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이 치솟던 한반도가 4월 중순을 지나며 진정되나 했더니, 개성공단에서 '돌발 아닌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3~4월의 긴장국면에도 남아 있던 개성공단 근로자가 오히려 그 긴장국면이 끝나가는 시점에 철수되며 새로운 긴장요인이 되고 있다. 정전체제도 파탄나고 남북간의 대화채널도 모두 차단되었으니, 이제 남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최후의 7인' 밖에 없게 됐다. 이들마저 철수하면 남북을 이어주는 것은 개성공단으로 가는 송전선만이 남는다. 그나마 단전되면 죽은 전선이 될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는 남북대화채널이 최초로 열렸던 1971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정부는 왜 이 시점에 개성공단 체류 근로자의 전원 철수라는 행동을 취했을까? "국민 보호"가 공식적인 이유이다. 국가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무립고원의 섬이 된 개성공단에 남아 있던 근로자들이 심적·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위험을 느껴서 돌아가야 하겠다고 했다는 얘기는 들을 수 없다. 직원을 개성공단에 두고 있던 업체들은 오히려 귀환조치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식적 이유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지난 4월 26일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개성공단의 남한 측 인원 전원 귀환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
따라서 한국 정부가 제안한 '남북 간 실무회담'을 북이 거부했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로 제시된다. 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이 "북한의 '남북 간 실무회담' 거부에 따라 우리 정부가 공단에 잔류한 우리측 기업인과 근로자들을 귀환시키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힌 것과 같다.
여기서 또 질문이 생긴다. 한국 정부는 왜 25일 '남북 간 실무회담'을 제안했을까? 북의 국경일에 회담을 제안하며 하루 말미를 주고, 이때까지 답이 없으면 중대조치를 취하겠다고까지 강하게 회담을 부각시켰을까? 독수리 훈련이 끝나는 4월 말까지는 대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삼척동자도 알 만한 시점에서. 사전 물밑조정 없이 이렇게 강하게 회담을 제의하면 북이 거부할 것이라고 모두가 예측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 직전의 상황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초 만해도 정부와 언론은 북이 곧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고 소란을 떨었다. 언론은 "복수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강원도 동해안 지역으로 이송한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이 이미 4월 9일 "발사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보도했다. 10일 발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10일이 지나자 케리 국무장관이 방한하는 12일설이 나왔다. 12일이 또 지나자 김일성 주석 생일인 15일에 발사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16일도 지나자, "군사용 미사일의 연료로 적연질산이나 사산화이질소를 사용해 단기간 내 산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연료 주입 후 발사하지 못하면 폐기해야" 한다는 이유로 늦어도 북 창군기념일인 25일에는 발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이마저 틀리자 4월 말 한미연합훈련 종료일을 지목했다. 심지어 일본 언론에서 북의 미사일 준비 작업이 중단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서 "원산 북쪽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 준비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까지 북의 미사일 발사에 목을 매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정부, 왜 이러는 걸까?
외교관계위원회의 스콧 스나이더가 열쇠를 제공한다. 그는 외교관계위원회의 블로그에 "케리 국무장관이 귀국하기 전까지 북이 이 금지선을 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성공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최근 평가했다. 그가 얘기하는 '금지선'은 북의 미사일 발사다. 즉 북이 발사하려던 미사일을 아직까지 하지 않은 것은 케리 외교의 '성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12일 한국에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시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될 것"이라며 "김정은이 책임있는 지도력을 발휘해 올바른 선택을 내리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 핵없는 한반도를 위해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며 "북한의 국제의무 준수가 북한과의 대화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북은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지 않았다. 케리 국무장관의 '희망'대로 "김정은이 책임있는 지도력을 발휘해 올바른 선택"을 내린 것이다. 케리 국무장관은 대화로 가기 위한 분위기 조성을 요구했고, 북은 이에 화답했다. 스나이더가 지적한 대로 케리 대북외교의 일차 '성공'이었다.
이러한 성공에는 중국의 물밑작업이 있었다. 중국은 케리 국무장관의 아시아 방문 이전에 고위급 인사들을 개인자격으로 워싱턴에 보냈다. "4월 초까지 상황이 악화될 대로 악화됐는데 중국도 많이 노력했지만 힘들다. 미국도 더 노력해 달라. 북이 더 이상 상황악화를 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도록 하면, 미국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겠는가? 보다 구체적으로, 북의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키면 미국은 대화에 나설 수 있는가?" 미국 정부 안팎의 인사들과 모색한 내용의 요지이다.
이 물밑작업은 케리 국무장관의 '희망' 언명으로 공개화되고, 북의 화답으로 이어졌다. 바로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미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우다웨이가 워싱턴에서 "생산적 토론"을 한 것이 23일과 24일(한국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다웨이나 그 상급인사가 향후 북을 방문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바로 그 시점인 25일 남북 간 실무회담 제안이 나왔고 그 다음날 예상대로 북이 이를 거부하면서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한국정부는 26일 바로 성명을 발표해서 "북한의 부당한 조치"를 이유로 개성공단 잔류 인원 귀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27일 서울을 방문한 윌리엄 번즈 미 국무부 부장관에게 이를 설명했고 그는 "전적인 이해와 지지"를 표시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케리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상황'이 조성됐다는 데 번즈 부장관이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갖는 대북정책의 함의는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음모론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봐서 4월초부터 시작되어 서서히 힘을 얻어가던 대화의 흐름에 묘한 난기류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이제 개성공단에 남은 '최후의 7인'에 한반도의 운명이 걸려 있다. 난기류를 정리하고 대화의 물길을 틀 것인가? 난기류가 소용돌이가 되어 한반도를 또 다른 격랑으로 이끌 것인가? 다음 주 한미정상회담에서 솔로몬의 지혜가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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