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박근혜 통치술 뜯어보니 '몸으로 느끼는 정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박근혜 통치술 뜯어보니 '몸으로 느끼는 정치'

[시민정치시평] '체감정치'와 정치적 비전

정치인의 레토릭에는 남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정치의 특성은 말과 행동을 믿고 지키는 것에 달려 있다. 정치 비전은 늘 말에 담겨 있다. 18대 대선의 레토릭은 '경제민주화', '창조경제'였다. 이런 말의 결과로 과반이 넘는 국민의 지지를 얻고 박근혜 정부가 탄생했다. 박근혜 정부는 '행복의 정부'가 될 것을 약속했다. 이 말들이 그저 말에 그친다면 국민의 기대가 실망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지난 4월 30일 각 부처 업무보고가 끝났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이번 정부의 업무보고는 어떤가. 이번 정부의 야심작인 창조경제, 경제민주화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 뭐라 평가하기 이르다. 그보단 이번 업무보고 과정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국정스타일을 지적하고 싶다. 매 업무보고마다 비슷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에 소개된 자료를 찬찬히 살펴보면 여론의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주목할 만한 반복적인 수사가 나온다. 아마도 박 대통령의 국정스타일을 가늠하는 좋은 예가 아닌가 싶어 인용해본다.

"정책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이 정책이 실효성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고 끝까지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각 부처가 열심히 머리를 짜내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느라고 노력한 게 헛수고가 될 수 있습니다. 국민은 그걸 못 느끼고 있기 때문에 헛수고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의 많은 노력이, 실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을 체감하고, '아 이래서 내가 더 좋아졌다', '삶의 질이 더 높아졌다, 더 편해졌다' 이렇게 돼야 우리가 애쓴 보람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데 앞으로 중점을 많이 두시기 바랍니다." (3월 26일 국무회의 관련 브리핑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월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위치한 중곡제일시장을 찾아 상인으로부터 순대를 구매하고 있다. ⓒ뉴시스


박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은 한마디로 '체감정치'라 할 수 있겠다. 체감정치는 전임 대통령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전임대통령이 생산자 중심의 현장정치를 강조했다면, 체감정치는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이 실감할 수 있는 현장정치를 내세운다. 여러 차례의 국무회의와 업무보고 내내 박 대통령은 국민의 시각에서 고통과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해결해나감으로써 국민이 정말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정치를 주문했다. 4월 30일 업무보고 마지막 날, 박 대통령은 체감정치가 5년 국정철학의 기조임을 암시하면서 체감정치를 평가할 객관적인 지표 마련을 당부하고 있다.

"새 정부의 노력이 국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평가가 더욱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의 시각에서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만 개선방안을 찾아갈 수 있고, 또 평가 결과의 피드백으로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방식을 찾아나가기 바랍니다." (4월 30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 관련 브리핑 대변인 브리핑)

국민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박 대통령이 꼼꼼한 업무스타일을 강조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달 24일 '기사 댓글까지 본다'는 내용의 보도는 이를 입증한다. 무엇보다 민심을 읽고 애로사항을 해소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끝까지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라는 당부의 말을 반복하고 있다. 실제로 업무보고 이외에도 주요 회의 때마다 실제 고통 받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해소방법을 모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4월 5일 법무부·안전행정부 업무보고 관련 브리핑, 3월 29일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업무보고 관련브리핑, 4월 24일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 관련브리핑을 참조하라.) 말하자면 리허설 방식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시연한 셈이다.


이런 모습 뒤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통치자에 대한 통념이 작동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 이른바 '민본(民本) 정신'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해소하는 청렴 공무원을 떠올리게 한다. 역으로 부정부패는 단호하게 응징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런 통치술은 나름의 방식이다. 지난 5년의 허망한 정치를 생각해보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정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치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낄지 모른다.

그럼에도 체감정치를 보면 어딘가 편치 않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모든 게 안개 속이다. 정말 공약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과연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공약 실현을 위해서는 그저 국민의 목소리를 모두 듣겠다는 의지를 넘어 강한 개혁의 드라이브가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 미래를 향한 지표를 찾는 일이다. 그 교훈 속에서 원칙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상황은 더욱 긴박해지고 있다. 북한, 일본, 국제 관계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 어느 쪽도 만만치 않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과연 앞으로 한반도에 불어 닥칠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치는 늘 불확실성 속에서 출발한다. 이런 불확실성을 통제 가능한 상황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고, 정치의 온전한 특성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말은 현실 문제에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건이 터지면 상황에 맞게 진로를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인에게 맹목적인 신념의 고수는 위험하다. 또 그렇다고 상황마다 말을 바꾸는 정치인은 협잡꾼일 뿐이다. 정치인에 바라는 건 항상 변하는 상황의 특수성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아내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런 정치인의 능력을 '프로네시스'라고 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도 강조점은 달라도 동일한 능력을 뜻한다.

이 모든 가능성은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 달려 있다. 따라서 정치인의 수사는 국민의 관심사 밖 주제도 정치적 비전으로 포착해야 한다.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작업이다. 국민의 통념과 편견을 깨는 작업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작업에는 무엇보다 상상의 힘이 필요하다. 만일 이런 정치의 상상적인 힘을 포기한다면, 남는 것은 냉혈한 통치기술 뿐이다. 그저 몇 사람만을 위한 통치이지, 결코 국민 모두를 위한 통치일 수 없다.

업무 보고가 끝난 이 시점에서 이번 행복의 정부가 진정한 행복을 실현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실패는 지금 우리에겐 치명적이다. 위기 소리에 둘러싸인 지금, 보여주기 정치가 전부여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건 자신의 고통을 토로할 순번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은 내일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는 것이다.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 아직도 회자되는 것도 흑인 한 사람 한 사람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흑인들에게 희망의 내일을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이 시대의 어려운 사람의 절규를 듣고 미래를 내다보았으면 싶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담고 있는 말, 우리는 그런 말을 듣고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