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자산관리위탁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은 이자 59억 원을 내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상태에 놓였다고 밝혔다.
전날 한 때 극적으로 부도를 모면했다는 보도도 있었으나, 실제로 돈이 입금된 것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마감 시간을 넘겨도 은행에서는 부도처리를 바로 하지 않고 조금은 기다려주기 때문에 오후 4시 마감시간이 넘도록 돈이 입금되지 않았으나 곧바로 부도처리되지 않았을 뿐 이날 아침까지도 실제 임시변통할 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용산역세권개발 사업 파산으로 서부이촌동 수천 가구가 망연자실한 상태다. ⓒ뉴시스 |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은 오래전부터'시한부 파산' 상태였다. 사실상 돈 한 푼 없는 상태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용산역개발사업은 지난 2006년 계획을 추진하기로 결정된 이후 무려 6년이 지난 지난해 말에 터파기 공사에 착수하자마자 돈이 바닥났고, 곧바로 그동안 빚낸 돈에 대해 갚아야 할 이자만 줄줄이 만기가 돌아오게 돼있었다.
임시변통으로 돈을 마련할 방법 없이 이자를 내야할 첫번 째가 바로 이번이었고, 보름도 못돼서 또 32억 원, 다시 이틀 뒤 122억 원 등 내달말까지 필요한 이자비용만 550여억 원에 이른다.
이런 돈은 임시변통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이 사업을 책임지는 투자자들이 더 많은 돈을 내놓기로 합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서로 더 많은 부담을 떠넘기는 갈등 정도가 아니라, 투자자들 모두가 이 사업 자체가 수익이 날 가능성이 없어 더 이상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투자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땅주인이자 최대 투자자 코레일도 발빼는 사업
일각에서 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이 사업의 땅주인이자 최대 투자자이기도 한 공기업 코레일이 책임을 지는 공영개발이라도 하자는 요구도 나왔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코레일의 고유사업이 아니라 땅을 팔아 하는 부대사업이며, 본질적으로 민간투자자들의 사업"이라면서 "민간투자자도 적자가 날 것이라며 발을 빼는 사업에 세금을 들여 개입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일축한 상황이다.
결국 용산역세권에 국제업무지구를 세운다는 개발사업은 7년 만에 '공중분해' 사태를 맞았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느냐에 대한 진단은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처음부터 '초고층 빌딩의 저주'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무성했다는 점을 돌아봐야 한다.
'초고층 빌딩의 저주'는 단순한 속설이 아니라 통계학적으로 상관관계가 뚜렷한 것으로 확인된 일종의 법칙이다. 초고층 빌딩 건축계획은 대개 부동산 거품이 절정에 이를 때 장밋빛 전망에 취해서 이뤄지고, 또 이런 분위기에서 한 건이 아니라 여러 건의 초고층 빌딩 건설계획이 동시에 추진된다.
하지만 계획이 추진되기 시작할 때 부동산 거품을 꺼지게 하는 금융위기나 경제위기가 닥치고 계획이 무산되거나 완공될 때까지 분양이 거의 안되며 파산 상태가 된다는 것이 '초고층 빌딩의 저주'다.
▲ 부도 위기를 맞은 용산역세권개발사업. ⓒ프레시안 |
서울 초고층 빌딩 계획들 줄줄이 무산
역사적 사례를 들 것도 없이 국내에 이미 '초고층 빌딩의 저주'는 현실이 됐다. 용산역세권 개발도 부동산거품 절정기인 2006년에 추진계획이 결정됐고 서울시가 추진하는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연결하느라 1년이 늦춰지다가 곧바로 2008년 금융위기를 맞으며 자금 조달길이 막혔다. 2016년 완공 목표인 이 30조 원 사업에 조달한 돈은 지금까지 4조 원에 불과했다.
용산역세권개발과 비슷한 시기에 삼성동 한전 부지, 잠실동 종합운동장 부지 등에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을 건설한다는 계획들은 이미 모두 무산됐고, 상암DMC 부지에 세운다는 초고층 빌딩 건립계획도 무산위기를 맞고 있다.
뚝섬 부지에 초고층 빌딩을 중심으로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건설한다는 계획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이후 제동을 걸어 사업 자체가 취소될 처지에 놓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부이촌동 일대 주민들 '곡소리'
당장 용산역세권 개발에 따르는 '초고층 빌딩의 저주'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에게 닥친 현실이다. 서부이촌동에는 대림아파트 638가구, 성원아파트 340가구 등 모두 2300여 가구가 사업이 확정된 이후 6년여 동안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보상만을 기다려 왔다.
이중 600여 가구는 평균 대출 규모만 4억 원이 넘고, 월 이자는 약 17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대박'을 노리고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지분을 확보한 경우라면서 '자업자득'이라거나 '부동산 거품의 상투'를 잡은 케이스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주민들은 개발계획에 재산권이 묶여 집을 담보로 상당한 대출로 생활비를 쓰며 버티다가 깡통주택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체들도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최소한 1조 원은 '매몰비용'으로 처리돼 손실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책임을 둘러싼 소송전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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