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환경을 훼손하는 개발 사업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번 파괴한 자연은 쉽게 원상태로 복구시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점에 <프레시안>은 지난 4월 19~20일 영국 동부 서포크 해안 지구의 민스미어 인공 습지를 방문했습니다. 이번 취재에는 '낙동강 지킴이' 지율 스님이 동행했습니다.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는데 힘써 온 지율 스님은 최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실상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을 선보여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금 지율 스님은 4대강 사업의 대안을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번 민스미어 습지 방문도 그 연장선상에서 지율 스님의 제안으로 이뤄졌습니다.
지난 6일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프레시안은 앞으로 '생명, 평화, 평등, 협동'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습을 약속했습니다. 이번 민스미어 습지 현장 취재도 이런 약속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한 줌도 안 되는 개발 세력이 파괴한 우리의 강을 어떻게 되살릴지, 이제는 같이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편집자>
민스미어 습지를 찾아서 ● 첫 번째 이야기 : 새 한 마리에 영국이 '들썩', 민스미어의 기적?! |
지난 4월 20일 민스미어 습지는 패밀리 데이 행사로 북적였다. 엄마 아빠 손을 붙잡고 온 '민스미어의 아이들'은 개구리의 먹이인 수초를 직접 만져보며 탄성을 질렀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버필드 부자가 아이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와서 개구리와 수초를 보라고 손짓했다. 아버지인 닉 버필드(55) 씨는 서포크 지방 정부에서 여론 조사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민스미어 습지에서 행사가 열릴 때마다 자원봉사를 한다. 버필드 씨가 자원봉사를 할 때마다 아들 잭(27)도 함께 한다. 잭에게 민스미어 습지를 언제부터 방문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처럼 민스미어 습지에서는 '민스미어의 아이들'이 자라서 또 다른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도록 돕는 일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율스님 |
1년 방문객 약 10만 명…지역 일자리 창출의 1등 공신!
민스미어가 단순히 자연 체험과 좋은 추억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 주민은 하나같이 민스미어가 서포크 지방의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닉 역시 "1년에 약 10만 명의 관광객이 민스미어를 방문하기 때문에 서포크 지방의 지역 경제에 당연히 도움이 된다"고 단언했다.
영국 왕립조류보호협회(RSPB, The Royal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Birds)가 발간한 보고서 <자연 재단들(Natural foundations)>을 보면 민스미어가 지역 경제 활성화의 일등공신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민스미어 습지는 파트타임이 아닌 풀타임 일자리를 평균 102.9명 고용한다.
런던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이 걸리는 민스미어 습지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이곳에서 매년 290만 파운드(약 50억 원)를 소비한다. 민스미어 습지에서 언론 홍보를 담당하는 이안 바소프(41) 씨는 "민스미어 습지가 있어서 이 지역의 숙박 시설이나 음식점이 1년 내내 문을 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율스님 |
지율 스님, 민스미어에서 내성천을 떠올리다!
민스미어 습지를 지켜보고 또 그곳에 반한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지율 스님의 눈도 빛났다. 이명박 정부 내내 낙동강 "전쟁터"에서 뭇 생명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기록한 스님이 이곳 영국의 민스미어 습지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이곳은 스님이 그토록 지키고자 노력했던 천성산 자연 습지와는 다른 사람의 손때가 탄 인공 습지가 아닌가?
지율 스님은 지난 2009년 3월 낙동강에 발걸음을 내딛고 나서, 11월부터 아예 낙동강 상류 지천인 내성천 가에 텐트를 치고 터를 잡았다. 그는 이곳을 '집'이라고 부르며 홀로 기거했다. 스님은 이곳에서 사진기와 캠코더로 강의 변화를 기록했다. 최근 개봉한 4대강 사업의 실상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은 그 산물이다.
