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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위기, '버마 모델'에서 무얼 배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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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위기, '버마 모델'에서 무얼 배울건가

[기고] 아세안의 '달래기' 외교'에 주목하자

최근 유럽연합(EU)이 버마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를 결정하였다. 이는 북한과 함께 극히 폐쇄적이고 억압적이었던 한 '실패국가'의 전향적 변화, 즉 '버마모델'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화답이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작년 11월 버마 방문 중 양곤대학 연설에서 북한이 버마와 같은 개방의 길을 선택할 경우 미국은 버마에 그랬던 것처럼 북한에 손길을 뻗을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이 제재의 대상이 아닌 포용의 대상이 되려면 '버마모델'을 본받으라는 적극적 메시지였다. 그렇다면 현재 버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방과 개혁의 배경은 무엇인가? '버마모델'을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주도한 제재(sanction)의 성과라고만 할 수 있는가?

서방의 제재를 신식민주의로 보는 버마군부

이번에 제재 철회를 선언한 유럽연합은 미국과 함께 버마에 대한 제재를 적극 추진해온 당사자이다. 유럽연합은 1990년 이래 버마와의 무기거래 중단을 포함한 전면적인 제재에 나섰다. 모든 군출신 외교관들을 추방하였고, 고위급 군간부들에 대한 비자발급, 나아가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외한 모든 쌍무원조를 중단하였다.

유럽연합은 1991년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유럽연합(EU)-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합에서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대승을 거둔 1990년 5월 총선결과가 무시되고 민족민주동맹(NLD) 지도자들이 탄압을 받는 버마 상황에 대한 동남아국가연합(이하 아세안)의 의견을 요구하는 등 동남아국가들을 우회적으로 압박하였다.

이어 1996년 10월에는 <버마에 대한 유럽연합(EU) 공동의 입장>을 채택했다. 여기에서 유럽연합은 버마 군사평의회가 민주주의세력과의 유의미한 대화를 거부하는 등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의지가 전혀 없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인권침해를 범하고 있음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또 유럽연합은 살해, 고문, 구금, 강제노역, 강제이주 등 인권 규범에 어긋난 버마 군사정부의 조처들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유럽연합은 1997년에 아세안이 버마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국 아세안이 버마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자 유럽연합은 아세안과의 대화를 일시 중단하였다. 이후에도 유럽연합은 아세안에 대해 버마의 인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2004년 10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게 된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ia-Europe Meeting, ASEM) 준비과정에서 유럽국가들은 아세안 회원국들이 버마를 정상회의에 참석시킬 경우 회의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강경했던 유럽연합이 태도를 전격적으로 바꾸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이는 2011년 10월부터 시작된 테인 세인 정부의 정치범 석방, 언론 자유화 등 일련의 정치개방 조치, 특히 2012년 4월 보궐선거가 비교적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지면서 아웅산 수지를 비롯한 민족민주동맹(NLD) 후보자들이 국회에 들어가게 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연합이 제재를 공식적으로 철회하자 테인 세인 정부는 추가로 정치범 56명을 석방하였다.

아직까지 유럽연합처럼 공식적인 제재 해제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미 정부도 버마와의 우호관계를 빠르게 진척시키고 있다. 그동안 미 정부는 군사정부 통치하의 버마를 인정하지 않은 차원에서 1988년 8월 8일에 일어난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 이후 군사정부가 새로 바꾼 미얀마라는 국호를 무시하고 버마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작년 미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버마를 방문한 오바마는 버마 대신 미얀마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버마에 대한 승인 의지를 보여주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버마를 북한과 함께 폭정의 전초기지로 호명할 정도로 버마에 대해 고강도의 적대적 입장을 취했다. 버마 군사정부가 2005년 11월에 양곤에서 북방으로 300여킬로미터 떨어진 외진 지역으로 수도 이전을 단행한 것도 미국의 침공에 따른 '제2의 이라크'를 우려한 것과 연관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2006년 초 군 최고 실세인 탄쉐 장군은 미국이 국제사회를 향해 버마에 대해 가일층 압력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두고 신식민주의자들의 버마 지배를 노리는 책략이라고 비난하였다.

