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후보는 15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을 찾아 한 씨와 한 씨의 어머니, 양길승 병원장,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와 30분 남짓 이야기를 나눴다.
한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가 산업현장과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책임이 피해자 측에 있다면서 "연구기관도 못 하는 것을 어떻게 개인이 입증하라고 하나"라고 호소하자 안 후보는 "불가능하다"고 맞장구치며 "책임 안 지겠다고…(그러는 것)"라며 근로복지공단 등 관계기관을 비판했다.
안 후보는 "노동자에게 직업병을 입증하라는 건 불가능한 요구"라며 "어떻게 큰 병 걸린 분들이 그런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입증을 하겠나"라고 물었다. 안 후보는 피해자가 노동현장과 질병과의 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제도를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서 '노동현장이 직업병과 관련 없다'는 것을 입증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국가가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게 가장 큰 책임이고 어쩌면 경제적인 것, 산업적인 것보다 사람을 더 중요히 생각하는 게 국격"이라며 "정말 품격 있는 나라가 되려면 잘 먹고 잘 살면 끝나는 게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게 품격있는 나라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품격을 찾아야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생산성 향상, 시설투자 이 쪽만이 아니라 노동자, 사람에게 먼저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종양으로 보행능력과 시력, 언어능력 장애를 겪고 있는 한 씨는 안 후보에게 "너무 비참함을 느낀다"고 힘겹게 말했다. 안 후보는 "말씀을 잘 못 하실 줄 알았는데…"라며 한 씨의 차도에 관심을 보이고 "오랜만에 강한 햇살을 보셨을 것 같다"며 건강을 염려하기도 했다.
안 후보는 "앞으로 힘드시겠지만 다행히 차도가 있으셔서 좀더 원기(를 찾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면서 "번거롭게 해 드린 것 같아 죄송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많은 국민들이 더 관심을 갖고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찾아뵙게 됐다"고 말했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는 15일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을 찾아 한혜경 씨와 대화를 나눴다. ⓒ뉴시스 |
안철수, 산재 인정 소송 관련 "한 씨에게 좋은 결과 나왔으면"
한편 안 후보는 어머니 김 씨가 "1차에서 이긴 걸 항소한다는 게 말이 되나. 힘없는 노동자, 죽은 사람 상대로 이게 말이 되나"라며 근로복지공단 측이 법원의 일부승소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것을 비판한 것에 대해 "같이 마음 고생하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힘들어도 여러 분들이 계시면 견디기가 좀더 나아지실 것 같다. 같이 어려움 극복하고 용기 얻어서 재판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한 씨와 고(故) 황유미 씨 등 백혈병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의 재판부에 대해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해 줄 것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안 후보에게 건네며 동참을 호소했다. 이 노무사는 면담 후 기자들에게 "안 후보가 동참하시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노무사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먼지없는 방>과 <사람냄새> 등을 전하며 안 후보에게 '시간 내서 꼭 읽어봐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안 후보 측은 현장에서 탄원서를 받기만 하고 서명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통령 후보가 진행 중인 소송에 참여하는 것은 조심스런 측면이 있다"면서 "하지만 마음은 충분히 말씀하셨다. 서명 하시고 안 하시고 그런 게…(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는 직접 한 씨의 휠체어를 밀고 병원 안까지 배웅한 후 나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라가 품격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돈보다 사람을 가치 중심에 놓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게 품격있는 나라"라고 했다. 그는 "기업도 생산성 향상에만 그렇게 투자하기보다 이제는 노동자와 사람의 안전에 투자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후보는 앞서 대통령 직속 재벌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계열분리명령제를 도입할 계획을 밝히는 등 재벌개혁과 관련해 강도 높은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이날 안 후보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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