혹자는 지율 스님이 낙동강이 파괴되는 현장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날 선 반대 운동에 나서지 않은 까닭을 궁금해한다. 천성산 생태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줄 터널 공사에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율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 파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그런 인식은 과연 맞는 것인가?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정비 사업이 아니라 '한반도 대운하를 하겠다'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바로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아줬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그리고 여기저기서 강이 유린당할 때, 우리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고통받는 강의 아우성을 묵묵히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강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사람들이 각성하는 순간에 강과 사람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율 스님 역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다. 소백산에서 흘러나와 낙동강과 만나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천혜의 모래강 내성천도 파괴되기 일보 직전이다. 지난 2009년 12월부터 영주시 평은면 내성천 상류에서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영주 댐 공사가 한창이다. 높이 55.5미터, 길이 400미터, 총 저수량 1억8100만 톤 규모의 다목적 댐.
한국에 지어지는 댐의 상당수가 그렇듯이 이 영주 댐 역시 정부, 기업, 지역 주민 누구도 그 필요성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이미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었으니, 모두가 완공을 향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뿐이다. 이른바 영주 댐도 '매몰 비용'의 덫에 빠진 것이다. 지율 스님이 민스미어 습지를 찾은 이유는 이런 답답한 상황을 해소할 출구를 찾기 위해서다.
▲ 지율 스님. ⓒ프레시안(남빛나라) |
내성천의 반딧불이가 낳은 '발상의 전환'
공사 중인 영주 댐이 내성천으로 흘러들어오는 모래 공급을 막으면서, 수천 년이 만든 모래강은 순식간에 돌강으로 바뀔 태세다. 상당량의 모래가 하류로 휩쓸려서 물길이 깊어지는 것도 눈에 띈다. 이대로라면 내성천은 물론이고, 내성천으로부터 모래를 공급받는 낙동강 본류도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그때 지율 스님은 영주 댐의 대안으로 인공 습지를 생각했다. 영주 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정부로부터 수용당한 마을 논은 이미 1년 정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상태다. 2010년 여름, 지율 스님은 사람으로부터 버려진 논에 반딧불이가 날아와 장관을 이루는 모습을 보았다. 입소문이 나자, 반딧불이를 보러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지율 스님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의 자기 치유 속도에 놀랐다.
"그러고 나서 가을, 겨울에는 철새를 비롯한 각종 새가 모이기 시작했다. 농약에 화학 비료에 몸살을 앓던 논을 그냥 놓았더니, 우리 때문에 쫓겨났던 동·식물이 돌아왔다. 그리고 또 그런 동식물을 보러 도시에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미 정부가 수용한 이곳을 습지로 보존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하필 인공 습지일까? 지율 스님은 어차피 어느 정도 지어진 영주 댐을 활용할 방안까지 고민해본 것이다. 그렇다. 그는 영주 댐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버려진 논이 습지로 제 기능을 하려면 저수지와 배수로가 필수적이다. 영주 댐의 설계와 기능을 조정하는 것을 통해서 인공 습지에 공급할 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물론 내성천의 물길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영주 댐이 이런 기능을 할 수 있으려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 소백산에서 발원해 낙동으로 흐르는 내성천. ⓒ프레시안(최형락) |
RSPB 회원 수, 2009년에 이미 100만 돌파
내성천 인공 습지의 꿈! 이것이 바로 지율 스님이 민스미어 인공 습지를 방문한 이유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강과 사람을 잇는 역할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 꿈이 과연 가능할까, 힘을 받고 싶어서 민스미어 습지를 방문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이 난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연을 많이 찾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지율 스님의 말처럼 민스미어 습지에는 자연 사랑에 푹 빠진 영국인이 넘쳤다.
런던에서 세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놀러 온 던스턴(34)·엘레나(32) 스미스 부부도 그렇게 자연 사랑에 빠진 영국인이다. 이들 부부는 5년 전부터 RSPB 회원이다. 던스턴 씨가 "아이가 자라면서 새와 곤충에 흥미를 갖길 바란다"고 말하자, 땅을 유심히 살피던 아들 오스틴은 "곤충이 제일 좋아!"라고 외쳤다.