'질서있는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포용한 아세안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서방사회와 버마의 관계가 급진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1년 3월 현정부 출범 이후 테인 세인 대통령과 민주진영을 대표하는 아웅산 수지간의 대타협에 따른 것이다. 이때의 대타협은 테인 세인 대통령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예상을 뛰어넘는 정치개방을 통해 민주인사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시작하면서 진척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강경파로서 군의 최고실세인 탄쉐의 최측근이었던 테인 세인이 개방노선을 취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현 테인 세인 정부는 2003년 8월에 공표된 '7단계 민주화 로드맵'의 최종단계로서 출범했다. 또한 현 정부는 군의 정치적 지도를 명문화한 2008년 헌법의 보호하에 있다. 상·하 양원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한다거나,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군부에 넘긴다는 내용 등은 바로 군의 정치 지도를 명문화한 헌법조항들이다. 요컨대 2008년 헌법은 군의 지도를 받는 '질서있는 민주주의'(disciplined democracy)를 제도화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버마 군부가 추진한 질서있는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대해 봉쇄와 제재로 일관하였다면 아세안은 이에 대한 간섭을 자제하고 '건설적 관여'(constructive engagement) 차원에서 버마 군사정부를 달래어 정치개방을 유도하였다는 점이다.

아세안이 서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버마를 회원국으로 끌어들일 때의 명분이었던 건설적 관여의 핵심은 내정불간섭, 주권동등, 지역 자율성 견지 등과 같은 '아세안 방식'(ASEAN way)에 따라 '버마위기'를 동남아시아 국가들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아세안 방식이란 비적대적 정치를 수단으로 버마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버마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아세안 방식은 버마의 인권문제에 대한 서방의 강경노선과는 다른 온건노선으로서, 버마가 지역현안에 적극 참여하고 지역동반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그리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을 때 얻게 되는 잇점을 자각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었다. 아세안이 보기에 가혹한 제재는 일반 대중들의 희생과 고통만을 수반할 따름이었다.

요컨대 아세안의 건설적 관여는 수도 양곤의 군통치자를 고립시키려는 서방의 방식과 달리 조용한 외교, 물밑 외교를 통해 군 수뇌부로 하여금 민주주의세력들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 아웅산 수지 여사 ⓒAP=연합


한반도 평화와 '아세안 방식'의 교훈

북한은 버마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버마처럼 군 지배 이전에 의회민주주의 경험도 없고, 그러기에 아웅산 수지와 같은 반군부 지도자도 없다. 그렇지만 북한 지도부와 버마 지도부는 탈식민 해방투쟁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자부심 속에서 사회주의 실험을 시도했지만 결국 정치,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한 공통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공히 '정권안보' 차원에서 군의 정치 지도를 정당화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를 신식민주의로 간주하고 있다.

한반도의 현 시점에서 버마에 대해 아세안이 취했던 달래기 전략은 유의미하다. '제재'(sanction)가 버마로부터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는 서방 국가들의 여유(luxury of distance)와 무관하지 않다면, '달래기'(coaxing)는 버마와 인접하고 있기에 피할 수 없는 아세안의 부담(burden of proximity)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는 폐쇄적이며 억압적인 '버마식 사회주의'보다도 더 폐쇄적이며 더 억압적인 북한체제와 대면하고 있는 남한과 주변국가들에게 매우 시사적이다.

결론적으로 '버마모델'이 한반도 위기에 봉착한 남한과 주변국들에게 주는 교훈이 분명히 있다. 동남아시아가 '버마위기'로부터 빠져나오고 있고 유럽과 미국이 전격적으로 버마 끌어안기에 나설 수 있었던 데에는 고립을 통한 변화보다는 포용을 통한 변화를 추구했던, 군부가 지도하는 '질서있는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던 아세안의 '달래기 외교'의 기여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특히 남한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절체절명의 과제로 해야 하기 때문에 서방의 제재 동참요구에도 불구하고 버마를 지역사회 안으로 끌어들여 버마 군수뇌부로 하여금 개방이 수반하는 잇점을 깨닫도록 한 '아세안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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