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에는 미국 빌보드 차트와 함께 세계 양대 팝 차트인 UK차트 측은 중간집계 결과 29일 공식발표될 메인 싱글차트에서 <강남스타일>이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마침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의 아시아판 편집장 데이비드 필링은 <강남스타일>이 묘사한 내용과 연말 한국의 대선을 소재로 한국인들이 '존재론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아 주목된다. 다음은 '한국은 존재론적 불안에 빠져있다(South Korea wallows in existential angst)'의 주요 내용이다.
필링은 이 글에서 우선 한국은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아져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강남스타일>이 졸부들을 조롱하듯 많은 사람들이 경제제체가 왜곡돼 있다는 점에 불만을 품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필링은 '안철수 현상'에서 보듯 유권자들 사이에서 기성 정치권에 대한 혐오감도 팽배해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부정적인 요인들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링은 "한국은 민주적인 체제가 작동되는 나라"라면서 지금의 혼란은 민중의 의지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편집자>
▲ 지난 6일 미국 '2012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가수 싸이가 호스트를 맡은 케빈 하트와 함께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춰 말춤을 추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졸부와 성형수술 미인 조롱한 뮤직비디오
유튜브에서 조회 수만 2억8000만 번에 달한다는 <강남스타일>의 경이적인 성공은 한국의 번영을 보여주는 별나면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현상이다. 이 뮤직비디오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급속한 경제발전의 산물인 졸부와 성형수술 미인들을 슬쩍 조롱하고 있다.
하지만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 외교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위상이 높아질 수록 , 국내에서는 일종의 존재론적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자살률이 치솟고, 출산율은 매우 낮고,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권의 대선후보들 외면하고 검증되지 않은 IT 기업인을 택할 수도 있을 듯한 기세다.
이렇게 국민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는 것이 시기적으로는 언뜻 이상해 보인다. 삼성과 현대는 선진국에서도 고급 브랜드의 소비제품을 만드는 업체로 입지를 굳혔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유럽연합의 평균에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아랍에미레이트에서는 200억 달러의 원전 계약을 따내고, 인도와 중국, 브라질 같은 신흥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우선 동맹국의 지위를 일본과 다투는 등 한국은 어느 때보다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화려, 국내에서는 불만 고조
하지만 국내의 분위기는 다르다. 강남 주민들이 화려하게 잘 살수록, 경제체제 자체가 특권층에 유리하게 돼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 선진국 중 한국이 가장 불평등한 나라에 속한다는 통계도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자랑이라는 재벌도 국내에서는 경제적 악당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재벌들이 하청업체를 착취하고 중소기업들을 파산하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거시경제적 지표는 아무리 인상적인 성취를 기록하고 있다고 해도 자신은 가난하고, 과로에 시달리고, 사회적 압력에 짓눌려있다고 느끼는 한국인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특히 자녀들에게 많은 돈을 들여 애써 '시험 지옥'을 통과시키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다. 너무 많은 대졸자들이 배출되고, 보수가 괜찮은 일자리는 잡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한국의 출산율이 1.23명까지 떨어진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 2.2명은 물론, 1.4명인 일본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국제이벤트에 능한 이명박 정부, 국내 문제는 외면"
퇴임을 앞둔 이명박 정부는 국제적인 이벤트를 벌이는데 능했다. G20 정상회의를 유치해 차분하게 치르기도 했고, '녹색 성장'을 주창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존 덜러리 연세대 조교수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국내의 사회 경제적인 문제는 등한시했다. 자살률은 지난 10년간 두 배가 치솟으며, 40세 미만의 한국인에게 주요 사망 원인이 되었다. 여성의 지위 개선은 경제 발전 속도에 비해 훨씬 더뎠다.
유권자들의 불만은 오는 12월 대선을 앞둔 여론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바이러스 백신업체 안랩를 창업한 안철수는 그야말로 '깜짝 후보'다. 그는 특히 한국의 젊은층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기성정치권에 대해 비판적인 50세의 무소속 후보인 그는 지난 12일 대선출마 선언을 했을 뿐인데 4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안철수는 기성 정당 소속의 두 후보와 경쟁하고 있다. 박근혜는 현직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보수당 후보다. 최대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을 선택했다.
박근혜가 지난 24일 아버지인 독재자 박정희 시절의 과거사에 대해 끝내 사과한 것은 한국인들이 얼마나 과거와의 단절을 원하고 있는지 보여준다(박근혜는 매우 실리를 중요시하는 성향으로, 18년 동안 통치를 해오던 아버지가 1979년 암살당했을 때, 소식을 듣자마자 한 첫 반응이 "휴전선은 괞찮느냐"였다고 한다).
박근혜는 완벽한 보수파의 조건에 흠집을 내고서라도 중도적으로 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재벌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보다 공평한 부의 분배를 추구하는 '경제민주화'도 수용했다.
안철수는 낡은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대변한다. 장성민 전 의원은 "문재인은 과거의 인물, 박근혜는 과거의 유산, 안철수는 미래를 여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안철수 현상'은 민주주의 위기인가, 발전을 위한 진통인가
이들 3명의 대권주자가 나서면서 선거 결과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안철수와 문재인은 막판에 단일화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진보진영의 표가 분산돼 박근혜에게 승리를 넘겨줄 위험이 있다.
한국의 정치권이 이렇게 혼란스럽고 특히 정치신인 안철수의 인기가 높은 현상에 대한 가능한 한 가지 해석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상당히 잘못된 것일 수 있다.
1987년 군사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한국은 아직은 불완전할지 몰라도 아시아의 어느 국가 못지 않은 견고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한국은 유교적 사회나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양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비웃는 성공사례다.
현재의 한국 정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는커녕, 대권을 둘러싼 시끌벅쩍한 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민중의 의지에 적응하는 체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소한 그 점은 한국의 국내 분위기에 긍정적인 요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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