민스미어 습지에서 이들 부부 같은 RSPB 회원을 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2009년에 이미 민스미어 습지와 같은 곳을 보존하며 자연 사랑, 새 사랑에 앞장서는 RSPB 회원 수가 100만 명을 넘었다. 지난 2009년 11월 영국 <가디언>은 "최근 RSPB의 발표를 보면, 600만 명의 영국인이 2주마다 새 보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 새 보기를 위해 민스미어를 방문한 관광객. 새 보기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걷고 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
"민스미어 습지와 내성천은 새로 연결되었다!"
민스미어 습지의 영국 사람을 보면서 지율 스님은 "발상을 전환하면 내성천 일대에 약 1150헥타르(약 350만 평)의 습지를 조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틀 내내 지율 스님과 기자를 안내했던 민스미어 습지 지킴이 이안 바소프 씨와 폴 다이슨(48) 씨도 이런 지율 스님의 꿈에 공감을 표시했다.
민스미어 습지를 둘러보던 중에 지율 스님이 직접 제작한 <모래가 흐르는 강>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은 지구 반대편 작은 나라의 강이 상처 입는 모습을 지켜봤다. 결국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영화가 끝나자 다이슨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성천의 새가 민스미어 습지로 날아올 수도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내성천이 파괴되는 가슴 아픈 모습은 한국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 내성천 일대를 (인공) 습지로 보존하는 지율 스님의 꿈이 꼭 실현되길 바란다. 내성천과 민스미어 습지는 이미 앞에 보이는 새들로 연결되었다."
한국의 습지들, 총체적 난국 인공 습지까지 조성해서 습지 보호에 나서는 영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형편은 어떨까? 국내의 습지 보전 정책은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지난 2008년 10월 28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제10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가 개막에 맞춰서, "위기에 처한 한국의 습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위기에 처한 세계 습지 보고 대회'를 개최한 환경운동연합은 한국의 습지 보전 정책을 놓고서 "개발에 부적합한 습지를 보전 지역으로 지정하는 상태"라고 총평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력 발전소, 해안 도로, 관광 레저 단지 등 개발 가능성이 조금만 보이면 어김없이 습지는 파괴되는 형편이다. 대표적인 예가 경상북도 구미시의 해평 습지다.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 등 희귀 철새의 집단 도래지였던 해평 습지는 낙동강 사업으로 옛 모습을 잃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이곳을 찾는 두루미가 2008년 3153마리에서 2011년 1446마리로 급감했다.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의 옛 고아 습지 역시 정부가 '강정 생태 공원'으로 개발한 탓에 대부분 준설토로 매립되었다. 한국 최대 규모 내륙 습지인 우포 습지 역시 신음하고 있다. 우포 습지의 면적은 가로 2.5킬로미터, 세로 1.6킬로미터다. 담수 면적은 2.3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1500여 종의 동·식물의 서식처로 기능하고 있다. 이 거대한 자연의 보고 역시 4대강 사업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상황은 이렇다. 우포 습지는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의 토평천에 위치했다고 알려졌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화왕산에서 내려온 토평천이 낙동강으로 빠져나가는 중간 지점에 있다. 4대강 공사 후 토평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우포 습지 끝 지점에서 세굴 현상(흐르는 물에 토사가 씻겨나가 강바닥이 움푹 파이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우포 습지의 훼손을 염두에 두면 한국에 습지 안전지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우포 습지는 지난 1998년 3월 국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고, 1999년 2월 습지 보호 지역(8.54제곱킬로미터)으로 지정돼 같은 해 8월 9일부터 습지보전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지난 2008년 한국이 람사르 총회를 주최했을 당시 공식 탐방지도 우포 습지였다. 이런 곳마저도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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