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는 재정문제 전문가로 정치적으로 중도적 입장에 서있는 학자로 분류된다. 다음은 25일 이 신문에 게재된 '복지국가는 잘 짜여진 폰지식 제도(The welfare state's a worthy Ponzi scheme)'이라는 이 글의 주요내용이다. 케이는 이 글에서 복지국가는 마지막은 혜택을 보지 못할 수 있는 폰지식 설계로 돼있는 체제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케이는 복지국가는 근본적으로 경제 구조와 연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인 해결보다는 효과적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최근 경제위기로 사회적 합의가 흔들리는 현상을 우려했다. <편집자>
▲ 지난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복지국가운동단체 회원들이 사회복지의 날을 앞두고 '복지국가 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논리 "지속가능하지 않다"
나는 지난 30년 넘게 복지 위기와 관련된 국제회의에 자주 참석해왔다. 한 회의가 끝나면 몇개월도 못가 다른 회의에 초청될 정도로 많이 참석했다. 지난주 런던에 온 미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톰 팔머는 "복지국가라는 것은 절도와 조작으로 이뤄진 체제"라고 맹비난했다.
이런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현재의 복지 제공 수준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이를 정부가 감당한다는 것은 거대한 폰지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흔히 특정 복지지출이 현재의 수준으로 무한하게 지속되면 얼마나 막대한지 추정하는 수치를 댄다.
팔머는 미국의 건강보험과 사회보장비가 이대로 지속되면 현재가치로 따져서 무려 137조 달러에 달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사회보장은 세대간 소득 이전이다. 자기가 먹을 빵은 그때그때 자기들이 만들어 먹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은퇴한 사람들에게까지 빵을 만들어줘야 하나? 더 이상 우리에게 해줄 능력도 없는 노인들을 우리가 왜 돌봐야 하나?
우선 칸트의 지상명령이 그 답으로 떠오른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는 것이다. 우리가 후대도 우리에게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앞의 세대를 돌보면 모두가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폰지 사기와 유사한 속성을 가졌다.
"파국을 맞을 때까지는 모두에게 좋다"
어느날 세상이 파국을 맞고 마지막 세대는 평화로운 은퇴에 대한 기대를 배반당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기금이 얼마나 천문학적으로 필요한지 미리 계산할 수 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향후 세대들이 감당하는 것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반세기 전에 위대한 경제학자 폴 새무얼슨은 이 문제에 대해 뛰어난 분석을 했다. 노령화에 대한 개인적인 대책은 나중에 먹을 빵을 비축해두거나, 젊은이에게 나중에 돌봐달라고 매수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해법은 사회보장 제도보다 뒤떨어진다. 사회보장은 최후의 날의 생존자들을 뺀다면 모든 세대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미래 세대가 자신들의 뒷세대도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기대 속에 앞 세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로 동의한다면 사회적 계약은 실행될 수 있다.
돈이라는 것은 교환의 수단일 뿐 아니라 가치의 저장 기능도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이런 돈의 기능이 발휘되는 또다른 장치다.
사회적 합의를 위협하는 요인들
하지만 이런 사회적 합의는 제대로 이행되지 못할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종종 그런 일이 벌어졌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돈의 가치 저장 기능이 훼손될 수 있다. 사회적 계약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깨질 수 있다.
어떤 세대가 자신들의 앞 뒤 세대보다 더 높은 생활 수준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면 세대간의 사회적 합의는 위태로워진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세대간의 사회적 계약은 생애 노동 기간과 은퇴 기간이 같이 늘어나야만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복지문제는 복지국가 체제에서만이 아닌, 어차피 존재할 문제다. 특정한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경제 구조와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보장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 합의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보다 심각하게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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