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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푸어' 탐욕 드러낸 혼돈의 이탈리아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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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푸어' 탐욕 드러낸 혼돈의 이탈리아 총선

[분석]'이탈리아판 안철수', 단숨에 25% 득표

지난 24~25일 이틀에 걸쳐 열린 이탈리아 총선에서 득표율 1위도 30%를 간신히 넘길 정도로 표가 분산되면서 정국이 혼란에 빠졌다. 유로존 위기 속에 G7(서방선진 7개국)에 속하는 이탈리아의 정치는 더욱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언론은 주로 이탈리아의 혼란으로 유로존 위기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다.

유럽 언론들은 이탈리아의 정치 파탄을 조롱하는 것을 즐기고 있으며, 이탈리아 시민사회에서도 스스로 "이게 뭐냐"는 한탄을 쏟아내고 있다.

이탈리아 유권자들이 '두 명의 코미디언'에게 상당한 표를 던졌기에 누구도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나오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 정강정책도 없이 정치 기득권 축소와 긴축정책 비판만으로 이탈리아 총선에서 25%를 득표를 이끌어낸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 그가 이끄는 신생정당 오성운동의 상원 당선자들은 모두 신인이다.. ⓒAP=연합

'정치 희화화' 달인과 진짜 코미디언이 판 휩쓸어

'두 명의 코미디안'으로 지칭된 한 사람은 재임 중 미성년자들과 섹스파티를 일삼아 지금도 재판 중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이고, 또다른 한 명은 실제로 코미디언이 직업인 베페 그릴로다.

독일 언론들은 이념적 성향과 관련없이 일제히 이탈리아의 총선 결과를 맹비난하는 논조를 보였다.

보수 성향의 일간지 <디벨트>는 '불쌍한 이탈리아'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를 망쳤으며 이탈리아를 그리스처럼 거의 파산지경으로 몰고 갔다"고 논평했다.

중도 좌파 성향의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두 명의 코미디언이 선거운동에서 보여준 불명예스러운 외침이 보상을 받았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고 개탄했다.

진보 성향의 <데어타게스슈피겔>은 "이탈리아는 통제가 안된다"면서 "이탈리아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대중영합주의자에게 굴복했고 이는 이탈리아의 미래에 불길한 징조"라고 지적했다.

부패기득권 대표와 이를 비판하는 신생 정치인의 공동승리

이탈리아 총선 결과를 보면, 하원에서는 민주당의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가 이끄는 중도좌파연합이 31%의 득표로 1당을 차치했지만, 베를루스코니가 장악하고 있는 자유국민당이 중심이 된 중도우파연합과 불과 0.5% 차이를 보였다. 상원에서도 거의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다만 하원은 1당에게 의석 55%를 몰아주는 규정 때문에 1당이 과반수를 차지했지만, 상원은 그대로 의석수가 갈렸다.

유로존 위기에서 이탈리아를 구한다는 중책을 맡고 등장했던 마리오 몬티가 이끄는 중도연합은 코미디언 그릴로가 이끄는 신생정당 '오성운동'에도 밀려 상원과 하원 모두 꼴찌로 밀렸다.

그릴로는 정강정책도 없이, 기득권에 대한 비판만으로 단일 정당 득표율로는 1위인 민주당에 거의 육박하는 25%를 단숨에 얻었다. 주요 공약도 "의원 세비 삭감, 의원수 축소' 등 마치 지난 한국의 대선 당시 안철수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정치가 살 길이지만, 대의정치가 파탄나면 재산을 지켜준다거나 먹을 것을 보장한다면 그가 누구건 독재자를 원하게 된다"면서 이탈리아의 파시즘 대두를 우려하고 있다.

베를루스코니와 그릴로에 대해 폴 크루그먼 교수는 ""긴축정책이 낳은 극단적 존재들"이라고 우려했다. 부패 기득권을 대표하는 정치인과 이를 비판하는 정치인이 오직 긴축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으로 모두 득세를 하는 현상을 경계한 것이다.

외부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탈리아 총선 결과에 대해 26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정치개혁이 필요한 이탈리아(Italy is in need of political reform)'라는 글로 도움을 주고 있다. 필자는 밀라노 보코니대 티토 보에리 교수와 로마의 에이나우디 경제금융연구소의 루이지 귀소 교수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내용이다. 편집자.

베를루스코니 복귀 일등공신 "재산세 폐지" 공약

이탈리아 영화감독 나니 모레티는 이번 총선에서 6000만 이탈리아 유권자들이 베를루스코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로마 교황청의 허상을 짚어낸 영화에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줬지만, 이탈리아 유권자의 행태를 예측하는 능력은 별로였다.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에 물러난지 얼마되지 않은 베를루스코니가 귀환했다. 극적인 그의 복귀는 마리오 몬티 정부가 재도입한 재산세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에 힘입은 것이다. 이탈리아 은퇴자들은 일종의 '하우스 푸어'다. 집은 있는데 현금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재산세를 혐오한다. 지금처럼 금융위기가 심한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베를루스코니의 공약은 재산세 폐지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 최대 갑부답게 "필요하다면 내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이미 거둔 40억 유로(약 5조6000억 원)의 재산세를 환급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베를루스코니의 복귀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그 결과로 이탈리아 정치가 마비 상태로 빠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상하 양원이 동등한 권한을 가졌는데, 상원 선거에서 베를루스의 세력이 상당한 득표를 하면서 연정구성도 힘들게 됐다.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있는 오성운동은 베를루스코니의 중도연합이나 베르사니가 이끄는 중도좌파연합과 손을 잡고 연정을 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성운동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

신생정당 의원들, 세비 아까워 기득권 정당 기웃

오성운동의 일부 상원의원들은 베를루스코니 진영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오성운동의 의원들은 당에 세비 절반을 내야 한다는 사정을 감안할 때 그들의 선택이 윤리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정치 신인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이번 총선의 최대 패자는 몬티 총리다. 자신이 이끄는 중도연합이 최소한 민주당에 이은 2당 정도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10% 정도의 득표에 그치며 꼴찌를 차지했다.

그의 긴축적인 개혁정책은 유권자의 외면을 받았다. 개혁의 대가는 피부로 느껴지는데 반해 얻어진 게 무엇인지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는 그릴로의 성공을 가져다준 정치계급의 위기를 다뤄야 할 것이다. 그릴로는 의원 세비를 삭감하고, 의원 수를 줄이자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탈리아의 경제문제는 이를 망친 지배계급에게 유리한 선거제도를 바꿔야만 해결의 길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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