 문제를 지난 4월 30일까지 해결할 것을 한국수력원자력에 권고했었다.


"최악의 상황 모두 반영한 테스트 기준 필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스트레스 테스트 기준의 평가 항목에 최악의 상황을 모두 반영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우선 테러, 전쟁, 미사일 공격 등에 대한 항목이 없는 점이 문제로 꼽혔다. 또 지진에 의한 간접 영향 항목에서, 배관 파손으로 야기될 수 있는 냉각 기능 상실 등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내부 홍수 발생 가능성만 대상으로 삼은 점도 지적됐다.

이어 이들은 "중대 사고를 전제로 한 방사선 환경 영향 평가를 다시 해야 방재 및 비상 대응 능력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에 고리·월성·영광 핵발전소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를 가정해 모의실험을 시행한 바 있다. 이들은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학회 등은 중대사고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모의 실험 결과를 부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비상 계획 구역이 현행의 8~10킬로미터가 적정한지, 아니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사례에서처럼 30킬로미터까지 확대가 필요한지 평가해야 한다"며 "그래야 비로소 실효성 있는 방재 및 비상 대응 능력 평가가 수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의견 수렴 기간 2주에 불과

마지막으로 이들은 "스트레스 테스트 단계는 2단계의 단기간으로 축소된 평가"라며 "충분한 시간과 시민 사회의 참여를 보장한 가운데 최소 4단계 평가가 수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U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총 4단계를 거쳐 시행된다. 그러나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사업자 자체 평가 뒤에 규제 기관과 민간 검증단의 동시 검증을 거치고 바로 결과 보고서만 작성하면 끝난다.

실제로 한국수력원자력 월성 원자력본부는 내달 2일까지 약 2달간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마친 뒤 오는 6월 28일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국민 의견 수렴 기간도 2주에 불과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4월 30일에 스트레스 테스트 계획을 발표한 뒤 5월 14일까지 이와 관련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그나마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누리집을 통해 '스트레스 테스트 가이드라인(기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라고 작게 공지했을 뿐 별다른 홍보는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집안 행사인 결혼식을 치를 때도 한 달 전에 청첩장을 돌려 알린다"며 "하물며 국가 중대사인 핵발전소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한 의견 수렴 공지를 고작 2주 전에 누리집을 통해 하고 마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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